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103)
#103화 어그러지는 후계 구도 (2)
“50퍼센트보다 더 얻어 낸다고? 어떻게?”
솔깃한 말이었는지 박기수가 류근태를 바라보았다.
“솔직히 형님이 100퍼센트 다 받아야 하는 게 맞잖아요. 50퍼센트나 그 동생이란 녀석이 가져가는 건 말이 안 되는 거 같아요.”
“그건 그렇지……. 아무리 기술을 뺀 쭉정이라고 해도 말이야.”
“차라리 남은 50퍼센트를 터트릴지언정 동생에게 뭔가 남겨 주는 건 형님의 인생이 너무 슬퍼지는 것 같아요. 그 녀석이 형님 일본에 계실 때 찾아온 적 있어요?”
박기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전혀 없어. 심지어 내 결혼식에도 안 왔다니까? 딴에는 아버지가 참석하지 말라고 해서 안 왔다고 변명하는데, 그게 말이야 방구야?”
두 번째 부인과의 결혼은 박도철이 반대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세스 중진들은 참여하지 못했다.
그나마 최소한의 구색은 맞추기 위해 암묵적인 동의를 얻은 몇 명만이 참석했을 뿐이다.
하지만 당사자인 박기수 입장에서는 아버지도 동생도 한없이 원망스러워지는 일인 것은 맞았다.
“아니 어떻게 형의 결혼식에 안 올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 너무한 거 맞지? 내가 과민한 거 아니지?”
“전혀 아니죠.”
단호하게 대답하는 류근태의 태도에 기분이 좋아진 듯, 박기수가 다시 술을 목구멍으로 넘겼다.
“크으, 술맛 좋다!”
“아이고, 왜 혼자 드세요. 같이 마셔야죠.”
박기수는 류근태의 건배를 하며 한 잔을 더 마셨고, 덕분에 취기가 좀 돌았는지 씨익 웃으며 류근태를 바라보았다.
“이야, 우리 형님 조금 취하셨네.”
“취하다니! 나 아주 멀쩡해!”
눈이 살짝 풀리기는 했지만, 집을 알아서 찾아갈 정도는 되는, 딱 그런 취기.
류근태는 박기수의 대답을 들으며 두 번째 상자를 열었다.
“형님, 그러면 방금 한 말 계속 이어서 하는 건데, 후계 구도를 뒤흔들어 보는 건 어때요?”
“후계 구도를 뒤흔들어?”
박기수가 취기를 쫓아내기 위해 눈을 연신 깜빡거리며 류근태를 응시했다.
“네. 지금 형님은 그냥 공평하게 반반 나눠 먹고 그 자원을 일본에 투자하시려는 거잖아요. 그런데 차라리 동생인 박기호가 세스의 후계자가 될 자격이 없다는 걸 증명한다면 어떨까요?”
“호오……?”
쭉정이만 남은 세스의 후계자조차 되지 못하는 동생.
박기수는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다는 듯 류근태를 채근했다.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 봐.”
“그러니까 동생의 치부를 어떻게든 찾아내서 대중에게 공개하는 거죠. 회장이 되기에 부적격한 존재. ‘부적격한 존재가 회장이 되면 나라가 망한다.’라는 프레임을 동생한테 확 씌워 버리면?”
“씌워 버리면?”
“동생이 가져갈 유류분을 감안하더라도 형님은 최소 75퍼센트의 자원을 일본에 가져가실 수 있게 되는 거죠.”
“오호라……!”
구미가 잔뜩 당긴 박기수는 머릿속으로 아무것도 남지 않은 동생을 상상하다가 일순 뚱한 표정으로 류근태를 바라보았다.
“이봐, 동생.”
“예? 형님, 왜 그런 눈으로…….”
류근태는 자신이 너무 빨리 일을 진행했나 싶어 잔뜩 긴장하며 대답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
“네? 어떤……?”
“동생이 나한테 잘해 주는 건 알겠는데, 지금 동생이 나한테 말을 한 건 진짜 쉽지 않은 일이야. 도대체 이렇게까지 나한테 해 주는 이유가 뭐야?”
류근태는 여기서 잘못 말했다가는 모든 게 끝났다는 것을 직감했다.
“헤헤, 형님, 사실은…….”
류근태가 뒤통수를 긁으며 짐짓 비굴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말해 봐. 나한테 말을 못 할 건 없잖아?”
“어유, 당연하죠. 다른 게 아니라 사실 형님이 한국 쪽 세스를 포기한다고 하셨을 때, 든 생각이 있었거든요.”
“뭔데?”
“세스 삼강이요.”
쑥스러운 류근태의 표정에 박기수는 더욱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와이케이 백화점은 어떤 의미로는 판매업이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너무 명품에 치중한 느낌이 있어요. 그래서 형님이 만약 일본으로 세스의 모든 재화를 옮기신다고 가정하면 우수리인 세스 삼강 정도를 저한테 팔아 주십사 하는 거죠.”
“세스 삼강이 뭔지 긴가민가해서 말이야. 들은 것 같기도 하고 못 들은 것 같기도 하고…….”
“4년인가 5년 전쯤에 세스에서 6억 주고 산 식품 회사 있어요. 세스가 운영하는 백화점에 세스 삼강 제품들도 들어갈걸요?”
박기수는 말도 안 되게 낮은 세스 삼강의 가격에 집중했다.
“겨우 6억?”
“경영권 싸움하다가 흑자 부도가 났거든요. 솔직히 제가 가지고 싶은 것은 세스 제과인데 그건 양심에 찔려서 못 하겠고, 세스 삼강이라도 저렴하게 불하해 주시면 정말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 기억났다! 그 몇 푼 안 되는 기업체?”
박기수는 측근인 정동윤에게서 몇 년 전에 들은 보고를 떠올려냈다. 당시에도 별거 아닌 일이라 생각해서 대충 넘겼던 일.
한국에 거의 미련을 버린 지금에 와서 굳이 그런 싸구려 기업체를 아까워할 이유가 없었다.
“크흐흐흐, 이제 보니 동생도 털 난 계획이 하나 있었구먼?”
맹목적으로 자신에게 잘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이해득실을 따지고 도와준다는 점에서 박기수는 오히려 류근태에게 좀 더 큰 신뢰를 느꼈다.
“안 될……까요? 저도 형님 덕분에 방귀 좀 뀌고 싶습니다!”
“뀌어! 뀌어! 마음껏 뀌어! 제과는 힘들지만 삼강쯤이야. 얼마든지 줄게!”
화끈하게 대답하는 겉과 달리 박기수의 속마음은 비웃음이 넘쳤다.
‘이 녀석 생각보다 멍청하구먼. 세스 제과를 달라고 떼를 썼으면 내가 세스 제과는 아니어도 삼강보다는 큰 것을 넘겨줘야 했을 텐데 말이야. 뭐, 내 입장에서는 더 좋은 일인가?’
좋은 장기 말이 하나 생겼다는 생각.
박기수는 호탕하게 류근태에게 유통업의 이전을 허락했고, 류근태는 윤기의 임무를 완수해 낼 수 있었다.
* * *
철통같은 ‘전직 미군 출신’들의 보안 속에서 윤기와 류근태, 그리고 최철규는 한자리에 모일 수 있었다.
어찌 보면 굉장히 과하다고 할 수 있었겠지만, 우미구치구미의 정보력을 속이기 위해서는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거스터의 조언에 따라 이렇게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그냥 변두리에 있는 평범한 가정집.
그곳에서 회의가 시작되었다.
“고생했어요. 류 비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최종적으로 일이 마무리된 것은 아니니, 각별히 주의하며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해 준다면야 더 바랄 게 없죠. 그런데 박기수에게 우리가 세스의 옛 뒷조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아직 말 안 한 건가요?”
류근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리 말을 해 두는 게 솔직함을 보여 줄 수도 있었겠지만, 회장님의 확인을 얻고 싶어서였습니다.”
“확인이라면요?”
“현재 박기수는 세스를 물려받는 방침에서 세스를 빨아먹는 방침으로 바꿨습니다. 우리가 세스의 뒷조직을 데리고 있다는 정보는 박기호가 박기수에게 말을 할 경우에나 알려지게 될 텐데, 이것을 미리 말하는 게 좋을지, 아니면 숨기는 게 좋을지 솔직히 저는 감이 잘 잡히지 않습니다.”
최종 결정권자는 어쨌든 윤기.
특히 지금은 워낙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기 때문에 류근태는 이 건이 자신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 판단한 것이다.
“만약 말하지 않고 있다가 박기호가 박기수에게 말을 한다면 류 비서의 진정성이 박기수에게 의심을 받게 되겠죠.”
“그렇습니다.”
“그러나 미리 말을 한다면, 당초의 접근 그 자체가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을 테고요.”
“정확히 보셨습니다. 둘 중 어떤 전략을 택해야 할지…….”
류근태가 말을 흐리자 윤기가 싱긋 웃었다.
“생각보다 간단한 문제예요.”
“간단한 문제요……?”
“네. 박기수는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탄 상황이에요. 거기서 내려봤자 남은 것은 파멸밖에 없죠.”
“아……, 그렇다면 이쪽의 진정성이 지금 당장 의심받더라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뜻인가요?”
“맞아요. 그리고 마사오가 박기수를 현혹해서 아버지에게 함부로 대하게 만들었죠. 전화로 엄청난 결례를 저질렀으니 이미 한국 세스와 박기수는 강을 사이에 둔 관계가 된 셈이죠.”
“그,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건 제 밥줄이라 말씀을 드릴 수가 없네요.”
알 듯 말 듯한 미소를 짓는 윤기를 바라보며 류근태는 혀를 내둘렀다.
‘세상에 그걸 도대체 어떻게 알아내신 거지?’
꺼억-, 그 아카이시 도미인지 뭔지 회가 참 맛있더라.>
윤기의 옆에서 누운 채로 배를 두드리며 부유하는 최덕배의 모습이 바로 정답이었지만, 류근태는 안타깝게도 정답을 보거나 들을 능력이 없었다.
“류 사장님, 그냥 류 사장님은 전혀 몰랐던 것으로 전략을 세우죠?”
“저는 전혀 몰랐던 것으로요?”
최철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냥 류 사장님은 전혀 몰랐고, 그 조직을 제가 흡수하고 보고는 안 했다고 가는 겁니다. 조만간 류 사장님이 박기수한테 ‘형님! 세스의 뒷조직이 현재 와이케이에 흡수된 상태랍니다!’라고 하는 거죠.”
“호오……, 괜찮을까요?”
솔깃한 류근태의 반응에 최철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윤기의 말대로라면 괜찮을 것 같은데요? 물론 박기수가 의혹은 가질 수 있겠지만, 류 사장님의 연기력이 정도의 차이를 가르겠죠? 아마?”
류근태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좋아요. 그러면 그 문제는 해결!”
유쾌한 최철규의 말에 윤기도 류근태도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윤기야.”
“네.”
“현재 대화 채널이 너하고 마사오, 류 사장하고 박기수가 연결되어 있고, 마사오와 박기수가 연결되어 있는 거지?”
“그렇죠. 아직까지는 박기수가 제 존재를 모르고, 마사오가 류 비서의 존재를 모를 거예요.”
“언제까지 그걸 유지할 생각이야?”
“가능하면 최대한 오래요.”
“으음……, 이번 일이 끝나면 네 정체가 최소한 한국 경제계에 드러나겠네.”
“그건 아직 모르는 일이죠.”
윤기의 대답에 최철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응?”
“마사오와 박기수의 채널이 연결된 상태일 때 일을 마무리 지으면 100퍼센트 들키겠지만, 둘의 채널을 끊어 버리고 일을 마무리 지으면 가능성이 생겨요.”
“둘의 채널을 끊은 상태로 마무리 짓는다라……. 굉장히 어렵겠는데?”
“어렵지만 할 수 있다면 해야겠죠. 저도 ‘해야 한다.’가 아니라, ‘할 수 있으면 하자.’ 정도로 생각하고 있어요.”
“만약 거기까지 완성을 할 수 있다면 정말 최적이긴 한데…….”
“우리의 능력과 운이 어디까지 통할지 이 기회에 한번 하늘이 내린 시험을 보자고요. 다들 학창 시절에 시험은 거의 백 점만 받아 왔잖아요?”
윤기의 농담에 둘은 미소를 지었고, 잠시 후, 셋은 다시 있어야 할 자리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 * *
“회장님이 왜 갑자기 이사회를 소집하신 거지?”
“글쎄. 뭐 특별한 일도 없었던 거 같은데. 혹시 저번에 청와대에서 무슨 언질이라도 들으신 게 아닐까?”
“글쎄……,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우리가 그런 중요 정보를 얻을 정도는 아닐 텐데…….”
이사들은 서로 오늘 이사회 소집의 이유에 대해 추측을 하며 회의실에 입장했고, 이러한 이사들의 대화는 경호원들의 귀와 입을 통해 박도철에게로 전달되었다.
‘이런 빌어먹을 자식들! 내가 오라고 하면 그냥 올 것이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그리고 뭐? 우리가 그 정도 급은 못 돼? 그 정도 급이 못 되면 기업을 키울 생각을 해야지 벌써 패배주의에 물들어 있다니. 넌 계약 기간만 지나면 무조건 종료다!’
부글부글 끓는 속을 애써 눌러 참으며 박도철은 가장 늦게 차남인 박기호와 함께 회의실에 들어섰다.
“회장님 들어오십니다.”
이사들이 공손히 일어나 시립하자 박도철은 가장 상석에 거드름을 피우며 앉았고, 박기호는 바로 옆에 공손히 시립해 박도철이 앉고 나서야 앉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사들의 착석.
지금 이 자리에서 넘버 1과 넘버 2가 누구인지 명확히 보여 주는 모습이었다.
“오늘 내가 자네들을 불러 모은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우리 세스의 차기 후계자에 대해 확실히 공고하기 위함이야.”
순간 이사들은 저마다 상황을 눈치채고는 눈알을 데룩데룩 굴리며 다른 이사들의 반응을 살폈다.
[지금 첫째 도련님이 안 계신대?] [결국, 박기수 사장님이 밀려난 건가?] [역시 일본은 도전하면 안 되는 거성이었어.]대체로 박기호의 승리를 점치고 있었기에 이사들의 충격 자체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가 똑같이 생각하는 한 가지 사실도 있었다.
[너무 이르지 않나?]하지만, 박도철은 저번에 아주 불손한 장남의 태도를 확인한 이후로 박기수를 완전히 경질시키기로 작정했다.
‘와타나베 가문? 우미구치구미? 그딴 걸 믿고 감히 이 아비에게 반항했단 말이지? 경솔한 행동이 어떤 결과를 보여 주는지 똑똑히 보여 주마!’
박도철은 자신의 앞에 놓인 마이크에 입을 가져다 대며 경건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글로벌 시대로 세스가 나아가야 할 시점에 우리 세스에게 필요한 후계자는 바로…….”
박기호는 자연스럽게 일어나 모두에게 허리를 살짝 숙일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순간 회의실의 문이 쾅 하고 열리며 박도철의 비서실장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무슨 짓이야!”
마이크를 통해 증폭된 소리가 모두의 귀를 찔렀고, 이에 괴로운 것은 박도철 역시 마찬가지였다.
“으윽!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걸 꼭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비서실장이 내민 신문에는 경악할 만한 기사가 무려 1면에 실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