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105)
#105화 승자는 누구인가 (1)
“이런 머저리 같은 놈!”
박도철의 사자후가 밀폐된 회장실을 뚫고 나가 밖에 앉아 있는 여비서의 귓가에 도달할 정도였다.
여비서는 순간 회장실에 들어가야 할지 고민했지만, 비서실장이 함부로 들어가선 안 된다고 했기에 이내 눈치만 보며 다시 자리에 앉았고, 덕분에 회장실의 통화는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었다.
[하, 머저리요? 머저리는 제가 아니라 기호 녀석이겠지요. 기호 녀석이 일 처리를 그따위로 했으니까 지금 이 꼬락서니가 난 것 아닌가요?]“미쳤어, 미쳤어, 미쳤어! 지금 네가 하는 행동이 단순히 동생만을 망하게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세스의 목줄을 조르는 것을 모르느냐?”
수화기 너머에서 명백한 비웃음이 흘러나왔다.
[그건 저하고 상관없는 일이죠.]“뭐, 뭐야?”
박도철은 아들이 도대체 무슨 속셈인지 알 수가 없어 그야말로 환장할 지경이었다.
[제 결혼식이 이미 끝난 건 아시죠? 아무도 안 올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어요.]박기수의 세 번째 결혼식.
저번 전화에서 오만불손한 태도를 느낀 박도철은 당연히 아들의 결혼식에 참가하지 않았다.
[뭐, 어쨌거나 대단했어요. 제가 세 번째 결혼인데도 아주 예우를 갖춰서 결혼식을 하더라니까요? 참석자만 10만 명이 가뿐히 넘었으니까요. 게다가 새로운 와이프도 젊고, 예쁘고…….]“본론이 뭐야! 제대로 말하지 못해?”
답답한 마음에 다급하게 외치는 아버지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박기수는 다시 킥킥거리고는 말을 이었다.
[우미구치구미의 자금 동원력은 제가 상상한 것 이상이더라고요. 이대로 세스의 주식이 수직 낙하하면 우미구치구미가 쓸어 담는다. 정말 멋진 스토리 아니에요?]“이, 이, 이, 빌어먹을 놈! 너는 가문을 통째로 들어다 쪽바리놈들에게 갖다 바칠 셈이냐?!”
순간 수화기 너머에서 웃음이 뚝 멈췄다.
[아버지, 아버지가 그러셨잖아요. 돈을 벌게 해 주는 나라가 우리들의 조국이라고. 아버지는 한국에서 돈을 버시죠? 저는 이제 일본에서 돈을 벌 겁니다. 예, 저의 조국은 이제부터 일본입니다. 이참에 이름도 개명해 볼까요?]다시 웃음이 이어지자 박도철은 그야말로 환장할 지경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알아낸 거냐?”
많은 문장을 건너뛴 말.
하지만 박기수는 아버지의 말을 곧바로 이해했다.
[아버지. 제가 그렇게 머저리로 보이셨습니까? 제가 동생 주변에 측근 하나조차 심어 두지 못할 정도로 멍청해 보였어요?]거짓말이다.
박기수는 이미 류근태를 통해서 와이케이가 세스의 뒷조직을 데리고 있다는 사실을 들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기수는 아버지에게 그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
류근태에게서 ‘형님의 능력으로 포장하는 것이 훨씬 일의 진행에 좋을 것이다.’라는 조언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박기호의 측근들은 예전 세스의 구린 일들을 도맡아 하던 임시찬의 부하들이 종로경찰서 인원들과 함께 움직이는 것을 파악했지만, 문제는 그들 전부가 현재 유치장에 수감되어 있었기에 이러한 중요한 정보가 박기호에게도 박도철에게도 전달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일본에서 한국에 있는 동생을 감시하고 있었던 거냐…….”
한탄하는 박도철을 향해 박기수가 ‘쯧’ 소리를 냈다.
[저는요, 아버지가 저를 인정해 주실 줄 알았습니다. 세스를 글로벌 기업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알아줄 거라고 생각했다고요. 그런데 아버지는 말도 안 되는 사고를 치고 다니는 동생을 ‘유능하다’라고 판단하고 후계자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뭘 할 수 있었겠어요?]이제 와서야 알게 된 장남의 유능함과 차남의 무능함.
자신이 완전히 잘못 판단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박도철은 갑자기 흥분이 싸하게 식는 기분을 느끼며 책상에 머리를 박은 상태로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뭘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
힘이 쭉 빠져 의자에 거의 늘어지듯 앉아 책상에 머리를 박고 있는 박도철은 소리만 나지 않았다면 흡사 시체로 보일 정도였다.
만약 박기수가 이 모습을 보았다면 그야말로 입꼬리가 쭈욱 하고 올라갔겠지.
[아버지가 선택하실 수 있는 길은 두 개예요.]“……말해 봐라…….”
[하나는 이대로 계속 연타를 맞고 세스가 거의 망하는 꼬락서니를 보시는 거죠. 기호가 한 짓거리? 아직도 많이 남았습니다. 아버지의 비자금으로 과연 얼마나 더 막을 수 있을까요?]“두 번째는……?”
박도철은 수화기 너머에서 음산한 미소를 짓고 있을 아들을 생각하자 더욱 힘이 빠졌다.
[이사회를 소집해서 저를 후계자로 지정하세요. 그러면 최소한 세스가 망하는 일만큼은 없을 겁니다. 이름은 유지하겠죠.]어느 쪽을 선택하든 ‘박도철의 세스’는 끝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박도철은 ‘세스’라는 이름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생각하자 그야말로 사회적인 죽음을 당하는 기분을 느꼈다.
‘세스의 이름만이라도 살려야 해…….’
자신이 이 세상에 살아 있었다는 증거. 그것만은 남겨 놓고 싶었다.
“으흐흐흑…….”
박도철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고, 그 소리를 들었는지 수화기 너머에서는 아주 낮은, 정말 들릴 듯 말 듯한 웃음소리가 났다.
‘하루아침에 이렇게 나의 세스가 무너지다니……. 이게 도대체…….’
박도철은 결국 후자를 선택했다.
“다음 주 월요일에 널 후계자로 지정하마. 그러니까…….”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흥분이 가득한 목소리.
[아아! 걱정하지 마세요. 그때까지는 새로운 소식이 없을 테니까요. 대신 아버지가 거짓말을 한 것으로 결론이 나면 그때는 협상이고 뭐고 없다는 걸 아세요. 세스라는 이름은 완전히 사라지는 겁니다. 살인마의 가문이라는 평가와 함께요.]그야말로 정이라고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말과 함께 전화가 끊겼고, 박도철은 겨우 몸을 일으켜 다시 전화기의 버튼을 누르기 시작했다.
“……기호 녀석 올라오라고 해.”
* * *
“아버지,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시는 거예요?!”
얼굴을 붉히며 외치는 차남 박기호의 행동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될 모습이었지만 박도철은 이미 그런 것에 화를 낼 기력을 잃어버렸다.
“그럼……, 방법이 있느냐……?”
그저 의자에 몸을 묻다시피 한 상태로 힘없이 말하는 박도철의 모습.
평소보다 한없이 유약하기만 한 아버지의 모습에 박기호는 힘을 얻었다.
“그 방법을 다 같이 생각해 봐야죠. 일본에서 사업 말아먹은 형한테 후계자를 넘겨주는 게 가당키나 해요? 아버지, 톡 까놓고 말해서 저 아니었으면 세스가 이렇게 컸을 것 같아요?”
박기호의 말은 의외로 핵심을 찌르는 말이었다.
만약 박기호의 그러한 일 처리 없이 세스가 성장해 왔다면?
적어도 지금만큼의 성장을 이루지 못했을 것은 확실했다.
그 방법의 적법성 여부는 제쳐두고서라도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란 말이냐……. 넌 이미 매스컴에서 살인자로 낙인이 찍혔다. 그런 너를 후계자로 삼으면 세스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냐? 더군다나 후계자로 삼았더니 네가 감옥에 가게 되면 그 후폭풍은 도대체 어떻게 하려고…….”
한숨을 내쉬는 박도철의 모습은 불과 30분 전에 비해서 무려 20년은 늙어 보였다.
워낙 좋은 걸 먹고, 관리를 잘해서 60대 초반으로 보였던 박도철이 순식간에 팔순 노인처럼 보이게 된 것이다.
“그. 러. 니. 까. 그걸 다 같이 생각하자는 거 아닙니까!”
사람은 안정적인 지위에 있을수록 침착한 면모를 보인다.
하지만 그건 그 사람이 침착한 성격이라 안정적인 지위에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박기호가 바로 그런 케이스.
박기호는 자신이 후계자가 될 것이라 확신했을 때는 한없이 침착한 모습을 보여 왔지만, 후계 구도가 거의 박살 날 위기에 처하자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후계자가 되기 위해서라면 그 어떠한 짓도 서슴지 않는 무뢰배의 모습을 말이다.
“큭……큭……큭…….”
박기호의 웃음소리가 아니었다.
힘없이 쓴웃음을 짓던 박도철이 간신히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자식을……, 잘못 봤어…….”
“아버지!”
씨근거리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박도철은 최후의 힘으로 자신의 선택을 확정 지었다.
“후계자는…… 네 형이다.”
* * *
권력이라는 게 이래서 참 무서운 거라니까?>
최덕배의 말에 윤기는 침대에 누운 상태로 몸만 옆으로 돌려서 최덕배를 향해 말했다.
“유교 사상에 심취했던 사람이 그런 말을 하니까 좀 신기한데요?”
푸핫, 유교 사상에 심취해? 서울대생이 좋아서 공부하는 소리 하고 앉아 있네.>
“좋아서 공부하는 거 아닌가요?”
거짓 한 점 없는 윤기의 대답에 최덕배가 아차 하는 표정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내가 비유를 잘못했네. 직장인이 회사가 좋아서 일주일에 여섯 번이나 출근하는 소리라고 바꾸지.>
“좋아서 출근하는 거 아닌가요?”
순간 최덕배는 육두문자를 내뱉을 뻔하다가 윤기의 장난기 어린 눈동자를 보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어휴, 이 녀석.>
“푸흐흐, 저는 회사에 갈 때마다 신나요. 제 회사니까요. 하지만 다른 직장인들은 그렇지 않겠죠.”
아무튼, 나도 유교를 좋아서 공부한 건 아니었어. 먹고 살려고 공부한 거지.>
“그렇군요.”
그런데 지금은 갑자기 꼰대가 되고 싶어지네? 할아버지 앞에 누워 있고 말이야.>
“쉴 때 쉬어야죠. 할아버지 눈치 보면서 못 쉬는 것 때문에 저 망하면 제사상 못 받는 건 할아버지잖아요?”
너는 조선 시대 왕 앞에서 다른 신하들이랑 아가리 파이팅을 해도 이겼을 거 같다.>
윤기는 음산한 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지도 모르죠. 그런데 방금 왜 권력이 무섭다는 말을 하신 건가요? 세스 쪽 상황 때문에요?”
최덕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진짜 권력 앞에서는 가족도 없는 게 맞다니까. 흥선대원군이랑 고종이랑 민자영을 봐. 난 지금 그때가 생각이 나.>
“생각해 보니까 유교에서 효를 강조하는 건 사회에 효가 없기 때문일 수도 있겠네요.”
맞는 말이야. 애초에 당연한 일이면 언급 자체를 안 하거든.>
입맛을 쩝쩝 다시던 최덕배는 이내 자신과 관계없는 일이라 생각했는지 자신도 윤기처럼 옆으로 드러누웠다.
“안 가요?”
윤기의 말.
존슨 보냈어. 한동안 지하를 헤집고 다녔더니 피곤해.>
“존슨도 그때 같이 지하 탐방했잖아요.”
나는 갑이잖아.>
어느새 자본주의의 귀신이 되어 있는 최덕배를 바라보며 윤기는 쓴웃음을 지었다.
* * *
귀신 세계에서 을인 존슨은 세스 본사 회의실을 부유하는 중이었다.
자리에 착석해 있는 이사들 중 존슨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당연히 제로.
덕분에 존슨은 이사들의 모습을 똑똑히 보았고, 이러한 장면들은 실시간으로 최덕배에게 전달되고, 적당히 재조립되어 윤기에게 설명되고 있었다.
“회장님이 늦으시네.”
이사 중 한 명이 묘한 침묵을 견디기 힘들었는지 먼저 말을 꺼냈다.
“아무래도 지금 해결해야 할 일이 많으시잖아. 회장님은 참 깨끗하신데 지금 집안에 문제가 생겼으니…….”
혀를 차는 이사를 향해 다른 이사가 말했다.
“그나저나 정말 큰일이야. 사건이 한두 개가 아니던데, 이러다가 우리 공중분해 되는 거 아니야?”
한번 말이 흘러나오자 이사들이 서로 묻고 답하기 시작하면서 일종의 토의가 진행되었다.
“공중분해야 하겠어? 지금까지 회장님이 난관을 다 해결해 오셨잖아. 이번에도 복안이 있으시겠지.”
“그러기에는 사안이 너무 큰데……. 저번에 후계자 지정한다고 하셨었는데, 그런 일이 터졌으니…….”
“그리고 보니 그때 누구를 후계자로 삼으려고 하신 걸까?”
“그때 보고도 몰라? 둘째가 옆에서 폼 잡고 있었잖아. 당연히 둘째지.”
“그런데 이렇게 큰 사건이 터졌으니 물 건너간 거 아냐?”
“모를 일이지. 강행할지, 아니면 첫째로 바꿀지.”
“어쩌면 처음부터 첫째 아니었을까?”
“자네 진짜 보는 눈이 없구먼?”
“뭐, 임마?”
잘 진행되던 토의가 갑자기 싸움으로 바뀌려던 찰나, 회의실 문이 열리며 박기호가 안으로 들어왔다.
굉장히 살벌한 표정.
박기호는 험상궂게 생긴 측근들을 뒤에 20명이나 달고는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이사 여러분, 오늘 아버님께서는 건강 문제로 참석하지 못하시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