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113)
#113화 상상도 못 한 OO (1)
생각보다 큰 전화벨 소리.
2010년대야 대부분이 휴대폰을 쓰고 진동으로 해 두기 때문에 벨 소리를 들을 일이 많지 않지만, 80년 대의 전화기들은 전화벨 소리가 상당히 컸다.
집안에 전화기를 한 대 내지, 두 대를 쓰는 집들이 많았었는데, 집 어디에 있어도 전화벨 소리를 들어야 전화를 받을 수 있었으니까.
현재 이 저택은 다소 급매를 한 상황이기 때문에 전화기가 1층 거실 한 곳에만 있었고, 자연스럽게 전화벨 소리는 상당히 컸다.
“잠깐 다녀올게.”
“같이 가자. 나도 잠 깬 거 같아.”
메릴과 함께 1층으로 내려갈수록 전화벨 소리는 더욱 맹렬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잠시 뒤.
윤기가 수화기를 들자, 저택은 다시 침묵에 잠겼다.
“여보세요?”
[회장님, 늦은 시간에 정말로 죄송합니다. JSD에게서 방금 긴급 요청이 들어와서 휴가이신 걸 알면서도 부득이 연락 드렸습니다.]“JSD가요? 무엇 때문이죠?”
[자세한 내용은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했지만, 간단하게나마 와이케이 백화점으로 인한 외화 유출을 꼬투리 잡는 목소리가 좀 커졌다고 합니다.]현재 와이케이 백화점의 주력 산업은 명품 판매.
현재 명품 전부가 외국산 제품이기 때문에 엄밀히 따지면 외화가 외부로 유출되는 것은 맞았다.
‘2010년대라면 전혀 문제가 없을 이야기겠지만, 80년대에는 확실히 꼬투리 잡기 쉬운 일인가…….’
윤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일단 복귀해서 류근태에게 직접 지시를 내릴지, 아니면 메릴과 함께 휴가를 끝까지 보낼지를 말이다.
[회장님,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건 아무래도 와이케이 백화점의 약점과 관련된 것이라 제가 함부로 행동하기에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수화기를 통해 나오는 류근태의 목소리를 들은 메릴이 윤기를 향해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는 괜찮으니까, 가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어렵게 세운 회사가 이렇게 휘청이면 안 되잖아.”
정말 고마운 소리.
하지만 윤기는 의외로 자신이 갈 필요가 없다는 확신을 굳혔다.
‘어차피 JSD는 와이케이의 주인이 나라는 사실을 전혀 모른단 말이지?’
애초에 류근태와 JSD가 가질 만남의 자리에 자신이 가는 것 자체가 이상한 그림이었기에 윤기는 류근태에게 좀 더 적절한 지시를 내렸다.
“류 비서.”
[네, 회장님.]“어차피 JSD와 만날 자리에 제가 가기는 힘들 거예요. 외부적으로 와이케이 백화점의 주인은 제가 아니라 류 비서니까요.”
[그건 그렇습니다.]“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작은아버지와 토의를 하고, 가능하면 할아버지와 함께 JSD와의 자리에 가세요. 그리고 JSD가 무엇을 요구했는지 저한테 전화로 알려 주세요. 제 행보는 그다음에 결정지어지겠죠.”
수화기 너머로 류근태가 고개를 끄덕이는 게 느껴지는 듯한 침묵.
[회장님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JSD와의 대화가 끝나고 나면 다시 유선으로 전화 드리겠습니다.]“JSD가 즉각적인 대답을 요구한다고 해도 어차피 제가 그 자리에서 뭘 할 수 있는 것은 없어요. 그러니 그 자리에서의 행동은 류 비서에게 전권을 맡길게요.”
[절대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기대하죠.”
기대감을 살짝 불어넣어 주는 듯한 음색으로 대답한 윤기는 이내 전화를 끊었다.
“정말 안 가도 괜찮아……?”
걱정스러운 메릴의 말에 윤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지금은 내가 가서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어.”
실제로 현재 JSD가 무엇을 요구할지는 윤기가 가진 지식이나 능력으로는 전혀 알 방법이 없었다.
최덕배를 JSD 옆에 붙여 놓는다고 해도 JSD가 혼잣말을 하지 않는 이상 알아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
애초에 류근태가 만남을 가지면 알게 될 일에 최덕배를 보내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그래도 혹시 나 때문에 회사가 잘못될까 봐…….”
“회사가 잘못되면 나 버릴 거야?”
윤기의 농담에 메릴이 윤기의 가슴을 주먹으로 망치 두드리듯이 내리쳤다.
“큭!”
“바보야! 내가 너를 처음 봤을 때, 너에 대해서 아는 게 있었어?”
“흠……, 열 살짜리 아이한테 키스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지만…….”
다시 한번 윤기의 가슴에 망치가 내리쳐졌다.
“윽!”
“바보!”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메릴은 굉장히 감동한 듯 윤기의 가슴에 안겼다.
그리고 잠시 뒤.
“혹시 몰라서 가져왔던 건데…….”
메릴은 이렇게 중얼거리며 짐을 보관해 둔 장소로 걷기 시작했다.
“메릴, 뭐 해?”
하지만 메릴은 발그레하게 바뀐 얼굴로 조용히 자신의 짐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바쁜 새벽.
메릴이 한창 자신의 짐을 뒤지며 ‘아, 어디다 뒀지? 그리고 보니 어떻게 생긴 거더라?’라고 중얼거리고 있을 때, 류근태는 황급히 최철규에게 연락을 날리고 있었다.
* * *
JSD와의 긴급한 만남.
이 자리에는 류근태와 더불어 최기현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급하게 불러 정말로 죄송합니다.”
현시점, 신군부의 2인자라 할 수 있는 JSD의 사과에 최기현과 류근태 모두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아닙니다. 저야말로 이렇게 배알하게 되어 정말로 영광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덕분에 우리 와이케이가 성업하고 있으니 항상 감사할 따름입니다.”
최기현과 류근태의 말에 JSD가 부드럽게 웃으며 자신의 집무실 소파를 권했다.
“저야말로 언제나 와이케이의 도움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저 역시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일단 앉으시죠.”
자리에 앉자 자연스럽게 커피가 나왔고, 집무실 문이 닫히자 류근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번 일은 아무래도 저 혼자 결정한 문제가 아닌 것 같아서 삼우의 최 회장님을 대동했습니다.”
“아아, 와이케이의 실소유주가 현재 윤기 선생님이니 솔직히 예상은 했습니다. 아무래도 류 사장님 혼자서 결정하기는 힘들겠죠.”
현재 JSD를 비롯한 권력의 심층부는 와이케이 백화점의 실질적 주인이 최기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확실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심층부가 추측하기로는 상속 관련 문제.
최윤기를 향후 삼우의 후계자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강했다.
물론 JSD도 윤기의 영재성을 옆에서 똑똑히 지켜보았기에 이러한 의견에 설득력을 보탰고, 지금 최기현이 함께한 것에 전혀 거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현재 외화 유출에 대해서 문제가 좀 생기고 있다고요……?”
류근태의 조심스러운 말에 JSD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사실, 저희는 별로 신경 쓰고 싶지 않습니다. 와이케이가 잘 될수록 좋아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으니까요.”
약간 멋쩍은 미소를 짓는 JSD의 표현은 진심이었다.
현재 미니 백화점을 통해 JSD를 비롯한 실권자들이 얻는 이익이 정말 상당한 편이었으니까.
더군다나 ‘합법적인’ 방식이었기에 돈을 쓰는 것도 쉬워서 현재 연줄이 있는 자들은 심층부들에게 제발 미니 백화점에 자리 하나를 마련해 달라고 사정하는 정도였다.
실제로 심층부의 눈 밖에 난 사람들은 멀쩡히 미니 백화점을 운영하다가 계약이 해지되기도 했으니, 미니 백화점에 가족이 입점해 있는 사람이야말로 현재 신군부의 핵심 권력 인사라 할 수 있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혹시 문제로 삼는 게 어떤 인사들인지 알 수 있을까요?”
최기현의 물음에 JSD가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뻔하지 않습니까. 다른 경제계 인사들이지요. 사실, 일부 인사들은 최 회장님이 와이케이의 실소유주인 것을 눈치챘습니다. 그런데 삼우는 우리나라의 다른 그룹들과 달리 재벌 혈연이 아니라 미군 혈연이지 않습니까? 그렇다 보니 고깝게 보이고 있는 것이지요.”
“으음……, 확실히 삼우의 강점이자 약점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그것이 이번에는 약점이 되었군요. 삼우로 인해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최기현의 사과에 JSD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저는 전혀 나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지, 저희는 삼우하고만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적어도 그 인사들이 입을 다물게 할 최소한의 조치는 필요하다는 거지요.”
이 정도면 JSD가 정말로 와이케이를 어마어마하게 배려를 해 주고 있는 꼴이었다.
물론, 이러한 배려의 배경에는 윤기에 대한 우호감, 와이케이를 통한 이권, 콜슨과 거스터에 대한 어려움이 바탕에 깔려 있었지만 말이다.
“제가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유선상으로 외화 문제라고 말씀을 드리기는 했는데, 혹시 생각해 오신 것이 있으십니까?”
JSD의 말에 최기현이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조심스럽게 다시 입을 열었다.
“한 말을 또 하는 느낌이 나긴 하지만, 결국은 외화 유출이 문제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만약 여기서 해결안을 내놓지 못한다면 정말로 큰일 날 화법.
하지만 어제 새벽에 최기현과 류근태, 그리고 최철규는 회의를 통해 나름대로 결론을 내어놓았기 때문에 일부러 느릿하게 연기를 하며 대답을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해결해 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어떻게요?”
“와이케이가 외화를 벌 수 있게 외국 회사에 자본을 투자하는 겁니다.”
“아주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방법이군요. 회사의 자본을 원치 않는 곳에 투자를 한다라…….”
JSD의 말처럼 정말 말로는 쉬운 일이다. 그냥 외국에 투자하면 되니까.
문제는 외국에 투자하는 순간 와이케이가 국내에 재투자할 기회가 사라진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이게 가장 확실하게 상대의 입을 다물 수 있게 하는 방법.
그렇기에 JSD는 다시 최기현을 향해 물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어렵지만 나라의 운영을 위해서라면 응당 해야 할 일이겠지요. 하지만, 투자라는 게 막무가내로 하는 게 아니다 보니, 투자할 곳을 선정하는 데까지 조금 시간을 주셨으면 합니다.”
“그거야 당연한 일이죠. 아무리 저라고 해도 그 정도로 막무가내로 일을 진행하게 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일정은 좀 알아 두고 싶은데, 어느 정도나 시간이 필요할까요?”
“못해도 올해 말까지는 투자처를 결정하겠습니다.”
“올해 말이라…….”
“아무리 늦어도 입니다.”
최기현의 말에 JSD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저도 최대한 배려를 해 드려야겠죠. 연말까지는 제가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 보겠습니다. 하지만, 연말이 넘어가면 저 역시 그들에게 할 말이 없어집니다. 그렇게 되면 명품 구매에 대한 제동이 걸릴 것이고, 그건…….”
JSD는 일부러 입을 다물었고, 최기현과 류근태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명확히 깨달을 수 있었다.
[와이케이가 주는 이권이 다른 곳이 주는 이권보다 떨어지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나는 배를 갈아탈 수밖에 없다.]지극히 현실적인 경제 논리였지만, 최기현과 류근태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고개를 끄덕이는 것뿐.
‘최악의 경우라면 마이크로소프트의 주식을 회장님한테서 구매하면 될 거야.’
어제 류근태가 최악의 경우를 상정한 해결법.
이걸 생각해 낸 것만으로도 류근태는 윤기에게 합격점을 얻어 낸 것이지만, 그래도 윤기에게 죄송한 마음을 느꼈다.
“자, 그러면 얼추 해결된 것 같군요. 식사나 하고 가시겠습니까?”
““영광으로 알겠습니다.””
동시에 대답하는 최기현과 류근태의 모습.
소중한 사람들이 최선의 행동을 해 준 덕분에, 윤기는 인생에 두 번 올지 모르는 행복하고도 뜨거운 휴가를 메릴과 보내고 있었다.
* * *
[이번 휴가를 내 인생에서 절대 잊지 못할 거야.]헤어질 때 말한 메릴의 말을 떠올린 윤기는 차필규가 운전하는 차량에서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너와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나에게는 최고야.’
노가다 시절까지 포함하면 60년에 가까운 인생을 제대로 된 연애를 못 해 본 윤기였기에 지금 느끼는 만족도는 엄청났다.
‘즐거운 휴가가 끝났으니 이제 다시 일을 할 때인가?’
윤기의 분위기가 바뀐 것을 파악한 옆자리의 류근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회장님, JSD 건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일단 연말까지 해외 투자처를 찾겠다고 말을 해 놓았습니다만…….”
“류 비서 미안해요.”
“네?”
윤기가 갑자기 자신에게 사과를 하자 류근태는 속으로 굉장히 당황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자신의 주인이 사과를 한단 말인가?
혹시나 자기가 버려지는 것일까 봐 두려움을 안고 있던 류근태에게 윤기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사실 대처는 이미 진행 중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