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126)
#126화 세컨드 파티 전쟁 (1)
내일이면 일본에 가야 하는 상황.
윤기는 귓가에 들려오는 최덕배의 훌쩍이는 소리를 들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노년의 순정이 무엇인지, 저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게 솔직히 영 편하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최덕배는 윤기에게 있어서 은인이었으니까.
‘어쩔 수 없나.’
결국, 윤기는 최덕배를 뒤로한 채, 자리에서 일어나 집을 나섰다.
윤기가 향한 곳.
그것은 바로 예전에 메릴과 함께 잡지를 사러 갔던 동네서점.
약간 낡은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자, 서점 특유의 종이 냄새가 코를 확 찔렀고, 동시에 저번보다는 좀 더 늙은 아저씨가 윤기를 바로 알아보았다.
“어? 너는……, 예전에……, 그……, 맞지?”
“아마, 맞을 거예요.”
“그, 예쁜 외국인 여자 친구랑 같이 왔던 애. 맞구나?”
윤기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주인아저씨는 윤기의 뒤쪽을 둘러보다가 입을 열었다.
“여자 친구는?”
“미국에 있어요.”
“아~~~!”
탄성을 지른 주인아저씨는 이내 음흉한 표정을 짓더니 윤기를 바라보았다.
“이 녀석, ‘그거’ 생각나서 왔구나?”
잠깐의 고민.
주인아저씨에게 무언가 변명을 할까 하다가, 윤기는 이내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아직 파시나요?”
“당연하지! 그게 내 주 수입원인데. 골라 봐라.”
가판대 밑에서 상자를 꺼낸 주인아저씨는 양손을 비비면서 기대하는 눈으로 윤기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혹시 고르기 힘들면 내가 추천해 줄까? 남자의 마음은 남자가 잘 아는 법이지.”
“아뇨, 그건 괜찮고……. 한 권에 얼마예요?”
“두께에 따라 다르지. 하지만, 대충 만 원에서 만오천 원 사이라고 생각하면 될 거야.”
2010년대를 기준으로 대략 4~5만 원.
상당히 비싼 금액이었지만, 이 시대의 중고교생들은 신문 배달을 해서라도 이러한 잡지들을 구매했다.
불타는 정열을 쏟아부을 곳은 필요한 법이었으니까.
“다 주세요.”
“응?”
“다 주세요.”
“……진짜?”
“네.”
윤기는 수표를 꺼내 계산하려 했지만, 주인아저씨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수표는 안 받아. 위험하거든.”
“그래요? 그럼, 전화 좀 쓸 수 있을까요?”
“당연하지.”
윤기는 집에 전화를 걸어 차필규에게 돈을 가져오게 했고, 차필규가 계산을 마치자, 차필규에게 부탁해서 상자를 실었다.
“네 인생이 부러워지는구나…….”
어쩐지 씁쓸한 주인아저씨의 말에 윤기는 미소를 한 번 지어 준 후 서점을 나섰고, 이내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 상자를 들고 방에 들어갔다.
‘아직도 우네.’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는 최덕배의 모습.
윤기는 낮게 한숨을 쉰 뒤, 상자를 열어 잡지를 한 권 꺼내고 쫙 펼쳤다.
“할아버지.”
흑흑흑…….>
반응하지 않는 최덕배의 모습.
“할. 아. 버. 지.”
으흐흐흑…….>
윤기의 관자놀이가 불룩 솟아올랐고, 이내 있는 힘을 다해 속으로 외쳤다.
‘할!!! 아!!! 버!!! 지!!!’
깜짝 놀란 최덕배는 놀란 토끼 눈을 하며 윤기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이내 최덕배의 눈이 토끼 눈에서 왕눈으로 바뀌었다.
오옷!!!>
“아이고, 이 주책맞은 영감아…….”
됐고, 빨리 페이지 넘겨 봐!>
최덕배는 순식간에 부활했다.
* * *
네가 진정한 의미의 효도를 했어.>
최덕배의 말에 윤기는 속으로 인상을 썼지만,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았다.
지금은 차필규와 함께 아키하바라 거리를 걷는 중이었으니까.
“필규 형.”
“네, 도련님.”
“저는 살면서 제가 이렇게 비행기를 자주 탈 줄은 몰랐어요.”
“사실, 저도 그래요.”
‘으흐흐흐’거리며 웃는 차필규의 순박한 모습에 윤기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어떤 사람에게는 제가 사치를 부리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저는 조금의 시간이라도 아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일종의 사치 아닌 사치를 부리게 되네요. 재능을 발휘할 만한 기회를 잡았으면, 그걸 활용해야 하는 게 도리일 테니까요.”
“솔직히 말해서, 도련님이 사치라고 할 만한 행동을 한 적은 딱히 없죠. 도련님 재산이 얼만데요.”
“전원주택도 샀고, 저번에 게임기도 잔뜩 샀는데요?”
차필규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에이, 그게 사치인가요? 방금 말씀드렸듯이, 그건 가지고 계신 재산에 비하면 사치 축에도 못 들어요. 도련님의 사치는 기본적으로 생산성과 관련된 사치잖아요. 제 주변에 도련님에게는 턱없이 못 미치지만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녀석이 있는데, 맨날 술집 가서 여자나 옆에 끼고, 기분 좋은 날은 500만 원짜리 양주도 까고 그래요. 도련님이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쓴 돈을 다 합쳐도, 그 녀석이 쓴 석 달 치 술값도 안 될걸요?”
“그렇게 말해 주면 저야 고맙죠. 그나저나, 필규 형은 그 금수저가 부럽나요?”
“당연히 부럽죠. 물론, 그런 생활을 하는 게 부러운 게 아니라, 그 녀석이 가진 돈이 부러운 거지만요. 그런데 또 웃긴 건, 저를 부러워하는 녀석들도 있을 거란 말이죠? 결국, 사람은 자기가 가진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자기보다 많이 가진 사람을 부러워할 수밖에 없나 봐요.”
차필규의 아버지도 윤기 아버지인 최철호의 최측근인 데다가, 차필규도 윤기 옆에서 상당한 수준의 연봉을 받고 있었다.
“생각보다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은데요?”
“아버지가 옛날이야기를 자주 해 주셨으니까요. 종로의 자전차 왕들이었다는 얘기 있잖아요?”
“아, 그거 저도 저번에 들었어요.”
“아버지가 그러시더라구요. 부러워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현실은 볼 수 있어야 한다구요. 그래도 저는 제가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저보다 더 부자가 있다고 생각할 뿐이죠.”
“시간이 지나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훨씬 더 큰 부자가 되게 해 드릴게요.”
“크으……, 그 맛에 이 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살짝 농을 섞은 말을 던진 차필규는 이어서 말을 건넸다.
“그나저나, 오늘도 게임기 사러 오신 건가요?”
윤기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몇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윤기는 차필규와 함께 곧바로 저번에 방문했던 게임 상점으로 향했다.
“어서 오십시오!”
윤기를 바로 알아본 사장이 버선발을 나오며 허리를 숙였고, 직원들 역시 그런 사장을 따라 우렁차게 인사했다.
[[[[[이랏샤이마세-!!!]]]]]“예전부터 지금까지 나온 모든 게임기 하나씩, 그리고 팩도 하나씩 주세요.”
“감사합니다!!!”
두말없이 허리를 숙인 사장은 또 희희낙락하며 직원들을 총동원해 물량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윤기는 이번엔 자리 잡은 호텔에 물량들을 배달시켰다.
그리고 몇 시간 후.
객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윤기에게로 ‘정말 많은 양’의 물건들이 배달되었는데, 오죽하면 호텔에서 위험 물질을 운반하는 것이 아닌지 조심스레 물어올 정도였다.
물론, 출처가 확실한 물건이었기에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필규 형, 좀 도와주실래요?”
“어떻게 하면 될까요?”
차필규의 대답을 들은 윤기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화 주제를 살짝 돌렸다.
“형.”
“네?”
“그냥 둘이 있을 때는 편하게 반말하세요.”
“아뇨, 그건 좀….”
“제가 너무 불편해서 그래요. 부탁이에요.”
“으음….”
고민에 빠진 차필규.
결국, 윤기가 초강수를 썼다.
“반말 안 하면 짜를 거예요?”
“윽!”
“자, 반말해 보세요.”
결국, 차필규는 백기를 들었다.
“아, 알았…어.”
“좋아요, 여기 게임기들 보이죠? 싹 다 케이스를 분해해 주세요.”
“예? 아, 아니, 케이스를 분해하라…고?”
“네. 게임하려고 산 게 아니라, 안을 보려고 산 거 거든요.”
“어…, 알았어. 아까 공구통 사 오라고 한 게 그 이유였구나.”
이제야 반말에 좀 익숙해진 차필규.
정말 상상도 못한 주문이었지만, 차필규는 공구통을 열어 게임기들을 분해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작업을 하는 것은 윤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음, 그러니까 이 게임기들을 하나씩 분해할 때마다 2만 엔 정도가 날아가는 건가?”
“그렇죠.”
“어쩐지 죄짓는 기분이야.”
차필규의 적절한 표현에 윤기가 쓴웃음을 지었고, 이내 모든 게임기가 분해되어 각각의 상자 위에 진열되듯이 놓였다.
“이제 뭘 하면 돼?”
“잠시만요.”
윤기는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꺼내더니 각 게임기의 내부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그 작업은 게임기의 종류가 워낙 많아서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단순 일본에 정식 발매된 물건만 고른 게 아니라, 서양에서 팔리고 있는데 일본에 유통되고 있는 것들까지 포함했기 때문이었다.
“휴우, 사진 찍는 것도 일이네요.”
“그 사진들로 해야 할 일이 있어?”
“지금이야 눈앞에 게임기가 있으니까 직접 보면 되지만, 자리를 옮겨서는 그럴 수가 없으니까요. 그럴 때를 대비해서 찍어 놓은 거죠.”
윤기는 사진의 뒷면에 어떤 게임기인지 적었고, 이내 그 작업이 끝나자 다시 게임기들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어……, 이제 나는 뭘 하면 돼?”
“게임을 하셔도 되고, TV를 보셔도 돼요. 편히 계세요.”
당연하지만 차필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윤기의 옆을 지켰다.
“괜찮으니까 쉬고 계세요. 이럴 때 쉬어야 나중에 풀 컨디션으로 저를 지키죠.”
“어…….”
“형? 제가 이런 쪽에서 앞이랑 뒤가 다른 적 없는 거 아시죠?”
결국, 차필규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침대에 누워 TV를 켠 차필규.
차필규는 자신도 모르게 스르륵 잠이 들었고, 차필규가 깨어났을 때도 윤기는 게임기 내부를 들여다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 * *
“어이구, 어서 오십시오!”
세가의 사장, 나카야마 하야오의 환대에 윤기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거, 첫 번째 만남과 너무 차이나는 데요?”
당연히 나카야마 역시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그거야 어쩔 수 없지요. 그때의 윤 님과 지금의 윤 님은 완전히 다른 존재 아니겠습니까?”
작년 9월에 처음 만난 윤기는 빽을 동원해서 감히 자신을 오라 가라 한 건방진 미성년자.
하지만 지금의 윤기는 세가의 대주주이자, 많은 기업에 영향력을 충분히 행사할 수 있는 거부였다.
그도 그럴 것이, 200억 엔이 넘는 금액을 세가를 비롯한 기업의 주식 구매에 투자했으니까.
더군다나 윤기는 자신이 내건 조건 이외에는 세가의 경영에 일절 손을 대지 않았기에 나카야마는 그런 윤기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 했다.
왜냐하면, 처음에는 그럴 생각이 없다고 하다가도 나중에는 간섭하려는 주주들이 굉장히 많았었으니까.
“일단, 앉으시죠.”
“그럴까요?”
나카야마는 윤기에게 상석을 권했고, 윤기는 자연스럽게 상석에 앉았다.
4개월간, 나카야마는 윤기에 대해 겪어 보았기 때문에 일반적인 미성년자와 궤를 달리한다는 것은 이미 꿰뚫어 본 상황이었다.
특히 통찰력이 지극히 뛰어난 나카야마의 특성상 윤기의 미래를 파악하지 못할 리가 없었기에, 나카야마는 은연중에 윤기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애초에 세가에 스카우트 된 계기가 통찰력인 만큼, 이러한 나카야마의 행동은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SG-1000의 리콜은 어떻게 되었나요?”
“현재 팔렸던 물량의 95퍼센트 이상이 회수되었습니다. 나머지 5퍼센트의 물량에 대해서도 향후 3년간 리콜을 받을 계획입니다. 물론, 추가 광고는 비용상 하지 않겠지만요.”
“그 정도면 충분할 거예요. 그리고 SG-1000을 100대 정도는 보관해 두는 게 좋을 거예요.”
“100대나요?”
“비록 실패한 물건이기는 하지만, 나중에 역사적 가치를 가질 수 있게 되겠죠. 나중에 그런 거 한 대쯤 가지고 있으면 좋지 않겠어요? ‘내가 손대지 않아서 실패한 게임기’라고 주변에 자랑할 수도 있고 말이죠.”
“호오,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나카야마는 구미가 당긴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보자. 그럼 리콜에 대해서는 완료가 되었고, 개발부에서는 어떤 반응인가요?”
쓴웃음을 짓는 나카야마의 모습에 윤기는 대답을 재촉했다.
“괜찮으니, 말해 보세요.”
“당연히 상태가 매우 안 좋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개발부에서는 최선을 다해 만들었는데, 그걸 쓰레기라고 전량 리콜을 시킨 격이니까요. 게다가 몇 달 동안 프로젝트가 없었기 때문에 사기도 이만저만 떨어진 게 아닙니다.”
“그럴 줄 알고 오늘 찾아온 거예요. 오늘은 개발부 사람들을 전부 모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