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146)
#146화 멀티스크린 (2)
“메릴, 불편하지는 않아?”
잠재적인 1조 원이 있는데 대학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자신의 성격을 좀 더 고치기 위해서 에르메스 모델 일을 계속하고는 있었지만, 메릴은 윤기의 권유에 따라 대학을 바로 자퇴해 버렸다.
덕분에 윤기와 메릴은 서로 만날 수 있는 여건이 늘어났다.
예전에는 특정 시기에만 만날 수 있었다면, 지금은 보고 싶다면 적당히 일정을 조율하면 되는 정도?
그렇기에 윤기와 메릴은 이렇게 한국의 극장에서 데이트를 하게 된 것이다.
“딱히? 나는 이런 일을 여러 번 겪어 봤거든.”
윤기가 말하는 불편함은, 다름 아닌 경호원.
유전의 발견 이후, 윤기와 메릴의 주변에는 경호원들이 상시 깔려 있게 되었다.
찰떡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이 비집고 들어오기는 힘들 정도의 거리를 둔 경호.
차필규를 포함하여 6명이 경호를 하고 있는 이들의 주변에는 일종의 방파제가 형성되어 다른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했다.
심지어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많음에도 말이다.
“하긴, 자주 겪어봤을 수도 있긴 하겠네.”
“옛날에는 내가 워낙 낯을 가리는 데다가, 집 밖으로 나가는 일이 드물어서 불편함을 느낄 일이 많지 않았고, 지금은 낯을 가리는 게 많이 개선되어서 괜찮아.”
“할아버지의 신분 때문에 그랬던 거지?”
“아무래도 그렇지. 전쟁 시즌이면 혹시 모르니까, 항상 경호를 받았거든. 그런데 나는 대부분 집에 있었으니까 사실상 요인 경호가 아니라 저택 경호가 됐지. 호호호호.”
추억이 생각난 듯, 입을 가리며 웃는 메릴의 모습에 윤기는 다행이라는 듯 미소를 지었다.
“이제는 그 시절 이야기를 추억으로 생각할 수 있는 거야?”
“응? 아, 응. 지금의 생활이 불행하면 과거까지 포함해서 불행한 생각만 했을 텐데, 지금이 행복하니까 과거는 추억이 된 기분이야.”
“아, 그거 진짜 공감 간다.”
윤기는 대한민국 남자들이라면 대부분 공감할 ‘군대’라는 키워드를 떠올렸다.
군대에 있을 때는 돌아 버릴 것 같지만, 전역하고 나면 군대에 있을 때가 좋았다고 말하는 사람들.
물론, 군대에 다시 가라고 하면 쌍욕을 한 바가지 던지지만 말이다.
이게 바로 힘들었던 시절을 추억으로 돌리는 행위인데, 그만큼 군대가 사회와 비교해서 열악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생각해 보니 나는 노가다 시절을 그렇게 혐오하는데도, 군대랑 비교하면 차라리 노가다가 낫네.’
잠 안 재우지, 못 먹게 하거나 폭식을 시키지, 안 맞은 날은 잠을 못 자게 하지.
그야말로 더러운 군 생활을 했던 윤기였기에 순간 미간을 찡그리며 몸을 떨었다.
“응? 윤, 너한테도 괴로웠던 시절이 있었어?”
‘아차.’
윤기는 순간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는 빠르게 얼버무렸다.
“메릴이 내 옆에 없던 시절이 불행했지.”
“정말……!”
어깨를 툭탁거리면서도 입가에는 웃음이 진하게 걸린 메릴의 모습을 보며 윤기가 극장 앞에 도달했다.
“메릴, 저 간판을 봐. 어떻게 생각해?”
극장 위에 걸린 그림 간판.
근처 간판 가게 아저씨가 한땀 한땀 정성 들여 그린 투박한 간판에, 메릴은 신기하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와! 촌스러워! 그리고 신기해!”
“촌스러워?”
“응. 실사도 만화도 아닌 것 같은 생김새잖아. 이거, 저번에 윤의 방에서 봤던 한국 교과서에 나오는 철수, 영희랑 똑같이 생긴 거 같은데?”
정확한 메릴의 표정에 윤기마저 웃음을 터뜨렸다.
“하긴, 저 어색한 미소를 생각하면, 진짜 철수랑 영희가 떠오르긴 하네.”
철수랑 영희가 30대가 되면 저런 얼굴일까?
물론 철수의 본체인 벙거지 머리와 영희의 본체인 양 갈래의 머리 모양은 아니었지만, 영화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을 어색하게 따라 그린 그림 간판은 분명 철수와 영희를 떠오르게 했다.
“미국의 멀티플렉스는 어때?”
“미국은 그냥 주연의 이름이랑 영화 제목만 써 놔. 그리고 멀티플렉스 근처로 가면 포스터랑 안내문이 붙어 있어서 어떤 영화인지 알 수 있고.”
“그러면, 한국의 포스터가 어떤지 한번 보여 줄까?”
“응! 촌스럽긴 촌스러운데, 확실히 신기한 건 있어서 재미있어.”
마치 2010년대의 사람들이 영화사들 이벤트로 종종 추억의 포스터를 볼 때마다 보이는 듯한 반응.
자본주의 끝판왕인 미국의 거주자답게, 메릴은 상대적으로 미래지향적인 판단을 내려 주고 있었다.
“와, 왜 이렇게 어지러워? 이걸 보고 영화 내용이 이해가 가?”
경호원이 가져온 포스터 한 장.
죽어도 안 된다며 포스터를 못 준다던 극장 직원은 거절하기엔 너무 많은 돈을 받고 감사 인사와 함께 포스터를 내어주었고, 그 포스터는 윤기의 손에 들리게 되었다.
“확실히 그렇지?”
“응. 그리고 이 글자는 뭐야? 나도 한글의 자음과 모음 정도는 아는데, 이건 전혀 모르겠어.”
“아, 이거? 이건 한자야. 중국의 고대 문자지.”
“아, 가끔 한글 사이에 전혀 모르는 문자가 있었는데, 그게 한자라는 거였구나?”
“응.”
“그런데, 왜 한국은 한글이 있으면서 중국 언어를 써?”
“국민들 똑똑해지지 말라고.”
“응……?”
“어렵게 써 놔야 국민들이 쉽게 이해 못 하잖아. 국가는 국민이 똑똑해지길 바라지 않아.”
만에 하나의 사태에 대비해 메릴에게 귓속말을 했기 때문에, 메릴은 말의 내용과 관계없이 얼굴에 홍조를 띄웠다.
“음……, 무슨 의미인지 알 거 같아. 그런데 이건 정말 효율이 떨어질 거 같은데? 영화 내용을 바로 전달해야 하는데 한자? 한국인들은 전부 한자를 알아?”
윤기는 고개를 저었다.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누구나 이걸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진짜 비효율적이야…….”
가감 없는 메릴의 평가에 윤기는 오히려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떤 방식으로 멀티플렉스를 운영해야 할지 가닥이 잡히는 듯했으니까.
“혹시 이 부분은 어떻게 생각해?”
윤기는 한글로 된 포스터의 한 부분을 번역해 주었다.
“이상해. 이 사람이 나온 전작을 왜 여기서 설명해? 유명한 배우라면 당연히 전작 설명이 없어도 사람들이 알지 않아?”
윤기가 들고 있는 포스터는 미국 영화의 포스터.
그런데 그 포스터의 남자 주인공 부분에는 전작에 관한 내용이 쓰여 있었던 것이다.
“역시 내 여자친구야. 아주 똑똑해.”
메릴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추자, 메릴이 그것만으론 부족하다는 듯이 반대쪽 볼도 내밀었고, 이에 윤기는 자연스럽게 나머지 볼에도 입맞춤을 해 주었다.
그러자 근처에서 느껴지는 살기.
일부러 핫한 시각에 극장에 왔기 때문에 주변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로 인해 윤기와 메릴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아, 씨발……, 아……, 진짜…….]억울함과 부러움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소리를 들었지만, 윤기는 오히려 그러한 시선을 즐겼다.
‘아, 너무 즐겁고 짜릿해. 이 맛에 인싸들이 사는 거였어.’
몇 번을 경험해도 즐거운 일.
그것은 바로 많은 사람들의 앞에서 이런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윤기의 취미는 자연적으로 피해자를 양산했는데, 그것은 바로 커플들이었다.
“야! 고개 안 돌려?”
앙칼진 여대생의 목소리.
장발의 남대생은 멍하니 메릴을 보다가 뺨을 맞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희, 희자야!”
실시간으로 보이는 커플 싸움.
그나마 윤기와 메릴이 극장 안으로 빨리 들어갔기에, 더 많은 희생자들이 생기진 않았다.
* * *
“영화는 어땠어?”
“으음……, 미국에 영화가 많은데 왜 저런 영화를 가져왔는지 모르겠어.”
메릴을 배려해서 극장에서 상영하는 두 개의 영화 중 외국 영화를 선택했지만, 메릴은 미간을 찡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영화 시작 전에 뉴스 같은 거에서 나온 대머리 아저씨는 뭐야?”
순간 윤기는 자신도 모르게 폭소를 터뜨려 버렸다.
“푸하하하핫!”
“왜, 왜 그래?”
윤기가 자신을 놀리나 싶어 볼을 불룩 부풀린 메릴의 모습에 윤기는 빠르게 웃음을 마무리하며 설명해 주었다.
“우리나라 대통령이야.”
“응? 대통령?”
“응. 우리나라의 TV나 라디오 보급률은 굉장히 낮았기 때문에, 영화관에서 나라의 근황을 알려 줬거든. 뭐, 지금에 와서는 사실상 정권 미화에 더 가깝지만.”
이번에도 귓속말로 했기 때문에, 메릴은 또다시 홍조를 떠올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은 참 이상한 나라야.”
“미국에서는 그런 적 없었어?”
“으음……, 나는 잘 모르겠어.”
메릴은 어디까지나 미국의 일반인.
그렇기에 미국의 여러 시사에 대해 해박한 편이 아니었고, 윤기는 윤기대로 아는 분야와 모르는 분야가 확실히 나뉘었기에 이 화제는 여기서 끝났다.
“그나저나, 윤. 나 배고파.”
“하긴, 나도 배가 좀 고프긴 고프네.”
윤기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버거킹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메릴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햄버거 괜찮지?”
“햄버거? 살찌는데…….”
“괜찮아, 감자튀김만 안 먹으면 돼.”
“감자튀김이 제일 살 안 찌는 거 아니야?”
뭔가 아리송한 메릴의 말.
하지만, 근처에 딱히 메릴의 입맛에 맞을 만한 위생 좋은 식당이 없었기에 윤기와 메릴은 일단 버거킹 안으로 들어갔다.
“감자튀김이 제일 살 안 찐다는 게 무슨 말이야?”
“나야말로, 윤이 햄버거가 살이 안 찐다는 게 이해가 안 되는데?”
잠시 후, 경호원이 카운터에서 햄버거를 받아 오자, 메릴은 곧바로 상황을 이해했다.
“아, 이런 햄버거면 살은 안 찌겠네.”
“어떤 햄버거를 생각했는데?”
“무진장 두툼한 데다가, 기름에 절이듯 튀긴 패티 두 장에 채소도 없이 소스만 범벅인 햄버거.”
“……미국에는 그런 햄버거만 있어?”
“꼭 그런 건 아닌데, 내 머릿속에는 그런 인식이 강하거든. 그런데 여기는 맥도날드 같은 느낌이구나.”
79년엔 롯데리아, 84년엔 버거킹, 이후로 몇 년이 더 지나면 맥도날드가 들어오기 때문에, 아직 한국에 맥도날드는 없었다.
“한국에는 맥도날드가 없어.”
“그래? 전 세계에 있는 곳인데 한국에도 곧 들어오지 않을까?”
“아마, 그렇겠지?”
미래에 상당히 많은 점포가 생기는 맥도날드를 생각하며 윤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한국의 멀티플렉스는 왜 안에 식당이 없어?”
“멀티플렉스가 아니니까 그렇지?”
잠시 윤기의 말을 생각하던 메릴이 ‘아!’ 하는 외마디와 함께 고개를 여러 번 끄덕였다.
멀티플렉스는 어디까지나 상영관이 최하 5개 이상은 되어야 하는 복합상영관.
하지만 윤기와 메릴이 간 극장은 상영관이 두 개밖에 없는 곳이었다.
“메릴.”
“응?”
윤기가 부르자, 메릴은 입술에 묻은 햄버거 소스를 혓바닥으로 가볍게 핥으며 윤기를 바라보았다.
“여기도 묻었는데?”
메릴의 입술 옆에 묻은 소스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닦은 윤기는 자신도 모르게 그 손가락을 빨았다.
“아, 더러운데!”
“이게?”
부끄러워하는 메릴을 바라보며 윤기는 오히려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고, 이내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메릴, 고마워.”
“응? 뭐가?”
“소스.”
순간 부끄러움이 격해진 메릴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윤기의 머리를 양손으로 마구 흔들었지만, 윤기가 다른 의미로 고마워했다는 것은 끝까지 알 수 없었다.
‘이쪽이 더 재밌잖아.’
* * *
이틀간의 짧은 한국의 여정을 마치고, 메릴은 아쉽다는 듯 공항 게이트에 섰다.
“하아, 이번에는 이틀밖에 못 있어서 너무 아쉬워. 비행기는 왕복으로 꼬박 하루를 타야 하는데, 정작 한국에는 이틀밖에 못 있는다니……. 이건 아무래도 수지가 안 맞아.”
“안 가면 안 돼?”
“……촬영 때문에 어쩔 수 없어.”
“아…….”
아쉬워하는 윤기의 모습에 메릴은 만족스러우면서도 아쉬웠는지 윤기를 꽉 끌어안았고, 윤기 역시 그런 메릴을 꽉 끌어안았다.
그리고 잠시 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일정 때문에 떠나야 한다는 윤기를 먼저 보낸 메릴은 한숨을 푹푹 쉬며 자신의 게이트 차례를 기다렸다.
그러던 중, 갑자기 누군가가 자신의 뒤에서 자신의 허리를 슬슬 쓰다듬는 게 느껴졌고, 메릴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유, 윤?”
경호원들이 제지를 안 한 이유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