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852)
아크 더 레전드-852화(852/875)
[852] SPACE 1. 그들이 움직이다! (2)“하아…….”
붉은학살자가 글라도스 옆에서 한숨을 불어 내고 있는 그때. 수만 광년 떨어진 너브 지역의 아도니스 궤도에서도 여자 친구 앞에서 한숨을 불어 내는 사내가 있었다.
이 남자는 다름 아닌 아크, 그 앞의 여자 친구는 이리나였다.
그러나 같은 그림이라고 상황까지 같은 것은 아니었다.
아크가 한숨짓는 이유는 모함으로 돌아와서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금 은하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유저들을 거품 물게 만든 이면세계의 몬스터 출현 사건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아니, 그런 정도가 아니라…….
“심각해요!”
이리나의 말이었다.
그리고 그 말대로, 그녀의 표정은 실로 심각해 보였다.
여기에 덤으로 그녀와 함께 넓은 회의실을 채우고 있는 스페이스 유니온 멤버들의 표정도 심각했다.
당연히 이유가 있었다.
“정체불명의 몬스터가 워프 항해 중인 우주선을 습격하는 사건은 은하계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어요. 발생 빈도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분위기예요. 지역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워프 항해를 하는 우주선 중 대략 10~20%가 습격을 받는 것 같아요.”
마틴 후작은 군사용 워프 항로에 몬스터가 나타나는 빈도가 80~90%라고 말했었다. 그에 비하면 일반 항로는 꽤 낮은 편이지만 그 역시 적은 수치는 아니었다.
10~20%라면 누구라도 열 번에 한두 번은 습격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니까.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에요. 문제는 대항할 방법이 거의 없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그 문제의 몬스터는 상선은 물론 전함, 심지어 함대까지, 가리지 않고 습격했지만 아직 그중 누구도 물리쳤다는 말은 들어 보지 못했어요. 겨우 도망쳤다는 사람만 몇몇 있을 뿐이죠. 하지만 그것도 전체의 5%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죠.”
문제의 핵심은 바로 이 부분이다.
사건 발생 직후, 유저들이 거품을 물었던 이유는 이면 세계에서까지 몬스터가 나타나면 워프 중에도 자리를 비울 수 없게 됐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몬스터는 유저들이 상상했던 것보다 강했다. 그리고 이면 세계라는 장소의 특성상 도주하기도 힘들다.
그 결과 나온 수치가 생존율 5%.
유저가 자리를 비운 상태라면 말할 것도 없지만, 자리를 지키고 있어도 딱히 달라지는 것은 없다는 말이었다.
그러니 유저 입장에서는…….
“말이 되냐! 결국 워프 항해를 할 때마다 10~20% 확률로 죽는다는 말이나 다름없잖아! 항해가 무슨 제비뽑기야? 대체 항해를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이런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당연하다. 갤럭시안의 유저에게 워프 항해는 선택이 아닌 필수! 그런데 그 필수 코스가 갑자기 죽음의 코스가 되어 버린 것이다. 열 받지 않겠는가!
그래도 다른 유저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더 심각한 건 우리들이야! 너희는 항해를 못 해도 적당한 던전 하나 찾아 틀어박혀 있으면 되잖아! 하지만 우리는 항해를 못 하면 아예 경험치도! 돈도 못 벌어!”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유니온 멤버의 상인이었다.
“그리고 설사 몬스터에게 당해도 보험금 받으면 손해도 크지 않잖아!”
“뭐야? 너희는 보험금 안 나와?”
“나오지, 우주선은. 하지만 화물은 보험 처리가 안 된다고!”
“맞아. 수송 중에 사고당하면 우리는 우주선 수리비뿐만 아니라 화물값까지 물어내야 해! 젠장, 화물 운송으로 무슨 떼돈을 번다고 그런 것까지…… 한 번 사고가 나면 수십 번 운송해서 번 돈을 몽땅 날리는 거라고. 아니, 재수 없이 고가품을 운송하다가 일이 터지면 그냥 한 방에 훅 가는 거야. 망하는 거라고.”
그게 은하 3국의 영내보다 개척지의 운송료가 서너 배 높은 이유다. 개척지에는 해적이 있으니까.
그러나 그런 개척지라도 일단 워프에 돌입하면 해적을 만날 확률은 0.1%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의 몬스터는 이면 세계에서 나타난다. 그것도 개척지와 은하 3국의 영내를 가리지 않고!
그러니 이번 사태로 상인들이 느끼는 암담함은 다른 직업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리고 추가로 설명하자면 아크의 유니온 멤버는 반 이상이 상인이었다.
“왜 나한테 성질이야?”
“누가 너한테 뭐라고 했어? 상황이 엿 같다는 말이잖아! 빌어먹을, 그러지 않아도 상인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데 이제 아예 게임을 접으라는 거야, 뭐야?”
덕분에 여기저기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고, 감정이 격앙된 멤버들끼리 말싸움까지 벌어져 회의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돼 버렸지만.
탕-!
“시끄러워요!”
이리나가 탁자를 내리치며 소리쳤다.
그러자 와글거리던 회의실이 순식간에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그리고 무안한 표정으로 딴청을 피우며 이리나의 눈치를 살피는 유니온 멤버들.
‘이건 뭐랄까…….’
턱을 괴고 멤버들을 지켜보던 아크가 고소를 지었다.
사실 이리나가 사업체 관리를 맡겠다고 했을 때, 순순히 허락한 것은 그저 여자 친구여서가 아니었다.
그녀는 전직 연방군 장교. 뿐만 아니라 아크도 직접 벨타나와 A-001에서 그녀의 업무 능력을 확인한 적이 있었다. 때문에 업무적인 부분은 걱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업체 관리는 업무 능력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이 사람 관리 능력!
아크가 걱정했던 것이 그 부분이었다.
유니온 멤버들은 나름 적지 않은 경력을 가진 유저들. 아크는 이리나가 그런 유니온 멤버를 제대로 컨트롤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지만.
‘제대로 잡고 있군.’
아무래도 A와 B의 비리를 적발해 경질시킨 것이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덕분에 A와 B는 이큘러스의 관리자에서 모함의 화장실 청소부로 감등되어 냄새나는 매일을 보내는 신세가 되었지만, 이리나는 단숨에 실세로 부상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좋아할 때는 아니었다.
“지금 그런 말이나 하자고 모인 게 아니잖아요!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돼요? 이건 지금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에요! 우리 유니온의 존폐가 걸려 있는 문제라고요!”
이런 상황이니까.
“자, 주위를 한번 둘러보라고요!”
이리나의 말에 유니온 멤버들은 어미 새를 따르는 새끼들처럼 그녀의 손을 따라 주위를 주욱 훑어보았다.
이리나가 말한 문제라는 것이 바로 이거다.
뭐 몬스터의 습격 빈도니 사망률이니 하는 것은 갤럭시안의 유저 모두가 겪고 있는 일이니 새삼 아크와 유니온 멤버가 모여 떠들 일은 아니다.
아크가 남의 일이 아니라고 한 것도 그런 범우주적인 차원의 얘기가 아니었다. 문제는 그로 인해 아크가 받은, 아니 받고 있는 실질적인 피해였다.
새삼스럽지만 아크가 유니온 멤버의 공훈치까지 긁어모아 이 모함을 구입한 이유는 폼이나 잡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이 모함을 우주 정거장으로 용도 변경해 개척지와 은하 3국을 잇는 교역의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장대한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미 그 계획은 아크가 룬의 성전으로 가기 전에, 이리나가 총괄 사업 본부장으로 부임했던 20여 일 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되었고 일부는 완성되어 있었다.
“이게 그동안 우리가 바꿔 놓은 모함이에요. 도크와 창고를 기존의 3배로 확장하고, 그에 맞춰 휴게소도 넓히고, 선실을 개조해 장거리 항해를 끝내고 방문한 선원들이 휴식과 회복을 할 수 있는 수면실로 만들었죠. 그리고 상부에는 너브 전역을 바라보며 차를 마실 수 있는 전망대형 카페와 추가로 도박장과 경매장 같은 부대시설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에요. 모두 여러분이 피땀으로 만든 시설이죠.”
피땀만이 아니다.
사실 그보다 돈이 더 많이 들어갔다.
아크는 물론 유니온 멤버들도 주머니를 탈탈 털어 쏟아부은 것이다.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도박장이나 경매장은 말할 것도 없이 도크나, 창고, 휴게실, 카페 같은 시설을 만들기 위해 주머니를 탈탈 턴 이유는 하나!
손님의 주머니를 탈탈 털기 위해서다.
그 목적을 위해 쏟아부은 돈이 지금까지 28,000골드!
아크의 장대한 사업 계획에 혹한 유니온 멤버들은 가진 것을 다 털어 넣어 지금은 거지나 다름없는 신세였다.
그래도 이건 투자!
그들은 자신들이 쏟아부은 돈이 곧 새끼 치듯이 늘어나 엄청난 부를 안겨 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지만!
“보세요!”
이리나가 회의실 모니터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영업 개시 13일째
-총방문객 : 8명 영업 이익 : 5골드 49실버
모함 가격만 공훈치 25,000,000!
거기에 시설 변경에 별도로 28,000골드!
그런데 개장한 지 13일이 지난 지금까지 방문객은 8명, 영업 이익은 6골드도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건 아크의 잘못이 아니었다. 이리나의 잘못도 아니었다.
“이게 지금 우리가 당면한 현실이라고요!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뭐 그야…….”
“네! 생각할 필요도 없죠!”
암담하기 짝이 없는 현황판을 바라보던 이리나가 고개를 돌리며 소리쳤다.
“이게 모두 그 정체불명의 몬스터 때문이라고요! 이 모함의 주 고객층은 개척지와 은하 3국을 오가는 상인들! 하지만 하겠냐고요! 이런 상황에서 무역이나 운송을!”
안 한다. 아니,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10~20% 확률로 죽을 위험을, 그것도 화물까지 몽땅 잃어버릴 위험을 감수하며 운송을 감행할 용자는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현재 대부분의 상인들은 잠정 휴업 상태. 그게 비참한 영업 실적의 원인이었다.
상인들이 움직이지 않으니 정거장이 장사가 될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수입이 없다는 것이 아니었다.
상인들은 잠정 휴업 상태로 들어갔지만 모함은 그러기도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 모함의 유지비가 얼마나 드는지 알아요? 연료비와 시설 유지, 보수, 청소에 드는 비용을 모두 합하면 하루에 200골드가 넘어요. 하루에 200골드의 적자가 생기고 있다고요!”
이리나가 예민해진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모함을 구입할 때 마틴 후작도 경고했지만 모함은 그저 둥둥 떠 있는 것만으로도 무지막지한 돈을 잡아먹는 것이다.
덕분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회의를 하고 있는 지금도 꾸준히 적자가 쌓여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적자를 메우고 있는 사람이 아크였다.
이미 유니온 멤버들은 모함의 시설 투자에 가진 것을 탈탈 털어 넣었다. 남은 게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아크는 모함 외에도 사업체를 가지고 있었다.
당장 장사가 안 된다고 모함을 폐기 처분 할 수는 없으니 그나마 여유가 있는 아크가 유지비를 대는 수밖에 없었다.
‘이건 나중에 돌려받을 수 있는 돈이지만…….’
지금 아크가 적자를 메워야 하는 곳은 모함만이 아니었다.
일단 다시 한 번 설명하자면, 현재 은하계의 운송 업자들은 대부분 휴업 상태로 돌입했다.
사고를 당해도 부담이 적은 모험자나, 자기 돈으로 사업하는 무역상과 달리 영세한 운송 업자는 유니온의 상인들이 떠들던 말처럼 사고가 생기면 한 방에 훅 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은하계에 또 다른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바로 물류 대란!
운송 업자가 몽땅 손을 놔 버리니 생산지에서는 물건이 쌓여 썩어 가고, 소비 지역에서는 우주 식량 하나 구하기 힘들어지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다.
당연히 필수 소모품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정부 시스템도 마비 상태가 되었다.
그야말로 일파만파!
한 유저의 행동이 은하계 전체를 혼란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