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11)
#11화 너 이 새끼 잘 만났다 (2)
윤기는 속으로, 그리고 조건반사적으로 외쳤다.
‘드디어……!’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얼굴.
술에 벌게진 얼굴로도 숨길 수 없는 싯누런 피부.
항상 술을 마시느라 붉게 충혈된 눈.
제대로 깎지 않아 얼굴 곳곳에 남아 있는 턱수염.
거기에 항상 취해 길거리를 구르는 탓에 연탄 검댕이나 웅덩이 물들이 군데군데 묻어 있는 옷까지.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는 개백정의 모습이 고스란히 윤기의 눈에 들어왔다.
“최윤기가 누구냐고!!!”
점심시간의 왁자지껄함을 그대로 정지시켜 버리는 위험 가득한 어른의 등장에 아이들은 한순간에 움직임을 멈춰 버렸다.
“접니다.”
모두가 침묵하고 있는 상황에서 윤기가 일어나자 오히려 아이들이 난리가 났다.
[윤기야, 나가지 마!] [안 돼, 윤기야!] [선생님 모셔올게!]하지만 윤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괜찮아.”
진수와 원희 역시 윤기를 말렸다.
“윤기야, 저 아저씨 이상해, 나가지 마.”
“맞아. 우리 할아버지가 저런 사람은 따라가지 말랬어.”
그럼에도 윤기는 고개를 저었다.
“걱정 마, 날 믿어. 그리고 따라오지 마.”
마지막으로 최덕배가 끼어들었다.
괜찮겠냐? 저 새끼는 사람이 아니라며.>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제가 제일 잘 알아요.’
죽지 마라, 너 죽으면 나 또 굶어야 해.>
윤기가 눈을 부라리자 최덕배는 빠르게 눈을 돌리며 조용히 윤기의 뒤를 부유하며 따랐다.
“네가 최윤기야?”
교실 앞문에서 이루어진 시간을 뛰어넘은 만남.
하지만, 이번만큼은 다를 것이었다.
* * *
‘놀라워, 놀라울 만큼 떨리지 않아.’
옛날, 개백정한테 맞으면서 살던 시절에는 개백정을 보면 오줌을 싼 적까지 있었다.
집에 같이 있는 엄마?
아무런 의미도 없다. 엄마는 자신의 자식을 고스란히 방치했고, 개백정처럼 자식의 돈을 갈취하기 바빴으니까.
[내가 그 새끼한테 바칠 돈 말고도 따로 준비하라고 했지!!!]한겨울, 바깥에서 구두를 닦아 겨우 마련한 돈을 개백정에게 바친 뒤, 따로 꿍쳐 놓은 돈이 없다는 이유로 발가벗겨져 바깥으로 쫓겨난 기억까지 떠오르자, 윤기의 마음에는 싸늘한 복수심이 단단히 자리 잡기 시작했다.
“네가 최윤기냐고!”
“네.”
당당하게 눈을 뜨며 똑바로 바라보자, 개백정은 예상이랑 조금 달랐는지 흠칫하면서도 다시 크게 외쳤다.
“따라와!”
윤기는 스스럼없이 개백정을 따라갔다.
둘이 도착한 곳은 체육 창고.
개백정이 소사 아저씨에게 술이라도 바친 건지, 근처를 지켜야 할 소사는 자리에 없었다.
그렇게 둘만 남겨진 상황.
“따라오지 말랬지!”
문이 닫힌 체육 창고에서 윤기가 외치자, 개백정이 깜짝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미, 미안…….”
“따라오지 말라고!”
다시 윤기가 외치자, 원희가 뒤통수를 긁으며 체육 창고에서 스르륵 멀어졌다.
그렇게 아무도 없는 것이 확인되자, 개백정은 다시 입을 열었다.
“네가 내 새끼를 죽도록 때렸다며?”
말을 들은 윤기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어~?”
어이가 없는지 말꼬리를 세우는 개백정의 모습이었지만, 윤기는 전혀 겁내지 않았다.
“너, 지금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본데. 여기에는 아무도 없어. 너 같은 쪼그만 꼬맹이는 내가 그냥 한 방에 죽일 수 있다고. 그래도 상황을 모르겠어?”
하지만 윤기는 다시 피식 웃었다.
‘최소한 도망은 칠 수 있게 준비를 해 놨지.’
윤기가 이렇게 자신만만한 이유.
그것은 바로 국민학생에게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육체를 단련한 덕분도 있었다.
최소한 개백정의 술에 전 신체 능력을 피해 체육 창고에서 달아날 정도의 힘은 되니까.
특히 이 체육 창고는 문고리를 돌리는 방식이 아니라 그냥 밀면 열리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도주에 자신이 있었다.
게다가 윤기는 개백정의 사고방식을 100퍼센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애초에 걱정을 하지 않았다.
단련은 어디까지나 만의 하나의 사태를 대비한 것일 뿐.
“이놈의 새끼가!”
다시 한번 윽박지르는 개백정의 외침에 윤기가 비웃음 가득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얼마면 돼?”
“음……!”
드디어 원하는 말이 나왔는지 개백정의 몸짓이 우뚝 멈췄다.
윤기의 반말이 마음에 들지 않기는 했지만, 애초에 개백정의 목적은 돈.
윤기가 부잣집 아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아들을 빌미로 돈이나 우려 보려고 나타났을 뿐이었다.
“어차피 돈이 목적이잖아? 그러니까, 얼마면 돼?”
“어린놈의 자식이…….”
그래도 최후의 자존심은 남아 있던 개백정의 반항이었지만, 윤기가 지갑에서 대충 꺼낸 만 원짜리 몇 장에 개백정의 표정이 마치 프라이팬에 올려진 버터처럼 녹았다.
싯누런 얼굴이 녹은 버터가 되는 모습.
그 모습에 윤기는 다시 한껏 비웃음을 지었다.
후둑 후두둑!
“어쿠!”
바닥에 떨어지는 만 원짜리 몇 장에 개백정은 10살짜리 아이가 앞에 있다는 사실도 잊고 절하듯이 엎드려 그 돈을 쓸어 줍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래서, 얼마면 돼?”
“그, 그거야……. 최소한 애 병원비만큼은…….”
1977년의 봄.
이때와 2019년의 물가 차이는 대략 8배가 조금 넘는다고 보면 된다.
피식.
윤기는 지갑에서 10만 원을 꺼내, 다시 바닥에 뿌렸다.
“어엇! 어어엇!”
바닥에 양 손바닥을 짚은 채로 넙죽넙죽 만 원짜리를 줍는 개백정을 보자 윤기는 과거 자신이 받았던 상처가 조금이나마 치유되는 것을 느꼈다.
물론 증오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가 어른이 될 때까지, 네가 죽는 그 날까지 너를 가지고 놀아 주마. 넌 절대 술로 죽지 않게 될 거야.’
이러한 윤기의 생각은 상상도 못 한 채로, 돈을 다 주운 개백정은 비굴한 표정으로 웃으며 혹시 더 없냐는 듯이 검지와 엄지를 비볐다.
“더 받고 싶어?”
“어유, 더 주시면 감사하죠. 역시 부잣집 도련님이라서 그런지 통이 크시네요.”
개백정은 자신의 목숨을 함부로 하는 녀석이 아니었다.
비록 다른 사람 앞에서 센 척을 하지만, 조금의 이득이라도 있다면 그 누구보다도 비굴하게 구는 부류.
더불어서 자신이 착취할 수 있다면 그 누구보다도 잔인하게 탄압하는 종자.
그렇기에 윤기는 개백정에게 하나의 지시를 내렸다.
“난 네 아들이 마음에 안 들거든. 넌 어때?”
“어휴, 저도 똑같아요. 그놈의 새끼 쓸모도 없어 가지고는 정말! 돈을 벌어 오래도 안 벌어 오지. 말은 더럽게 안 듣지. 애새끼가 진짜 콱! 뒈져 버렸으면 한다니까요? 밥만 축내는 곰팡이 같은 새끼 같으니라고.”
윤기는 말을 들으면서 자신의 과거와 한 가지 다른 점을 찾아냈다.
‘독종.’
독종이었다.
정말로 독종이었다.
미친 듯한 구타가 가해졌을 텐데도, 그걸 견디고 기어코 돈을 바치지 않은 도둑놈은 단언컨대 독종이었다.
“네 아들이 학교에서 너무 나대서 내가 피곤해. 상대하기도 귀찮거든. 그러니까 교육 좀 잘 하면 좋겠는데. 가능하겠어?”
만 원짜리 다섯 장을 더 꺼내 손바닥에 탁탁 치면서 이야기를 하자, 개백정이 허리를 굽실거리기 시작했다.
“어유, 그러믄입죠! 그러믄입죠!”
후드득.
다시 떨어지는 돈과 절을 하듯 엎드리는 개백정의 모습.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윤기는 이내 등을 돌리며 체육 창고를 나섰다.
‘아직 부족해.’
증오심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 * *
분명 윤기에게 맞은 지는 5일이나 지났을 텐데.
도둑놈.
김찬열은 상처가 전혀 사라지지 않은 모습으로 교실에 나타났다.
어찌 보면 오히려 멍이 더 늘어난 듯한 모습.
눈두덩이 중 하나가 거멓게 변한 모습에 아이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그 누구도 ‘괜찮냐?’, ‘누가 그랬냐?’, ‘아직 안 나은 거냐?’라고 물어보지 않았다.
그만큼 김찬열을 싫어하던 아이는 많았고, 3학년이 된 이후 김찬열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윤기가 주변에 깨우쳐 주었으니까.
“쟤 되게 조용하네?”
원희의 말에 진수는 어깨를 으쓱했고, 윤기는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여러분, 책 펴요.”
수업 종이 울리고 들어온 박선자마저 김찬열에게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혹시나 선생님이라면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 줄 것이라 생각한 것처럼 김찬열은 박선자를 바라보다가 눈도 마주치지 않는 담임의 모습에 실망한 듯 고개를 푹 숙였다.
다음 날.
김찬열의 멍은 더 늘었다.
또 다음 날.
김찬열의 멍은 더욱 짙어졌다.
그리고 또 다음 날.
김찬열의 나머지 한쪽 눈도 거뭇하게 변했다.
그리고……
“아저씨, 오늘은 저 걸어갈게요.”
운전기사에게 말하자, 운전기사는 으레 그러려니 하고는 고개를 숙이며 차를 몰고 돌아갔다.
종종 친구들끼리 하교하고 싶다고 이미 할아버지에게 허락을 받아 놓은 상황이었으니까.
“너희들은 저기 뽑기 아저씨 앞에서 잠시 구경 좀 하고 있어.”
교문 근처 뽑기 쪽으로 진수와 원희를 보낸 윤기는 자신을 향해 비굴한 웃음을 짓는 개백정을 따라 약간 한적한 골목으로 들어갔다.
마침 지나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상황.
“도련님, 시키시는 대로 제가 정말 열심히 하고 있는데요. 그……, 저기…….”
윤기는 전혀 입을 열지 않고 그저 10만 원을 꺼내 다시 바닥에 뿌렸다.
“어이쿠! 감사합니다!”
개백정은 정신없이 돈을 줍고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앞에 윤기가 보이지 않자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그뿐.
일주일은 충분히 먹을 술값이 생기자, 개백정은 휘파람을 불며 다시 골목에서 사라졌고, 다른 방향에서 그 모습을 확인한 윤기는 뽑기 쪽으로 향했다.
당해 본 녀석이라서 그런지 정말 개잘알인데?>
‘당해 보지 않은 녀석은 나쁜 놈의 심리를 몰라요.’
이게 끝이냐?>
‘그럴 리가요.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 철저하게 조질 거예요.’
윤기는 천천히 걸어 진수와 원희가 한참 과열되고 있는 뽑기 앞으로 향했다.
“등신아! 침을 써서 살살 파야지!”
“아, 조용히 해! 너 때문에 부서지잖아!”
바늘로 별 모양을 파내려는 원희와 그걸 뒤에서 보며 훈수를 두는 진수의 모습은 영락없는 국민학교 3학년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어릴 때 저것들이 그렇게 가지고 싶었는데…….’
설탕을 녹여서 총이나 거북이 모양을 크게 만든 경품들.
윤기의 눈이 동심에 반짝였다.
“아저씨, 저도 하나 주세요.”
“오냐, 20원이다.”
“윤기야, 나도!”
“아저씨, 쟤도 주세요.”
“그래, 그럼 40원.”
셋이 모여 별 모양을 파내는 모습을 보며 최덕배는 허공에 비스듬히 누워 윤기에게 들리지 않도록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좀 더 나중에 얘기해 줘도 되겠지……?>
* * *
개백정이 골목에서 돈을 받아 가고 나서 4일.
마침내 김찬열은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어지간히 맞았나 보네.’
처음에는 기뻐했던 윤기였지만, 김찬열이 장장 열흘 이상을 학교에 나오지 않자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오래 안 나올 리는 없을 텐데?’
걱정이 되는 것은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짜증이 났다.
김찬열이 당하는 모습을 하루하루 확인하는 것이 근래의 낙이었으니까.
“아저씨, 오늘은 제 친구네 집에 잠시 들러 주세요.”
“원희 도련님이나 진수요?”
“아뇨, 다른 애 있어요. 학교에 오래 안 나와서 어디 아픈가 걱정이 되거든요.”
친구의 병문안을 간다는 말에 운전기사가 ‘역시 도련님이야.’라는 생각과 함께 뿌듯한 마음으로 차를 몰았다.
‘그래, 내가 이런 곳에 살았었지.’
다 쓰러져 가는 달동네.
이 시대에 다 쓰러져 간다고 하면 진짜로 다 쓰러져 가는 게 맞다.
쥐가 갉아먹고, 곰팡이가 잔뜩 피고, 보수조차도 되지 않는 집들이 잔뜩 모인 곳.
이곳에서 죽도록 맞고, 죽도록 일하고, 죽도록 구걸하는 인생을 살았던 것이다.
‘빌어먹을, 괜히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르네.’
차에서 내리자 기사가 뒤를 따랐지만, 이번에는 그냥 놔두었다.
기사에게는 이런 착한 면모를 보여 두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
‘분명 여기였는데…….’
달동네 중간쯤 위치한 다 쓰러져 가는 집.
그러나 문을 두드려 봐도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할머니, 여기에 사는 애 어디 갔어요?”
마당에 나와 부채질을 하고 있는 옆집 할머니에게 묻자, 할머니가 되물었다.
“걔랑 친구니?”
“네.”
응당 그러려니 하는 표정을 짓던 할머니가 한숨을 쉬며 다시 입을 열었다.
“걔, 부모한테 맞다, 맞다 못 버티고 도망갔어.”
“도망갔다고요?”
“그래, 뿐만 아니야. 걔 도망가고 나서 그 인간 백정 놈이 마누라를 패기 시작했는데, 마누라도 못 견디고 도망갔지.”
“그럼, 제 친구 아빠는요?”
“그 사람은 여자가 경찰에 신고해서 감빵 갔어. 저쪽 집 아들이 경찰서 일해서 들어보니까 구치소로 갔다던데? 한 몇 년 살다 나올 거라더라고.”
여기까지 말한 할머니가 몇 마디를 더 하기는 했지만, 윤기에게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구타를 당하면서도 버텼는데, 녀석은 살길을 찾아서 빠져나갔어. 녀석은…….’
네 과거만 변하는 게 아니라는 걸 이제 깨달은 거냐?>
최덕배의 말에 윤기가 최덕배가 부유하고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워낙 행복하게 살고 있다 보니 체감이 안 되었었나 본데, 너는 이미 과거를 많이 바꾸고 있어. 네 행동 하나가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고.>
‘그리고 보니 어릴 때 사기꾼을 몰아낸 것도…….’
그래, 그것도 한 종류지. 앞으로 네가 살면서 행하는 크고 작은 일로 네가 알던 미래와는 조금씩 다른 미래가 나타날 거야. 그걸 어떻게 감당하느냐는 전적으로 너에게 달린 거고.>
‘제가 감당해야 할 미래가 있을까요? 이 정도 조건이면 감당이라는 단어는 딱히 어울리지 않아 보여서요.’
윤기의 말을 들은 최덕배가 피식하면서 폭탄을 던졌다.
당연히 있지. 네가 자살했던 날 조간신문에 삼우 그룹이 망했다는 소식이 있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