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86)
아크 더 레전드-86화(86/875)
[86] SPACE 4 경계 너머로! (2)처음 보는 정보창이 아니다.
벨타나에서 만났을 때도 마틴 후작은 같은 제안을 한 적이 있었다.
마틴 후작이 내민 조건은 그의 말처럼 파격적이었다. 은하연방이나 4대 기업을 스폰서로 삼는 것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할 게 없는 수준. 다른 유저와 달리 이미 전쟁영웅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으니 대우가 달라지는 것이다. 아마도 마틴 후작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다른 유저들보다 많은 특혜를 받으며 성장해나갈 수 있으리라.
‘하지만 내 경쟁상대는 그런 유저들이 아니다. 최강의 인공지능 루시퍼다.’
지금 아크는 게임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죽어도 경험치나 떨구는 게임 속의 싸움이 아닌, 진짜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택산 지구 부동산 폭락 사건이 터졌을 때, 아크는 비로소 그 사실을 절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루시퍼와의 싸움은 다른 유저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갤럭시안의 궁극의 목표. 단 한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는 자리를 차지해야 끝나는 싸움이다.
‘아직 그 궁극의 목표가 뭔지는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해야할 일은 하나뿐이다. 뉴 월드의 아크처럼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가 되는 것. 갤럭시안의 궁극적인 목표가 뭔지는 몰라도 자타공인의 최고 자리에 오르면 이미 게임은 끝난 거나 다름없어. 아니, 루시퍼가 뉴 월드의 설욕을 위해 나를 불러들였다면 그게 놈이 생각하는 최종 목표일지도 몰라.’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것.
현실이든 게임이든 그런 자리는 결코 남의 밑에서 이룰 수 있는 목표가 아니었다.
아크가 무리를 하면서도 자가 사업체, 그러니까 스스로 스폰 기업을 세운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운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미 그 첫 단계로 에이전트 등록에 필요한 자금을 모으기 위해 친위대원에게 앵벌이를 시키고 있는 중이었다.
따라서 이런 제안은, 그게 아무리 구미가 당기는 것이라도 재고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단칼에 거절하기에는 신경 쓰이는 문제가 있었다.
“혹시 그 말은…… 대답 여하에 따라 보상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뜻입니까?”
아크의 질문에 마틴 후작이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 내 생각만 하다보니 자네 입장을 깜빡했군. 타이밍이 좋지 않았어. 보상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이런 얘기를 꺼내면 오해할 수도 있겠지. 내 생각이 짧았어.”
“보상과는 상관없다는 말입니까?”
“이런, 이런, 정말 쩨쩨한 인간처럼 보이기 전에 보상 문제부터 정리하는 게 좋겠군.”
마틴 후작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뭔가를 꺼내들었다.
직경이 1미터 가량 되는 금속원판이었다.
‘헉! 이, 이건?’
-에어보드(귀속)
아이템 타입: 탈 것
전자력을 이용해 공중에 뜬 채 이동할 수 있는 호버(Hover)형 에어보드입니다.
전자력을 발생시켜 물체를 공중에 띄우는 호버 기능은 에너지 효율과 경량화가 어렵다는 이유로 현재까지는 바이크 같은 중형 이동수단에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꾸준한 개량에 의해 소형화가 가능해져 보드 형태의 이동수단을 개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에어보드는 최대 시속 60킬로미터로 바이크의 5분의 1밖에 되지 않지만 언제나 휴대하고 다닐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한 익숙해지면 좁고 복잡한 지형도 자유자재로 이동할 수 있을 정도로 조작이 간편해 차세대 이동수단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제품입니다. 단, 별도의 안전장치가 없으므로 사고 시 치명적인 부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비매품입니다.
《최대 시속 60km h》
‘헉! 진짜다! 진짜 에어보드다!’
정보창을 읽어본 아크의 입이 쩍 벌어졌다.
사실 요 며칠 아크는 진지하게 고민하는 문제가 있었다.
바로 탈 것의 존재였다. 이전 게임, 그러니까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뉴 월드에서는 초반부터 탈 것을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마을에서 한 걸음만 나가도 몬스터가 득실거리는 사냥터였고, 다른 마을이나 도시도 걸어서 2~3일 거리밖에 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게임이 그렇듯, 그냥 느긋하게 사냥이나 하면서 이동해도 충분했던 것이다.
그러나 갤럭시안은 다른 게임과는 스케일부터 달랐다. 굳이 우주까지 나갈 필요도 없이, 은하연방의 중심지인 이스타나만 해도 지구의 2.5배에 달하는(일단 설정 상은) 크기.
실질적인 사냥터라고 할 수 있는 경계 밖.
그러니까 이스타나의 10%에 해당하는, 도시 지역을 벗어나 고레벨 몬스터가 서식하는 미개척 지역까지 가는데 만도 최소 100킬로미터를 이동해야한다.
걸어본 사람은 안다.
그게 얼마나 쓸데없는 시간낭비, 체력낭비인지.
벨타나에서 본의 아니게 연방군 기지에서 532킬로미터 떨어져 버리는 바람에 개고생을 해봤던 아크는 이동수단의 필요성을 절감할 수 있었다.
‘무리를 해서라도 본격적인 모험을 하기 전에 하나 사두기는 해야하는데…….’
언제나 그렇듯이 문제는 망할 놈의 돈이다.
일반적으로 갤럭시안의 유저들이 사용하는 이동수단은 바이크.
그러나 바이크는 바퀴가 달린, 최고 시속 100킬로미터 짜리 골동품 같은 옛날 기종도 200골드나 되었다. 벨타나에 있을 때는 몰랐지만 아크가 타봤던 쾌적한 승차감에 시속 300킬로미터까지 나오는 호버 바이크의 경우는 500골드나 하는 고가품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필요하다면 뭐가 됐든 사는 수밖에 없지만…….’
그런 바이크도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가방에 넣고 다닐 수 없으니 던전이나 유적지에 들어갈 때는 밖에 주차시켜 두어야한다는 점. 물론 이건 중세시대 게임에서 사용하는 말도 마찬가지였다. 아크가 걱정하는 것은 일일이 주차해야한다는 불편함이 아니라 보안이었다. 만약 바이크를 주차시키고 볼 일을 보는 사이에 아크처럼 해킹 스킬을 가진 놈이 훔쳐가기라도 하면 OTL!
물론 해킹 스킬이 그리 흔한 스킬은 아니지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야!’
도둑이 제 발 저린 법이다.
당장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보니 도무지 안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마틴 후작은 이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준 것이다. 공짜로 이동수단이 생기고, 게다가 에어보드는 바이크와 달리 가방에 수납할 수 있는 탈 것이었다.
시속이 60킬로미터밖에 되지 않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뭣보다 공짜가 아닌가!
‘대박이다! 그동안 살인적인 스케줄을 강요해서 속으로 무지하게 욕했는데, 그래도 마지막에는 한 건 터뜨려 주는구나. 딱 필요할 때 딱 원하는 보상을 주다니!’
아크가 침을 질질 흘려대며 즐거워하고 있을 때였다.
“어때? 만족하나?”
“물론이죠. 딱 입니다!”
아크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러자 마틴 후작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일단 네가 만족한다니 다행이군. 하지만 내 제안을 듣고 대답에 따라 보상이 달라질 수 있느냐는 질문을 했다는 건…… 이번에도 내 제안을 거절하겠다는 뜻이겠군. 맞나?”
이미 만족할만한 보상을 받았다.
더 이상 마틴 후작의 눈치를 볼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어찌됐든 마틴 후작은 은하연방의 유력 귀족, 굳이 기분 상하게 만들 이유가 없다. 뭣보다 이렇게 마음에 쏙 드는 아이템을 쾌척 해준 고마운 NPC가 아닌가?
“후작님이 제 능력을 인정해주시는 건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하지만 저는 불과 넉 달 전에야 우주로 나온 풋내기 개척자입니다. 벨타나에서는 어쩌다보니 운이 좋아서 영웅 소리를 들을만한 공적을 세우게 됐지만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습니다. 그런 제가 후작님의 기대에 보답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이 없습니다. 만약 제가 후작님 밑에서 일하게 된다면 훗날, 제 스스로 납득할만한 실력을 쌓은 뒤가 될 것입니다.”
“간단하게 말해 싫다는 거군.”
“죄송합니다.”
“아니, 싫다면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마틴 후작이 깎지를 낀 채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찜찜한 침묵이 이어지기를 몇 분, 마틴 후작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럼 부탁을 하나 해도 되겠는가?”
“부탁이라면?”
“자세히 설명하자면 얘기가 너무 길어질 것 같으니 간단하게 설명하지. 이곳 나베실은 이스타나 최북단의 도시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하나가 더 있지. 너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은하연방의 동맹인 제 3외계종족 연합 아슐라트. 나베실 북부의 미개척지에는 그 아슐라트 소속의 도시 자렘이 자리잡고 있지.”
“네? 이스타나는 은하연방의 혹성 아닙니까?”
“은하연방의 혹성이다. 당연히 아무리 동맹국이라도 아슐라트의 도시가 이스타나에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 그래서 아슐라트는 공식적으로는 자렘과 연관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어. 하지만 아슐라트가 자렘과의 관련을 부정하는 이유는 단순히 이스타나가 은하연방의 혹성이라는 이유 때문은 아니다. 자렘은 도시 자체가 거대한 밀수조직이기 때문이다.”
“밀수조직?”
“그래, 은하계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혹성간에 반입이 금지된 물건들이 있어. 자렘은 그런 물건을 밀수하는 자들의 창구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지. 은하연방은 물론 아슐라트, 심지어 라마족 혹성의 물건까지 자렘을 통해 밀수되고 있지.”
마틴 후작이 한숨을 불어내며 말을 이었다.
“은하연방이 그런 정황을 알고 있으면서도 지금까지 묵인해온 이유는 지금까지는 자렘이 도움이 되는 면도 있었기 때문이야. 말했듯이 자렘은 공식적으로는 무국적 도시다. 때문에 라마족과도 연결되어 있을 수 있는 거다. 덕분에 지금까지 은하연방은 그런 자렘의 존재를 묵인하는 대신, 그곳을 통해 라마족의 정보를 얻을 수 있었지.”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는 말이군요.”
“그렇지.”
마틴 후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벨린 성좌에서 라마족과 충돌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슐라트는 내부 문제를 핑계로 참전을 거부했다. 그와 함께 자렘에서 들어오던 모든 정보가 차단되었다. 동시에 그때까지 자렘에 잠입해있던 은하연방의 정보원들에게서도 연락이 끊겼지. 현재로서는 자렘이 은하연방과의 라인만 끊었는지, 라마족과의 라인도 끊은 것인지조차 확인이 되지 않고 있어. 경우에 따라서는 자렘이 라마족의 정보창구가 되어있을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지.”
마틴 후작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듣고 보니 그 표정처럼 심각한 문제이기는 했다.
은하연방의 중심지에 버젓이 자리잡은 도시가 적국인 라마족에게 정보를 팔아 넘긴다.
전쟁 중인 국가 입장에서는 이보다 심각한 문제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심각한 문제이기에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자렘은 공식적으로 무국적 도시라면서요? 만약 자렘이 정말 라마족과 내통한다면. 아니, 무국적에 밀수 창구로 이용되는 도시라면 그런 증거가 없어도 연방군을 동원해 처리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도 아슐라트는 불평할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네게 부탁하려는 게 그거다.”
마틴 후작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도시라고 말했지만 자렘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일반적인 도시가 아니다. 몇 겹의 실드와 최첨단 위장기능을 갖췄을 뿐만 아니라, 이동까지 가능하지. 게다가 자렘이 있는 곳은 도시에서 1,00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미개척지라 항성 레이더로도 잡히지 않아. 지금까지 은하연방이 자렘의 존재를 묵인해줬다고 말했지만 실상은 처리할 방법이 없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지. 도시를 공략할 정도의 대규모 병력을 자렘의 정보망에 걸리지 않게 움직이기는 힘들뿐더러 설사 병력을 움직인다해도 만약 놈들이 도망치면 사태는 더욱 악화될 테니까.”
은하연방은 아직 자렘이 라마족과 내통한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병력을 동원했다가 실패하면 자렘은 100% 라마족 쪽으로 붙게 될 게 뻔하다. 게다가 비록 공식적으로는 부정하지만 실제로는 아슐라트 소속의 도시. 아예 처음부터 은하연방이 자렘을 범죄도시로 규정하고 토벌을 나섰다면 모를까, 지금까지 묵인해오다가 갑자기 연방군을 동원해 공격하면 아슐라트와의 동맹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은하연방은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병력을 투입할 정도의 배짱은 없는 것이다.
“연방군을 투입하려면 확실하게 제압할 수 있다는 보장이 있어야해.”
마틴 후작의 목소리가 더욱 낮아졌다.
“나는 네가 그 확신을 만들어주었으면 한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간단하다. 네가 자렘에 잠입해 이걸 사용해주면 돼.”
마틴 후작이 작은 가방 사이즈의 기계를 꺼내 보여주었다.
“이건 은하연방의 군부와 다이렉트로 연결되는 GPS발신기다. 지금까지 개발된 GPS발신기 가운데 가장 장거리 발신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어지간한 전파방해는 장애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실드지. 자렘을 감싸고 있는 몇 겹이나 되는 실드는 이 발신기로도 뚫을 수 없어. 그러니 이 발신기를 사용하려면 먼저 실드를 해제할 방법을 찾거나 혹은 유일하게 실드가 없는, 자렘의 통신용 안테나와 연결해 작동시키는 방법뿐이다. 일단 그것만 성공하면 연방군이 자렘을 제압하는 것은 일도 아니지.”
“그걸 저보고 하란 말입니까?”
“맡아줬으면 좋겠군.”
“하지만 자렘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네게 부탁하는 것이다.”
마틴 후작이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말했지? 나는 네 능력을 높이 사고 있다. 하지만 그건 네 전투력을 높이 평가한다는 말이 아니야. 단순히 전투력이라면 내 밑에도 너보다 믿을 만한 녀석이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내가 필요로 하는 사람은 단순히 강한 전사가 아니야. 너 같은 전사다.”
“나 같은 전사가 대체 뭔데요?”
“매스컴에는 벨타나 전투가 모두 연방군의 작전이었다고 발표했지만, 적어도 나와 너는 알고 있지 않은가? 하만 사령관에게 모든 정황을 들었다. 그리고 네가 뿌린 동영상도 몇 번이나 돌려보았지. 그래서 내린 결론은 네가 임기응변에 강한 개척자라는 것이다. 얍삽하다고 해도 좋고, 잔꾀가 많다고 해도 좋아. 그게 뭐든 상황을 들어서 알겠지만 이번 일에는 무엇보다 그런 재능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지.”
‘그렇군. 이제야 상황이 대강 이해가 가는군.’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방송 스케줄을 잡던 마틴 후작이 갑자기 돌변해 일정을 취소시킨 이유. 내내 그 점이 석연치 않았는데 이제야 마틴 후작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아크의 인지도가 떨어지기 시작한 건 며칠 전부터다. 그런데 굳이 이전도 아니고, 또 이후도 아닌 이곳 나베실에 도착해서야 모든 일정을 취소시킨 것은 여기가 자렘과 가장 가까운 도시이기 때문이다. 아크에게 이 일을 떠넘기기에 가장 좋은 장소인 것이다.
‘많고 많은 보상품 중에 굳이 에어보드를 준 것도 그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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