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109)
#109화 승자는 누구인가 (5)
순간 정동윤의 움직임이 우뚝 멎었다.
세스 홀딩스의 사장.
눈앞에 있는 윤기를 전혀 믿지 못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지만, 방금 귀에 들어온 내용이 어떤 의미인지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접근한 것이었습니까?”
류근태를 바라보는 정동윤의 표정에는 착잡함이 담겨 있었다.
“물론이지요. 제 시간은 황금과도 같은데, 그 황금을 허투루 쓸 이유가 있을까요?”
류근태는 아직도 사람 좋은 미소를 연기하고 있었다.
물론, 류근태가 안 웃는 타입은 아니다.
하지만, 분위기에 맞는 표정을 지으려고 하다 보니 류근태는 입 주변 근육이 뻐근하다고 느낄 정도로 페이스를 유지했다.
“휴우우…….”
크게 나오는 정동윤의 한숨. 그 모습에 윤기가 다시 말을 걸었다.
“조금이나마 짐작을 했었나 보군요?”
“뭐……, 어디까지나 미약한 심증이었습니다. 류 사장님이 오시고 나서 일이 너무나 잘 풀렸거든요. 가장 큰 의심은…….”
“의심은?”
“우미구치구미의 여식과 결혼이 추진되었을 때였습니다. 저는 사실 이때가 사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결혼식 직전에 무언가 큰일을 벌이고 도망갈 거라 생각해서 눈여겨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결혼이 이루어졌군요?”
정동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결혼이 실제로 이루어진 이상 사장님……, 아니 박기수에게는 어쨌든 우미구치구미라는 방패가 생긴 셈이었고요. 그렇기에 저 역시 마음을 좀 놓고 있었습니다. 물론…….”
류근태를 바라보는 정동윤의 흔들리는 눈.
박기수를 이제 사장님이라 부르지 않고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지만, 자신의 안정적인 자리를 앗아간 류근태를 향한 원망 섞인 눈초리는 어쩔 수 없었다.
“휴우. 아무튼, 박기수한테 직접 말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10년 전부터는 자신이 듣기 싫은 소리는 절대로 안 들으려고 해서……. 심증이 물증이 되는 순간 그걸 들이밀면서 보고를 하려고 했는데, 진실을 이렇게 알게 될 줄이야…….”
정동윤은 다시 입맛을 다셨다.
“박기수 사장을 향한 언변으로 보았을 때, 세스 홀딩스에 미련을 버린 듯하네요.”
“어차피 사라질 회사 아닙니까. 본사에서 세스 홀딩스를 매각하겠다는 소식이니, 새로운 곳에 매각되면 저 같은 기존 라인은 반드시 박살 나겠죠. 그리고 그 새로운 곳은 와이케이 백화점일 테고, 저는 이미 류 사장님에게 빈정거렸으니 뭐…….”
정동윤은 다시 한숨을 내쉬더니 류근태를 향해 말했다.
“이렇게 된 김에 한 잔 주시겠습니까?”
“물론이죠.”
류근태는 위스키를 한 잔 가득 따라 정동윤에게 넘겨주었고, 정동윤은 답답한 마음에 위스키를 단숨에 들이켰다.
“휴우우, 쓰지만 달군요. 모든 걸 내려놓아서 그런가?”
“글쎄요. 모든 걸 내려놓았다고 할 순 없죠.”
빙글빙글 웃는 윤기의 모습에 정동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씀인가요?”
아까부터 자신도 모르게 존댓말을 하고 있는 정동윤, 그런 정동윤을 향해 윤기가 다시 미소를 지었다.
“세스 홀딩스의 사장이 되고 싶지 않냐고 물었을 텐데요?”
순간 정동윤의 미간이 찡그려졌다.
“방금 말한 것처럼 저는 이미 류 사장님한테 밉보였……, 아니, 잠깐. 그걸 왜 당신이 묻는 겁니까? 아니, 내가 왜 존댓말을 쓰고 있지……?”
류근태가 옆에 있기 때문에 존댓말을 쓰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닌 것 같았다.
‘내가 속으로 이 애가 진짜 뒷배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라고?’
오랜 기간 직장 생활을 하며 살아온 생존 본능이 자동적으로 발동했다는 사실에 정동윤은 속으로 적잖이 당황했다.
“류 비서는 제 말을 반드시 듣습니다. 그러니, 류 비서한테 방금 한 행동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죠. 류 비서도 그런 행동을 마음속에 담아 둘 사람이 아니고요.”
돌아가는 분위기를 좀 더 파악한 정동윤이 조금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류 사장님이 비서라뇨……? 아니, 일단 그건 둘째치고 저를 세스 홀딩스의 사장으로 앉히려는 이유가 뭡니까? 솔직히 저를 앉힐 이유도 없어 보이고요.”
“정확히 말하면 세스 삼강입니다.”
“아니, 왜 갑자기 여기서 세스 삼강이……. 그건 류 사장님이 헐값에 매입한 거로 압니다만, 도무지 돌아가는 상황을 모르겠습니다.”
“당연히 모르죠.”
윤기의 미소에 정동윤은 순간 ‘씁’하고 소리를 낼 뻔했지만, 필사적으로 참아 내고는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애초에 우리는 일본 사업에 관심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세스 홀딩스는 왜……?”
“일단 왜 우리가 세스에 관여했는지부터 설명해 줘야겠군요.”
윤기는 정동윤을 향해 잠실에서 있었던 세스와의 작은 땅 다툼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의 일을 설명해 주었다. 물론 정동윤이 알아도 될 범위에 한해서였지만 말이다.
“아니, 잠깐. 박기호의 뒷조직을 와이케이가 영입했다는 겁니까? 그리고 류 사장님이 박기수한테 준 정보가 모두 거기에서 나왔다고요?”
“호오, 임시찬 부장을 알고 있나요? 지금은 와이케이의 그림자에서 과장으로 불리고 있지만 말이죠.”
“제가 비록 지금은 조용히 지내고 있어도 박기수의 오른팔이었습니다. 당연히 경쟁자가 될 박기호에 대한 조사도 꽤 철저히 했지요. 물론, 무리한 일본 진출로 인해 저도 팔다리 다 잘린 신세가 되었지만 말이죠.”
“팔다리가 온전했던 시절에는 박기호를 어느 정도 감시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군요.”
“무얼 하는지까지는 저도 몰랐습니다. 단지 박기호가 거느리고 있는 ‘사병’, 그러니까 임 부장 같은 사람들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죠. 뭐, 그때는 임 부장이 아니라 그냥 ‘시찬이’로 불린 것으로 압니다만…….”
여기까지 말하던 정동윤이 경악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임 부장, 아니 임 과장의 말만 믿고 일을 진행했다는 겁니까? 심지어 세스 측에서 추진한 일의 선봉장이 임 과장인데?”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말에 윤기가 웃었다.
“영입을 했으면 믿어야죠. 부하의 말을 듣지 않고, 믿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군주가 될 수 있을까요?”
“세상에…….”
정동윤은 슬슬 눈앞에 있는 소년이 정말로 와이케이 백화점의 실소유주라는 걸 믿기 시작했다.
부모의 재산으로 이름만 등록해 둔 것이 아니라, 개인 그 스스로가 능력이 있다고 평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일본에서의 사업은 왜 관심이 없으시다는 겁니까? 우미구치구미와의 결혼까지도 성사시킬 정도면 일본 사업의 가장 큰 난관인 인맥 따위는 가볍게 해결하실 텐데요?”
“저는 일본에 ‘인맥’이라고 할 만한 일본인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면 결혼은 도대체…….”
“약간의 운이 있었죠.”
윤기는 이번엔 겐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허……, 제가 명품에 관심이 없어서 전혀 몰랐네요. 에르메스 재팬의 모델이었다니. 그나저나 그런 이유라면 일본 사업에 관심이 없으실 이유도 있겠네요. 그런데 그러면 세스 홀딩스 역시 유지할 이유가 없지 않나요? 아마 헐값에 거래가 나오겠지만, 굳이 사실 이유도 없을 것 같은데…….”
“그건 지금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길면 10년, 짧으면 7년 정도 후에 세스 홀딩스는 일본에서 철수할 겁니다. 당신이 해 줄 일은 그동안 세스 홀딩스의 관리입니다. 그 후, 당신은 세스 삼강의 사장이 되겠죠.”
“으으음…….”
정동윤은 진심으로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민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윤기가 먼저 생각을 처리했다.
“고민해 봐야 나올 만한 것은 세 가지뿐입니다. 첫째는 지금 이 정보를 가지고 박기수 혹은 다른 실권자에게 알리고 다른 이득을 얻어 보기, 둘째는 지금 들은 소리를 헛소리로 치부하며 조용히 은거하기, 셋째는 제 밑으로 들어와서 인생의 2막을 여는 거죠.”
“어……, 음……, 확실히 그렇겠네요.”
살짝 얼굴을 붉히는 정동윤을 바라보며 윤기가 말했다.
“사실 제가 이 자리에 나서지 않는 게 당신을 영입하기는 더 쉬웠을 거예요.”
“음……, 확실히 그럴 것 같습니다.”
10대 배후.
누가 믿을 수 있을까?
“하지만, 전 이렇게 나왔죠. 그건 그만큼 당신을 영입하고 싶다는 뜻이겠죠? 더불어서 당신이 나중에 전면에 나설 저를 미리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게 뭘 의미하는지 모르지는 않겠죠? 그럼, 제 말은 여기까지입니다. 3분 드릴 테니, 거절이면 다시 문을 여시고, 승낙이면 술 한잔하시죠.”
“제가 이대로 나가서 박기수나 박 회장님한테 말하는 게 두렵지 않으십니까?”
윤기는 일부러 대소를 터뜨렸다.
“하하하핫! 전혀요.”
“어째서……죠?”
“누가 믿어 줄까요? 그렇게 해 봤자 잘 쓴 소설책 취급이나 받겠죠?”
말을 듣던 정동윤은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엄청난 사실이지만, 그게 진실임을 증명할 능력은 나한테 없어. 분명 재벌들이 와이케이 백화점을 주시하기야 하겠지만, 정보만큼의 대가를 내가 받아낸다는 건 불가능하겠지.’
정동윤의 입에서 쓴웃음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류 사장님, 한 잔 주시겠습니까?”
* * *
“앞으로 대부분의 지시는 류 비서를 통해서 내려지게 될 거예요. 뭐, 처음 해야 할 일을 제외하면 대부분 세스 홀딩스의 관리라서 연락이 갈 일도 딱히 없겠지만요.”
서열 정리를 확실히 하는 윤기의 말에 정동윤은 공손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조용히, 모나지 않게 시키신 일을 잘 처리하겠습니다.”
정동윤이 밖으로 나가자 곧바로 류근태가 물었다.
“회장님, 정동윤에게 그 정도 가치가 있나요?”
질투가 아닌 순수한 물음.
애초에 류근태는 정동윤과의 교류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정동윤의 가치를 거의 알지 못했다.
“제 사람 보는 눈은 믿으시죠?”
윤기의 말에 류근태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면서도 윤기를 향해 신뢰의 눈길을 보냈다.
햐, 이런 방식으로 부하한테 멋있어 보이려고 하네?>
귓가에 들려오는 최덕배의 볼멘소리.
사실 윤기는 최덕배를 통해서 일본에 체류하고 있는 동안 정동윤을 유심히 관찰했다.
특히 정동윤뿐만이 아니라 세스 홀딩스의 직원들이 하는 잡담이나 정동윤의 가족들 역시 관찰했는데, 살펴본 결과 정동윤이 꽤 쓸 만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가장 고점을 준 이유는 박기수에 대한 이야기를 외부에 일절 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가끔 혼잣말을 할 때, 박기수에 대한 걱정이 대부분이었다는 점이다.
그야말로 한 번 충성할 대상을 정하면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존재.
그동안 박기수의 일본 진출 욕심에 가려 조용히 살았지만, 어디에 활용하느냐에 따라 상당한 능력을 발휘할 사람이었다.
‘그래도 덕분에 맛있는 거 많이 드셨잖아요?’
뭐……, 그건 그렇지? 후우, 존슨 같은 녀석이 더 있으면 내가 좀 더 편할 텐데…….>
‘제 몸에 흐르는 경영인의 피는 할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것 같네요.’
상당한 고난도의 돌려 까기. 최덕배는 이걸 이해할 만한 충분한 두뇌가 있었다.
그 할아버지가 내 이야기는 아니지?>
‘글쎄요?’
부드럽게 미소 짓는 윤기를 바라보며 류근태는 정동윤이 생각보다 괜찮은 인물일 수도 있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 * *
“히로코, 그건 다 뭐야?”
뒤에 야쿠자들을 줄줄이 데리고 방 안으로 들어오는 히로코의 모습에 박기수가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보면 몰라요? 쇼핑하고 온 거잖아요.”
방 안 가득히 놓이기 시작하는 값비싼 물건들.
딱 봐도 어마어마한 금액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며칠 전에 산 것들도 아직 정리가 안 끝났는데 또 샀다고? 애초에 사 놓고 입지도 않는 옷투성이잖아?”
박기수의 말에 히로코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막상 입고 싶을 때 옷이 없으면 어떻게 하라고 그러는 거예요? 당신은 제가 입을 옷이 없어서 슬퍼하는 모습이 보고 싶어요?”
“아니, 단지 전혀 안 입을 옷들이 좀 많은 것 같아서…….”
아무리 남자의 입김이 강한 80년대의 일본이라 하더라도 박기수는 데릴사위.
결국, 히로코에게 꼬리를 내리고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하아, 내가 아직 힘이 없어서 참는다.’
히로코가 물처럼 써재끼는 돈의 액수를 생각하면 마음이 쓰린 박기수였지만, 장인이 해 주고 있는 지원을 생각하며 애써 참았다.
[딸내미가 씀씀이가 좀 큰 건 감안해야 할 거야.]현재 히로코가 사용하고 있는 돈은 오롯이 박기수의 것.
박기수는 장인어른에게 아쉬운 소리를 할까 하다가도 그게 사업에 문제가 생길까 싶어서 계속 말을 못 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세스 홀딩스의 매각 관련해서 이미 알아낸 장인이 ‘아예 사업을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겠더군?’이라고 말을 했기 때문에 박기수는 더더욱 몸을 낮출 수밖에 없었다.
현재 붙잡을 줄은 죽으나 사나 야스다밖에 없었으니까.
‘참자, 참아. 지금까지 오래 참았잖아? 까짓것 몇 년 더 참는 것쯤이야.’
막말로 자신의 돈이 다 떨어지면 어차피 장인이 다시 내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박기수는 마음을 편히 가졌다.
하지만, 잠시 뒤, 저택의 정문에서 매우 큰 소란이 나기 시작하자, 박기수는 묘한 불안감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