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90)
아크 더 레전드-90화(90/875)
[90] SPACE 5 병원에서 생긴 일 (2)그러나 자부심을 느끼는 것과 어머니를 걱정하는 것은 별개였다.
현우가 침울한 표정을 짓자 권화랑이 피식 웃으며 어깨를 두드렸다.
“걱정하지 마라. 말했잖아, 나와 박소미 여사가 있는 곳은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위험한 곳은 아니라고. 실은 얼마 전에 난민캠프에 갔다가 정부군 장교를 만났는데, 그 녀석이 예전에 내가 FBI 격투기 사범으로 초빙됐을 때 제자로 있던 녀석이었어. 그때 엄청 얼빵하게 굴어서 무지하게 굴렀던 놈인데 소령을 달고 있더라고. 그 녀석이 여러 가지 편의를 봐주고 있어서 위험한 일 따위는 없어.”
마치 영화에서나 나올 만한 일을 아무렇지 않게 떠들어대는 권화랑이었다.
하긴 권화랑이 좀 특별한 인간이기는 하다.
동방불패인지 남방불패인지는 모르겠지만 형사 시절에는 권화랑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조폭이 없다고 할 정도였다. 한때 나름 잘나갔던 갱생단 멤버도 권화랑에게만은 절대 복종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작 권화랑은 자신의 명성(?)에는 관심이 없었다.
권화랑이 어머니와 살림을 합칠 때.
현우는 짐 옮기는 일을 도와주다가 구석에 처박힌 두툼한 종이뭉치를 발견했던 적이 있었다. 각종 수료증과 감사장, 표창장 등 형사 시절에 받은 각종 상장이 무슨 백과사전 두께만큼이나 쌓여있었던 것이다. 현우가 그 상장에 대해 묻자 권화랑이 대답했다.
“아, 그건 재활용 쓰레기니까 나중에 한꺼번에 처리하면 돼.”
다른 사람이었다면 거실 정중앙에 멋들어지게 걸려있을 상장이, 권화랑에게는 재활용 쓰레기 취급을 받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가끔 권화랑이 해결한 사건의 피해자가 보내온 편지는 상자에 차곡차곡 담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그런 남자다.
현우에게 아버지는, 어머니만큼이나 존경스러운 존재였다.
그래서 어머니를 맡길 수 있었고, 남아프리카 같은 곳에 가도 안심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애를 낳으면 어쩔 건데요? 갓난애를 그런 곳에서 키울 수는 없잖아요.”
“글쎄다. 어쨌든 지금은 의사 말대로 안정이 필요한 시기니까 굳이 당장 그런 얘기를 꺼낼 필요는 없겠지. 그 문제는 엄마와 함께 차차 의논해보자. 그보다 인마, 임신한 엄마 소원 한 번 들어준다 생각하고 얼른 얼른 장가나 가버려.”
“정말 아버지까지 왜 그래요? 장가는 뭐 저 혼자 갑니까? 상대가 있어야죠.”
“그러니까 소개 팅 시켜준다잖아. 어쨌든 소개 팅 나가기로 한 거다?”
권화랑이 툭 던지듯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나는 공항으로 돌아가마. 박소미 여사가 쓰러지는 바람에 너무 정신이 없어서 짐을 공항에 두고 와버렸거든. 짐을 찾아 집에 옮겨두고 오려면 저녁때나 되야 올 수 있을 거야. 그때까지 병원에 있을 수 있지?”
“있어야죠.”
“그래, 그럼 부탁하마. 아들.”
권화랑이 빙긋 웃으며 말하고는 병원 밖으로 나갔다.
병상을 지킨다고 하지만, 어머니가 잠들어 계시니 딱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 참에 해킹 연습이나 해둘까?’
현우는 병실 앞에 앉아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현우가 갤럭시안에서 요긴하게 써먹고 있는 해킹 스킬. 이 스킬로 데이터의 락을 해제하는 방식은 미니 게임을 클리어 하는 방식이었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익숙한 방식의 게임이었고, 난이도도 그리 높지 않아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때문에 현우는 틈틈이 핸드폰을 이용해 해킹(?)기술을 연마하고 있었다.
피코피코! 뿅뿅! 띠리띠리! 뿅뿅!
그렇게 현우가 한참 기술연마에 몰두하고 있을 때였다.
“간호사! 간호사! 여기 좀 와주세요!”
근처에서 누군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간호사와 의사가 병실로 뛰어갔고, 그 소란에 근처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현우 역시 무슨 일인지 궁금했지만 다른 사람들과 떼지어 병실로 몰려가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머니가 중환자 실에 있을 때, 조금이라도 평소와 다르다 싶으면 현우 역시 방금 전의 다급한 목소리처럼 몇 번이나 간호사를 불렀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지금처럼 병실 앞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단순한 호기심이나, 혹은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겠지.
그러나 그때 현우는 그들이 마치 다른 사람의 불행을 구경하고 싶어 몰려드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적어도 환자나 보호자에게는 달갑지 않은 관심인 것이다.
정작 당사자들은 그걸 모른다는 게 문제지만…….
현우가 그런 기억을 떠올리고 있을 때였다.
“일전에도 말했듯이 의식불명에 빠진 환자라도 반사신경이 살아있어 가끔 손가락이나 발가락, 혹은 눈동자가 움직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확인해보니 이번에도 그런 케이스인 것 같군요. 하지만 너무 실망하지 마십시오. 이전 검사에서도 많이 호전됐다는 결과가 나왔으니 조만간 차도를 보일 겁니다. 또 변화가 보이면 언제든지 간호사를 부르세요.”
‘저 환자도 그때 어머니처럼 의식불명인가 보구나.’
몇 년 전의 기억이 떠오른 현우가 씁쓸한 한숨을 불어내며 고개를 돌렸다.
순간 현우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네, 감사합니다.”
병실 문 앞까지 나와 고개를 숙이는 젊은 여자.
그녀는 놀랍게도 현우가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전에 봤을 때와 달리 헐렁한 트레이닝복 차림이었지만 얼굴을 보는 순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리나?’
바로 자선 파티장에서 봤던 이리나!
게임 속에서는 벨타나의 죄수부대 부대장이었던 이리나였다.
‘뭐야? 이리나가 아는 사람이 이 병원에 입원해있었던 거야? 무슨 이런…….’
현우가 이리나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벨타나에서 네팔림으로 돌아온 직후였다.
그때 현우는 벨타나에 갇혀있을 때 이리나가 도움을 주기 위해 뛰어다녔다는 말을 듣고 약간 호감을 품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리나가 자신에게 호감을 품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땅히 대화를 나눌 시간이 없어 그냥 헤어진 게 내내 마음에 걸렸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그녀를 다시 만난 것이다.
‘사람 일은 정말 모르겠군.’
현우는 더 이상 게임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기웃거리던 사람들이 모두 돌아간 뒤에 슬그머니 몸을 일으켜 병실로 다가갔다.
문틈으로 들여다보자 각종 의료 장비로 가득 채워져 있는 방이 눈에 들었다. 어머니가 누워 계셨던 중환자실과 똑 같은 그곳에, 현우가 앉아있던 자리와 똑 같은 그곳에 그녀가 앉아있었다. 그때의 현우와 똑 같은 표정으로 병상에 누운 사람의 손을 잡은 채.
“엄마…….”
문틈으로 쓰라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함께 고개 숙인 그녀의 턱 아래로 물방울이 떨어졌다.
그 물방울을 보는 순간 현우는 오랫동안 잊고 있던 감정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잊고 있던 아픔, 잊고 있던 절실함, 그리고 잊고 있던…….
* * *
담배 연기가 뿌옇게 차있는 어두운 방.
10여 명의 사내가 무거운 표정으로 둘러앉아 있었다.
하나 같이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인상의 소유자들이었다. 개중에는 몇 몇 말끔한 인상의 사내도 있었지만, 잔뜩 미간을 찌푸리고 있으니 못지 않은 인상이 되었다. 그런 사내들이 10여 명이나 모여 담배를 뻑뻑 피워대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한 사내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중심, 가장 만만치 않은 분위기를 뿜어내는 사내 앞에 넙죽 엎드리며 소리쳤다.
“형님!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아니, 죽여주십시오!”
“시끄러, 인마!”
중년사내가 인상을 찡그리며 쏘아붙였다.
“죽이긴 뭘 죽여? 내가 무슨 조폭이냐? 나이 50이 다 돼서야 겨우 결혼했는데 신혼생활도 제대로 못 즐기고 빵에나 가라는 거냐? 그리고 이 방 분위기는 왜 이래? 너구리 잡냐? 담배는 왜 이렇게 줄기차게 펴대는 거야? 동반자살이라도 할 생각이냐? 그럼 니들끼리 있을 때 해. 난 오래 살아야 돼. 이제 곧 아기 아빠가 된단 말이야!”
“네? 아, 아기 아빠라니요?”
“헉! 그, 그럼 형님 혹시…….”
“그래, 인마들아. 이 형님께서 곧 아기 아빠가 되신다.”
“혀, 형수님이 임신하셨단 말입니까?”
“그럼? 내가 임신하겠냐?”
이어지는 대답에 사내들의 눈이 이따만 해졌다.
그러기를 잠시, 갑자기 환호성을 터뜨리며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우와! 형님, 성공하셨군요!”
“그 나이 되도록 총각이라 저희는 형님이 할 줄도 모르는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도 역시 남자는 남자네요. 대단하십니다!”
“이 자식들이 정말 듣자듣자 하니까…… 아니, 됐어. 어쨌든 나 오래 살아야하니까 얼른 환기부터 시켜! 불도 좀 켜고. 우리 이제 좀 밝게 살아보자. 응? 밝게.”
중년사내의 말에 사내들이 얼른 일어나 창문을 열고 불을 켰다.
그 불빛에 드러나는 중년사내의 얼굴은 바로 권화랑. 그리고 나머지 10명의 사내들은 한때 그의 보호감찰을 받으며 갱생의 길을 걸었던 전과자들, 일명 갱생단원들이었다. 불이 밝혀지자 전직 해결사로 이름을 날리던 마철웅이 권화랑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형님, 형수님이 임신하셨다면 저희가 한 번 찾아 봬야하지 않겠습니까?”
“안 돼, 인마. 넌 얘기도 못 들었어? 임신한 여자는 예쁜 것만 봐야한다고. 괜히 니들처럼 뭉개진 상판때기를 봤다가 정말 니들처럼 생긴 애가 나오면 니들이 책임 질 거야?”
“그건 곤란하죠.”
“알긴 아네.”
권화랑이 우쭐거리는 표정-대체 왜?-을 지었다.
“뭐 그런 이유도 있지만…….”
권화랑이 슬쩍 방금 전에 납작 엎드리며 죽여달라고 부르짖었던 사내, 한때 부동산 사기로 중장(☆☆☆)의 반열에 올랐던 유안국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불어내며 말했다.
“택산 지구 부동산 문제로 박소미 여사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남아프리카에서 피로가 쌓인 상태에서 그런 스트레스까지 받아서 좀 전에 공항에서는 쓰러지기까지 했다. 너희들에게 공항에 나오지 말라고 한 게 그 때문이야. 출발하기 전부터 몸이 안 좋아서 돌아오자마자 너희들을 보면 괜히 부동산 문제가 생각나게 될 것 같아서 말이야.”
“알고 있습니다.”
갱생단원들이 유안국을 째렸다.
덕분에 유안국은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들어 콩알-이미지다-처럼 변해버렸다.
그때 권화랑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됐어. 안국이 잘못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아. 그러니 너도 그렇게 죄 지은 놈처럼 굴 것 없어. 그보다 너, 현우에게 택산 지구 부동산 문제가 금세 해결될 거라고 한 적 있냐?”
“아니요. 그런 말은…….”
“그렇겠지. 망할 녀석, 쓸데없이 속만 깊어서는.”
툴툴거리면서도 권화랑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져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머리를 벅벅 긁으며 입을 열었다.
“어쨌든 네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으면 아직 해결 방법이 없다는 말이겠군. 그렇지?”
“네, 아직까지는…….”
“그래서? 대체 부동산 가격이 그렇게까지 폭락한 이유가 대체 뭐야? 뭐 택산 지구의 땅을 비싸게 사들였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팔아치우는 바람에 그렇게 됐다는 건 알겠는데, 그 놈들이 급하게 팔아치운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그걸 모르겠습니다. 애초에 택산 지구 땅 값이 오른 건 정부에서 주요청사를 옮긴다는 발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땅 값이 떨어지자 그 계획이 취소됐다는 소문이 돌기는 하는데, 제가 아는 채널을 동원해 알아봐도 아직 정부에서 그런 결정이 떨어졌다는 얘기는 없습니다.”
“그래서 아직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으니 방법도 못 찾겠다, 이건가?”
“그렇죠.”
유안국이 고개를 떨구며 대답했다.
그러자 권화랑이 대수롭지 않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 참, 다 큰 놈들이 10명이나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게 고작 그거냐? 그런 문제라면 방법은 간단하잖아. 물건을 판 이유를 모르겠으면 판 놈에게 물어보면 되지.”
“네? 무, 물어본다고요?”
“그래, 차명으로 거래했으면 본래 주인을 찾으면 되는 거잖아.”
“하, 하지만 형님.”
“택산 지구 부동산 거래에는 정치인들이 상당수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게 뭐? 내가 언제 그 사람들을 잡아먹기라도 하자고 했냐?”
“아니, 그건 아니지만…….”
“내가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권화랑이 유안국의 말을 끊으며 갱생단원들을 주욱 훑어보았다.
그리고 이를 드러내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난 그냥 놈들에게 왜 땅을 팔았는지 물어보자는 거야. 그런 질문에도 대답하지 못한다면 뭔가 구린 짓을 했다는 말이겠지. 그건 다시 말해…… 우리 박소미 여사가 그런 구린 짓을 하는 놈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쓰러지기까지 했다는 말이다. 내 여자가! 내 아이를 가진 내 여자가! 자, 다시 물어보마. 내가 지금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이냐?”
“아, 아닙니다.”
“내가 니들에게 누누이 말했을 거다.”
권화랑이 짐승처럼 번뜩이는 눈빛으로 말했다.
“정의는 승리하는 법이라고. 그게 진실임을 증명해주지. 곧 태어날 내 아이를 위해서라도.”
남아프리카에서 살다와서 그런지 한결 야성미가 넘치는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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