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164)
#164화 적의 적 (4)
“생각해 보니…….”
최철준 역시 ‘듣고 보니 과연’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작은아버지가 보시기에도 좀 이상하지 않아요? 말이 신토불이지 한국 영화 중에서 요즘 성공한 영화가 몇 개나 되나요? 그런 상황에서 한국 영화를 밀어준다? 전 이게 이해가 잘 안 가네요. 아무리 생각해도 돈 낭비로밖에 보이지 않거든요.”
“금산 철강의 사내 유보금이 그 정도로 여유롭나?”
말을 들은 윤기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거는 아직 모르죠. 일단, 작은아버지는 MEV의 평소 업무를 하시면서 대기해 주세요. 부탁드릴 일이 생기면 따로 말씀드릴 테니까요.”
“어? 아, 알았어.”
최철준이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최덕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녀석은 생김새하고 성격이 참 차이가 크단 말이야. 생김새로 보면 일제강점기 때 우미관을 차지해도 이상하지 않은데, 실제 성격은 착하고 허당 끼가 있단 말이지.>
그야말로 정확한 평가.
그렇기에 윤기 역시 픽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아버지랑 좀 비슷한 느낌이라 싫지는 않아요.”
그렇긴 하네. 네 아버지를 보면 곰도 때려잡을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로는 순박하잖냐.>
“5형제의 성격이 은근히 특색이 있어서 꽤 재미있기도 해요. 아, 4형제. 실수했네요.”
윤기가 명확히 선을 긋고 있을 때, 최덕배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이번 일은 어떻게 처리할 거냐? 금산 철강이면 딱히 들어 본 적도 없는 기업인데, 그 정도면 네 금력으로 그냥 찍어 누를 수 있지 않아?>
“예전에도 말한 것 같지만, 돈이 많다고 돈으로 이기면 그냥 돈 지랄이 될 뿐이에요.”
그래도 귀찮은 일을 좀 건너뛸 수 있잖아.>
윤기는 고개를 저었다.
“뭐, 가끔은 그래도 좋을지 모르죠. 하지만, 제 자산은 항상 그래도 될 정도로 여유로운 게 아니에요.”
어째서?>
“당장 제 재산으로도 할리우드 영화를 각 잡고 촬영하면, 20개 정도밖에 만들지 못해요.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아시겠어요?”
으음…….>
“그리고, 돈으로 이기는 버릇을 들이다 보면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생기게 돼요.”
뭔데?>
궁금해하는 최덕배를 향해 윤기가 동전 세 개를 꺼냈다.
“100원은 50원을 이길 수 있죠.”
역피라미드 형태로 겹쳐진 동전의 탑에 최덕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야 당연한 일이지.>
“그리고 500원은 100원을 이길 수 있고요.”
100원짜리 위에 500원짜리가 얹어졌다.
그렇지.>
“만약 100원이 저라면요?”
만약 네가 조선 시대 때 중인으로 태어났으면, 잡과 1등은 떼 놓은 당상이었을 거다.>
윤기가 말하고자 하는 것.
그것은 돈의 힘으로만 상대를 찍어누르다 보면, 언젠가 자신보다 돈이 많은 자에게 반드시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윤기가 현재 가진 자산은 1조가 넘어가지만, 한국에서나 최상위권 재벌이지, 세계로 확장하게 되면 100대 갑부 안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수준이니까.
“하지만 말이죠. 100원이 500원을 이길 수 있을 때도 있어요.”
윤기는 최덕배의 말에 대답하기보다는 자신의 말을 이었다.
그리고는 책상 위에 동전 3개를 대충 올려놓고는, 100원짜리 앞에서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만든 뒤 손을 가져다 댔다.
딱-!
딱- 딱-!
단 한 번의 손가락 튕기기로 바닥에 떨어진 두 개의 동전.
50원짜리와 500원짜리가 모두 나가떨어지자, 최덕배는 그야말로 혀를 내둘렀다.
네가 세자들의 교육 담당이 되어야 했어.>
최덕배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에 윤기가 씨익 웃었다.
“이런 이유로, 제가 단순히 돈빨로 상대를 누르려고 하지 않는 거예요.”
설명이 끝났다고 생각한 윤기는 수화기를 들어 최철규에게 전화를 하기 위해 다이얼을 돌리기 시작했다.
동전은 안 줍냐?>
“누군가가 청소하다가 저런 동전을 주우면, 그것도 나름 소소한 행복 아니겠어요?”
잠시 내려놓았던 수화기를 다시 올리려고 할 때, 갑자기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 * *
“여보세요?”
윤기의 대답에 수화기 너머에서 익숙한 영어 억양이 들려왔다.
[회장님, 저 콜린입니다!]현재도 할리우드에서 꾸준히 영화와 관련된 정보를 보내오고 있는 콜린.
윤기가 MEV 외화 순익의 2퍼센트를 보내 주고 있는 덕분에, 현재 콜린은 예전보다 더더욱 빠르고 정확하게 소식을 보내오고 있었다.
일종의 정보통이랄까?
그런 콜린이 이렇게 다급하게 전화를 해 왔다는 것은 응당 그에 상응하는 일인 것이 분명했기에, 윤기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예! 현재, 할리우드에 다시 자금이 유입되고 있습니다.]윤기는 ‘마피아 머니가요?’같은 식으로 반문을 하기보다는, 일부러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그것이 훨씬 빠르게 본론으로 들어가는 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회장님과 같은 한국인이 현재 할리우드에서 회장님이 재투자하지 않은 영화에 투자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들은 대부분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요!]“그 사람의 이름은요?”
[정확한 이름까지는 알아내지 못했지만, ‘미스터 오’라는 호칭까지는 알아냈습니다!]“좋은 정보였어요. 더 자세한 사항을 알아내면 다시 연락해요.”
[알겠습니다!]그야말로 텐션이 아주 높은 콜린의 보고를 끝으로, 윤기는 아예 최철규를 서재로 소환했다.
* * *
MEV의 등장은 한국 영화계에 두 가지 영향을 가져왔다.
하나는 서울에 있는 극장들이 죄다 경쟁력을 잃었다는 것.
스크린 하나 내지 두 개 정도만 걸고 부가적인 시설이 없는 극장들은 관객들에게 전혀 메리트를 주지 못했다.
오죽하면 강남에서 사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강동, 강서, 강북, 심지어 경기권에서도 주말만 되면 MEV로 놀러 오려고 할까?
강북에 와이케이 백화점 본점이 있다면, 강남에는 MEV가 있다.
그렇기에, 단순한 극장 구경은 더는 오락거리가 되지 못했다.
두 번째 영향은 바로 한국 영화계에 대한 직격탄.
사실, 스크린쿼터제는 P가 집권하던 66년부터 존재했지만, P의 집권이 정점에 달하는 유신 정권 때는 스크린쿼터제 역시 덩달아 극단적으로 강화되었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한국 영화 8편을 개봉해야만 외국 영화 1편을 수입할 수 있었는데, 이마저도 연간 40편의 제한이 존재했다.
이것은 당연히 ‘경쟁력 없는’ 한국 영화의 남발을 불러왔으니, 한국 영화계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앉아서 꿀을 빨던 시기였다.
하지만, 와이케이가 이러한 스크린쿼터제를 JD에게 입김을 넣어 폐지해 버린 것이다.
그러고 보니, 스크린쿼터인지 뭐시기 하는 것은 내 기억으로도 대충 이때쯤에 완화되긴 했지?>
최덕배의 생각처럼 원래 역사에서도 대충 이 시기에 스크린쿼터가 완화된다.
이유는 미국 때문.
영화 역시 무역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미국은 외화 수입에 대한 제한 해제를 요구했고, 한국은 이를 받아들여 외화 수입을 자유로이 허가한다.
더불어서 이루어진 스크린쿼터제의 완화.
그렇기에 지금 MEV에선, 어쩌다 보니 혼자 공포 영화를 보는 관객 옆에 자리를 잡고 함께 관람하는 최덕배의 모습은 원래 역사에서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는 얘기다.
“꺄아악!!”
아, 씨! 깜짝이야! 귀신 나오는 줄 알았네!!>
영화를 보다가 깜짝 놀란 관객이 소리를 질렀고, 최덕배 역시 그런 관객의 비명에 깜짝 놀라 툴툴거렸다.
물론, 저 멀리, 강서구에서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은 조금 다른 이유로 소리를 지르고 있었지만.
“오 회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이러다가 정말 나라가 망하게 생겼습니다!”
분위기는 똑같지만, 저번과 다른 중화요릿집.
더불어서 모인 사람들 역시 극장 사장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었다.
“정말, 요새 영화를 찍어도 개봉할 곳이 없습니다! 큰일 났어요!”
오정수 앞에서 비명을 지르듯 한탄하는 사람들의 정체는 이 시대 한국 영화계의 중진이라 할 수 있는 자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꿀을 독점한 자들이라 할 수 있었다.
“요즘 사정이 그렇게 어려우십니까?”
짐짓 모르는 척하는 오정수 회장의 말에 감독 중 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당장 서울에 있는 극장들만 해도 일부는 문을 닫았고, 나머지는 상영 횟수를 극단적으로 줄였습니다. 그나마, 요새 오 회장님 덕분에 다시 거래 이야기가 나오고 있기는 하지만, 예전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입니다. 이게 다 MEV 때문이에요!”
“MEV가 현재 문제가 되는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상대에게 답을 말하게 하는 오정수의 화법에, 감독은 곧바로 답을 내어놓았다.
“외화만 상영하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한국 회사면 당연히 한국 영화를 많이 상영해야지, 도대체 저게 뭐 하는 짓거리입니까? 외화를 상영해 봤자 코쟁이들 배만 불려 주는 것밖에 더 돼요? MEV의 사장은 그야말로 매국 빨갱이입니다!”
[[[맞아, 빨갱이야! 빨갱이!]]]시대가 만들어 낸 마법의 단어.
6·25 전쟁 때부터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빨갱이라는 단어는 사실, 상대가 정말 빨갱이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만약 JSD가 이들의 대화를 들었다면?
요즈음의 JSD라면 MEV를 욕하는 이들을 당장 남영동으로 끌고 갔겠지만, 이들은 이곳에 JSD가 없다는 행운을 안고 있었기에 MEV를 마구 성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점차 무르익는 분위기 속에서 오정수 회장이 비릿한 조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자, 여러분. 그런 의미에서 제가 좋은 제안을 하나 하겠습니다.”
* * *
[국내 기업을 살리자.] [국산기업 죽이는 와이케이를 몰아내자.] [MEV가 영화계를 망친다.] [살벌한 외화 유출, 나라 망하는 지름길]MEV를 제외한 서울 10개 극장에 걸린 플래카드.
이러한 플래카드와 더불어서 TV와 신문에도 MEV와 와이케이를 성토하는 내용이 차츰 보도되기 시작했다.
물론, 주류 수준은 아니다.
마석일이 아직도 기자들에 대한 접대를 총괄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어디서 솟아났는지 모를 돈이 신문사와 방송사에 밀려 들어가고 있는 만큼, 100퍼센트 막는다는 것은 무리가 있었고, 이러한 보도는 분명 효과를 거두고 있었다.
왜냐하면, 와이케이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은 분명히 있었으니까.
그것은 바로 와이케이와 비슷한 ‘생산자’들.
소비자 입장에서야 굳이 와이케이를 욕할 필요가 없었지만, 생산자들 입장에서는 와이케이만큼 죽이고 싶은 업체가 없었던 것이다.
당장 와이케이로 인해 경쟁력을 잃어 장사를 접어야 했던 사람들이 신나서 이러한 ‘반 와이케이 운동’에 참여했고, 덩달아서 보도에 홀린 평범한 사람들 일부가 이들에게 참여했다.
이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목소리를 낼 수 있었는데, 이상할 정도로 많은 인원들이 추가로 이들의 집회에 참여했다.
그것은 바로 오정수가 돈으로 고용한 가짜 시위꾼들.
사실상 가짜 시위꾼이 대부분이었지만, 진짜로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윗선에 자리를 잡고 시위를 주도하자, 효과가 점차 대단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었던 일반 시민들마저도 ‘정말 와이케이가 나쁜 건가?’하고 다시 생각해 볼 정도였으니까.
그야말로 ‘여론’이라는 것이 뭔지 알고 있는 오정수의 계략.
이러한 상황은 당연히 윤기에게 보고되었고, 윤기는 자신의 방에서 손민관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번 일에는 손 실장의 힘이 정말로 중요해요.”
씨익 웃는 윤기의 얼굴에는 부담감이란 일절 존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