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 The Legend RAW novel - Chapter (96)
아크 더 레전드-96화(96/875)
[96] SPACE 8 검은 물밑에서……. (1)‘설마 이런 곳에…….’
아크가 놀란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지금 아크가 두리번거리는 곳은 호수를 중심으로 짬짬이 사냥하던 숲의 반대쪽이었다.
그곳에는 3면이 절벽으로 둘러싸인 작은 호리병 모양의 늪지가 있었는데, 아크가 그 늪지에 들어서자 절벽에 뚫린 구멍으로 100여 마리의 문어들이 꾸물거리며 기어 나왔다.
사람만 한 크기의 문어들.
아크는 이런 문어들을 본 적이 있었다.
바로 R-14에서 3D업종인 파이프 청소부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 아니, 외계인 노동자인 문어형 외계인 자렌족. 조금 전에 아크가 낚아 올린 것이 바로 그 자렌족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자렌족을 낚아 올린 아크는 어안이 벙벙했다.
“어, 어떻게 이런 곳에 자렌족이?”
[뭐 인마? 그게 느닷없이 남의 머리통에 낚시 바늘을 팍 박아놓고 30분 넘게 끌고 다닌 놈이 할 소리냐? 내가 호구로 보여? 카악, 퉤! 그냥 못 넘어가! 위자료 내놔! 위자료!]아크에게 낚인 자렌족이 머리통을 시뻘겋게 물들이며 먹물을 튀겨댔다.
그러나 그때 정작 아크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잠시 외도에 빠졌었지만 아크가 그동안 호수를 돌아다닌 첫 번째 목적은 자렘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아직 탐사한 지역은 전체 면적의 절반 수준. 호수를 모두 훑어보는 데만 아직 일주일의 시간이 더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아크의 예상대로 자렘이 수중에 있다고 해도, 그 일주일 사이에 찾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결정적인 것은 자렘이 ‘이동하는’ 도시라는 점 때문이었다. 아크가 탐사를 진행하는 사이에 자렘이 탐사를 마친 지역으로 이동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아크가 최악의 경우 퀘스트 포기까지 고려한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단순히 호수 탐사라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100% 완료할 수 있다. 그러나 자렘 찾기는 아무리 많은 시간을 투자해도, 아무리 부지런하게 돌아다녀도 찾아낼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상당한 부분을 운에 맡겨야 하는 일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자렌족을 만났다.
자렌족은 아크와 달리 수중생활을 하는 외계인.
‘만약 이 호수에 다른 자렌족들이 모여 살고 있다면…….’
자렘을 본 적이 있거나, 혹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는 자렌족이 있을지도 모른다.
거기에 생각이 미친 아크가 재빨리 물었다.
“혹시 이 호수에 자렌족이 살고 있습니까?”
[뭐 인마? 그럼 나는 자렌족이 아니고 문어냐? 응? 문어처럼 보여? 그래서 낚았냐?]100% 문어처럼 보인다.
어쨌든 이 문어. 아니, 자렌족은 방금 전의 일로 배배 꼬여있었다.
“방금 전의 일은 정말 죄송했습니다. 고의로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만약 이 호수에 자렌족이 살고 있다는 걸 알았다면 위험하게 낚시 따위를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저와 자렌족은 남이라고 할 수 없는 사이입니다. 예전에 우주정거장에서 자렌족과 만나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되었죠. 그런 자렌족을 이런 곳에서 우연히 만났으니 제가 얼마나 반갑겠습니까? 그래서 근처에 다른 자렌족들이 산다면 꼭 만나보고 싶습니다.”
[웃기지마, 인마. 내가 그딴 말에 속을 것 같아?]자렌족이 침을 탁 뱉으며 쏘아붙였다.
[내가 그딴 말에 속아서 동료들을 팔 것 같아? 하, 난 이미 네놈의 정체를 알고 있다. 네놈, 노예상인이지? 비열한 자식! 그래, 분명 그 애들도 네놈이…… 긴말 필요 없어. 자, 덤벼라! 자렌족이 모두 만만하다고 생각했다면 그게 착각이라는 걸 증명해주지! 덤벼! 덤벼!]자렌족이 가운데 문어발을 들어올리며 X큐를 날렸다.
아무래도 이 문어는 뭔가 배배 꼬인 오해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아크로서는 어떻게든 자렌족의 도움을 받아야하는 상황. 고작 X큐 한 방에 울컥해서 운 좋게 만난 문어를 횟감으로 써버릴 수는 없었다. 때문에 어떻게 이 문어의 오해를 풀어야하나 고민하던 아크의 머릿속에 한동안 잊고 있던 아이템이 떠올랐다.
“이걸 보여주면 제 말을 믿어주시겠습니까?”
아크가 작은 꼴뚜기 같은 물건을 꺼내 보여주었다.
바로 R-14의 자렌족 가운데 가장 연장자였던 부룸에게 R-14 비밀 유료 사냥터의 경영권을 넘겨주며 선물-사실 강탈에 가까웠지만-로 받았던 자렌족의 증표였다.
10분 간 3초에 1씩, 200의 생명력을 채워주는 아이템이었다. 뭐 한참 전에 생명력이 1,000을 넘긴 지금에 와서는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간간이 도움이 되는 아이템이었다.
어쨌든 지금 아크에게는 자렌족과 친분이 있다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이것밖에 없었다.
그러나 자렌족의 반응은 예상 이상이었다.
그 말뿐이었지만 자렌족이 얼마나 놀라고 있는지는 금세 알 수 있었다.
자렌족의 증표를 보여주자 둥그런 머리통이 얼룩덜룩, 총천연색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따라와라. 우리 마을로 안내해주지.]한참을 고민하던 자렌족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리하여 도착한 곳이 바로 이곳, 3면이 절벽에 둘러싸인 호숫가의 늪지였다.
이 늪지는 절벽에 둘러싸인 호리병 형태로 되어 있어 호수 쪽에서는 절벽에 가려 잘 보이지 않고, 육지 쪽은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일부러 찾아 들어오지 않는 이상 좀처럼 발견하기 힘든 장소였다. 자렌족이 그런 곳에서 살게 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아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으음…….]보통 자렌족보다 서너 배는 큰.
마치 애드벌룬처럼 거대한 머리통의 거대 문어가 꼬물거리는 발로 자렌족의 증표를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새삼스러운 눈길로 아크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렌족의 장로만이 가질 수 있는 증표가 틀림없군. 이 증표는 자렌족 장로에게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신물. 이런 신물을 동족도 아닌 인간에게 주었다면 장로와 자네가 얼마나 깊은 우정을 나눈 사이인지 짐작할 수 있네.]뭐 파이프 청소를 할 때 짬짬이 옛날 얘기를 들어주기는 했지만…….
자렌족의 증표를 줄 때 부룸은 망설이는 기색도 없었다. 이걸로 되겠냐 싶을 정도로 덥석 주었다. 뭐 한시라도 빨리 유료 사냥터의 경영권을 넘겨받고 싶었을 테고, 겨우 우주식량을 구입할 정도의 급료를 받는 처지라 달리 줄 것도 없었겠지만, 적어도 거대 문어가 말하는 것처럼 자렌족 장로에게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물건이라는 느낌은 0.1%도 없었다.
아니, 부룸이 자렌족 장로였다는 것도 지금 알았다.
뭐 딱히 관심 있는 얘기도 아니지만.
[그래, 자네에게 이 증표를 준 장로는 부룸이라고 했나?]“네, 그렇습니다.”
아크는 이미 R-14에서 자렌족과 만나게 된 과정을 설명한 뒤였다.
아크의 대답에 거대 문어-그 역시 자렌족의 장로로 바쿰이라는 이름이었다-가 씁쓸한 한숨을 불어내며 말을 이었다.
[파이프 청소부라…… 하긴, 혹성을 빼앗기고 난민이 된 이방인에게 따뜻하게 대해줄 종족은 없겠지. 살아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스러워 해야할 거야. 때때로 생각하네. 그때, 나 역시 다른 자렌족처럼 은하연방에 망명해야 했던 것은 아닐지. 하지만 모성을 잃고 헤매는 난민이 이종족에게 받게 될 대우는 뻔했지. 그래서 나는 안전보다 자유를 택했네.]은하연방의 보호를 거부하고 아웃랜드에서 살아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스타나는 은하연방의 혹성이지만 실제로 연방법이 적용되는 곳은 테라포밍이 완료된 도시 주변뿐이다. 그 외의 미개척지, 이스타나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아웃랜드는 사실 상 무법지대라 시민권을 받지 못한 자렌족도 터를 잡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부룸이 돈을 모아 자렌족이 정착할 땅을 사겠다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 시민권을 사겠다는 뜻이었다. 시민권이 없는 자렌족은 은하연방의 관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시민권만 얻으면 자유의 몸이 된다. 이곳에 사는 자렌족처럼 안전을 버리고 택한 자유가 아니라, 은하연방의 도시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진짜 자유의 몸!
그런 자유의 몸이 되면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의 박봉을 받으며 파이프 청소를 할 필요가 없었다. 제대로 된 보수를 받을 수 있는 일자리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얘기를 되돌리자면 이스타나에 밀수도시 자렘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도 이곳이 치외법권 지역, 아웃랜드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상 은하연방이 관리하지 못하는 곳이라 버젓이 밀수도시가 자리잡을 수 있었고, 시민권이 없는 자렌족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렘과 자렌족은 처지가 전혀 달랐다.
자렘은 몇 겹의 실드와 최첨단 위장기능을 갖춘 도시. 그리고 도시에 몰려드는 사람들은 비록 대다수가 범죄자지만 은하연방이나 아슐라트, 라마족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었다. 말하자면 문명인. 반면 모성과 함께 문명을 잃은 자렌족은 그냥 문어였다.
한때는 UFO를 타고 지구 관광을 다닐 정도로 융성했던 시기도 있었다지만 그것도 몇 백 년 전의 얘기. 카카족에게 모성을 빼앗긴 지금은 평범한 문어에 불과한 것이다.
그리고 아웃랜드는 문어가 살기에 결코 안전한 곳이 아니었다.
[이스타나의 아웃랜드에 들어온 지 수 년 , 그동안 많은 동족이 몬스터에게 희생되었네. 하지만 그보다 자렌족을 괴롭힌 것은 노예사냥꾼들이었지. 몬스터와 노예사냥꾼을 피해 이곳에 자리잡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는지…….]그게 R-14의 자렌족의 그런 차별 대우를 받으면서도 은하연방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였다.
시민권이 없는 사람은 은하연방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사실상 몬스터와 똑 같은 존재로 취급받는 것이다. 때문에 아웃랜드를 돌아다니며 자렌족 같은 외계인을 포획해 노예로 팔아버리는 자들도 있다고 한다.
아웃랜드에도 개척자들이 모여 만들어진 마을이나 도시가 있지만, 자렌족이 이런 곳에 숨어사는 이유가 바로 그런 노예사냥꾼들에게 쫓겨왔기 때문이었다. 아크가 낚은 문어가 노예상인 운운하며 가운데 문어발을 들어올렸던 게 그런 이유였다.
뭐랄까, 하여간 이래저래 불쌍한 문어들이었다.
[하지만 자네가 자렌족의 증표를 가지고 있다면 믿을 수 있지. 자렌족에게 이 증표는 장로가 인정한 친구라는 증표. 대대로 자렌족은 이 증표를 가진 자가 찾아오면 성의를 다해 대접해주는 것을 긍지로 삼았지. 우리가 모성을 잃고 난민이 되어 이런 곳에서 살아가는 처지가 됐지만 아직 자렌족의 긍지만은 잃지 않고 있네. 비록 여러 가지로 뒤숭숭한 상황이지만 우리의 성의니 마음껏 먹고 편히 쉬게.]장로 문어가 한쪽에 쌓인 생선을 가리켰다.
점박이, 살살이, 멍멍이, 해피…… 가방에 푹푹 썩어갈 정도로 쌓여있는 생선들이었다. 게다가 장로 문어가 편히 쉬라면서 가리킨 곳은 절벽의 바위 틈. 저런 곳에 기어 들어가서 문어들과 뭘 하라는 건지 모르겠다.
‘……가만?’
아크가 찜찜한 눈으로 생선과 바위틈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퍼뜩 머릿속에 뭔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떠올랐다.
‘이 호수는 자렘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자렘은 밀수도시. 지금은 은하연방의 감시를 피해 도시 출입이 봉쇄된 상태라지만 이전에는 밀수꾼들이 드나들었을 거 아니야? 그리고 따지고 보면 노예도 밀수품 중에 하나다. 자렘을 드나드는 자들 가운데는 당연히 노예사냥꾼들도 있었을 거야. 그런데 바쿰은 노예사냥꾼을 피해 이곳에 정착하게 됐다고 한다. 호수가 100킬로미터에 달하는 크기라도 다른 곳보다 이곳이 안전하다고 생각한다는 건 말이 안 돼.’
그런 의문은 낚시를 할 때도 느꼈었다.
어찌됐든 이 호수는 수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도시가 숨겨져 있는 곳.
그런 호수에 사는 어류의 대부분이 아직 은하연방의 데이터 베이스에 등록된 적이 없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도시를 드나드는 사람 모두가 미확인 생물을 등록하면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을 리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단언컨대 적어도 유저라면 그런 눈먼 경험치에 군침을 흘리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
거기에 장로 문어의 말까지 듣자 슬슬 불안해졌다.
‘내가 뭔가 잘 못 짚은 건가? 아니면 혹시 마틴 후작이 준 정보가 잘 못 된 건가?’
“한 가지 여쭤볼 말이 있습니다.”
눈치를 살피던 아크가 본론을 꺼내들었다.
새삼스럽지만 아크가 이곳을 찾아온 이유는 생선이나 대접받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사실 저는 이 호수에 외계종족의 도시가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온 겁니다.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저는 그 도시를 꼭 찾아야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곳에 오래 사셨다면 호수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을 터. 혹시 이곳에서 그런 도시를 본 적이 있으십니까?”
[도시라고?]장로 문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자네 말대로 우리는 이곳에서 수십 년을 살았네. 물론 몬스터가 있는 육지 쪽으로는 거의 나가보지 못했지만 이 호수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없지. 하지만 도시 같은 것은 본 적이 없네. 그런 게 있다면 우리가 못 봤을 리가 없지 않은가?]뭔가 얘기가 이상하게 돌아간다.
마음이 다급해진 아크가 얼른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도시가 아니라도 뭔가 이상한 곳이라거나 뭐 그런…….”
[이상한 곳이라면…….]장로 문어가 움찔하며 불안한 표정-머리통 색-을 보였다.
뭔가 있다. 푸르딩딩하게 변하는 장로의 머리통 색으로 아크는 직감했다.
“뭐든 좋습니다. 이상한 점이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아니, 아마 자네가 찾는다는 도시와는 상관없는 곳일 거야. 하지만 말해주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지. 실은 이 호수에는 절대 들어가서는 안 되는 금역(禁域)이 존재하네.]“금역이요?”
[그래, 가끔 소용돌이가 일어나는 곳이지. 때문에 처음 이곳에 자리잡았을 때는 젊은 문어…… 아니, 젊은 자렌족들이 담력을 시험한답시고 그곳에 들어가기도 했었네. 하지만 한 명도 돌아오지 않았어. 문제는 시체도 찾을 수 없었다는 거네. 마치 증발해버리듯이 사라져버린 거야. 그 뒤로 없어진 동족을 찾기 위해서 수색대를 보내보기도 했지만 그들도 모두 사라졌어. 대부분 소용돌이가 일어날 때였지만 꼭 그때만은 아니었어. 어떨 때는 소용돌이가 없어도 사라지는 경우도 있었지. 그렇게 사라진 자렌족이 50여 명이나 된다네. 그래서 그 지역을 금역으로 정해두고 근처에도 가지 않게 되었지.]장로 문어가 다리의 빨판으로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불어냈다.
[실은 마을 분위기가 이렇게 뒤숭숭한 게 그 때문이라네.]뭐가 뒤숭숭하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아크도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좀 이상하기는 했다. 바위틈에서 기어 나온 문어들의 머리통이 모두 푸르딩딩하게 물들어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이 호수의 수질이 안 좋아 좀 상했나 싶었지만 아무래도 뭔가 문제가 생겨서 그랬던 모양이다. 그리고 아크의 경험에 의하면 머리통이 이런 색으로 변할 때 문어들의 감정상태는 대략난감, 안절부절이었다.
물론 아크는 문어들의 감정상태 따위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금역이라는 곳에는 관심이 있었다. 가끔 소용돌이가 일어난 것도, 문어들이 증발하듯이 사라진다는 것도, 수상하기 짝이 없는 일이 아닌가?
‘어쩌면 그게 자렘을 찾을 수 없는 이유가 관련이 있을지도 몰라.’
“무슨 일이 있습니까?”
[그게…… 자네가 알아봤자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네.]지금 아크는 그게 뭐든 정보가 될만한 것은 하나라도 더 뽑아내야 했다.
“저는 자렌족을 마음의 벗으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R-14의 부룸이 제게 목숨보다 귀한 증표를 맡긴 것도, 그런 제 진심을 알아주었기 때문입니다.”
진실은 아크를 쫓아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아크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진실 따위는 얼마든지 왜곡시킬 수 있는 쿨 한 남자였다.
“비록 저와 우정을 나누었던 친구들은 아니지만 여러분은 그들의 동족인 자렌족.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힘이 닿는 데까지 돕고 싶습니다. 곤란한 문제가 있다면 거리낌 없이 말씀해주십시오.”
[으음, 그렇게까지 말해주는 인간을 만나게 될 줄이야.]장로 문어가 약간 감동 먹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굳이 비밀로 할 문제도 아니네. 며칠 전, 어린 자렌족 몇 명이 사라진 일 때문에 그러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우리는 곧바로 수색에 나섰지. 하지만 며칠 동안 호수를 샅샅이 뒤졌지만 녀석들을 찾지 못했어. 우리가 찾아보지 않은 곳은 딱 한 곳, 금역뿐이네. 사라진 어린 자렌족들은 아무래도 그곳에 간 모양이네.]“어린 자렌족이 어째서 그런 곳에?”
[몇 달 전 그곳에서 또 다시 자렌족 몇 명이 실종되는 사건이 있었네. 좀처럼 보기 드문 코끼리 똥을 추격하다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금역에 들어가게 된 것 같았어.]아크는 잠시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잠시 고개를 갸웃거린 뒤에야 장로 문어가 말한 ‘코끼리 똥’이 아크가 직접 이름을 지은 거대 어류 가운데 하나였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불과 며칠 전에 아크가 이름을 붙인 생선이, 그것도 은하연방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는 NPC가, 마치 오래 전부터 그렇게 불러왔던 거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새삼 이곳이 게임 속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좀 더 그럴 듯한 이름을 붙일 걸 그랬나?’
막상 코끼리 똥이라는 이름을 들으니 어째 좀 그렇다.
어쨌든 장로 문어의 말은 이어졌다.
[사라진 녀석들은 그때 사라진 자렌족의 가족들이네. 그래도 절대 금역에 가서는 안 된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결국 일을 저질러버린 거지. 그렇다고 다른 자렌족을 금역으로 보내면 또 다시 예전과 같은 일이 반복될 뿐이고…….]장로 문어의 말에 주변에 모여있는 문어들의 머리통이 더욱 시퍼렇게 변했다.
대략난감, 안절부절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문어들의 머리통이 일제히 하얗게 변했다. 뒤이은 아크의 말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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