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163)
#163화 적의 적 (3)
‘풉.’
순간 윤기는 자신도 모르게 겉으로도 웃음을 내뱉을 뻔했다.
하지만, 앞에 손민관이 있었기에 필사적으로 참은 결과, 근엄한 제왕의 기운을 유지할 수 있었다.
“신토불이요? 거기에 타도 MEV?”
손민관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기억하기로 MEV가 출범한 후, 서울의 다른 개봉관들은 점차 관객이 줄었습니다.”
“그거야 당연하죠. MEV의 출범으로 관객의 절대적인 숫자가 늘었다고는 하지만, 우리의 스크린만큼 늘어난 것은 아니니 당연히 다른 곳은 줄어들 수밖에요.”
“예,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그렇다 보니 다른 개봉관들은 점차 보이던 직원들이 보이지 않고, 상영 회차도 줄어드는 상황이었지요.”
손민관의 친화력은 윤기도 인정하는 수준.
물론, 친화력을 통해서 누군가를 제어하는 단계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친분과 교류에 있어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이 사실이었다.
“개봉관의 다른 직원들과 많이 친했었나 보죠?”
손민관은 왼손을 턱에 갖다 대고, 오른손을 왼쪽 팔꿈치에 갖다 댄 자세로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이내 자신이 누구의 앞인지 깨달았는지 ‘핫’ 하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잠시 생각하느라…….”
“괜찮아요. 계속 이야기해 봐요.”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친하다……고 자신 있게 말을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영화를 보러 갈 때면 종종 대화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생각해 보니, 개중에 자기가 오늘까지만 일한다고 답답해하던 사람들도 있었네요.”
“장사가 안되어서 직장에서 잘렸다는 건가요?”
“네, 맞습니다. 경제적인 논리로 따지면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잠시 생각을 하던 윤기가 손민관을 바라보았다.
“손 실장.”
“예?”
“그중에서 우리 와이케이에 어울리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와이케이에 어울리는 사람.
별거 없다.
그냥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이야기하는 거니까.
윤기는 대충 직함만 달아 놓고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을 정말 싫어한다.
실제로 와이케이에서 해고되는 부류는 죄다 그런 부류.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도대체 어떻게 알아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윤기는 종종 특정인을 콕 집어서 해고할 것을 명령했고, 그것은 곧 해당 부서의 효율 상승을 가져왔다.
손민관 역시 그것을 경험해 본 경험이 있기에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꽤 있을 겁니다.”
“그럼, 그들을 MEV 쪽으로 소개하세요. MEV 2호점을 생각하면, 그 사람들을 미리 영입해 두는 게 좋겠죠.”
“나이 먹은 사람들도 있고, 남자들만 있는 것도 아닌데 괜찮을까요?”
“나이와 성별이 무슨 상관인가요. 일만 잘하면 됐지. 능력이 있고 의지만 있다면, 자리야 만들면 그만이니까, 안심하고 데려와요. 그런데 그들의 연락처는 알고 있나요?”
손민관은 부끄러운 표정을 지으며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냈다.
“이상하게 사람들이 저한테 연락처를 쉽게 주더라구요.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꽤 가지고 있고, 그 사람들 통해서 얻어낼 연락처도 많이 있습니다.”
“역시 추리 소설은 머리가 좋아야 쓰는 법이죠.”
윤기의 극찬에 손민관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자, 그러면 가서 일 보세요. 더 할 말이 있나요?”
“아뇨, 없습니다. 최대한 빨리 시키신 일을 처리하겠습니다.”
“믿어요.”
윤기의 입가에 지어지는 잔잔한 미소.
손민관은 직장을 잃어 생활이 힘들어진 지인들에게 힘을 실어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신이 나서 밖으로 뛰듯이 나갔다.
그리고 이 행동은 며칠 후, 꽤 큰 나비효과를 가져왔다.
* * *
“금산 철강의 회장이 이번 일에 연루되어 있다는 말입니까?”
최기현의 사남이자 윤기의 셋째 작은아버지.
원래 역사에서는 생각보다 비중이 없는 최철준.
하지만, 이번 역사에서는 윤기가 무려 MEV의 사장 자리를 내어주었다.
[그동안 혼자 겉도는 것 같아서 섭섭하셨죠? MEV의 사장 자리를 작은아버지에게 맡길게요.]사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최철준은 섭섭했다.
둘째 형이야 스스로 병크를 터뜨렸으니 어쩔 수 없다지만, 셋째 형은 윤기의 옆에서 사실상 차석 비서 역할을 하고 있고, 동생은 편한 군 생활을 한 데다가, 연예기획사와 관련한 도움까지 받고 있다.
거기에 매제인 조청우는 법무 비서.
물론, 본인은 삼우 그룹에서 과장 일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따돌림을 받고 있다는 생각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오죽하면 ‘내가 인상이 이래서 윤기가 나를 싫어하나?’라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
물론, 아버지가 종종 불러서 ‘조만간 너도 기용될 거다’라고 용기를 주었기에 견디긴 했지만, 힘든 시간이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MEV 런칭 며칠 후.
윤기에게서 MEV의 사장 자리를 제안받은 최철준은 곧바로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 사표를 냈고, MEV의 사장 자리에 취임했다.
그리고 그야말로 일만 했다.
사나운 눈매 때문에 자연스럽게 카리스마를 가진 최철준은 생각 외로 MEV의 운영을 잘해 냈고, 그에 따라 지금 눈앞에 있는 윤대훈도 잘 상대하고 있었다.
“예? 아……, 예. 맞습니다. 오 회장님이 왜 우리를 도와주신다고 하신 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다른 개봉관을 도와주고 있는 것은 오 회장님이…… 맞습니다.”
약간 힘이 없는 윤대훈의 모습.
마른 체형과는 별도로 정신이 힘들어 보이는 것이 명확했기에, 최철준은 그 점을 파고들었다.
“오정수 회장이 무제한 지원을 해 주기로 공언했다고 아까 말씀하셨는데, 왜 극장의 문을 닫으신 건가요?”
아픈 곳이 찔렸는지 윤대훈이 톡 튀어나온 앞니로 입술을 오물거리다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제가 첫날에 ‘왜 우리를 도와주시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같은 식으로 이야기를 했거든요. 아마, 그래서 미운털이 박힌 것 같습니다. 다른 극장들에는 다 지원금이 들어갔는데 저희 극장에만 안 들어와서……. 그래서 그냥, 아버지한테 물려받은 재산으로 직원들 밀린 월급이랑 퇴직금 정산해 주고 저는 극장 팔려고 내놨습니다. 그 돈으로 뭐……, 아무 장사라도 시작해야죠. 지금은 정말 땡전 한 푼 없네요. 하하…….”
허탈감이 가득한 윤대훈의 눈빛에는 어쩔 수 없는 MEV에 대한 원망도 섞여 있었다.
왜냐하면, 그럭저럭 돌아가던 윤대훈의 극장이 망하게 된 계기는 MEV의 등장으로 인한 도태였으니까.
물론 MEV가 일부러 자신을 망하게 하지 않은 것이라는 점은 윤대훈 역시 안다.
그렇기에 저번 중화요릿집 모임에서도 다른 사장들과 달리 성토를 하지 않은 것이고.
하지만, 아버지가 물려주신 극장을 팔아야 한다는 생각에 윤대훈은 자신도 모르게 최철준의 앞에서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사장님, 일단 이것부터 받으시죠.”
한숨을 쉬느라 몰랐는데, 어느새 고개를 숙인 윤대훈의 시야에는 만 원짜리 수십 장을 들고 있는 최철준의 손이 보였다.
스르륵 들리는 윤대훈의 고개.
그러자 사나운 눈매지만 미소를 짓고 있는 최철준의 모습이 보였다.
무섭지만 친근감 있는?
그렇기에 윤대훈은 자신도 모르게 돈을 받아들었다.
“일단 그것은 생활비로 쓰십시오. 그리고, 정말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MEV가 일부러 사장님을 곤란하게 만들려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배웠으니까요. 하하하…….”
쓴웃음을 듣던 최철준은 윤대훈에게서 얼마 전 자신의 모습이 조금 겹치는 것을 느꼈다.
뭔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심지어 기회조차 없는 그런 상황.
그렇기에 최철준은 재량권을 발휘하기로 마음먹었다.
“알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사장님 밑에서 일을 하던 직원 중 일부는 우리 MEV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다른 직원을 통해서 들은 것인데 사장님 극장에서 일을 그만두고 나서 소개를 받아 MEV로 오게 되었다더군요.”
말을 들은 윤대훈의 얼굴에 안도의 미소가 피어올랐다.
“아……, 정말 다행이네요. 그렇지 않아도 저번 달에 애가 태어났다는 직원이 있어서 정말 걱정했었는데…….”
“아, 그 직원도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 보니 이거, 사장님 걱정은 너무 안 하시는 것 아닙니까?”
짐짓 하는 최철준의 농담에 윤대훈은 자신의 뒤통수를 긁적였다.
“뭐……, 저는 아직 젊으니까요.”
“30대면 벌써 가정을 꾸리고도 남으셨을 시간이지요.”
“아하하하…….”
어색한 미소.
하지만, 최철준은 어쩐지 이런 윤대훈의 모습이 끌렸다.
“아직 확답은 드릴 수 없지만, MEV에서 사장님 극장의 인수를 고려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순간 윤대훈의 눈에 희망이 감돌기 시작했다.
“예? 그것은 설마……?”
“MEV의 지점으로 고려할 수 있을지, 하다못해 그 극장을 헐더라도 개봉관 중 하나의 이름을 그 극장의 이름으로 할 수 있을지 고려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윤대훈은 더 바랄 게 없다는 듯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최철준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그거면 정말 바랄 게 없어요. 아버지와의 추억은 그 극장뿐이라……. 정말 감사합니다!”
눈물을 글썽이는 윤대훈을 바라보며 최철준은 윤대훈이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제발 윤기가 내 부탁을 들어줘야 할 텐데…….’
* * *
손민관이 들어갔던 윤기의 방.
마찬가지로 최철준 역시 윤기의 방에서 보고를 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중요한 소식인데요?”
금산철강의 회장이 서울 극장들에 무제한 지원을 해 주고 있다는 정보.
이건 생각보다 큰 정보였기에, 윤기는 나름대로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기, 윤기야. 그……, 한 가지 안건을 올려도 될까?”
“해 보세요.”
윤기가 고개를 끄덕이자, 최철준이 사나운 눈매와 달리 다소 애처로운 느낌으로 말을 꺼냈다.
“이번 정보를 가져온 윤대훈 사장 말이야. 생각보다 좀 안타까운 사정이 있는 것 같더라고. 극장을 아버지한테 물려받은 건데…….”
다소 긴 이야기를 듣던 윤기가 최철준의 말을 잘랐다.
“그만!”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짓는 최철준의 모습.
하지만 윤기는 딱히 화가 난 표정을 짓고 있지는 않았다.
“너무 길어요. 너무 구구절절하고요. 그건 보고가 아니에요. 안건도 아니고요.”
“윽!”
철저하게 경영 주의적인 말에 최철준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삼우에서 꽤 일을 잘했다고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는데, 왜 그렇게 어려워하세요. 제가 그렇게 어렵나요?”
“어……, 음……,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왜요?”
“그……, 둘째 형 건도 있고…….”
윤기는 픽 하고 웃음을 짓고는 말을 이었다.
“배신자를 용서하지 않을 뿐이에요. 작은아버지도 저를 배신할 건가요?”
그러자 최철준은 굉장히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손사래를 쳐 댔다.
“아냐! 절대 아니야!”
“그럼, 저를 어려워할 필요 없어요. 그리고, 작은아버지.”
“응?”
“작은아버지가 생각하시기에, 어느 정도가 작은아버지의 재량권이라고 생각하세요?”
“……개봉관에 이름을 넣는 것?”
윤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해요. 더불어서 윤대훈 사장을 MEV의 직원으로 영입하는 것도 가능하겠죠. 보아하니 경제학을 전공한 데다가, 나름대로 통찰력이 있어 보이던데, 작은아버지의 옆에 두고 쓰면 도움이 될지도 모르죠?”
“그래도 괜찮아?”
“작은아버지는 MEV의 사장이에요. 제가 종종 와이케이 인선에 관여하기는 하지만, 모든 사람을 다 체크하지는 않죠.”
“으……, 미안. 내가 아직 합류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자신감을 가지시라니까요.”
“아, 알았어.”
최철준을 주먹을 꽉 쥐며,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생각보다 조카가 융통성이 넓다는 것을 안 이상, 크게 주눅들 필요는 없다고 느낀 덕분이다.
“그리고 윤대훈 사장이 운영하던 극장에 대해서는 일단 땅은 매입해 두도록 하세요. 나중에 지점을 운영하든, 아니면 다른 것을 짓든, 고려해 볼 테니까요. 류 비서한테 이야기해서 매입을 추진하세요.”
“알았어. 그렇게 할게.”
최철준은 얼굴과 생각이 환하게 밝아졌고, 덕분에 잡생각 없이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면, 금산 철강의 오정수 회장은 어떻게 하면 될까?”
실제로 윤기가 집중하고 싶은 것도 이 부분이었다.
“전 지금 정말 궁금한 게 있어요.”
“뭔데?”
최철준은 윤기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하며, 윤기의 입술을 향해 시선을 집중했다.
“금산 철강은 도대체 자금이 어디서 솟아나고 있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