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158)
#158화 부실기업? (1)
순간, 강석호의 눈이 퉁방울만 하게 커졌다.
3초, 2초, 1초.
겨우 동공이 원래대로 돌아온 강석호는 약 30초 정도 더 생각한 후에 안정을 되찾으며 윤기에게 물었다.
“신상을 확실히 품에 안으실 생각이십니까?”
짝짝짝짝짝!
가볍게 손뼉을 치는 윤기의 모습.
이를 확인한 강석호는 조금이지만 안도의 표정을 지었고, 이에 화답하듯 윤기가 입을 열었다.
“정말 대단해요. 역시, 강 비서는 유능하군요.”
“지금 시기에 JD의 심기를 거슬러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그것’밖에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강석호가 말하는 ‘그것’.
그것은 바로 신군부가 자신들과 친분이 있는 기업들에 특혜를 줄 때 사용했던 ‘부실기업 관리’라는 제도였다.
상태가 영 좋지 않은 기업을 우수한 기업에 통합시켜 경제를 살린다는 명목.
분명 명목은 좋다.
하지만, 부실기업을 인수하는 기업에 그야말로 ‘특혜’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을 정도의 혜택을 주었기에 당시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꾸준히 비판을 받는 제도였다.
실제로, 원래 역사에서는 JD의 심기를 거슬렀다는 이유로 재계 순위 10위 안에 드는 그룹이 해체되었었다.
그로 인해 멀쩡히 잘 돌아가는 계열사들이 다른 그룹으로 흡수되는데, 윤기는 이 방식을 역으로 이용해서 신상 그룹의 알짜배기 계열사만 와이케이로 흡수할 생각이었다.
물론, 강석호를 포함해서.
‘해당 그룹 사태에 관해서는 나도 자세히 알지는 못해. 하지만, 그 당시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와 지금의 내 판단력이라면 능히 해낼 수 있는 일이겠지. 더군다나, 이미 채색 단계까지는 와 있으니까.’
사실 강석호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면, 윤기는 이러한 계획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애초에 인수할 만한 그룹이 없었으니까.
아직도 인재난에 시달리고 있는 윤기였기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규모가 큰 기업체를 인수하는 것은 오히려 악수였지만, 강석호가 오너로 있는 그룹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그렇기에 시동을 걸었던 이번 계획.
강석호가 이번 계획을 실행하기 위한 최소한의 준비라면, JSD는 이번 계획을 성공시키기 위해 꼭 필요한 존재였다.
‘그러기 위해, JSD에게 제작 마진을 주었지. 좋아, 충분히 가능할 거야.’
자신 스스로 자신감을 불어넣은 윤기는, 속마음과 달리 시종일관 여유로운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강석호를 안심시켰다.
“안심해도 좋아요. 신상 그룹은 재탄생하게 될 테니까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을까요?”
‘부실기업 관리 제도’는 강석호 역시 생각은 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이미 조윤태 이사와 일전에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과거에는 와이케이가 신상 그룹을 징죄한답시고 신상 그룹을 공중분해시킬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고, 지금은 와이케이의 최측근으로서 ‘일부러’ 부실기업 관리 대상이 된다는 것이었기에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
그렇기에 강석호는 가능한 한, 말로라도 확신을 얻고자 했다.
“물론이죠.”
윤기는 설명 대신 A4용지와 볼펜을 강석호에게 건넸다.
“현재 신상 그룹을 100퍼센트 장악한 것은 아니죠?”
강석호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렇습니다.”
강석호가 아무리 유능하다고는 하지만, 강석호에 줄을 댄 사람과 강석호의 아버지인 강장환에게 줄을 댄 사람은 어느 정도 차이점이 있었다.
강장환이 실각하고, 강석호가 신상 그룹을 운영하는 지금에도, 강석호의 입김이 제대로 닿지 않는 계열사는 분명히 존재했다.
“반드시 함께 가야 하는 아군, 가급적 함께 가고 싶은 아군, 버려도 되는 적군을 분류해서 제출하세요. 며칠이면 될까요?”
“3일 안에 처리하겠습니다.”
어떤 의미로는 사형 선고.
하지만 강석호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참에 꼴 보기 싫은 놈들을 쳐 낼 수 있게 된다면, 그것보다 좋은 일은 없지.’
애초에 강석호는 자신을 따르는 식구들에는 관심이 많았지만, 신상 그룹 그 자체에 목숨을 걸고 있지는 않았다.
그랬다면, 애초에 윤기에게 고개를 숙이는 일 자체를 안 했을 테니까.
이름보다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책임지는 식솔들의 안녕.
더불어서 강석호는 이번 일에 있어서 의외의 지원 사격을 받을 수 있었다.
* * *
자본주의가 극단에 달하지 않을수록 재벌들은 바쁘게 뛰어다닌다.
반면, 자본주의가 극으로 갈수록 재벌은 일하지 않는다.
왜?
돈이 돈을 버니까.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한국은 재벌들의 탈선 문제로 연신 시름을 앓는다.
예전이야 언론과 여론이 통제되는 시절이었기에 들키지 않았지만, 통신이 고도로 발달한 사회에서 재벌 3세, 혹은 4세들이 터뜨리는 병크는 분명 어떤 방식으로든지 간에 문제를 불러올 수밖에 없었다.
강석호 역시 재벌 3세.
하지만 자본주의가 아직 극에 달하지 않은 80년대의 한국이었기에 무진장 바쁘게 뛰어다니는 것이 바로 강석호였다.
‘흐음, 내가 기본적으로 부채가 많은 쪽에다가 쳐 내야 할 놈들 배치하기는 했지만, 이 녀석들을 한 번에 쳐 내도 괜찮을지 모르겠어. 반발을 과연 단번에 누를 수 있을까?’
강석호는 이미 윤기의 의중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부채 없이 깨끗한 신상으로 와이케이에 오세요. 기회가 생겼으니까요.’
이 점은 강석호 역시 대환영이었다. 깨끗한 상태로 갈수록 윤기에게 더 대접을 받을 테니까.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부실한 계열사에 발령을 가 있는 친인척이 있었기에 이를 바로 잡으려면 뭔가 계기가 있어야만 했다.
‘계기가 있어야 해. 계기가…….’
자택 서재에 앉아 이마를 오른쪽 검지로 톡톡 두드리고 있음에도 뾰족한 생각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이유는 3일이라는 기한.
3년, 아니 하다못해 3개월이라면 뭐라도 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3일이라는 시간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너무 짧았다.
‘하지만, 내 입으로 이미 3일을 말한 상황이야.’
자신의 호언장담을 조금 후회하고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서재의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석호야. 바쁘냐……?”
다소 숫기 없는 표정으로 서재를 들여다보고 있는 강장환의 모습.
그 모습에 강석호는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바쁘긴 하지만, 잠깐 여유는 낼 수 있어요. 무슨 일이세요?”
강장환은 김성필이 자신을 속여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 자신의 태도를 되돌아보는 계기를 가졌다.
그 계기는 반성을 불러 왔고, 그 반성은 태도의 변화를 가져왔다.
물론, 아들인 강석호에게 그간의 일을 사과하지는 못했지만, 심경의 변화가 겉으로 드러났기에 강석호 역시 아버지를 예전만큼 원망하지는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니, 네가 고민이 많은 것처럼 보여서 말이다.”
“으음……, 그렇지 않아도 고민거리가 조금 있어요.”
“어떤 고민인지는 모르겠지만, 나한테 털어놓아 보는 것은 어떠냐? 자고로, 고민은 남하고 같이하면 절반으로 줄어든다고 했으니까.”
강장환은 쭈뼛거리며 서재의 의자 하나를 끌어 강석호 옆에 앉았고, 강석호는 그런 아버지를 딱히 타박하지 않았기에, 자연스럽게 둘이 나란히 앉아 서로를 바라보는 모양이 그려졌다.
‘아버지한테 이야기해 볼까? 으음……, 요즘 아버지 하시는 행동을 보면 괜찮을 것 같기도 한데.’
강석호는 합리성에 근거한 추론이라면 리스크를 능히 질 줄 아는 성격.
그렇기에 고민을 길게 끌지 않고 바로 아버지에게 자신이 윤기에게서 받은 지령을 털어놓았다.
“부실기업만 신상에서 떼어 버리고 싶다?”
강장환의 말에 강석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네요. 3일 안에 계획을 만들어야 하고, 계획을 시행하는 기간도 그리 길게 주어지지 않을 거 같거든요.”
아들의 말을 곰곰이 생각하던 강장환이 갑자기 결연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석호야, 나를 이용해라.”
“네? 아버지, 설마……?”
강석호는 아버지가 어떤 의도로 말을 하는지 금세 추론해 냈지만, 경악한 표정을 짓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와이케이에 있어서 죄인이다. 성필이 녀석에게 속았다고는 하지만, 와이케이에 직접적인 타격을 줬어.”
“으음…….”
“그렇기에, 내가 가서 사과한다고 해서 딱히 바뀌는 것은 없을 거다. 하지만, 와이케이는 널 받아 줬어. 그렇다는 건, 네가 성과를 낸다면 네가 아니라 신상이 성장한다는 거겠지. 나의 신상은 아니겠지만, 우리의 신상이 성장한다는 얘기야.”
“그건……, 저도 그렇다고 생각하고는 있어요.”
강석호는 차마 아니라고 대답하지 못했고, 강장환 역시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비록 와이케이에서 자리 하나를 차지할 순 없겠지만, 너를 서포트해 주는 것 정도는 가능할 거다. 그러니, 날 이용해라. 내가 부실 계열사에 있는 녀석들을 규합해서 대외적으로 너한테 반기를 드마. 그러면 네가 일을 처리하기가 쉽겠지.”
“하지만, 아버지, 그랬다가는 아버지 평판이…….”
강장환은 아들의 말을 자르며 고개를 저었다.
“난 이미 평판이 바닥이야. 널 유폐했다는 것도 이사나 주주들에게 들켰어. 여기서 평판이 좀 더 떨어져 봐야 얼마나 떨어지겠느냐? 그나마 내가 영향력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니, 내가 총대를 메마. 대신, 약속 하나만 하거라.”
“약속이요?”
아들의 반문에 강장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멍청했던 나의 행동이 만들어 낸 안 좋은 결과를 뛰어넘을 정도로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거라. 그래야만, 내가 나중에 죽어서 아버지를 뵐 낯이 생겨.”
“아버지…….”
강석호는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의 양손을 자신의 손으로 붙잡았다.
“부탁한다, 석호야.”
강장환의 말에, 강석호는 결국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와이케이의 전면에는 절대로 드러나지 못할 강장환.
하지만, 그는 뒤늦게나마 반성하여 신상의 숨겨진 또 하나의 용골이 되었다.
* * *
“내실을 아주 잘 다졌군요.”
“최대한 노력했습니다.”
신상 그룹의 우량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강석호 휘하의 인물들이었다.
물론, 예외도 있기는 하지만 친 강석호파에 비하면 소수.
그렇기에 강석호는 그들을 과감하게 적군으로 분류했다. 이미 아버지의 서포트가 있는 이상 두려울 것도 없다.
“적군 쪽이 부채 비율도 훨씬 높겠군요?”
“그렇습니다.”
“좋아요. 이 선택으로 후회할 일은 생기지 않을 테니 걱정할 필요 없어요. 가족에 대한 사랑을 걸고 맹세하죠.”
“예로부터 이익을 보려면 리스크를 감수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리스크를 감수하기로 이미 마음먹은 상태입니다.”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 윤기가 본격적인 지휘로 들어갔다.
“조만간 성월 재단 설립에 성금을 내야 하는 상황이죠?”
“그렇습니다. 현재 얼마를 내야 할지 측근들과 토의하고 있습니다.”
“2억을 내세요.”
“2억…….”
이미 마음은 먹었어도, JD를 향한 두려움은 그렇게 쉽게 떨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강석호는 아주 잠시 입속에서 2억이란 매우 적은 액수를 되뇌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윤기의 주문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어음으로요.”
강석호의 눈이 맨 처음처럼 커졌고, 윤기 역시 맨 처음처럼 미소를 지었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진 셈이었다.
* * *
“신상 그룹이 겨우 2억을 냈다고?”
JD는 매우 심기가 불편한 표정으로, 앞에 서 있는 비서실장을 향해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게 말이야, 방구야? 신상 그룹의 규모가 몇 위인 줄 알아? 비록 최근에 일이 좀 있어서 위세는 줄었어도, 아직 국내 10위에 들어가는 그룹이야. 그런데 그곳이 고작해야 2억의 성금을 냈다고?”
“그렇……습니다.”
진땀을 빼는 비서실장의 대답은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 추가로 보고 드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뭐야?”
“신상 그룹이 낸 2억이……, 어, 어음……입니다.”
“뭐라고?!”
JD는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테이블에 양손을 짚으며, 비서실장을 향해 몸을 숙이곤 씨근거리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봐. 신상 그룹이 뭐?”
“어음……, 어음으로 성금을 냈습니다.”
“이런 빌어먹을 자식들! 감히 어음을 내? 나를 뭐로 보는 거야!”
“하, 하지만 좋은 소식도 있습니다.”
비서실장의 필사적인 외침에 JD가 가까스로 분을 삭이며 비서실장을 바라보았다.
“삼우 그룹이 30억을 쾌척했습니다.”
자고로 무언가를 말할 때는 나쁜 일을 먼저 말하고 좋은 일을 말하는 게 그나마 나은 법이다.
물론, 좋은 일이 나쁜 일보다 규모가 클 때의 얘기지만.
“삼우 그룹이? 30억을? 호오……!”
잠시 신상 그룹의 일을 뇌 한구석으로 밀어 넣은 JD의 모습에 비서실장이 어렵사리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무리하는 게 아니냐고 유선상으로 물었더니, 각하의 특별 지시인데 각하의 품격을 생각했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성월 재단은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의 순직자 유가족들을 돕겠다는 명목으로 세워진 재단이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명목.
실제로는 JD의 비자금을 세탁하기 위한 재단이었는데, JD는 성월 재단을 3년 동안 운영하기 위한 비용 300억을 재벌들에게 ‘요구’했다.
기업들 입장에서는 매우 난감한 요구인 것이 당연지사.
하지만, 기업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성금을 모았는데, 이 요구에 끼기는 솔직히 뭣한 삼우 그룹이 무려 30억을 쾌척했다는 소식이 날아온 것이다.
JD은 아주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삼우의 회장이 와이케이 백화점의 실소유주였지? 이미 그쪽을 통해서 이쪽을 배려하는 것이 많은데도 모금이라니. 아주 마음에 들어.”
“실제로 삼우 그룹은 이번 모금 대상에 들어가 있지 않은 기업이었습니다. 와이케이 백화점이 승승장구 하고는 있지만, 이미 우리가 그 부분을 통해서 얻고 있는 이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 그건 확실히 그렇지.”
“실제로 삼우 그룹만 놓고 보면 90위에서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하는 상황이라, 이번 모금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JD는 허리를 뒤로 젖히고 웃어댔다.
“그 정도로 애국자일 줄이야. 하하하핫! 아주, 마음에 들어. 조만간 있을 10대 그룹과의 만찬에 삼우 그룹을 포함하도록.”
“알겠습니다.”
비서실장은 일부러 신상 그룹에 관한 이야기를 더 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JD의 뒤끝은 그리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신상 그룹에 대해서는 눈여겨보고 있도록 해. 건방진 놈들. 감히 어음을 내밀어?”
JD의 시선은 삼우와 신상, 두 곳으로 나뉘어 향했다.
마치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 * *
성월 재단의 모금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 JD는 다시 한번 분통을 터뜨려야만 했다.
“또, 2억을 냈다고?!”
새마을심장 재단 성금과 새마을 성금. 신상 그룹은 이번에도 전과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예, 심지어 이번에도 어음입니다…….”
좋은 소식을 하나 남겨 놓았기에, 비서실장은 저번과 비교하면 조금 안정적인 목소리로 보고했다.
하지만, JD의 분노는 저번보다도 컸다.
“빌어먹을! 어딜 감히 어음을 내미는 거야! 내가 신상 그룹을 해체하지 못할 거라 생각하는 거야? 어디 감히 천한 상인 놈들이, 한 나라의 수장을 욕보여? 어?!”
JD가 분노하는 이유.
이것은 액수도 액수지만, 어음의 문제도 컸다.
어음이란 보편적으로 갑이 을에게 지불하는 방식.
그렇기에, 신상 그룹의 행위를 해석하면 ‘우리는 너보다 갑이다’라는 뜻이 되는 것이다.
이를 JD가 모를 리 없는 노릇.
다분히 의도적인 행동에 JD는 길길이 날뛰었고, 비서실장은 30분 정도 지나서야 JD에게 좋은 소식을 알릴 수 있었다.
“이번에도 삼우 그룹이 20억이나 쾌척했다고?”
“그렇습니다. 좀 더 내고 싶었지만, 그룹 내부의 현금 유동성이 그리 좋지 않다면서 죄송하다고 하더군요. 추후에 성금을 모을 일이 있으면 또 쾌척하겠다는 긍정적인 약속까지 해 왔습니다.”
국내 10위 안에 드는 기업 하나는 사람 열 받게 하는 재주를 부리고 있는데, 사실상 국내 100위라고 봐도 무방한 기업은 하늘을 거니는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그렇기에, JD는 분노와 기쁨을 동시에 느끼며 비서실장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번 만찬, 다른 놈들은 몰라도 신상 그룹 회장 녀석은 반드시 참가시켜. 건수를 잡아서 보내 버릴 거니까.”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나간 비서실장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JD는 다시 씨근거리기 시작했다.
‘신상 그룹……, 정말 마지막 기회를 주마. 주인을 희롱하는 개가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 주지.’
* * *
청와대에서 이루어진 10대 재벌들의 만찬.
이곳에 초청된다는 것은 자신의 그룹이 가진 힘을 알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신군부 시절에는 단점이 훨씬 더 컸다.
[빌어먹을, 25억짜리 밥이군.] [하아, 14억이나 냈는데 고작해야 밥이라니.] [설마 이 자리에서 또 성금을 내라는 것은 아니겠지?]각 그룹의 회장들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테이블 위에 놓인 만찬을 바라보았다.
분명 먹음직스럽다.
하지만, 이들은 이게 주인이 자기가 키우는 개한테 모처럼 갈빗살 한 덩이를 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하하핫, 애국자들이 이렇게 모여 있으니 보기가 참 좋군요. 여러분 덕분에 성월 재단도 아주 일사천리로 흘러가고 있고, 이번 새마을 관련 성금도 아주 흡족한 상황입니다.”
재벌들은 JD의 말에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최대한 가식적인 모습을 연기했다.
다만, 재벌들은 한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저 사람은 누구지?]원래대로라면, 만찬에 참가하는 기업은 10개.
그런데 2개의 기업이 더 참가하고 있었다. 물론, 재벌들이 둘 다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한쪽은 알지만, 한쪽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이루어진 JD의 소개.
“자, 따로 소개하겠습니다. 이분들은 특별 애국자입니다. 금산 철강의 오정수 회장님, 그리고 삼우 그룹의 최기현 회장님이시죠. 두 분 다 운영하는 기업의 규모가 작음에도 불구하고 각각 27억과 50억을 쾌척하셨습니다.”
이 말에 자리에 앉은 재벌들은 순식간에 자리가 가시방석이 되는 것을 느꼈다.
아니, 애초에 가시방석이긴 했다. 단지, 지금 발언으로 인해 무릎 위에 커다란 돌이 올려진 것 같은 기분일 뿐.
“나라에 이렇게 애국자가 많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애국자가 아닌 한 명은 지각까지 하는 것 같군요.”
JD는 심기가 불편한 표정으로 비어 있는 자리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