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122)
#122화 실패를 겪어 보렴 (3)
사람의 목젖이 튀어나온다면 이런 모습일까?
류근태는 정태룡의 놀라운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았지만, 정태룡은 이런 자신의 모습을 자각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유능하니까.
아니, 유능하다고 생각했으니까.
실제로 정태룡은 유능하다.
‘평온한 상태’라면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정태룡은 결코 평온한 상태가 아니었다.
마치 예전, 김련의 아들인 이재서를 확인했을 때와 거의 근접한, 여기서 한 발만 더 나아가면 정말로 그때와 비슷한 수준이 될 정도의 상황이었다.
“전혀 없다니……, 소문으로는 류 사장님께서 세가를 비롯한 곳의 주식을 매입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만, 아닌가요?”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이야기.
하더라도 상대에게 덫을 놓고 해야할 이야기를 정태룡은 절대 해선 안 될 타이밍에 하고야 말았다.
“네? 제가 세가 주식을요? 전혀 모르는 이야기입니다만…….”
세가의 주식을 산 것은 류근태가 아니라 윤기.
그렇기에 류근태는 그 어떠한 찝찝함도 없이 정태룡에게 자연스럽게 사실을 말했다.
“에이, 왜 그러십니까. 이미 소문이 파다합니다. 류 사장님께서 세가에 아주 관심이 많다는 이야기가 말이죠.”
정태룡이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나온 이유 중 하나는 다름 아닌 시간.
현재 보직 해임이 완료되었고, 조만간 지방 발령이 나는 상황.
그 전에 일을 끝내야 했기 때문에 천천히 감정을 추스르고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시간이 없었다.
평온한 상태의 정태룡이라면 윤기가 직접 나서야 하겠지만, 이 정도 수준의 정태룡이라면 류근태, 아니 마석일이 나와도 충분히 상대가 가능할 터.
실제로 류근태는 정태룡을 아주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글쎄요. 제가 닌텐도 패미컴에 관심을 가졌던 적은 있지만, 세가에 관심을 가졌던 적은 없어서요.”
류근태의 답을 들은 정태룡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에이, 그게 게임산업에 관심을 두고 있으시다는 것 아닙니까?”
“예?”
“방금 닌텐도 패미컴에 관심이 있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아, 제 말을 잘못 이해하셨나 보네요.”
류근태는 환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어디까지나 제가 닌텐도에 관심이 있던 거지 와이케이가 관심이 있던 게 아닙니다.”
“그게 무슨……?”
“아까 물어보실 때, 와이케이 백화점이 게임 산업에 관심이 있는지 물어보셨지 않습니까? 와이케이 백화점은 관심이 없습니다. 게임 산업에 관심이 있는 것은 저죠.”
“아니, 사장님이 게임 산업에 관심이 있으시면 당연히…….”
류근태는 일부러 정태룡의 말을 잘랐다.
“어유, 완전히 다른 이야기죠. 제가 관심을 가진다는 건 제 재산으로 주식을 산다는 이야기죠. 제가 관심이 있다고 해서 회삿돈을 마음대로 유용할 수 있나요?”
여기까지 말을 들은 순간, 정태룡은 그야말로 혼란이 올 수밖에 없었다.
‘뭐야, 진짜로 개인적인 재산 사용을 위해 닌텐도를 방문했다는 거야?’
이런 정태룡의 모습을 바라보며 류근태는 아예 쐐기를 박았다.
“개인적으로 닌텐도 주식을 좀 사 보고 싶었는데, 야마우치 사장이 절대로 안 된다고 하지 뭡니까. 끈덕지게 졸라 봤는데 죽어도 안 된다고 해서 결국에는 포기했죠. 거의 한 달을 넘게 매달렸으니……. 그나마 일본에서 여자친구 만든 게 다행이라면 다행입니다.”
여자친구라는 단어.
일반적인 대화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상대에게 엄청난 흥미를 돋우는 주제이지만, 정태룡은 그런 주제에 전혀 반응하지 못했다.
‘패미컴의 수입이 아니라 닌텐도의 주식을 구매하려 했다고? 그리고 난 그걸 보고서 와이케이 백화점의 공식 활동이라 생각한 거고? 내가 잘못 판단했어? 이 내가?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갑자기 와이케이 백화점 사장실에 ‘으득’ 하고 이가 갈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사님……?”
류근태의 물음에도 정태룡의 생각은 계속 이어졌다.
‘눈앞의 이놈은 자기가 닌텐도 주식을 사기 위해 일본에 갔다고 대답했어. 하지만 와이케이 백화점은 세가의 주식을 샀지. 그렇다면 그 주식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사실상 9월 즈음. 그리고 9월에 주식을 샀다면…….’
다시 한번 빠드득하는 소리와 함께 정태룡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왜 일어나십니까? 아직 커피도 남았는데…….”
천연덕스럽게 자신을 놀리는 류근태를 향해 정태룡이 도끼눈을 뜨며 다시 이를 갈았다.
“당신, 나를 적으로 돌린 것을 크게 후회하게 될 거야.”
하지만 마지막까지 류근태는 정태룡에게 짐짓 의아한 표정을 보일 뿐이었다.
“도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닥쳐!”
사장실 문을 거칠게 열고 밖으로 나가는 정태룡을 바라보던 류근태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사장실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어깨를 으쓱이며 아무도 없을 사장실에서 누군가를 향해 말했다.
“먼저 우리를 적으로 돌린 것은 본인인 주제에 제 탓을 하고 있네요.”
류근태의 목소리가 닿은 곳.
사장실 책상 아래에서 윤기가 의자를 밀고 밖으로 나왔다.
“저렇게 이기적이어야 살아남기가 쉬운 것이 바로 이쪽이니까요. 어제까지 술잔을 기울이던 협력사가 일방적인 계약 해지를 통보하거나 부도를 내고 도망가는 게 일상인데, 저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이렇게 말을 한다고는 하지만 윤기의 표정도 류근태와 일치했기 때문에 류근태는 더욱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원래 앉았던 1인 소파가 아닌 3인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그나저나 제가 개인적으로 알아본 결과, 정태룡 이사는 상당히 유능한 인물이었는데 오늘 보니 상당히 다급한 것 같습니다. 역시 상황이 상황인지라 어쩔 수 없는 걸까요?”
“맞아요. 원래 사람은 시간이 없으면 매사에 여유가 없어지거든요. 재벌이 유능해 보이는 이유 중 하나가 여유이기도 하고요. 당장 류 비서만 하더라도 예전과 비교해서 지금이 더 여유롭지 않나요? 더 바쁘지만, 더 여유로운 생활 말이죠.”
말을 들은 류근태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더 바쁘지만, 더 여유로운 생활이라……. 정말 명쾌한 표현 같네요. 확실히 그렇습니다. 지금의 저는 예전 삼우 그룹 회장님 밑에서 비서 생활을 할 때보다 훨씬 바쁘지만, 마음은 훨씬 여유로우니까요.”
“마음이 여유로우니 생각도 더 넓고 깊게 할 수 있죠. 대기업을 다니는 사람은 찬거리를 살 때 가격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지만, 중소기업을 다니는 사람은 가격을 생각해야 하는 것처럼요.”
“대기업 다니는 사람은 찬거리를 생각할 시간에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겠군요.”
“정확해요.”
“지금 정태룡은 자신의 실각부터 시작해서 생각해야 할 게 정말 많겠군요. 확실히 제가 놀려먹을 수 있는 이유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개인의 재능도 분명 존재하겠지만, 돈이 많은 것만으로 사람은 생각의 여유가 생겨요. 이건 절대 부정할 수 없는 상식이죠.”
윤기는 씨익 웃으며 말했지만, 속으로는 쓴웃음을 지었다.
왜냐하면, 이 말의 표본이 바로 자기 자신이었으니까.
‘예전의 나는 정말 아무런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는데, 지금은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하면서도 그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어. 예전에는 가정을 꿈도 못 꿨는데, 지금은 이렇게 바쁘면서도 메릴과의 가정을 꿈꾸고 있으니…….’
윤기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떠오르는 것을 보자, 류근태는 그 미소가 멎을 때까지 기다리고는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정태룡 정도의 인물이라면 이번 세가 주식을 매입한 것이 회장님이라는 사실을 눈치챌 겁니다.”
“그야 당연하겠죠. 그때 일본에 입국한 와이케이의 인물 중 수뇌부는 류 비서와 저니까요.”
“혹시 정태룡이 회장님에게 해코지하지는 않을까 걱정입니다.”
“아아, 걱정하지 마세요. 제 옆에는 차필규라고 하는, 아주 유능한 경호원이 있으니까요.”
“차 경호원이면 확실히 믿을 만하긴 하죠.”
류근태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갑자기 최덕배가 쑤욱 하고 바닥에서 나타났다.
존슨을 통해서 김련의 전언을 들었는데, 실각 수준이 아니라 거의 담그는 수준이더라. 정강필이던가? 아무튼, 대한 그룹의 회장 녀석이 이번에 대한 그룹이 본 손해를 구체적으로 계산하더니 더 빡쳐 하더라고. 처음에는 지방으로 보낼 생각을 하더니, 이제는 아예 무한 대기 발령을 시키라고 비서에게 명령했다고 하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분을 삭이기야 하겠지만, 지금 정태룡이 무언가 사고를 한 번 더 치면 돌이킬 수 없게 될 거야.>
‘오호라.’
최덕배의 말을 듣기가 무섭게 윤기는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현재 정태룡은 기존과 비교해서는 몰락하긴 했지만, 사회적 의미에서는 전혀 몰락하지 않았다.
잃은 것은 어디까지나 대한 화학의 상무이사라는 타이틀.
지금 당장이야 할아버지의 눈 밖에 났지만, 정태룡 정도의 능력이라면 10년 안에 원래의 자리를 되찾을 가능성이 굉장히 컸다.
‘김련 아주머니의 바람도 있으니, 이 기회를 한번 노려보는 것도 좋겠어.’
실제로 최덕배가 지금 이 말을 전해 온 것은 김련의 말을 들어주자는 간접적인 의사 표명도 있을 것이기에 윤기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류근태를 향해 말했다.
“낚시를 한번 해 볼까요?”
“낚시를 말입니까?”
“아마, 낚싯대를 먼저 던지는 쪽은 정태룡 쪽이 되겠지만 말이죠.”
윤기의 음산한 미소가 사장실에 서서히 퍼지기 시작했다.
* * *
무한 대기 발령.
보직 해임과 지방 발령에 이어서, 이번에는 무한하게 대기해야 한다는 소식을 들은 정태룡은 그야말로 돌아 버릴 것 같았다.
이렇게 시간이 갈수록 할아버지의 분노가 더 커진다면 돌이킬 수 없다.
물론, 아예 시간이 오래 지나서 할아버지의 분노가 알아서 사그라드는 것을 노려볼 수도 있겠지만, 정태룡의 성격상 그것은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정태룡은 남들보다 느린 것을 절대로 견디지 못하니까.
10년 뒤에 복권?
그러면 자신보다 하등한 사람들과 똑같은 직급에 있을 뿐, 절대로 앞서 나가지 못한다.
그렇기에 정태룡은 남들이라면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일 처분을 쉬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떻게든 머리를 굴리려고 애썼다.
‘이렇게 된 이상 와이케이 백화점의 내부로 파고들어서 박살 내 버리겠어. 그리고 녀석들이 내 제안을 수락하지 않는다면…….’
정태룡은 조용히 전화기의 다이얼을 돌리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아, 네, 류 사장님. 아까는 정말로 죄송했습니다. 다른 게 아니라 혹시 저희 쪽 패미컴 물량을 염가에 매입하실 생각이 있으신지……. 그리고 가능하면…….”
수화기를 통해 간절한 목소리를 내는 정태룡.
하지만 그 표정은 그야말로 악귀와 같아 아무도 보고 있지 않다는 게 천만다행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 * *
서울 소재의 한 요정.
이때까지만 해도 ‘요정’은 최고급 요릿집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류근태와 정태룡의 만남은 요정에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윤기 역시 류근태의 옆자리에 착석해 있었는데, 이것은 정태룡의 간곡한 요청 때문이었다.
[부탁드립니다. 어차피 이번 일에 대한 모든 지시를 최윤기 군이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 빠른 대화를 위해서라면 그것이 낫지 않겠습니까?]정태룡은 윤기가 나왔다는 사실에 쾌재를 불렀지만, 이게 뭘 의미하는지 추론할 여유는 이미 남아 있지 않았다.
“이렇게 자리에 나와 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정태룡은 공손하게 인사하며 가벼운 주제로 대화의 서두를 떼기 시작했다.
정태룡의 겉모습과 마찬가지로 그리 나쁘지 않은 윤기와 류근태의 응대.
그리고 잠시 뒤, 정태룡은 본론을 꺼냈다.
“오늘 자리를 마련한 것은 말씀드렸던 대로 대한 그룹이 현재 소유하고 있는 물건들의 거래에 대해서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염가에 매각하신다고 했었죠, 아마?”
류근태의 대답에 정태룡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랬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에게 드릴 제안이 있습니다.”
정태룡은 준비한 두 가지의 제안과 최후의 수 중, 일단 첫 번째 제안을 늘어놓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