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154)
#154화 마피아 게임 (4)
“뭐, 뭐라고?”
“뭘, 그렇게 놀라세요. 지금까지 놀라실 만큼 놀라셨으면서.”
“아니, 당연히 놀라지! FBI나 CIA조차도 모르는 로렌초의 위치를 어떻게 알고 있다는 거야? 애초에 로렌초 패밀리들에 대한 엄청난 정보를 제공했다면서? 그 정보들은 어떻게 알고 있는 건데?”
“정말 죄송합니다만, 어떻게 아느냐에 대해서는 답변을 드릴 수가 없어요.”
윤기는 방금 거스터의 반응을 보고 거스터가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파악했다.
그렇기에 무언가를 더 알려 줄 필요성은 있지만, 그럼에도 모든 것을 알려 줄 수는 없었다.
자신만 알고 있어야 하는 비밀이라는 게 존재했으니까.
‘지금의 거스터 님이라면 크게 추궁하지 않을 거야. 물론, 어느 정도의 대화는 필요하겠지만.’
실제로 거스터는 윤기를 향해 섭섭한 반응을 보였다.
“나에게도 말해 줄 수 없다고?”
“예. 이건 그 누구에게도 말씀을 드릴 수 없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세상에서 단 여섯 명에게 만큼은 제한적으로 말해 줄 수 있는 내용이지요.”
“여섯 명이나 제한적으로 말해 줄 수 있다고?”
더욱 섭섭해지는 거스터의 표정.
“예, 저의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 그리고 부모님과 메릴, 마지막으로 그랜드파더. 당신이죠.”
“제한적으로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나…?”
“예, 그래서 제한적으로 지금 말씀을 드리고 있는 거예요.”
“허어….”
다소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거스터는 자신이 여섯 명 중 한 명이라는 사실에 조금은 기분이 풀린 것으로 보였다.
“지금은 어떻게 알았는지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좀 더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모든 것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저를 믿어 주십시오. 비록 말밖에 할 수 없지만, 메릴과 그랜드파더에 대한 저의 마음은 진심입니다.”
“그거야 알지. 지금까지 본 것이 있으니…. 하지만…, 아니, 아니야. 자네가 소중한 사람에게 한 약속을 어긴 적은 본 적이 없어. 그게 이번에 깨질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난 자네를 믿고 싶군.”
거스터는 성격답게 빠르게 자신의 마음을 정리했다.
그리고 신뢰감 넘치는 눈으로 윤기를 바라보았다.
“그래, 자네가 로렌초의 은신처를 알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겠지. 그걸 거짓말할 자네도 아니고 말이야.”
“그렇습니다.”
“하지만, 자네가 그것을 어떻게 알고 있었는지 적당한 이야기를 만들어야 해. 그래야 FBI와 CIA의 의심을 사지 않을 테니까.”
“그것은 저 역시 알고 있습니다.”
“생각해 둔 것이 있는가?”
“예.”
“좋아, 그러면 자세한 이야기를 해 보자고. 그들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서 말이야.”
윤기의 말을 들은 거스터는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이내 ‘그럴듯한데?’라는 표정을 지었다.
* * *
“보스! 피하십시오!”
“피할 곳이 어디 있다고! 빌어먹을, 찰리 새끼!”
마침내 로렌초의 입에서 찰리에 대한 욕설이 튀어나왔다.
지금까지 일을 잘해 왔길래 믿었다.
그런데 결과는 이 꼴이다.
찰리가 FBI에게 잡히자마자, 로렌초의 은신처가 발각되었다.
그 증거로 사방에서 FBI를 비롯한 특수 부대 요원들이 진입하는 중이었고, 은신처의 모든 통로에서 총격전이 벌어지는 상황이었다.
비록 마피아의 화기가 다른 조직폭력배들에 비해 우월하다고는 하지만, 각 잡고 들어오는 특수 부대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것 역시 사실.
결국, 로렌초를 비롯한 모든 인원들은 필사의 저항을 하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투항한다고 해도 평생 감옥에서 살 것은 거의 뻔한 일.
로렌초 패밀리에 원한을 가지고 있는 FBI의 국장 조슈아의 입김에 후환을 남기지 않으려는 거스터의 입김이 합쳐진 결과였다.
‘빌어먹을! 이렇게 빨리 이곳의 위치를 불다니!’
로렌초는 지금이라도 혼자만 살 수 있다면 어떻게든 살고 싶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너희들은 어차피 못 살아. 그냥 뒈져.>
최덕배는 무언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연신 마피아들의 은신처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애초에 마피아들의 은신처를 알아낸 것 역시 최덕배의 공.
최덕배는 찰리의 명령으로 수색에 나선 마피아들을 존슨까지 동원해서 집요하게 추적했고, 덕분에 은신처를 알아낸 것이다.
나쁜 놈들이 죽는 모습을 보는 것은 즐겁다니까.>
이렇게 최덕배가 즐거워하고 있을 때, FBI의 국장 역시 연신 환호성을 터뜨리고 있었다.
[여기는 델타, 지금부터 저들의 최후 저지선에 돌입한다.]“드디어 막바지입니다!”
[여기는 델타. 모든 적들을 사살했다. 로렌초의 시체 확인 완료. 미션 올 클리어.]“됐다! 됐습니다! 드디어 로렌초 패밀리가 박멸되었습니다!”
드디어 동생의 원수를 갚게 된 조슈아.
그렇기에 조슈아가 윤기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호의만이 깃들어 있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윤 님이 아니었으면 저는 동생의 복수를 하지 못했을 겁니다.”
“감사하긴요. 오히려 제가 더 감사하죠. FBI를 비롯한 분들 덕분에 제가 오늘부터 두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을 테니까요.”
“물론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잔당들을 아주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박멸하겠습니다.”
훈훈한 대화 속에서 거스터가 끼어들었다.
“현상금은 어떻게 되는 거지?”
로렌초의 현상금은 350만 달러.
윤기의 입장에서는 푼돈이지만, 거스터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윤기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이 자리에서 말을 꺼낸 것이었다.
“아,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번 주 안으로 지급을…”
“그건 이번 임무에 투입된 기관들에 기부할게요.”
조슈아의 말을 자연스럽게 자르며 이어진 윤기의 말에 조슈아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예?”
조슈아는 어찌나 놀랐는지 수염이 구불구불한 모양을 띠고 있었다.
“저는 이번 일에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어요. 미군과 경찰, 그리고 FBI와 다른 특수 부대 여러분. 그분들이 아니었다면 계속 불안에 떨어야 했겠죠. 그러니 이번 작전에 투입된 분들 중 부상 입으신 분들의 재활에 전액을 기부할게요.”
“세상에….”
조슈아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아무리 상대가 부자라고는 하지만, 350만 달러는 그냥 이런 곳에 쾌척할 만한 금액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부자들이 기부를 한답시고 자신 가족의 명의로 된 재단에 기부한다는 것은, 조슈아가 수도 없이 보아 온 진실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기관에 기부한다?
더군다나 저렇게 순수한 눈빛으로?
조슈아가 보기에 상대는 그야말로 진심이었다.
이야, 우리 후손 연기 잘하네. 탤런트 해도 되겠어.>
피식 웃는 최덕배의 말이 들려왔지만, 윤기는 그 말을 무시하고 연기를 계속했다.
“저는 미국에 감사해요. 미국이 아니었으면 지금의 제가 없으니까요. 그러니, 앞으로도 FBI에 꾸준한 지원을 약속할게요. 저 말고도 다른 사람도 편한 인생을 살 수 있기를 바라니까요.”
“세상에…”
연신 감탄하던 조슈아가 거스터를 바라보았다.
“정말 훌륭한 손녀사위를 맞이하신 것 같습니다.”
“인성뿐만이 아니라 핏줄 대접도 아주 확실한 손녀사위지. 내가 요즘 어디에 살고 있는지 자네도 알지?”
거스터의 대답에 조슈아가 굉장히 부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습니다. 제가 평생 그런 곳에 살 기회가 있을까요?”
“혹시 모르지. 윤기의 핏줄과 자네의 핏줄이 이어진다면…. 그리고 윤기가 하는 일을 좀 돕는다면 말이야. 나처럼.”
사람인 이상 어쩔 수 없는 욕망.
거스터가 정말 시의적절하게 건드렸기에 조슈아는 자신도 모르게 윤기에게 잘해야겠다는 본능을 가지게 되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윤기를 향해 고개를 숙이는 조슈아의 모습.
윤기 역시 그런 조슈아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저야말로요.”
그야말로 완벽한 하루.
진압 작전도 끝나고, 기부에 대한 절차도 끝나고 대저택으로 돌아온 거스터는 윤기와 함께 넓은 수영장 앞에서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기분을 잡치게 만드는 조슈아의 전화 한 통이 오기 전까지는.
“뭐? CIA가 손녀사위의 뒤를 캐고 있었다고?”
* * *
CIA의 국장인 메이슨이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며 조슈아를 향해 일갈했다.
“아니,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CIA의 기밀을 유출하다니. 당신이 지금 무슨 일을 저지른 것인지 알기나 합니까?”
50대 중반의 메이슨.
수염이 없었기에 조금은 젊어 보였지만, 덥수룩하고 짙은 갈색 머리로 인해 조금은 고리타분하게 느껴지는 인상이 특징이었다.
하지만, 지금 일갈하는 모습은 CIA라는 집단의 국장으로서 전혀 손색이 없었다.
“기밀이라뇨? 제가 알고 있는데 그게 기밀이 되나요?”
손님이 거의 없는 야외 카페.
그곳에서 조슈아는 프렌치토스트와 함께 뜨거운 블랙커피를 한 잔 즐기고 있었다.
잔뜩 화가 난 메이슨과는 전혀 달리 한가롭게 말이다.
“이런 빌어먹을…. 이 건은 그냥 두지 않을 겁니다. 반드시 당신에게 불이익을…”
“거스터 님이 그걸 보고만 계실까요?”
조슈아는 동생의 원수를 갚게 도와준 데 대한 보답, FBI에 대한 지원 약속, 더불어서 거스터처럼 되고 싶다는 욕망을 합쳐서 윤기의 편에 확실히 섰다.
그렇기에 이번 CIA가 윤기의 뒤를 캐고 있다는 기밀 역시 거스터에게 넘긴 것.
당연히 거스터는 노발대발 난리가 났고, 유출한 것이 조슈아라는 사실을 알게 된 메이슨이 조슈아에게 달려온 것이다.
왜냐하면, 조슈아가 알려 줬다는 사실을 말한 것이 거스터였으니까.
[행여나 조슈아를 건드릴 경우, 자네가 어떻게 될지는 각오해야 할 거야.]결국, 메이슨이 할 수 있는 행동은 지금처럼 직접 찾아와 분통을 터뜨리는 것뿐이었다.
“이런 젠장! 당신은 지금 상황이 이해가 안 갑니까? 로렌초의 위치는 우리도 당신들도 모르고 있던 내용이라고요. 그런데, 그걸 알고 있던 사람이 수상한 것은 당연한 것 아닙니까?”
“이상하긴요. 어떻게 목격했는지는 이미 다 설명을 들었을 텐데요?”
“그걸 믿으라고요? 차라리 길을 지나가다가 대통령과 악수를 했다는 이야기를 믿겠습니다.”
“저 어렸을 때 악수해 봤는데요?”
“네?”
“해 봤다고요.”
“…….”
하필이면 해 본 당사자가 앞에 있었기에 메이슨은 할 말을 잃었다.
“그럼, 전 이만 가 봐도 되겠죠?”
더 이상 조슈아를 상대해도 소득이 없을 거라는 사실을 깨달은 메이슨은 대답도 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직접 확인해야겠어!’
상대의 진술을 깨뜨리기 위한 ‘단순하지만 확실한 계획’이 메이슨의 머리에 그려졌다.
* * *
“아무리 생각해도 굉장히 불쾌하군.”
회의용 테이블에 앉은 윤기와 거스터, 메이슨의 모습.
상석은 당연히 거스터의 몫이었고, 윤기와 메이슨은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사적인 감정은 전혀 없습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미국을 위해서…”
“나는 미국을 위해서 일한 적이 없다는 건가?”
거스터의 심기는 그야말로 극단적으로 불편한 상황이었다.
메릴을 위해 무슨 짓이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 준 윤기.
그런데 그 윤기가 미국에 대한 충성심을 의심받고 있었다.
자신의 손녀사위를 의심한다는 것은 곧 자신을 의심하는 것과 똑같은 행위.
평생을 미국을 위해 살아왔던 거스터에게 있어서 이것은 대단한 모욕이자 실례였기에, 거스터가 메이슨을 바라보는 눈빛은 결코 곱지 않았다.
심지어 명분마저도 빈약한 메이슨의 주장.
아무리 윤기가 제보한 정보의 출처가 허술하다지만, 성과를 낸 작전인데도 윤기를 의심한다는 것은 이렇게 대놓고 할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대놓고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게 메이슨의 불행이었지만.
“절대로 아닙니다. 거스터 님만큼 미국에 충성을 바친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저 역시 무엇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저 가볍게, 몇 가지만 알아보고 싶을 뿐입니다. 만약 몇 가지만 확인되면 이후에 일절 문제 삼지 않을 것을 약속드립니다.”
“크흠!”
아직도 불편한 심기가 풀리지 않은 거스터였지만, 백악관에서까지 허락을 받아온 이상, 마냥 반대할 수는 없었기에 못마땅하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어떤 확인을 할 셈인가?”
“잠시 따라와 주셨으면 합니다.”
“이제는 아예 원하는 장소까지 와라, 이건가?”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꼭 필요한 일입니다.”
거스터는 다시 헛기침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윤기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그런 거스터의 뒤를 따랐다.
잠시 후, 메이슨의 안내를 받아 차를 타고 이동한 것은 다름 아닌 로렌초의 은신처였던 곳.
‘어떻게 나를 시험해 볼지 대충 알겠네.’
윤기가 거스터와 입을 맞춘 로렌초에 대한 변명.
그것은 아주 간단했다.
‘예전에 본 기억이 있다’라고 말했으니까.
과거, 사업을 위해 이리저리 이동하다가 우연히 로렌초를 보았다고 증언한 것이다.
그걸 왜 이제야 신고하냐는 반문에는 ‘그 얼굴을 가진 사람이 로렌초인지 이번에야 알았다’라고 답변하는 것으로 무마했다.
왜냐하면, 로렌초 패밀리와 직접 엮인 것은 바로 이번이 처음이었으니까.
다른 정보에 대해서는 변명할 필요도 없었다.
그 부분은 조슈아가 FBI의 수사 결과로 자료를 다 꾸며 놨기에 메이슨이 꼬투리조차도 잡을 수 없었다.
따라서 지금 해야 할 일은 오로지 로렌초의 은신처를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에 대한 변명뿐.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그저, 단순한 확인일 뿐입니다.”
어둑어둑한 저녁 시야.
메이슨의 안내에 따라 거스터와 윤기는 차량에서 내렸고, 거스터는 시종일관 심기 불편한 태도를 고수하며 윤기의 뒤에 서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지금, 앞에 있는 사람을 주목해 주십시오.”
CIA 요원으로 보이는 사람은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백인의 모습이었다.
그것도 사복.
한 1분 정도 지났을까?
메이슨이 다시 입을 열었다.
“뒤를 돌아주십시오.”
윤기는 뒤를 돌았고, 무려 30분이나 지나서야 메이슨이 다시 말을 걸어왔다.
“다시 뒤를 돌아주십시오.”
매우 지루했던 30분. 하지만, 최덕배라는 존재가 있는 윤기에게 30분은 별로 긴 시간이 아니었고, 도리어 거스터의 심기만 더욱 불편하게 만들 뿐이었다.
“이게 말이 되는 시험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드디어 침묵을 깬 거스터.
그도 그럴 것이 로렌초를 발견한 지역에 아까 보았던 요원을 필두로 무려 30명이나 되는 사람이 3줄로 나란히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비슷한 사복 차림에 비슷한 헤어스타일을 갖춘 백인들.
애초에 거리도 무지막지하게 멀어서 유목민들도 쉬이 분별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어처구니없는 난코스가 추가된 것이다.
1분밖에 못 본 사람을 먼 거리에서, 게다가 시야까지 어둑어둑한데, 비슷한 사람들 사이에서 골라내야 한다니.
이것이 과연 가능할까?
물론 윤기는 가능하다.
“두 번째 줄, 왼쪽에서 네 번째 사람이네요.”
“…예?”
자신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윤기가 대답해 버리자, 순간 메이슨은 멍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거스터의 말까지 본의 아니게 무시했을 정도의 큰 당황.
심지어 메이슨조차도 이 거리에서는 아까 보았던 요원을 판별할 수 없었다.
평상시에 알고 지내는 부하였음에도 말이다.
“마, 말도 안 돼….”
망원경으로 정답을 확인한 메이슨은 손을 부들부들 떨었고, 그 모습을 본 거스터가 불호령을 내렸다.
“그러니까 내가 말했지 않은가! 내 손녀사위의 말에는 거짓이 없다고!”
우연히 목격했다는 진술.
물론 이 진술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은 거스터 역시 알았다.
하지만, 윤기가 의심받는 상황 자체를 불편해한 거스터였기에 속으로는 다소 놀랐으면서도 겉으로는 메이슨을 향한 불호령을 유지했다.
“저…, 저기…, 정말로 보이시는 겁니까?”
당연히 보이지.>
양 허리에 손을 짚고 콧대를 세우는 최덕배의 모습.
최덕배도 아원급제한 능력자답게 윤기처럼 메이슨의 의도를 눈치챘고, 아예 윤기가 부탁하기 전에 아까 본 요원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윤기에게 알려 주었던 것이다.
한 번 접촉한 인물이라면 거리에 상관없이 바로 이동이 가능한 최덕배.
그렇기에 최덕배는 딱히 요원의 외모를 외울 필요도 없이 윤기에게 정답을 알려 줄 수 있었고, 이에 따라 윤기는 곧바로 답을 할 수 있었다.
“진술할 때도 보인다고 말하지 않았던가요?”
“아니, 그게…, 저….”
상식적으로 보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상황.
하지만, 상대가 보인다고 하는데 책을 잡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번 일에 대한 CIA의 행동은 각별히 기억해 둘 거야. 그리고 각하께도 펜타곤을 통해 항의해야겠군. 이게 도대체 뭐 하는 짓인가? 마피아 소탕에 엄청난 공을 세운 사람을 의심해? 내 손녀사위가 동양인이라서 그런 건가?”
인종차별까지 물고 늘어지는 거스터의 말에 메이슨은 그야말로 죽고 싶어졌다.
만약 상대가 평범한 사람이라면 강제로 입김이 닿는 병원으로 데려가 시력에 대한 정밀 검사를 해 볼 텐데, 상대가 거스터의 손녀사위니 그럴 수도 없다.
하지만, 메이슨은 CIA의 수장답게 불굴의 끈기를 보여 주었다.
“혹시, 세 번째 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에 있는 사람의 특징을 읊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자네, 끝까지!”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는 확인을 해야만 합니다….”
메이슨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이번에도 최덕배가 윤기에게 정보를 날라다 주었고, 윤기는 들은 내용 그대로 메이슨에게 읊기 시작했다.
“왼쪽 코털 하나가 밖으로 삐져나왔네요. 그리고 오른쪽 귓불에 작은 점이 하나 있어요. 아, 입술에 작은 상처가 있는데, 딱지가 제대로 낮지 않은 것으로 봐서는 오늘 생긴 건가요?”
메이슨의 표정은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
망원경으로도 보이지 않았기에 메이슨은 무전기로 사실인지를 물었고, 몇 분 후, 사실이라는 답변이 돌아오자 그야말로 식은땀을 흘리며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그게 보이는 겁니까?”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네, 보여요.”
고개를 끄덕이는 윤기의 행동.
그리고, 동시에 거스터의 불호령이 또다시 떨어졌다.
“자네는 아까부터 내 말을 무시하는 건가? 도저히 참을 수가 없군. 나중도 필요 없이 지금 당장 내가 백악관으로 쳐들어가야겠어.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CIA의 예산을…”
예산이라는 말에 정신이 퍼뜩 든 메이슨이 거스터에게 허리를 숙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번 일은 어디까지나 저의 독단이니 CIA가 아닌 저에 대한 처벌로 참아 주십시오!”
“하! 수장인 자네가 행동을 했으니 집단이 책임을 져야겠지. 내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CIA를 제재해야겠어.”
“제발, 부탁드립니다. 거스터 님은 애국자 아니십니까?”
“지금 내 애국심을 무시한 것이 CIA잖나!”
그야말로 불같이 화를 내는 거스터를 말릴 방법이 메이슨에게는 없었지만, 윤기는 있었다.
“솔직히 화가 나기는 하지만…”
윤기가 입을 열자 거스터는 호령하는 것을 멈추었고, 메이슨도 어쩐지 구원의 빛이 내리쬐는 느낌에 윤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어찌 보면 우리와 같은 사람들조차도 놓치지 않고 CIA가 수사하기 때문에 우리가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그야말로 자비로운 말에 메이슨의 얼굴이 감동으로 물들었다.
“예! 바로, 그겁니다! 정말, 사적인 감정은 전혀 없었습니다!”
“하지만, 화가 나지 않은 것은 아니에요.”
메이슨의 표정은 다시 암울하게 바뀌었다.
“죄송합니다….”
“그래도, 사적인 감정이 없었다고 하니 이번은 그냥 넘어갈게요. 하지만, 이제는 인정해 주세요. 저는 정말로 미국을 위한 생각뿐이에요. 저에게는 한국인과 미국인의 피가 둘 다 흐르고 있고, 한국과 미국은 우방이지요. 제가 미국에 피해를 주는 일은 절대로 없을 거예요.”
순수함과 열망이 가득한 17살의 눈빛.
메이슨은 자신이 왜 이런 순수한 아이를 의심했는지 자책하기 시작했고, 거스터조차 윤기의 이러한 연기에 혀를 내두르며 메이슨을 혼내는 일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야말로 모든 게 완벽한 상황.
하지만, 윤기는 이에 그치지 않고 아예 한발 더 나아갔다.
“혹시라도 추후 제가 CIA에 드릴 정보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협조해 드릴게요. 미국을 위해서! 이것보다 중요한 게 세상에 있겠어요?”
이날, 윤기는 CIA와 FBI가 자신을 감시하는 미래를 완전히 깨부숴 버렸다.
* * *
“CIA를 너무 쉽게 용서한 것 아니냐?”
“추후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에서 활동할 때, CIA가 자발적인 감시를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일이죠. 오해를 살 상황 자체가 생기지 않는다는 건 중요하잖아요?”
윤기가 이번에 FBI를 향해 쿨하게 현상금을 쾌척한 이유.
그것은 바로 추후 공산권 국가들이 개방했을 때, 그 활동에 대해서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물론, 거스터라는 방패막이가 이미 있다고는 하지만, 그 방패막이로는 ‘미국이 인정한’ 소련 인사밖에 만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이익이 잘 나지 않는다.
제대로 이익을 내기 위해서는 미국이 판단하기에 ‘위험한 소련 인물’ 역시 만나야 하는 법.
문제는 이런 인물들을 만나게 되면 CIA를 비롯한 미국 정부 기관의 의심을 받기가 쉽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정부 기관들의 환심을 산다면 이러한 의심을 상당 부분 벗겨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윤기의 생각은 적중했다.
FBI의 국장인 조슈아는 CIA의 행동을 거스터에게 알려 주었고, CIA의 국장인 메이슨 역시 윤기에게 큰 빚을 졌다고 생각한 채로 돌아갔으니까.
“그렇긴 한데….”
거스터는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지. 네가 괜찮다니까. 하지만, 너무 부드러운 모습만 보여 주어도 좋을 게 없어. 그건 알고 있겠지?”
“물론이죠. 제가 계약을 파기했던 제작자와 감독들에게 어떤 대응을 했는지 아시잖아요? 저는 저를 한 번 배신한 사람을 신뢰하지 않아요.”
“음, 그걸 생각하니 확실히 마음이 놓이는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거스터의 모습.
그때,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회장님, 저 류 비서입니다.]“네, 류 비서. 무슨 일이에요?”
[다른 게 아니라, JSD의 심기가 상당히 불편한 것 같습니다. 특히, 회장님이 단순한 과외선생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보고를 받은 윤기는 고개를 끄덕이며, 류근태에게 부드러운 말로 화답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곧바로 한국에 돌아가서 해결할 테니까요.”
통화를 끝낸 윤기를 향해 거스터가 걱정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무슨 일이냐? 심각한 일 같던데.”
“아, JSD가 심기가 불편하데요. 아무래도 속은 게 불쾌했나 봐요.”
답을 들은 거스터의 미간이 좁혀졌다.
“도와줄까?”
하지만, 윤기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제가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범주예요. 이제 JSD는 저한테 급이 되지 않거든요. 충분히 주무를 수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