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149)
#149화 할리우드 (3)
“모, 모래시계는 갑자기 왜……?”
당황해서 말까지 얼버무리는 콜린을 향해, 윤기는 따스한 미소를 지어 주며 차가운 말을 던졌다.
“시간은 돈과 같죠. 이 모래시계는 5퍼센트를 의미했었지만, 지금은 5퍼센트보다 낮아졌네요.”
모래시계의 모래가 떨어지는 만큼, 지분 역시 떨어진다는 의미.
속절없이 사락거리며 떨어지는 모래를 보자, 콜린은 마치 자신의 생명이 사그라지는 기분을 느꼈다.
‘아, 안 돼……!’
만약 정말로 할 생각이 없었다면, 이런 감정조차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콜린은 정말로 고민하고 있었다.
내부 정보.
물론, 빼돌리려면 얼마든지 빼돌릴 수 있다.
애초에 콜린이 연식이 얼마 되지 않았다고는 해도 자기와 비슷한 연식의 다른 스태프들을 잘 알고 있었을뿐더러, 중간직인 사람들도 나름대로 알고 있는 편에 속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윤기는 내부 정보를 통한 사업을 구상 중에 있다고 말했다. 그만큼 리스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만약 내부 정보를 단순히 사업 쪽에 쓰는 것이 아니라, 외부로 유출한다면?
이 경우 할리우드 생활, 아니 영화계 생활이 사실상 끝나는 것과 다름없었기에 콜린은 쉽사리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앤드류가 말하길, 자신을 비롯한 많은 대학원생이 오랜 기간 후원을 받았다고 했어. 그 정도 금력이 있는 사람이 운영하는 영화관 프랜차이즈라면 분명 순익도 어마어마하겠지.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적어도 내 꿈을 앞당길 수준은 충분히 될 거야.’
하지만, 이 강렬한 유혹에도 콜린이 쉽게 나서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내부 정보를 준다는 것은 이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는 제작자와 접촉한다는 뜻인데, 만약 거래가 잘못되어 제작자가 정보 유출을 누가 했는지 캐기 시작한다면? 그때 나는 어떻게 하면 좋지?’
입술을 질겅질겅 깨무는 사이, 모래시계의 모래는 벌써 3퍼센트 밑으로 떨어진 상황이었다.
들키지만 않으면 인생 계획을 최소 10년 이상 앞당겨 줄 거래.
하지만 들키게 되면, 때에 따라 꿈 자체를 잃을 수 있었다.
‘차라리 뭐라고 말이라도 해 줬으면…….’
앞에 있는 윤기라는 소년은 자신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기에, 콜린은 그야말로 속이 까맣게 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또 시간이 지나고.
“으으윽!”
콜린이 갑자기 테이블 위에 있는 모래시계를 손으로 잡아 옆으로 눕혔다.
“이게 무슨 짓이죠?”
“당신은……, 너무 사악해…….”
“이 정도로 사악하다고 표현하시면, 적어도 경영 쪽에는 오시면 안 될 것 같네요. 그건 그렇고, 모래시계는 다시…….”
“하지 마!”
“예?”
콜린은 눈물이 글썽이는 눈으로 윤기를 바라보았다.
“빌어먹을……, 모래시계의 모래가 떨어질 때마다 내 수명이 줄어드는 것 같아…….”
“당연하죠. 당신의 꿈은 돈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지금 당장 모래시계를 원상복구 하지 않으면, 계약은 아예 없던 것으로 하겠습니다.”
윤기의 잔인한 선고에 콜린은 고개를 저었다.
“할게……. 그러니까 이 개 같은 모래시계를 빨리 치워 줘…….”
눈마저 꽉 감은 콜린을 향해 윤기가 거절의 표현을 전달했다.
“그럴 순 없어요.”
“뭐? 왜! 한다고 했잖아!”
짧은 시간이었지만, 꿈의 지옥에 다녀온 콜린의 말투는 다소 격해져 있었지만, 윤기는 딱히 신경 쓰지 않으며 페이스를 유지했다.
“그게 아니라, 확인하셔야죠. 본인이 받아야 할 지분을.”
“으윽……!”
콜린은 어쩔 수 없이 눈을 뜨며 모래시계를 바라보았다.
“2퍼센트로군요.”
시야에 보이는 윤기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말.
콜린은 ‘이럴 줄 알았으면 바로 하겠다고 할걸’이라며 자책했지만, 윤기는 결정을 번복할 생각이 없었다.
“이래서 사람은 선택을 빠르게 해야 해요. 그 선택이 가져올 미래의 불확실성이 무서울 수도 있지만, 그 불확실성이 있기에 선택이 가치를 가지는 거죠.”
눈물을 찔끔 흘리면서도 콜린은 고개를 끄덕였고, 윤기는 모래시계를 다시 품속에 집어넣으며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지금 계약서를 쓰면 2퍼센트지만, 나중에 자리를 새로 잡게 되면 그것보다 떨어진다고 장담할 수 없어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대신, 지금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쓰는 건 허락하죠. 변호사를 불러서 계약서를 검토해도 좋고, 아는 사람을 불러서 조언을 들어도 좋아요. 읽어 보고, 서명하세요. 저는 한 번 품에 들어온 인재를 떠나보내는 자가 아니라서요. 인재가 스스로 떠나려고 한다면 몰라도요.”
파격적인 조건과 ‘인재’라는 표현에 콜린의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
‘일단 읽어나 보자.’
계약서를 읽어 보던 콜린의 입이 벌어졌다.
“MEV의 자문위원……? 이게 무슨 뜻이죠?”
그래도 안정이 되었는지, 콜린의 말투는 다시 공손하게 바뀌어 있었다.
“영화의 M, 엔터테인먼트의 E, 빌리지의 V를 축약한 거예요. 그래서 MEV. 제가 운영하려는 영화관 프랜차이즈는 단순히 영화관만 운영하는 게 아니라, 내부의 즐길 거리도 함께 운영할 계획이죠. 그곳의 자문위원이 되는 조건으로 외화 순익의 2퍼센트를 주려는 겁니다.”
“자문위원이라 함은……?”
“만약 내부 정보로 인해 할리우드에서 문제가 생기면, 제가 책임지고 당신을 끌어안겠습니다. 평상시에는 편하게 내부 정보를 주시고, 순익의 2퍼센트가 통장에 꽂히시는 걸 보면 돼요. 그러다 문제가 생기면 한국에 와서 영화를 찍으면 되는 거죠.”
말을 들은 콜린의 얼굴이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기묘한 표정으로 바뀌며, 여러모로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차라리 이걸 먼저 말해 주시지…….”
“그러면 5퍼센트 때 바로 동의했을 거잖아요?”
씨익 웃는 윤기를 바라보며 콜린이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 정말 악취미군요.”
“그러니 다음부터는 빠른 선택을 하면 좋지 않겠어요? 앤드류 형이라는 표본이 있는데, 굳이 저울질한 이유를 저는 잘 모르겠네요.”
어깨를 으쓱거리는 윤기를 보며 콜린이 한숨을 내쉬었다.
“다 제가 담이 작아서 그런 거겠죠. 저는 아직 프로듀서가 되기엔 멀었나 봐요…….”
“하지만, 2퍼센트는 당신의 꿈을 빠르게 앞당겨 주겠죠.”
마침내 마음을 다잡은 콜린이 힘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습니다. 당신에게 제가 아는 할리우드에서 촬영 중인 모든 정보를 넘겨 드리겠습니다.”
“아는 정보만으로는 부족해요. 자발적으로 알아내고, 요청하는 자료 역시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제작부인 것을 알고 하시는 말씀이시죠……?”
“리스크 배분은 당신의 몫이지요.”
말과 함께 윤기는 테이블 위에 서류 가방 하나를 올려놓았다.
“그건 뭐죠……?”
딸깍거리는 소리와 함께 열린 가방.
그곳에는 100달러짜리 지폐 다발 5개가 들어 있었다.
“5만 달러……?”
이 시대 가치로 대략 4천만 원이 조금 넘는 금액.
콜린의 혼잣말에 윤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판공비입니다. 두 개의 일을 하려면 아무래도 당신의 ‘사단’이 필요한 법이죠. 비록, 지금 당장 영화를 찍을 수 있는 레전드 감독들의 사단은 꾸릴 수 없겠지만, 이 판공비는 당신에게 큰 힘을 실어 줄 겁니다. 판공비 사용 내역을 신뢰성 있게 기입해서 제출하면, 판공비를 꾸준히 제공할 것을 약속하죠.”
윤기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콜린은 그야말로 땅을 치고 후회하고 싶었다.
이렇게 통 크게 지원해 주는 상대를 빨리 파악하지 못한 자신이 이렇게 원망스러울 줄은 몰랐다.
‘그래……, 2퍼센트 때라도 결정해서 정말 다행이야.’
쓰린 속을 참아 가며 계약서에 지장을 찍고 서명하는 콜린의 손은 다소 떨리고 있었다.
“제가 한국으로 돌아간 후에는 계약서에 적힌 곳으로 연락하시면 돼요. 통화비와 관련된 일체의 비용 역시 이쪽에서 부담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당장 할 일은 없나요……?”
“당연히 있죠.”
윤기는 이번 할리우드행의 목적을 확실히 콜린에게 전달했다.
“액션이 호쾌한, 총으로 다 쓸어 버리는 영화나 로봇들이 나와서 눈이 즐거운 영화가 있다면 우선해서 정보를 알려 주세요. 그리고 현재 할리우드에서 거장들이 촬영하고 있는 영화들. 마지막으로 그냥 모든 영화의 목록. 이렇게 네 개의 분류로 저에게 전달해 주시면 돼요.”
“으윽……, 상상 이상이군요. 알겠습니다.”
“보름 드릴게요.”
“헉!”
콜린은 그야말로 눈을 끔뻑끔뻑 뜨며 비명을 질렀지만, 빙글빙글 웃고 있는 윤기를 바라보며 차마 못 하겠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나는 어떻게든 내 가치를 증명해야 해. 지금 나는 족쇄가 채워졌지만, 이게 교도소의 족쇄가 될지, 황금 족쇄가 될지는 아직 모르는 거니까……!’
마침내 모든 대화가 끝나고, 콜린은 윤기를 향해 공손히 고개를 숙인 뒤 자리를 떴다.
그렇게 혼자 남은 상황에서, 윤기는 차를 한 잔 시키며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다.
물론, 최덕배가 방해했지만.
너도 참 악취미다. 그냥 처음부터 2퍼센트를 제시하지 그랬냐?>
하지만 윤기는 고개를 저었다.
‘단순히 악취미가 아니라 저 사람의 그릇의 크기를 확인한 거예요. 5퍼센트짜리 그릇일지, 0퍼센트짜리 그릇일지를 말이죠. 혹은 10퍼센트짜리 그릇일 수도 있었겠죠.’
그런데 2퍼센트네? 계속 끌고 갈 거냐?>
‘확실히 측근 감은 아니에요.’
냉정한 윤기의 판단에 최덕배가 콜린이 사라진 쪽을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찼다.
그럼?>
‘이사는 계약직이죠.’
워……, 역시 경영자라니까.>
‘계약직의 유지는 계약직 본인의 노력에 따라 달린 거예요. 만약 계약직이 우수한 성과를 보여 준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요.’
흠, 저 녀석은 10퍼센트로 탈바꿈을 할 수 있을까. 궁금해지긴 하는구만.>
최덕배의 독백을 마지막으로, 윤기는 찻잔을 내려놓고 계산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산을 마친 경호원이 가져온 기절할 액수의 영수증.
‘이 돈이면 차라리 뜨끈한 국밥집을 차리겠다.’
농담 섞인 윤기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최덕배 역시 웃으며 윤기의 뒤를 따랐다.
* * *
시간이 부족하다?
그러면 인력을 더 쓰면 된다.
인력이 부족하다?
그러면 돈을 더 쓰면 된다.
원래대로라면 본인의 업무만으로도 미쳐 돌아 버릴 지경이었던 콜린이었지만, 윤기의 판공비 5만 달러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효과를 발휘했다.
물론 5만 달러를 주변에 뿌렸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퇴근 후, 동료에게 맥주를 한 잔 사고, 하급자에게 반 갑 정도 남은 담배를 힘내라면서 주었으며, 자신이 심부름을 시킬 수 있는 수준의 아이들에게 도넛값을 주고는 심부름을 시켰다.
이러한 일이 일주일 정도 지속하자 콜린은 어느 정도의 발언권을 확보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일부 넘길 수 있었다.
이후로 콜린이 한 일은 당연히 윤기의 지시를 수행하는 것.
콜린은 자신이 아는 한 모든 관계자를 만나 이런저런 방법으로 현재 할리우드에서 찍는 영화에 대해 알아보았고, 내친김에 할리우드가 아니더라도 거장들 혹은 나름대로 규모가 있는 영화사들이 찍는 영화까지 알아보았다.
그러기를 다시 일주일.
콜린은 그야말로 가까스로 윤기에게 명부를 전달했고, 윤기는 호텔의 푹신한 소파에 몸을 묻으며 아주 두툼한 명부를 시원한 무알코올 칵테일과 함께 즐기고 있었다.
“이래서 돈이 좋다니까요.”
아주 솔직한 윤기의 발언.
콜린은 돈이 부족해서 스스로 뛰어야 했지만, 윤기는 돈으로 콜린을 뛰게 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자본주의의 극치.
최덕배 역시 윤기가 한 상 차려준 룸서비스에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린다는 말이 괜히 조선에 있었겠어?>
소매로 입을 슥슥 닦은 최덕배가 윤기의 옆으로 와서는 물었다.
그나저나, 어떤 영화를 개봉할 생각이냐?>
최덕배의 말에 윤기의 손과 눈이 굉장히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마침내 서류뭉치 속에서 하나의 영화를 찾아낼 수 있었다.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