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101)
#101화 공수표 (3)
만약 주스를 마시고 있었다면 순간적으로 사례가 걸릴 정도의 폭탄선언.
그러나 오랜 기간 박기수를 모셔온 정동윤은 이 정도 일로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놀라울 정도로 침착성을 유지하며 박기수를 기쁘게 할 만한 반응을 보였다.
“장기적인 전망을 생각해 보았을 때, 오히려 그게 이점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자네가 생각해도 그렇지?”
“네. 일단 야스다의 적자가 눈 밖에 난 상황에서 사위가 우수한 능력을 보여 준다면 데릴사위가 흔한 일본의 특성상 우미구치구미의 조장이 되실 수도 있을 겁니다.”
“내가 조장이 되려는 생각은 없어. 난 어디까지나 기업을 운영하려는 거지, 깡패 새끼가 되려는 게 아니니까.”
“당연히 그건 저도 알고 있지요. 그렇기에 사장님께서 야스다의 적자를 포용하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야말로 박기수의 마음에 쏙 드는 말만 하는 정동윤.
사실 정동윤이 처음부터 이렇게 무작정 박기수의 마음에 드는 말만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충심 어린 간언’을 했을 때 여러 번 쓴맛을 보았기에 지금의 정동윤은 그저 측근의 역할 그 자체만 충실히 수행할 뿐이었다.
“그런데 그 일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선결 조건이 필요합니다.”
선결 조건이라는 단어에 박기수는 정동윤의 의견을 경청했다.
“그게 뭐지?”
“하나는 일단 이혼을 하셔야 한다는 거지요. 이것은 사장님이 이미 생각을 하셨을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만, 맞나요?”
“당연하지. 이혼이 뭐 별거 있겠어?”
한순간에 드러나는 박기수의 인성.
애초에 결혼 자체가 정략 결혼이었기 때문에 박기수는 지금의 아내에게 애정이 전혀 없었다.
더군다나 자신의 기대치에 못 미치는 처가의 힘 덕분에 애정을 넘어서 ‘탓’까지 하고 있으니 이혼을 쉽게 생각할 수밖에.
“그리고 두 번째는 와타나베 가문 여식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는 겁니다. 이건 철저히 사장님의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그거야 별로 어렵지 않지. 어차피 정략 결혼이잖아? 가문에서 하라면 해야지. 내가 가진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 주면, 내 아들보다 나를 선택하는 게 맞다고 그들도 판단할 거야.”
“그러면 모든 게 일사천리로 풀릴 것 같습니다.”
전략이나 계략을 내어놓는 게 아니라, 그저 윗사람이 하는 말에 맞장구를 치는 앵무새 같은 측근.
어느새 박기수 주변에는 이런 인물밖에 남지 않았다.
사실 박기수의 이러한 행보가 전략적으로 나쁘다고만은 볼 수 없었다.
실제로도 와타나베 가문에 영향력을 확실히 끼치려면 아들보다는 자신이 사위가 되는 것이 확실했으니까.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사위가 된다는 확실한 조건이 필요했다.
더불어서 와타나베 가문이 자신을 왜 사위로 삼으려고 할지에 대한 계산 역시 필요했다.
당장 와타나베 가문이 박기수의 집안과 혈연을 맺으려는 것은 주일 미군의 브로커와 장기적인 교류를 하기 위함.
그러나 박기수는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몰랐고, 알아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계속 생활을 했다면 동생인 박기호와 꾸준히 경쟁하면서 칼날이 닳지 않았을 터.
하지만 일본에 진출해서 세스의 20분의 1도 안 되는 규모의 세스 홀딩스에서 계속 놀다 보니 잘 벼려진 칼날이 어느새 무디다는 표현조차 과할 정도의 칼이 된 것이다.
그나마 예전부터 측근이었고, 나름대로 유능한 정동윤조차도 박기수의 성정 변화 때문에 그저 앵무새가 되었기에 이러한 상황은 가속화되었다.
유능한 인재의 주변에 있는 것만으로도 보고 듣는 것을 통해 배우는 것이 있겠지만, 현재 박기수에게는 무언가를 가르쳐 줄 만한 스승이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윤기 쪽에 엄청난 호재로 작용했다.
* * *
“아버지, 형이 이혼을 한다고 들었는데 그게 사실인가요?”
박기수의 말에 세스의 회장인 박도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차피 그 녀석이 하고 싶다는 거 내가 막을 이유도 없을 것 같아서 그렇게 하라고 했다. 애초에 그 녀석이 원해서 한 결혼 아니냐?”
세월의 영향인지, 아니면 유전의 영향인지 밋밋한 머리의 박도철.
동그란 무테안경 속에 있는 작은 눈에서는 아직도 카랑카랑한 빛이 맴돌고 있었다.
“그거는 저도 알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우리 이미지에 별로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요?”
박기호 역시 철저한 경영인.
형수가 불쌍해서 아버지인 박도철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세스라는 브랜드에 먹칠을 할까 봐 아버지에게 간언을 한 것이었다.
“크핫! 그래, 그런 의미의 질문을 해야 역시 내 아들이지. 그 녀석의 이혼이 나중에 너에게 큰 도움이 될 거다.”
아주 아주 큰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말.
박기호는 자신이 세스의 확실한 후계자가 되었음을 직감하고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이 녀석. 이제는 아주 내 앞에서 대놓고 마음을 드러내는 거냐?”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아버지의 덕이라는 사실은 절대 잊지 않고 있습니다.”
웃음기를 없애지 않으며 말하는 아들 박기호의 모습에 박도철은 든든한 기분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당연히 알아야지. 그리고 나는 너를 신뢰한다. 쓸데없는 욕심 안 부리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정확히 아는 것. 이것이야말로 후계자로서의 덕목이다.”
“명심하겠습니다.”
박기호는 아버지의 뒤를 따라다녀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철저한 자기관리를 통해 공식 석상에서 비칠 자신의 모습을 계산하고 이행했다.
덕분에 박도철 역시 박기호의 이러한 자기관리에 힘입어 이미지가 좋아질 수밖에 없었고, 이것은 한국에서 세스라는 브랜드 이미지 향상에 도움을 준 것이다.
이 정도로 철저한 계산을 하는 박기호가 박도철에게 예쁘지 않을 리가 없었고, 일본이라는 동떨어진 곳에서 생활하는 박기수는 점차 박도철의 마음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일본에서 박도철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 * *
“세스 홀딩스의 녀석이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 자신이 히로코와 결혼을 하고 싶다고 했다고?”
주일 미군의 브로커와의 무기 거래 협약이 완료된 후, 야스다는 아들인 마사오를 ‘드디어’ 용서했다.
물론 곰살궂게 대해 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일상적인 대화는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기에 마사오는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이마를 쾅쾅 찧으며 감사를 표했고, 야스다 역시 아들이 엄청난 일을 해낸 것에 뿌듯한 기분을 느껴 나름대로의 사랑을 베풀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네가 저번에 말하기로 그 녀석은 이미 결혼을 했다고 들었는데……?”
“네, 그 녀석의 전 아내가 주코쿠 지방의 유지 딸입니다.”
주코쿠 지방은 도쿄를 기준으로 서쪽으로 꽤 떨어져 있는 일본의 지방으로 부산에서 배를 타고 후쿠오카를 간다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지역이다.
하지만 야스다는 주코쿠라는 지역보다는 다른 단어에 더 관심을 가졌다.
“전 아내라고?”
“그렇습니다. 이미 이혼을 했으니 문제없다는 전갈까지 보내 왔습니다.”
“푸핫! 우리와 직접적인 연줄을 가지기 위해 이혼까지 불사했다는 말이냐? 그것도 결정이 되기 전에?”
“그렇습니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패륜도 일삼지 않는 녀석이라. 꽤 마음에 드는 녀석이로군.”
“아버지……?”
“크하하핫, 걱정 마라. 어디까지나 그 녀석이 내 자식이라면의 얘기지. 하지만 그 녀석은 어디까지나 남. 그런 녀석을 신뢰하기란 힘들지.”
마사오는 안도하는 표정과 함께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그건 힘들겠다고 전달을 할까요?”
“그 말을 전달해 온 게, 그 녀석에게서 나온 거냐, 아니면 어린 녀석한테서 나온 거냐?”
“윤이 우리에게 전달했습니다.”
야스다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거절할 수 있는 제안이 아니야. 만약 거절한다면 곧바로 모든 무기 거래가 파투 날 거다. 우리에겐 선택권이 없어.”
“으음…….”
마사오의 신음에 야스다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하리센으로 테이블을 쳤다.
일본 만담에 자주 등장하는 종이부채가 테이블에 부딪히면서 촥 소리를 내자, 마사오는 바로 정신을 차리며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걱정하지 말거라. 히로코가 어떤 녀석인지 잊은 게냐?”
“아…….”
히로코가 프랑스에서 6년간 유학을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히로코에게는 극심한 단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사치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점이었다.
오죽하면 프랑스에서 쓰는 돈이 감당이 안 되어서 야스다가 직접 히로코를 강제로 소환했을까.
덕분에 히로코는 현재 저택에 반쯤 감금된 상황에서 야스다의 부하들에게 온갖 히스테리를 부리고 있었다.
‘만약 박기수란 녀석의 아들과 결혼한다면 히로코의 사치를 감당하기 힘들겠지만, 박기수 녀석 본인과 결혼한다면 한동안은 히로코를 조용하게 만들 수 있겠지. 히로코는 자신의 물욕만 채워 준다면 다른 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천방지축 내 딸이니까.’
계산을 끝낸 야스다는 진중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마사오.”
“네, 아버지.”
“너에게 두 번째 과제를 주마. 우리 집안에 새로 들어올 사위의 사업을 최대한 키워 주거라. 그리고 그다음엔…….”
야스다가 일부러 뒷말을 하지 않고 입을 다물자, 마사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먹어 버리면 될까요?”
“그래. 야쿠자 가문에서 사람 하나 죽어 나가는 것은 흔한 일이지. 히로코가 그 녀석의 사업체를 물려받게 만들어라. 혹시 너에게는 힘든 일이냐?”
마사오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할 수 있습니다. 아니,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제가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것을 반드시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바닥에 다시 머리를 찧는 마사오를 향해 다가간 야스다가 손수 마사오를 일으켜 세워 주었다.
“그래. 너는 용서받았지만, 아직 미츠코는 용서를 받지 못했다. 미츠코를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라. 내가 내 딸을 다시 아비로서 사랑할 수 있게 말이다.”
20년 만에 보는 아버지의 푸근한 미소.
마사오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 * *
“워후, 입막음이라는 게 생각보다 무진장 비싸네요. 묶음 판매라는 조건까지 있었는데 말이에요.”
거스터에게서 이번 일에 대한 추진 비용을 청구받은 윤기가 혀를 내둘렀다.
“무기 자체도 비싸지만, 이 모든 게 밀수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더 비싸지. 입을 막아야 할 대상이 한둘이 아니니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충성심은 인품만으로 살 수 없다는 건 너도 잘 알잖아? 내가 거기서 금전적 이익을 보려면 못 볼 것은 없지만, 그러면 나중에 위험성이 너무 커져. 그냥 ‘그 녀석들과 거래해라.’라는 쪽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렇죠. 삼국지의 유비 현덕이야 그 사람만을 바라보고 수십 년을 객지 생활을 한 장수들이 있다지만, 요즘에도 그러기는 힘들죠. 당장 류 비서나 작은아버지도 맨몸의 저에게 매력을 느낀 게 아니라 ‘가질 것을 가진 저’에게 매력을 느낀 거니까요. 저는 저에 대해 자만하지 않아요.”
현실을 잘 꿰뚫고 있는 윤기의 말에 마음에 드는 듯 거스터가 미소를 지었다.
“삼국지라, 나도 인상 깊게 본 소설이지. 그나저나 세스 홀딩스는 마지막까지 우군으로 둘 거냐?”
“아뇨, 그럴 리가요. 일단은 세스 홀딩스의 편을 들어 주다가 한국에서 세스의 힘이 최대한 약해졌다 싶으면 손을 놔야죠.”
“버리는 게 아니라 손을 놓는다?”
“예. 제가 손을 놓는 게 사실상 버리는 게 될 테니까요.”
“무기 거래 역시 그때부터는 이어질 필요가 없다는 얘기군?”
“맞아요.”
윤기는 거스터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이 의미가 담긴 미소를 지었다.
“좋아. 그렇다면, 그 시점이 정해지면 나에게 알려 주도록 해. 무기 절도 혐의로 우미구치구미를 급습할 거니까.”
“역시 제 마음을 잘 아시네요.”
“이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 원래 이런 거래는 서로가 배신하지 못하게 서면을 남겨 놓지만, 이번에는 서면으로 남은 게 없어서 가능하거든.”
거스터의 말처럼 이번 거래는 서면으로 남겨 놓은 증거가 없었다.
무기 거래가 중단되는 순간 세스 홀딩스에 대한 지원 역시 중단된다.
이러한 점 때문에 서면 작성을 하지 않은 것인데, 세스 홀딩스에서 윤기가 손을 뗀다는 것을 그 누가 알 수 있을까.
“이래서 공수표라는 게 무서운 거예요.”
“흐음, 역시 기정사실을 만들게 해야 했나…….”
자신과 메릴을 이야기한다는 것을 깨달은 윤기가 쓴웃음을 지었다.
“걱정 마세요. 그리고 제가 거짓말한 거로 판명되면 저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전부에게 바람구멍이 난다는 것을 제가 잘 알고 있는걸요? 거짓말이 가져오는 죄의 무게는 잘 알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아니, 꼭 그런 게 아니라 손주가 빨리 보고 싶은 것도 있고…….”
본심을 들킨 게 부끄러웠는지 거스터가 얼굴을 붉혔고, 윤기는 그런 거스터를 보며 ‘정말요?’라는 의미를 담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야말로 훈훈한 상황.
하지만 세스 홀딩스의 박기수는 아들이 자신의 아버지와 양어머니의 이혼을 끝까지 말렸건만, 끝끝내 추악한 선택을 마친 후 류근태와 만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