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13)
#13화 예? 국민학생 사장이요? (2)
“좋아요!”
상상 이상으로 빨리 튀어나온 대답에 최기현은 속으로 놀랐다.
‘정말 순수하게 나처럼 되고 싶었다는 얘긴가?’
삼우 그룹이 커질수록 자식들이 노골적으로 속물이 되는 것을 보면서 최기현은 상당한 고독감을 느껴왔었다.
물론 장남인 최철호나 며느리인 박연지 같은 경우도 있었지만, 이를 제외한 나머지 자식들이 전부 뒤에서 암투를 벌이는 중인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윤기가 오늘 제일 방직을 달라는 당돌한 요구를 해왔을 때, 윤기가 똘똘한 만큼 ‘벌써 물들었나?’하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윤기의 반응을 보면 전혀 실망한 티가 나지 않고 오히려 기쁘다는 느낌이었다.
‘만약 철호나 며늘아기가 윤기에게 시킨 거라면 절대 이런 반응이 나올 수가 없을 텐데…….’
이미 다른 자식들 중 일부는 자기 이름의 사업을 해 보고 싶다면서 거액의 지원을 요구해 오거나, 추후 그룹의 요직으로 바로 옮겨 줄 것을 부탁해 왔다.
물론 단칼에 거절하기는 했지만.
‘이런 순수한 열망은 진짜 오랜만에 보는 것 같구먼.’
최기현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삼우 그룹과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은 삼우에게서 지원을 전혀 받을 수 없다는 의미다. 그래도 좋으냐?”
“좋아요! 저도 할아버지처럼 혼자서 많은 것을 일궈내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물론 이미 할아버지가 주신 것이 많아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요.”
어느새 윤기는 최기현의 무릎 위에 앉혀졌다.
“좋다. 네가 정말 그런 생각이라면 내가 도와주마. 창업은 사실 어렵지 않단다. 나 때와 달라서 법적으로 제출해야 하는 서류가 있지만, 미성년자도 충분히 사장이 될 수 있지.”
“하지만, 아까 할아버지 말씀처럼 미성년자는 다른 사람들에게 신뢰감을 줄 수 없어서 쉽게 망한다는 이야기죠?”
“그래, 바로 그게 문제란다. 누가 미성년자를 신뢰하겠니?”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접대 문화까지도 나와야 하지만, 최기현은 굳이 그것까지 꺼내지는 않았다.
지금 말한 것으로도 충분할 테니까.
“내가 너에게 도와줄 것은 창업과 관련된 서류의 제출, 그리고 너에게 회사가 무엇인지 알려 줄 부하를 한 명 정도 붙여 주마. 그 녀석에게 회사 운영이 무엇인지 배우면 될 게야. 아마 선생들도 그런 실무는 가르치지 못할 테니까.”
“고맙습니다! 할아버지, 그러면 이제 제 용돈을 그런 쪽에 써도 괜찮은 건가요?”
“용돈은 원래 편히 쓰라고 준 것 아니더냐?”
“할아버지가 힘들게 버신 돈을 허투루 쓰는 것처럼 보이는 게 싫어서요.”
마음을 녹이는 손주의 말에 최기현은 손자를 안으며 등을 토닥였다.
‘내가 힘들게 돈을 번다고 알아주는 녀석은 몇 없지만, 그중에 네가 하는 말이 제일 기쁘구나.’
근래에 들어 더욱 싸늘하게 식은 최기현의 심장에 모처럼 따뜻한 촛불 하나가 피어올랐다.
* * *
“안녕하십니까, 도련님. 오늘부터 도련님의 사업을 도와드릴 류근태라고 합니다.”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말쑥한 정장 차림의 남성.
머리에 포마드를 발라 2대8 가르마를 한 모습은 전형적인 사회인의 모습이었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잘 부탁드릴게요.”
방에서 서로 인사를 마치자, 윤기가 먼저 궁금한 것을 물었다.
“아저씨는 원래 할아버지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셨었나요?”
“네. 회장님의 비서실에 있었습니다.”
“비서는 한 명만 있는 게 아닌 건가요?”
나이 먹은 어른이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었지만, 윤기는 누가 봐도 국민학교 3학년생이었기 때문에 류근태는 미소를 지으며 답변해 주었다.
“네. 비서들은 24시간 회장님을 보좌해야 하기 때문에 한 명만 있어서는 제대로 된 보좌를 할 수가 없습니다. 때문에, 순번을 돌아가며 상시 대기 상태로 만들어야 하고, 회장님같이 높으신 분이라면 연락이 오는 곳도 많기 때문에 최소 2인 이상의 상시 인력이 필요합니다.”
“할아버지의 비서는 몇 명인가요?”
“죄송하지만, 그것은 도련님이라 할지라도 알려 드릴 순 없습니다. 기업 비밀이거든요.”
“알겠어요.”
고개를 끄덕이는 윤기를 보며 류근태의 눈에 이채가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원래 어린아이들은 궁금한 것이 생겼을 때, 대답을 듣지 못하면 떼를 쓰게 마련이다.
그런데 기업 비밀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수긍을 하는 모습을 보니 새삼 회장님이 괜히 눈여겨보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저씨는 비서실이 아니라 제 옆에 있게 되어서 기분이 나쁘시진 않나요?”
굉장히 당돌한 질문.
하지만 류근태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미소도 잃지 않았다.
“회장님이 저한테 일을 맡기신 이상, 최선을 다해 도련님을 보좌하겠습니다. 저에게 있어서는 작은 회장님과 똑같으니까요.”
류근태의 대답을 들으며 윤기는 류근태가 굉장히 유능한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렇게 어린 자신의 앞에서 전혀 티를 내지 않고 사무적이면서도 공손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당장 담임을 봐도 그렇고 말이야.’
자신 앞에서 한없이 비굴해지는 박선자, 그리고 자신의 위치를 잊고 가끔 불손하게 구는 어른들.
더군다나 자살하기 전, 어른의 삶에서도 말에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그런데 눈앞에 류근태라는 사람은 ‘좌천’당했다고 생각할 법한데도 전혀 티를 내지 않고 있으니 윤기는 솔직히 조금 끌리는 감이 있었다.
실제로 유능한 녀석이야. 삼우 화학 비서실장까지 올라가는 녀석이니까.>
‘삼우 화학이면……?’
네 할아버지 셋째 아들이 맡게 되는 회사 말이야.>
‘아!’
할아버지의 삼남 최철규.
현재 삼우 화학의 대리로 들어가 있고, 나중에 가면 삼우 화학의 회장이 되는 인물이다.
‘둘째 작은아버지가 이 사람을 비서실장으로 두게 된다고?’
윤기는 그러한 상황이 머릿속에서 그려지려던 것을 단칼에 잘랐다.
‘내가 데리고 가고 싶다.’
삼우 그룹을 절대 망하게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생긴 만큼, 유능한 인재에 대한 욕심 역시 생긴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윤기는 류근태를 만나게 된 이상 절대 놓치지 않겠다고 작정했다.
“아저씨. 저는 저를 생각해서 잘못된 것을 말해 주는 사람보다는 사실대로 이야기를 해 줘서 최악을 면하게 해 주는 사람이 더 좋아요. 아저씨는 어느 쪽인가요?”
“어느 쪽이든 맞춰드려야 하는 게 비서의 일입니다.”
“그렇다면 한 가지 물어볼게요. 저는 할아버지한테 창업을 하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지만, 지금의 저는 창업과 관련된 지식도 없고, 방법도 모르는 상황이에요.”
“경청하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창업을 했다는 사실을 남겨 두고 싶어요. 즉, 제가 움직이고 싶을 때, 언제든지 움직이고 싶다는 얘기예요. 이런 경우라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그럴 경우에는 별로 일을 하지 않아도 상관없는 업종으로 창업을 한 뒤에 추후 도련님이 하시고 싶은 업종으로 변경을 하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가능한가요?”
“네. 생각보다 창업의 세계는 유연하거든요. 물론 그만큼 경쟁도 많지만요.”
윤기는 다시 한번 자신이 이쪽에 대해 정말 아는 게 없다는 것을 느꼈다.
“아저씨.”
“네.”
“지금 보시는 것처럼 저는 정말 아는 게 전혀 없어요.”
류근태는 대답을 하기보다는 경청하는 태도로 대답을 회피했다.
말을 씹는 것은 아니지만, 위험한 대답은 피하는 태도.
그 모습에 윤기의 신뢰감은 더더욱 올라갔다.
“오늘부터 저녁 9시부터 밤 11시까지 저에게 경영에 대해 알려 주실 수 있으세요?”
“그러기에는 시간이 늦어서 도련님이 피곤하시지 않을까요? 그리고 굉장히 어려울 테고요.”
“그것은 배우면서 생각해 보았으면 해요. 혹시 수학같이 전 단계를 알아야 하나요?”
류근태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경제라면 모를까, 경영 쪽은 논리적 이해력만 있으면 가능한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면 오늘 저녁부터 시작할까요?”
“가능하면요. 대신 나머지 시간은 제가 따로 부탁하는 게 있는 게 아닌 이상에는 자유로이 활동하셔도 좋아요. 집에서 쉬셔도 전혀 문제없고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저는 서점부터 다녀오겠습니다. 도련님에게 어울리는 책을 찾아야 하니까요.”
“돈은 나중에 드릴게요.”
“돈은 괜찮습니다. 책 가격이 비싸진 않으니까요.”
윤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제 돈을 써야 저도 열심히 할 테고, 제 돈을 써야 아저씨도 고민하지 않고 최고의 책을 고를 거잖아요.”
대답을 들은 비서의 얼굴에 엷지만 미소가 걸렸다.
“알겠습니다.”
저녁 9시가 되기가 무섭게 윤기의 방에서는 어려운 경영 이론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최철호와 박연지 역시 방 안에서 흘러나오는 말에 귀를 기울였지만, 이내 최철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휴, 난 전혀 이해도 못 하겠네.”
“윤기 덕분에 마음이 놓여요.”
“녀석, 어린애는 좀 더 놀아도 될 텐데 말이야.”
“그래도 속으로는 좋죠?”
생긋 웃는 박연지의 말에 최철호는 머쓱하게 웃으며 박연지를 안고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 * *
학교의 쉬는 시간은 과학고의 쉬는 시간이라 할지라도 무진장 시끄럽다.
하물며 국민학교는 어떠할까?
그야말로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하는 시끄러움 속에서도 윤기는 어제 류근태에게서 받은 개론서를 읽기에 여념이 없었다.
“윤기야, 뭐 읽어?”
진수가 윤기의 책상 앞으로 이동해서 제목을 보고는 눈을 찡그렸다.
“경영……개론……? 멍멍이……? 멍멍이 나오는 책이야?”
진수가 윤기의 옆으로 가서 책을 바라보다가 흰색 종이에서 구불거리는 지렁이들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멍멍이가 하나도 안 나와?”
“야 이, 멍청아! 경영하고 관련된 책이잖아!”
그래도 집이 부자인 편에 속하는 원희는 경영이라는 단어를 알고 있었다.
“그럼 개론은 뭐야?”
“그, 그건……, 아무튼 그런 게 있어!”
“뭐야, 너도 모르는 거잖아.”
“알거든?”
“그럼, 말해 봐!”
“말해 봤자 너는 몰라.”
“피, 자기도 모르면서.”
좀 떨어진 곳에서 시끄러우면 모를까, 바로 옆에서 시끄럽게 구는 것은 솔직히 좀 힘들었기에 윤기는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내용을 추려서 설명하는 것을 개론이라고 해.”
“추려?”
진수의 되물음에 윤기는 ‘음…….’이라는 소리와 함께 다시 고개를 책으로 돌렸다.
“원희야 추린다는 게 무슨 말이야?”
“말해도 넌 모른다니까.”
“너도 모르는 거잖아!”
결국, 윤기는 집중력을 최대한 높이며 책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하루 두 시간도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도련님이 더 배우시고 싶으시면 따로 공부하시는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류근태의 조언에 따라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윤기의 하루는 정말 치열하다는 표현이 걸맞을 정도로 빡빡했다.
학교가 끝나면 원희의 집에서 공부, 그리고 여가 겸 혹시 모를 사교 활동을 위해 잠깐씩 바이올린을 연습한다.
7시부터 8시까지는 신체 단련.
8시에는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과 짧은 저녁 식사가 끝나면 12시까지 공부를 하다 잔다.
이 중 9시에서 11시에 류근태와의 과외가 끼어든 것이다.
기본 공부량은 유지하면서 류근태와의 공부까지 소화해야 했기 때문에 자투리 시간 하나도 낭비할 수 없었고, 그 결과 윤기의 집중력은 계속해서 향상되어 갔다.
“혼자서도 열심히 노력하셨네요.”
개론서가 살짝이지만 닳은 흔적을 보며 류근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하죠.”
잡담은 필요 없다는 듯한 윤기의 말에 류근태 역시 윤기를 가르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지난 시간이 두 달.
순수 시간으로만 100시간이 넘는 동안 류근태를 관찰한 윤기는 마침내 자신이 일을 맡겨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아저씨. 아저씨는 할아버지의 비서인가요, 저의 비서인가요?”
“회장님의 명령이 지속되는 동안은 도련님의 비서지요.”
“그렇다면, 제 부탁을 들어주실 수 있나요?”
“업무와 관련된 지시라면 얼마든지 수행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 자산으로 청계천의 땅을 최대한 매입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