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124)
#124화 실패를 겪어 보렴 (5)
“맏손자, 그러니까 정태룡을 포기하십시오.”
“포기하라고 하심은……?”
“미군 전 대장의 손녀사위를 죽이려고 한 행동은 최고 수준의 이적 행위지요. 하지만, 이게 대외적으로 드러나면 대한 그룹은 보통 후폭풍을 맞이하는 게 아닐 겁니다.”
JSD의 말은 협박이 아니라 분명한 사실이었다.
거스터가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긴 하지만, 만약 이걸 가지고 직접 거론하기 시작한다면 단순히 끝날 문제가 절대 아니었으니까.
“현재 거스터 님을 비롯한 이번 사건 당사자분들의 분노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러니, 정태룡을 비공개적으로 안기부로 끌고 갈 겁니다.”
“악-!”
정강필은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안기부로 끌고 간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터.
“경호실장님, 제발, 제발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JSD는 고개를 저었다.
“이게 최선입니다. 이번 일을 공론화시켜서 대한 그룹이 타격을 받느냐, 아니면 정태룡이 자기가 한 일에 스스로 책임을 지느냐. 회장님이 선택하실 수 있는 것은 이 둘 뿐입니다.”
“제발…….”
“후우, 어쩔 수 없군요. 계속 그러시면 정태룡은 회장님이 시켜서 이번 일을 한 것으로…….”
순간 정강필은 두 눈이 번쩍 뜨이는 것을 느꼈다.
‘내가 시킨 게 된다고?’
아무리 혈족이라 하더라도 자신이 대신 죽어 줄 수는 없는 법.
결국, 정강필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된 후, 악어의 눈물을 흘리며 JSD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하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대한 그룹 산하의 대한 전자가 가진 기술 관련 문건을 전부 와이케이에 넘기십시오.”
“헉!”
정강필은 엄청난 충격에 그야말로 뒷목이 땅길 지경이었다.
전자 회사 핵심 중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기술의 이전.
이것은 사실상 대등한 능력의 라이벌을 스스로 만드는 일이나 다름이 없었다.
“뭐, 못 하시겠다면 상관없습니다. 그룹 전체가 날아가느냐, 아니면 이 정도 선에서 끝나느냐. 나름대로 많이 참아드린 겁니다. 제가 무릎을 꿇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시지는 않겠죠?”
실제로 JSD가 무릎을 꿇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말은 정강필의 모골을 송연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알겠……습니다…….”
방금까지는 손자를 향한 동정심이 더 강했다면, 지금은 원망도 상당히 섞인 상태로 정강필은 고개를 끄덕이고, 떨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는 JSD의 입가에는 살짝 미소가 걸렸다.
‘뭐, 이 정도면 나도 체면치레를 한 셈인가?’
예전 류근태와의 대화에서 했던 ‘와이케이는 나중에 기술 관련 쪽에도 관심이 있습니까?’라는 질문.
[관심은 있지만, 현재는 여력이 없어서 말입니다. 나중에 여건이 되면 고려는 하고 있습니다.]이러한 류근태의 생각을 들었기에, JSD는 이번 일에 대해 나름대로 보상을 한 것이다.
어쨌거나 정강필의 요청에 의해 JSD를 압박했던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더불어서 감히 자신을 압박한 정강필에 대한 징벌도 포함되어 있긴 했다.
와이케이의 외화 유출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사실.
하지만 그것으로 감히 자신을 압박했으니, 큰 실수를 했을 때, 건수를 잡아 큰 벌을 준 셈이다.
‘감히.’
마지막으로 JSD가 한 짤막한 생각.
80년대.
군부가 재계를 잡아먹는 시대는 이렇게 중반이라는 중간 정착지에 도착하고 있었다.
* * *
“으하하하핫! 아닌 밤중에 이게 웬 떡이냐?”
최기현의 너털웃음이 서재에 울려 퍼졌다.
정말 오랜만에 윤기가 상석이 아닌 곳에 앉은 상황.
상석에 앉은 최기현을 향해 말하는 윤기의 표정은 매우 밝았다.
“그렇게 좋으세요?”
“좋다마다! 그렇지 않아도 삼우 전자의 기술력이 떨어지는 상황이었는데, 대한 전자의 기술력이 그대로 우리한테 온다니. 이게 좋은 일이 아니면 무엇이겠느냐?”
너무 기뻐서 눈물까지 찔끔 나오는 최기현의 모습은 그야말로 행복 100퍼센트가 아니면 표현될 수가 없는 미소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기뻐하시니 저도 기쁘네요.”
“기쁘다마다. 하지만.”
최기현은 웃음을 멈추고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윤기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다음부터는 그런 위험을 감수하지 말거라. 상대가 트럭으로 교사를 해서 망정이지, 만에 하나 본인이 그 자리에 총이나 칼 같은 흉기 들고 왔으면 어떻게 할 뻔했어?”
갑자기 권총을 꺼낸 정태룡이 윤기를 향해 총알을 발사한다.
상상만 해도 끔찍했는지, 최기현은 고개까지 절레절레 흔들었다.
“에이, 그럴 일은 없었을 거예요.”
“사람 일은 모르는 법이다.”
“애초에 마지막에 트럭으로 교사한 것도 자기가 직접 한 게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시킨 거잖아요. 저는 정태룡을 파악하고 있었어요. 결국, 자폭은 하지 못하는 쫄보였을 뿐이죠.”
윤기의 표현 자체는 적절했다.
애초에 모든 것을 던져서 해코지하려고 마음먹었다면, 트럭 운전사가 실패할 것을 감안하여 추가 계획을 세워서 직접 시행했을 테니까.
하지만 정태룡은 끝까지 복권에 대한 꿈을 놓지 못했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추론이 적절하다 해도 할아버지의 걱정을 없애 버리지는 못했다.
“그래도 조심해야 해. 세상에는 상상도 못 할 미친놈들이 정말 많으니까 말이다.”
“원래 경영이란 게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래도 할아버지가 걱정하시니까 다음부터는 이 정도 리스크는 감수하지 않도록 노력할게요.”
“그래, 그렇게라도 말을 하니까 마음이 놓이는구나. 그리고 한 가지 더.”
“네?”
“경영은 말이다. 리스크를 감수하는 것도 좋지만, 리스크를 없앨 줄 아는 것도 경영이다. 왜, 나 같은 경영자들이 꼴 보기 싫은 정치인들에게 돈을 뿌리겠느냐. 그게 다 강을 건널 때 물살을 직접 헤치고 건너는 게 아니라 돌다리를 건너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지.”
“명심할게요.”
“그래, 이해가 빨라서 좋구나.”
최기현은 흡족한 미소를 짓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이번 일로 인해서 어지간한 그룹들은 와이케이에 압박을 주기가 힘들 거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JSD가 대놓고 와이케이의 편을 들어줬다는 게 재계에 퍼지고 있으니까요.”
실제로 대한 전자가 와이케이에 조건 없는 기술 이전을 했다는 사실은 이미 재계에 슬금슬금 퍼지고 있었다.
이러한 기술 이전을 강제로 시킬 수 있는 존재는?
권력의 최정점에 선 극소수의 인물들뿐.
아니, JD를 제외하면 JSD나 가능한 일이었기에 향후 다른 재벌들이 와이케이에 ‘청탁을 통한 압박’을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공표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아예 못한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번처럼 큰 실수를 한다면?
그룹이 날아가는 것은 일도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와이케이를 압박하는 방법은 오로지 경쟁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면 다시 국내 재투자를 할 셈이냐?”
“국내 재투자도 좋겠지만, 이렇게 된 이상 국외 투자도 해 볼 만한 일일 것 같기는 해요. 물론 완전 전환은 아니고, 일부 전환 정도? 이미 2호점을 지으려고 대출받았던 돈 중 남은 액수를 전부 일본에 투자했기 때문에 한동안은 돈을 모아야겠지만요.”
와이케이 백화점의 2호점은 세스에서 인수한 백화점을 현재 리모델링하는 중이었기에 상당한 돈이 절약되었고, 덕분에 일본에 투자한 금액은 꽤 큰 금액이었다.
덕분에 현재 와이케이는 긴축 정책.
하지만, 하루하루 어마어마한 매출을 올리고 있는 와이케이 백화점 덕분에 몇 달 되지 않아 다시 투자금을 모을 수 있는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래, 이제는 오히려 네가 나보다 경영자로의 능력이 뛰어나니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
“아니에요. 일부 능력은 제가 뛰어날지 몰라도 할아버지가 경험을 통해 축적한 스킬은 제가 절대 따라 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앞으로도 틈만 나면 저한테 가르침을 주세요. 아셨죠?”
적절하게 자신을 띄워 주는 손자의 모습에 최기현은 미소를 머금었고, 이내 뇌 한구석으로 밀어놓았던 질문을 적개심 가득한 표정으로 꺼냈다.
“그리고 보니 정태룡, 그 녀석은 어떻게 되는 거냐?”
* * *
최기현이 걱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정태룡은 안기부에서 아주 화려한 대접을 받고 있었다.
[저희야 받을 건 받았으니 적당히, 더는 날뛰지 않을 정도로만 해 주세요.]류근태의 전언.
하지만, JSD는 어린놈의 자식이 자신에게 입김을 불어 넣었다는 괘씸죄를 더해 특별 지시를 내렸다.
덕분에 안기부의 스페셜리스트들은 정말 죽지만 않을 정도로, 정태룡에게 그야말로 풀 코스 대접을 하기 시작했다.
어지간히 강단 있는 사람도 3일만 들어갔다 나오면 눈동자가 풀린다는 지옥과도 같은 장소.
1984년 1월.
안기부에서 가장 화려한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은 단연코 정태룡이었고, 덕분에 정태룡은 하루가 멀다고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인권?
그딴 것은 개나 갖다 준 장소에서 나오는 비명은 그야말로 처절하기 짝이 없었고, 그 참혹한 모습에 김련은 양손으로 입을 가리며 허공에서 정태룡을 바라보고 있었다.
손에 의해 가려진 입.
그 입에는 당연하지만 웃음기가 감돌고 있었고, 그 모습에 최덕배가 물었다.
이제 만족했느냐?>
더 이상 총기라고는 일절 남아 있지 않은 정태룡을 바라보며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김련.
[네. 정말……, 정말 만족스러워요. 이런 광경을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정말 한 적이 없었는데…….]이게 다 사람 잘 만난 덕이지. 아니, 귀신이라고 해야 하나?>
최덕배의 가벼운 농담에 김련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고, 최덕배는 그 미소를 바라보며 다시 한번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혹시 괜찮다면…….>
무언가를 말하려던 최덕배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서서히 신기루처럼 사라지려는 김련의 모습.
[앗…….]자기 스스로도 놀라는 김련의 모습에 최덕배가 비명을 질렀다.
으아! 안 돼!>
발을 동동 구르는 최덕배의 모습을 본 김련이 자신 역시 안타깝지만 조금은 후련한 표정으로 최덕배를 향해 말했다.
[제가 너무…… 만족했나 보네요. 죄송해요……. 만약, 제가 이곳에 계속 있었다면 선비님과 좀 더 함께했을 텐데…….]으으으…….>
[감사해요……. 정말로 감사해요……. 만약 저쪽에서도…….]뒷말은 최덕배의 비명과도 같은 신음에 가려 주변에 퍼지지 않았고, 이윽고 김련은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남은 것은 오로지…….
[혹시 가능하시다면……, 제 아가를 부탁드려요…….]김련의 마지막 말과 함께 남은 김련의 겉옷.
화려한 수가 놓인 한복을 주워든 최덕배는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 * *
흑흑흑…….>
온종일 옆에서 최덕배가 울고 있었지만, 윤기는 차마 최덕배에게 뭐라고 하지 못했다.
‘에휴.’
김련이 남기고 간 겉옷을 양손에 쥔 채 그저 울기만 하는 최덕배의 모습.
나이와 어울리지 않는 순정이었지만, 저렇게까지 슬퍼하는데 뭐라 할 정도로 윤기는 무감한 인물이 아니었다.
‘뭐……, 시간이 약이려나?’
윤기의 시선은 최덕배와 더불어 최덕배의 등을 두드리며 마치 달래는 듯한 행동을 하고 있는 또 다른 귀신에게로 향했다.
이재서.
김련이 사라진 후로 윤기는 이재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안경을 쓴 다소 꺼벙한 모습의 중학생.
물론, 최덕배나 김련처럼 의사소통이 가능한 것은 아니고, 거의 존슨 수준의 의사소통(?)만 가능한 존재였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재서는 최덕배를 위로하는 듯한 행동을 하고 있었는데, 최덕배는 그런 이재서의 행동이 싫지는 않은 듯, 그저 우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을 뿐이었다.
“일단, 저는 류 비서 결혼식에 다녀올 테니까, 생각 있으면 따라오세요.”
훌쩍이는 최덕배를 뒤로한 채, 윤기는 40년 만에 총각 딱지를 뗄 류근태의 결혼식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