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172)
#172화 최고의 광고 (1)
거실로 나간 윤기가 본 것은 할아버지와 부모님 앞에서 율동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정아의 모습이었다.
얼마 전에 국민학교에 입학한 정아.
정아는 8살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애교를 잃지 않았고, 덕분에 할아버지와 부모님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얼굴에 웃음을 달고 살았다.
‘생각해 보니, 나는 애교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
물론, 무미건조한 행동만 했던 것은 아니다.
할아버지한테 달려가서 안긴 적도 많고, 부모님이랑 같이 논 적도 많으니까.
하지만, 정아처럼 곰살궂은 애교를 떤 적이 딱히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어쩐지 정아한테 더 고맙네.’
8살밖에 되지 않은 정아가 이런 것을 알고 저런 애교를 떠는 것은 아니겠지만, 윤기는 자신이 하지 못한 일을 해 주는 정아에게 어쩐지 더 고마움을 느꼈다.
“앗, 오빠! 오빠아아아아!!”
정아는 문을 열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윤기를 발견하고는 바로 노래를 멈추고 윤기에게로 달려왔다.
“좀 더 하지, 귀여웠는데.”
달려온 정아를 높이 들어 올린 윤기의 말에 정아가 환히 웃으며 물었다.
“정말?”
“응. 오빠는 정아가 세상에서 제일 귀여워.”
“그럼, 다시 할래!”
정아는 윤기의 품에서 내려가더니 다시 TV 앞에 서서는 율동과 함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저런 정아가 중학생이 되면 ‘오빠, 재수 없어’ 같은 말을 한다는 말이지?>
‘그건 일본식이고 한국식은 조금 다르지 않을까요?’
한국식이면 ‘썅, 내 방 들어오지 말라고!’ 같은 건가?>
‘……정아는 그런 애가 되지 않을 거예요.’
나도 내 여동생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했었지.>
‘나이 차이가 얼마나 났는데요?’
5살.>
‘저는 그보다 더 나니까 괜찮을 거예요.’
하긴, 가끔 예외도 있는 법이니까.>
시간이 좀 더 흐르고 나서 정아는 조금 지쳤는지 율동을 멈추었고, 상황을 본 윤기는 정아에게 다가가 한쪽 무릎을 굽혀 눈높이를 적당히 맞추었다.
“정아야.”
“응?”
맑고 순수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정아를 향해 윤기가 미소와 함께 물었다.
“정말 텔레비전에 나가 볼래?”
* * *
정아가 잠든 밤.
거실에는 정아를 제외한 가족들이 모여 있었다.
“정말 괜찮겠니?”
조심스러운 박연지의 말에 윤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아라면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요. 예전에 캘리포니아에서도 그렇고, 정아는 감정 연기에 있어서 재능을 타고났다고 생각하거든요.”
말을 듣던 최기현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부분은 나도 인정할 수 있지. 그래서 정아한테 자주 당한다니까? 분명 우는 줄 알았는데 말을 들어주면 어느새 웃고. 아주 악동이야, 악동.”
허허거리며 웃는 최기현의 얼굴에는 손녀를 향한 사랑이 듬뿍 담겨 있었다.
“그래도 정아는 아직 어린앤데 그걸 잘할 수 있을지…….”
확실히 엄마로서의 입장이 있어서인지 박연지는 결정하기 힘들어했다.
“그렇게 따지면 윤기도 어릴 때부터 경영인의 역할을 했는데 못 할 것이 뭐가 있겠느냐?”
결단력 있는 최기현의 말이었지만, 박연지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윤기는 어릴 때부터 특별했으니까요. 하지만, 정아는 평범하게 느껴지거든요. 그래서 더 걱정돼요. 당신은 안 그래요?”
박연지의 말에 최철호는 잠시 고개를 기울이며 생각하다가 박연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냥 윤기랑 재능의 영역이 다른 거 아닐까?”
“재능의 영역이요?”
“응. 정아는 연기 쪽에 재능이 있을 수도 있는 거니까.”
“으음…….”
남편의 말에 마음이 살짝 움직였는지 박연지의 음색에서 걱정하는 톤이 조금은 사라졌다.
“애미야, 그렇게 걱정이 된다면 차라리 정아에게 결정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정아가요?”
“그래. 정아가 하고 싶다고 하면 하게 하고, 하기 싫다고 하면 시키지 않는 거지. 그게 우리 집안의 지침 아니겠느냐?”
최기현의 말처럼, 삼우 그룹은 핏줄이 하기 싫은 일은 시키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당장 결혼만 하더라도 정략 결혼을 원하면 시키고, 원하지 않으면 시키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박연지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는 게 좋겠네요.”
다음 날 아침, 학교에 가기 전, 정아는 가족들이 모인 거실에서 질문을 받았다.
“정아야, 오빠 말처럼 텔레비전에 나오고 싶어?”
엄마의 질문에 정아는 환히 웃으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결정됐다.
* * *
“예? 슈퍼 제네시스의 출시를 미루자고요?”
세가의 사장실.
나카야마는 윤기의 말에 깜짝 놀라 되물었다.
원래 일본의 어린이날인 5월 5일 ‘코이노보리’에 맞춰 5월 1일에 출시하려고 했는데, 이를 미루자고 하는 제안을 들었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예. 충분히 그럴 이유가 생겼어요.”
“어떤 이유인지 알 수 있을까요?”
바다 건너라고는 하지만, 윤기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꾸준히 소식을 듣고 있는 나카야마였기 때문에, 걱정하는 태도를 보일지언정 부정적인 태도는 보이지 않았다.
“간단해요. 광고 때문이죠.”
“광고요? 광고 계획은 이미 입안되어서 시행을 대기 중입니다만, 무언가 마음에 안 드시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질문을 받은 윤기는 상석에서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가볍게 잔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저었다.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는 건 아니에요. 광고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다만, 더 좋은 방법이 떠올랐을 뿐이에요.”
“더 좋은 방법이요?”
이미 세가는 신문과 TV, 그리고 상점가에 광고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런데 더 좋은 광고라니.
그렇기에 나카야마는 흥미를 느끼고 윤기를 바라보았다.
“영화를 찍을 생각이에요.”
“영화요?”
나카야마의 반문에 윤기는 테이블에 갈색 서류봉투를 올려놓은 후, 나카야마를 향해 가볍게 밀었다.
“이건……?”
“읽어 보세요.”
서류봉투 안에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가볍게 축소한 ‘시놉시스’가 들어 있었다.
[빠칭코의 신]“호오?”
제목에 흥미가 생긴 나카야마는 시놉시스를 찬찬히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2010년대에 웹 소설 광풍이 분 한국에서 ‘OO의 신’ 같은 제목은 단물이 다 빠진 제목이지만, 이 시대의 일본에서는 굉장히 신선한 제목이었다.
더군다나 빠칭코.
70년대에서 80년대까지 일본의 빠칭코 시장은 그야말로 버블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초고도성장을 이루었는데, 이로 인해 빠칭코는 일본 전역에서 흥행을 이루고 있었다.
90년대 한국 드라마 허준의 시청률을 가볍게 능가할 정도로 전 국민이 빠칭코를 즐기고 있다고 하면 적절한 표현일까?
빠칭코는 ‘슬롯머신’을 일본에서 부르는 방법인데, 기계에 달린 레버를 밑으로 내리면 화면에 그림들이 뜨고, 그림들이 일치하면 상품을 주는 성인용 게임이다.
한국 사람도 어떤 매체든지 한 번쯤은 보았을 물건.
하지만, 그렇기에 나카야마는 의문을 가졌다.
“슈퍼 제네시스를 홍보하는 데 빠칭코를 쓰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내용을 좀 더 읽어 보세요.”
“앗, 죄송합니다.”
나카야마는 자신의 실책을 깨닫고는 시놉시스를 끝까지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오! 아! 오오! 이거 통합니다! 백 퍼센트 통해요!”
연신 감탄사를 터뜨린 나카야마의 말에 윤기는 대답 대신 미소를 머금었다.
“이건, 구매층을 확실히 겨냥한 시나리오입니다. 이걸 본 성인들이 자식들에게 슈퍼 제네시스를 사 주지 않을 리가 없어요!!”
영화의 주 내용은 주인공이 빠칭코로 승승장구한다는 내용이다.
애초에 확률 놀음인 빠칭코지만, 주인공이 환상의 운을 가져서 언제나 승리한다는 내용.
분명 빠칭코 위주의 영화지만, 내용에는 슈퍼 제네시스가 간접 광고로 들어갈 예정이었다.
“부모가 빠칭코를 하러 가도 자식들이 집에서 슈퍼 제네시스로 똑같이 즐거움을 느낀다. 이건 정말 통할 수밖에 없죠!”
빠칭코가 흥행을 하면서 일본 전역은 한 가지 몸살을 앓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부모가 빠칭코를 하러 종일 집을 비우기 때문에 자식이 방치된다는 것.
하지만 슈퍼 제네시스를 사 주면 자식도 부모처럼 즐겁게 집에서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영화의 광고 메시지였다.
“어떤 의미로는 회장님이 아이들의 구원자가 되시겠군요. 그렇지 않아도 요즘 아이들이 부모가 없는 어두운 집에서 혼자 있다는 기사들이 많은데, 적어도 심심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일본을 지극히 체감하고 있는 일본인인 나카야마의 말이었으니 틀림없었다.
어차피 일본에 흥행하고 있는 빠칭코의 파도는 절대로 막을 수 없다. 역사의 큰 흐름이니까.
하지만, 이러한 흐름을 이용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게다가 시대는 80년대.
간접 광고에 있어서 얼마든지 수를 발휘할 수 있는 시대였기 때문에, 윤기의 이러한 전략은 슈퍼 제네시스의 출시를 미룰 이유로도 적합했다.
“영화의 배경을 85년 8월로 설정하시다니. 그렇다는 것은 출시를 8월에 하자는 뜻이시군요?”
눈치 빠른 나카야마의 말에 윤기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해요.”
“이 정도면 연기할 이유로 충분합니다. 개발자들을 비롯한 직원들은 제가 설득할 테니 걱정은 푹 놓으십시오.”
흥분한 나카야마를 바라보던 윤기가 씨익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6개월 뒤에 출시하는 것으로 생기는 이득이 하나 더 있어요.”
“어떤 건가요?”
“바로, 하드웨어의 제조 비용이죠.”
“아……!”
슈퍼 제네시스의 제조 비용은 패미컴에 비해서 비쌌다.
물론, 하드웨어의 마진을 최대한 낮추었기 때문에 가격에 있어서는 패미컴과 큰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제조 단가는 제조사 입장에서 상당한 리스크.
그런데 출시일을 6개월 후로 미루면, 추후 생산되는 제품들에 대한 단가가 상대적으로 낮아질 수 있었다.
당장 컴퓨터 부품들의 가격만 봐도 6개월이란 시간이 지나면 가격이 내려가는데, 이러한 부품들을 사용하는 슈퍼 제네시스의 단가 역시 낮아질 테니까.
“그리고 이건 우리 둘 사이의 기밀이지만, 이 사람과 자주 만남을 가지도록 하세요.”
“네? 여기는……?”
윤기가 건넨 것은 다름 아닌 명함.
그곳에는 ‘앤드류’라는 이름이 박혀 있었다.
하버드에서 조교수 일을 하던 앤드류가 드디어 윤기의 밑으로 들어온 것이다.
“슈퍼 제네시스에 들어가는 부품들을 위주로 연구하는 제 독자적인 회사예요. 하버드 그리고 그에 준하는 대학원들의 수재들을 모아놓은 회사죠.”
“회장님, 그건 설마……?”
“슈퍼 제네시스에는 세컨드 파티에 부품 참여 권한을 주었죠. 하지만 슈퍼 제네시스 2는 우리가 다 먹을 겁니다.”
이미 몇 수는 앞서 있는 윤기의 지략에 나카야마는 입을 떡 벌렸다.
“자, 그러면 저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게요. 영화를 제작해야 하니까요.”
“예, 다녀오십시오!”
120도로 허리를 숙이는 나카야마를 뒤로 한 채, 윤기는 세가의 사장실을 나섰다.
* * *
MEV 스튜디오.
그곳에서 현재 일본에서 한창 주가가 떠오르고 있는 일본의 배우가 연기를 하고 있었다.
영화는 한국에서 찍더라도 주연 배우는 일본인을 써야 한다.
완전한 일본 내수의 영화를 촬영하는 이상 이 정도 지출은 당연한 일이었기에, 윤기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이미 최덕배를 통해 사생활이 연예인치고는 깨끗하다는 것도 파악한 일본의 배우 타네다 히로유키.
이목구비가 확실한, 야성적인 장발의 타네다 히로유키는 빠칭코 영화에 걸맞은 최고의 배우였다.
‘드디어 그 씬이구나……!’
윤기는 미소를 지으며 촬영장을 바라보았다.
일본의 게임 가게가 연출된 스튜디오.
그곳에서 게임 가게 주인의 역할을 하는 단역이 패미컴과 슈퍼 제네시스를 진열장 위에 올려두고 먼저 대사를 치기 시작했다.
“패미컴은 8비트고, 슈퍼 제네시스는 16비트입니다. 손님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면 8비트 패미컴을…….”
말을 듣던 타네다가 주인의 말을 화끈하게 끊었다.
“됐고! 더블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