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118)
#118화 훼방과 블러핑의 대결 (3)
“그렇게 하겠습니다.”
오랜 기간 박기수의 옆에서 비서 생활을 해 왔던 정동윤이었기에 윤기의 지시에 가타부타 첨언을 하는 일이 없었다.
그저 시키면 수행할 뿐.
다만, 일의 진행에 있어서 필수적인 부분은 확인을 거쳤다.
“공개적으로 조사해야 하는 일인가요? 아니면 비공개적으로 해야 하는 일인가요?”
“비공개적으로 하는 게 좋겠죠. 가능하면 공개된 회선 같은 건 쓰지 않는 게 좋아요.”
“알겠습니다.”
정동윤이 닌텐도의 주식에 대해서 알아 오는 데까지는 불과 몇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윤기의 손에 넘겨진 닌텐도 주식에 대한 보고서.
윤기는 조금 당황하면서도 한 가지 묘안을 떠올릴 수 있었다.
* * *
“기절할 정도로 주식의 거래가 없네요.”
“그렇습니다. 한국이었으면 거래 정지를 당할 수준이지요.”
정동윤의 대답처럼, 닌텐도의 주식 거래량은 불과 1,500주도 되지 않았다.
그나마도 장이 마감할 때의 금액은 불과 1,600엔.
시가 총액 940억 엔을 자랑하는 닌텐도였기에, 하루 동안 장에 나오는 모든 주식을 산다고 하더라도 0.01퍼센트가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닌텐도의 주식으로 무언가를 하실 생각이신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너무 그렇게 빡빡하게 저를 대할 필요는 없어요. 저는 참견은 싫어해도 질문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니니까요.”
“갑자기 얼마 전 생각이 떠오르는군요.”
쓴웃음을 짓는 정동윤의 모습에 윤기 역시 웃음을 지었다.
“회장님, 방금 여쭤본 것이지만 혹시 닌텐도의 주식을 매입하실 생각이신가요?”
“생각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이대로라면 구매가 어려울 것 같네요.”
“그렇습니다. 이런 경우라면 현재 닌텐도의 주주들이 기업의 미래를 굉장히 좋게 보고 있다는 얘기거든요. 장에도 안 나오고 있는데 따로 팔 가능성도 그리 크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혹시 닌텐도를 생각하신 이유가 따로 있으신 겁니까?”
“닌텐도가 이번에 게임기를 새로 발매했거든요.”
“게임기요……?”
윤기는 패미컴과 관련된 이야기를 정동윤에게 간략하게 설명했고, 정동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닌텐도의 주식을 괜찮게 보실 법도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현재 와이케이가 외국 기업에 투자할 필요가 있을까요? 현재 국내에서 승승장구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정동윤은 아직까지 JSD에 대한 이야기를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윤기는 패미컴에 대한 이야기에 이어 JSD와 정태룡에 관한 이야기까지 덧붙여 설명해 주었다.
“어……, 제가 그 정도 내용까지 알아도 될까요?”
“그만큼 제가 믿기 때문이죠.”
힘이 실린 윤기의 대답에 정동윤은 조금 감동을 받은 듯한 표정과 함께 윤기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까지 대우해 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합류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합류 시기는 상관이 없어요. 능력이 있고, 충성심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은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죠.”
“앞으로도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잠깐의 덕담이 오간 뒤, 정동윤이 다시 윤기를 향해 물었다.
“그러면 지금부터는 제가 어떤 일을 해야 할까요?”
“정 비서의 밥솥은 아직 밥을 퍼 올릴 때가 아니에요. 지금은 뜸을 들일 때죠.”
윤기가 최측근에게만 사용하는 단어인 ‘비서’.
그 말에 정동윤은 다시 한번 속으로 고개를 숙이며 윤기의 부연 설명을 기다렸다.
“지금 밥을 풀 밥솥은 바로 류 비서의 밥솥이죠.”
윤기는 거스터의 비밀 회선으로 류근태에게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 * *
‘드디어 본격적인 시작인가.’
류근태는 닌텐도의 본사 앞에 서서 주먹을 꽉 쥐었다.
[닌텐도 본사를 방문해서 주식을 사세요. 단, 비싸게는 안 돼요.]닌텐도의 주식을 사라는 것이 아닌, 본사를 방문해서 주식을 사라는 지시.
이에 류근태는 곧바로 주식 시장을 확인했고, 닌텐도의 주식 거래량이 정말 한숨 나오는 수준이라는 것을 알고는 윤기의 지시를 확실히 이해했다.
‘무조건 사야 해.’
그야말로 중요한 임무에 투입된 특전사의 각오로 류근태는 한 걸음, 한 걸음, 본사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만남 약속을 하고 왔습니다만……. 한국 와이케이 백화점의 류근태입니다.”
류근태의 말에 데스크 직원은 친절한 인사와 함께 어딘가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고, 이내 직원 한 명이 데스크로 와서는 류근태를 접객실로 데려갔다.
“여기서 기다리시면 됩니다.”
그 말을 끝으로 직원이 나갔지만,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일은 없었다.
‘왜, 이리 늦는 거지?’
원래 약속한 시각은 오후 2시.
‘벌써 2시 40분인데…….’
손목시계를 들여다본 류근태는 상대가 자신을 감질나게 하려고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애쓰며, 데려온 통역과 가벼운 이야기를 하거나 숨을 고르게 쉬려 노력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마침내 오후 3시 10분.
접객실의 문이 열리며 50대 중후반의 남성이 안으로 들어왔다.
흰머리가 살짝 섞인 올백 머리에 색이 살짝 들어가 있는 크고 얇은 안경. 거기에 묘하게 졸린 듯한 눈.
‘부장급 인사인가? 아니면, 상무이사급?’
하지만 이러한 류근태의 첫인상과 생각은 사내의 입이 열리기가 무섭게 부서졌다.
“이것 참, 하하핫! 죄송합니다. 원래 다른 녀석이 여기로 왔어야 했는데, 갑자기 너무 급한 일이 생겨서 늦게나마 제가 왔습니다.”
그야말로 호탕하기 그지없는 목소리.
살짝 놀란 류근태는 자리에서 일어나 상대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아닙니다. 기다리면서 사색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니까요. 저는 한국 와이케이 백화점의 사장인 류근태라고 합니다.”
“이해해 주시니 정말 기쁘군요. 저는 이곳 닌텐도의 사장 야마우치 히로시라고 합니다.”
아무리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류근태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사장이라고? 사장이 직접?’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인물의 등장. 하지만, 류근태는 마냥 놀라는 게 아니라 어찌 보면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래, 사장하고 이야기를 한다면 오히려 지시를 더 빨리 수행할 수 있겠지. 장애물을 전부 치우고 이야기하는 거니까.’
침을 한 번 삼킨 류근태는 야마우치의 말에 따라 자리에 앉았고, 잠시 뒤, 커피가 한 잔 나오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잔을 들어 목구멍에 한 모금씩 넘겼다.
“일본의 커피가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습니다.”
“이국의 향취가 들어간 커피는 언제나 특별한 법이죠.”
“백화점 사업을 하시는 분답게 표현도 고급스럽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하핫!”
이내 웃음을 그친 야마우치는 류근태를 바라보며 미소와 함께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보니 요새 게임 관련 기업에 관심이 있으신 한국 분이 있다는 업계 소문은 들었습니다. 우리 닌텐도에도 저번에 다녀가셨다고 하더군요.”
“아, 예. 맞습니다. 저희 와이케이가 백화점이고, 고급품만을 취급하는 곳인데, 저희 고객들이 구매력이 있는 사람들인 만큼 게임 쪽도 취급을 해 보면 어떨까 싶어서 현황을 파악하는 중이었습니다.”
“오호, 그래요?”
“예. 아직 한국 사람들의 구매력이 일본에 비하면 많이 딸리는 것이 사실이지만, 저희 백화점을 이용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그 정도 구매력은 가지고 있으니까요. 게임이라는 것도 결국 유흥. 어느 정도 구매력이 있어야 살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현재 류근태가 하는 말은 어디까지나 적당히 끼워 맞추기.
하지만, 발언 그 어디에서 위화감이나 모순 같은 것이 있지는 않았기에 야마우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그러면, 그중 닌텐도를 선택하신 겁니까?”
“가능하면 닌텐도를 선택하고 싶은 거죠.”
“그렇다면 구매 협약을……?”
살짝 말을 흐리는 야마우치를 향해 류근태가 고개를 저었다.
“그 전에 선행되어야 할 단계가 있습니다.”
“무엇이지요?”
한국으로의 패미컴 수출은 닌텐도로서도 나쁘지 않은 선택지였기에 야마우치는 류근태의 말을 흥미를 느끼며 기다렸다.
“사실 외국 기업과의 거래는 단순 협약만으로 이루어지기는 힘듭니다. 특히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더더욱 그렇지요. 경제는 경제인에게 맡겨야 하는데, 정치인들이 계속 셔터를 올렸다 내렸다 하지 않습니까?”
“흐음, 확실히 그렇긴 하지요. 일본에서 한국 김을 구하기 힘들게 된 이유도 결국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었으니까요.”
야마우치의 말에 류근태가 흥미롭다는 듯이 되물었다.
“우리나라 김이 일본에 팔리지 않고 있는 건가요?”
“아, 모르셨습니까? 꽤 오래전부터 한국 김이 수입되지 않고 있습니다. 김은 한국 김이 맛있는데 참 아쉬울 노릇이죠.”
“저희가 식품 쪽은 전혀 취급하지 않고 있다 보니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무튼.”
야마우치가 고개를 끄덕이며 류근태의 말이 이어지길 기다렸다.
“저는 와이케이가 닌텐도와 좀 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길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와이케이가 닌텐도의 주식을 일부 구매할 수 있었으면 하는데, 괜찮을까요? 즉, 구매 협약과 주식 구매를 동시에 진행했으면 합니다.”
야마우치가 접객실에 들어오고서부터 시작된 길고 긴 빌드업.
‘구매 협약만 하고 주식을 못 사는 일만큼은 반드시 피해야 해. 현재 와이케이 백화점의 미니 백화점들 상황이라면 패미컴 정도는 쉽게 팔 수 있겠지. 하지만, 지금 나는 패미컴을 사러 온 게 아니야.’
류근태는 자신의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며 야마우치의 반응을 기다렸고, 야마우치는 자신의 안경을 양손으로 벗더니 웃으며 대답했다.
“안 됩니다.”
* * *
단호한 야마우치의 말을 들은 류근태는 그야말로 어깨가 축 처져서 닌텐도 본사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이 모습은 류근태를 감시하고 있는 정태룡의 부하들에게도 관찰되었고, 이는 곧바로 정태룡에게 알려졌다.
‘호오, 닌텐도 본사에 들어갔다가 어깨가 축 처진 상태로 나왔다고?’
정태룡은 호텔 스위트룸에서 와인을 한 잔 기울이다가 부하의 보고를 받았다.
“좋아, 잘했어. 지금처럼 꾸준히 그 녀석을 감시하도록.”
“알겠습니다.”
부하가 바깥으로 나가자 정태룡은 마시던 와인을 내려놓고는 생각에 잠겼다.
‘와이케이 백화점의 사장과 닌텐도라…….’
당연한 말이지만 정태룡은 닌텐도가 무엇을 하는 회사인지 몰랐고, 게임에는 관심도 없었다.
그렇기에 정태룡 역시 자신의 부하들을 이용해 닌텐도에 관한 정보를 수집했고, 이내 정태룡도 닌텐도와 패미컴에 대해 어느 정도 내용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인이 사기에는 다소 비싼 물건, 하지만 일본을 비롯한 외국에서는 게임기 산업이 다소 유망하다 이거지?’
정태룡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아예 게임 산업 전반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유능한 부하들의 정보 수집과 유능한 정태룡의 정보 분석.
마침내 정태룡은 작년인 1982년부터 미국의 게임기 산업이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까지 파악해냈다.
실제 역사에서도 ‘아타리 쇼크’라고 불리는 이 사태는, 게임 시장이 극도로 커지자 수많은 개발사들이 저질 게임만 도장 찍듯 찍어내면서 게임 시장이 순식간에 붕괴해 버리는 결말을 빚어냈다.
1983년인 지금은 그 붕괴가 시작된 시점.
정태룡은 그 유능함으로 여기까지 정보를 분석하고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북미 게임 시장 자체는 붕괴하고 있지만, 일본의 게임 시장은 딱히 붕괴하진 않은 것 같단 말이지? 그리고 직접 해 보니까 게임 자체가 꽤 재미있어.’
호텔 TV에 연결된 패미컴 한 대.
정태룡은 아예 게임까지 직접 해 보면서 판단의 근거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와이케이는 지금까지 투자에 있어서 실패한 적이 없지. 그렇다는 건…….’
여기까지 생각하던 정태룡은 무언가 위화감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