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177)
#177화 권력자의 치욕 (1)
생각할 시간?
그런 것은 애초에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자리를 피하기 위한 말이었을 뿐.
최기현의 차량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청와대였다.
“아니, 이렇게 찾아오시다니…… 잘 오셨습니다.”
약속 없이 JSD와 만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
그중 한 명이 바로 최기현이었기 때문에, 최기현은 일부러 사전에 연락하지 않고 JSD를 찾았다.
물론, 이러한 일이 반복된다면 JSD의 심기를 거스르겠지만, 지금까지 최기현은 약속 없이 JSD를 방문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방문의 효과는 상당히 컸다.
왜냐하면, JSD의 머릿속에는 ‘왜 최기현이 방문했을까?’ 하고 여러 가지 궁금증이 떠오르기 시작했으니까.
“공사가 다망하실 텐데, 제가 시간을 빼앗은 건은 아닌지 송구스럽습니다.”
최기현의 말에 JSD가 절대 그렇지 않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어느 분의 방문인데 제가 거절하겠습니까. 정말 잘 오셨습니다. 커피가 좋으십니까, 아니면 다른 것이 좋으십니까?”
“음……, 사실 지금은 마실 것보다는 긴급하게 보고드릴 사안이 있어서 찾아온 것입니다.”
최기현의 표정이 조금 심상치 않아 보이자, JSD는 무언가 있다는 생각에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상석.
하지만, 허청원의 상석과 달리 JSD가 상석에 앉는 것은 일종의 관례였기에 분위기에는 전혀 잡음이 생기지 않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회장님께서 그런 표정까지 지으실 일이라면……?”
“음……, 제가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솔직히 걱정됩니다.”
“예? 아니, 제가 앞에 있는데 무엇을 걱정하신다는 말씀이십니까?”
JSD는 5공화국의 황태자.
그렇기에 JSD는 최기현이 자신의 앞에서 말 꺼내기를 주저하는 모습에 오히려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경호실장님.”
“말씀하십시오.”
“저는 그저 제가 겪은 일을 솔직하게 말씀드릴 뿐입니다.”
“예, 그저 말씀만 하십시오. 어떤 녀석이 감히 회장님의 심기를 이리도 불편하게 했다는 말입니까?”
자신을 거의 상전처럼 받들다시피 대접하는 최기현의 다소 의기소침한 모습에, JSD는 아직 정체를 알 수 없는 대상에 대한 분노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저는 아까, 외교부장관님의 호출을 받았습니다.”
“예-?”
아무리 JSD라고 해도, 지금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3허.
5공화국의 황태자가 JSD라면, 3허는 공작이다.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상대의 이름이 나왔으니, JSD 역시 자동으로 긴장된 태도를 갖추었고, 어느새 실내에는 극한의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사실 호출의 이유는 별것 아니었습니다.”
JSD의 긴장이 아주 살짝 풀렸다.
“무슨 이유였습니까?”
“저는 현재 일본에서만 상영할 영화를 하나 준비 중에 있습니다. 빠칭코의 신이라고, 일본에서 곧 발매할 슈퍼 제네시스의 간접 광고용 영화지요.”
“호오, 그렇습니까? 나중에 한번 보러 가야겠군요.”
영화라는, 생각보다 가벼운 주제였기에 JSD의 얼굴에 가벼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나중에 경호실장님을 위한 1인 시사회를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뭐, 그럴 것까지야 있겠습니까. 하하핫.”
긴장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하는 JSD를 확인한 최기현은 좀 더 긴장을 풀게끔 대화의 맥을 이어 나갔다.
“장관님께서 그러시더군요. 그 영화에 나올 아역 배우를 자신의 손녀로 정하면 어떻겠냐고 말이지요.”
“아, 그렇군요. 허 장관님의 맏손녀가 현재 연예계 생활을 하고 있지요.”
“네. 사실, 그 영화에 나올 아역 배우는 이미 제 손녀인 정아를 배정해 놓았습니다만…….”
JSD는 긴장이 너무 풀린 탓인지 자기도 모르게 최기현의 말을 끊었다.
“아, 그러면 혹시 그걸 막아 달라고 저에게 찾아오신 것입니까? 흠……, 그거라면…….”
JSD는 자신이 직접 허청원을 찾아가서 이야기해 볼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최기현은 심각한 표정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런 일이라면 이렇게 경호실장님을 찾아올 이유도 없었지요. 그저 제가 양보하면 될 일이니까요.”
갑자기 긴장감이 고조되자 JSD의 표정이 처음 대화를 할 때보다 심각하게 변했다.
맏손녀의 배역을 빼앗기는 일은 심각한 일이지만, 그래도 웃을 수는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게 별거 아닌 일이라면 도대체 어떤 일이란 말인가?
JSD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을 무렵, 최기현이 본론이라는 이름의 칼을 칼집에서 꺼냈다.
“아무래도 장관님은 3년 후에 자신이 대권을 잡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예? 뭐, 뭐, 뭐, 뭐라구요?”
소스라치게 놀라는 JSD의 모습을 확인한 최기현은 속으로 득의의 미소를 지었지만, 겉으로는 심각한 표정을 유지했다.
“제 손녀 대신 장관님의 손녀를 배역으로 쓸 경우, 3년 뒤에 저를 잘 봐주겠다고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처음에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는데, 생각해 보니까 3년 뒤면……. 솔직히 저는 지금 두렵습니다. 저는 그런 생각을 정말 상상도 해 본 적이 없는데…….”
“이런 미친……! 그게 정말입니까? 정말로 허 장관님이 그런 말을 했다는 겁니까?”
“예, 그렇습니다. 그냥 단순히 3년 뒤에 저를 잘 봐주겠다는 말씀이셨을지도 모르지만, 그냥 넘길 수가 없어서 경호실장님을 찾아온 겁니다. 먼저 각하께 보고를 드리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것은 각하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이 될지도 몰라서……, 부득이하게 경호실장님을 찾아왔습니다. 죄송합니다.”
JSD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정말 잘 오셨습니다. 그런 망발을 하다니……. 혹시 이 사실을 다른 곳에 말씀하셨습니까?”
JSD는 이미 최기현이 진실을 말한 것이라고 확신했다.
증거 하나 없는, 어디까지나 내용만을 전달한 상황.
이러한 JSD의 반응은 최기현을 신뢰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아닙니다. 방금 장관님과 만남을 끝내고, 바로 경호실장님을 찾아온 겁니다.”
JSD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하셨습니다. 제가 각하께 보고 드려서 처리할 테니, 그 사실은 아무한테도 말씀하시지 마십시오.”
“여부가 있겠습니까. 저는 그저 경호실장님만 믿겠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장관님도 상당히 무서운 분이라…….”
짐짓 두려운 표정을 짓는 최기현을 향해 JSD가 고개를 끄덕였다.
“염려 마십시오. 절대 회장님께는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JSD의 자신감과 달리, 보고하는 순간 최기현이 얽힐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 * *
때아닌 대통령의 호출.
허청원은 자신이 왜 불리었는지, 전혀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갔을 때, 무언가 상황이 이상하다는 판단은 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JD의 얼굴이 삶은 낙지처럼 시뻘겋게 변해 있었으니까.
“야! 허청원!”
집무실에 들어가기가 무섭게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치는 JD의 모습.
그걸 본 허청원의 안색이 급속도로 질리기 시작했다.
“무, 무, 무슨 일이십니까?”
아직도 무슨 일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는 듯한 허청원의 태도에 JD가 더욱 핏대를 세웠다.
“뭐? 무슨 일? 그걸 몰라서 물어?”
“저, 저는 진짜로 모르겠습니다. 혹시 제 밑의 애들이 사고라도 쳤습니까?”
“이런 썅!”
JD는 자신의 재떨이를 허청원을 향해 던졌고, 허청원은 반사적으로 재떨이를 피했다.
“악!”
괜히 뒤에 서 있다가 재떨이에 이마를 맞은 비서실장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웅크렸고, JSD는 그런 비서실장을 바깥으로 내보내고는 다시 문을 닫았다.
“뭐? 3년 뒤? 잘 봐줘? 이 개새끼가 어디서 그런 망발을 지껄이고 다니는 거야!”
그제야 허청원은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이, 이, 이……, 빌어먹을 영감탱이! 꼰질렀구나!!’
자신의 앞에서는 분명 긍정적으로 고려하겠다며 비굴한 미소까지 지은 최기현 회장.
그런데 정작 자신과의 만남이 끝나자마자 이곳으로 달려온 것이다.
“아, 아닙니다. 오해십니다, 각하!”
일단 어떻게든 변명을 해야겠기에, 허청원은 속내를 숨기며 JD 앞에서 고개를 조아렸다.
“오해는 무슨 오해!”
아예 JD는 허청원의 앞으로 다가와 장딴지를 걷어찼다.
“크윽!”
자신도 모르게 주저앉아 버렸지만, 허청원은 필사적으로 변명을 토해냈다.
“정말 오해십니다! 3년 뒤에도 각하께서 재임하실 것이 분명하기에 잘 봐주겠다고 한 겁니다! 각하께서 재임하신다면, 저도 계속 각하의 옆자리를 지키지 않겠습니까?!”
필사적인 변명에 JD의 움직임이 멎었다.
하지만, 씨근거리는 것은 여전한 상황.
“그게 정말이냐?”
뭔가 돌파구가 생겼다는 생각에 허청원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습니다. 제가 누구 안전이라고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그럼, 네 맏손녀 연예계에서 은퇴시켜!”
“예? 예엣?!”
기겁하는 허청원을 향해 JD가 으르렁거렸다.
“왜, 맏손녀 인기로 대권 잡아야 하니까 은퇴 못 시키겠어?”
살기등등한 JD의 눈초리를 확인한 허청원은 결국 고개를 떨구었다.
“아, 아닙니다. 각하의 뜻대로 하겠습니다.”
“오늘 무조건 은퇴시켜. 만약, 내일부터 내가 TV 보는 데 네 맏손녀 얼굴 보이면, 넌 아주 박살 날 줄 알아.”
“가, 각하. 아무리 그래도 이미 찍어 놓은…….”
“이 새끼가!”
“크윽!”
나머지 장딴지마저 까인 허청원은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 알겠습니다……. 크윽…….”
“꺼져! 나가!”
허청원은 양발을 절뚝거리며 집무실을 나갔고, 허청원이 나가고 나서 한참을 씨근거리던 JD가 JSD를 향해 말했다.
“네 말대로……, 저 새끼 대권 생각 있었네. 손녀 은퇴시키라니까 고민을 좀 한 거 보면.”
JSD는 허청원이 맏손녀로 대중적 인기를 얻은 후 대권을 노리려는 게 아니냐는 조언을 했고, JD는 그럴듯하다고 여겼기에 기본적인 흥분에 연기의 흥분을 얹어서 허청원의 맏손녀를 강제로 은퇴시킨 것이었다.
“새애끼. 내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는데 대권을 노려? 설사 내가 대권을 잡지 못하더라도 저 새끼는 아웃이야.”
허청원의 미래가 결정되었다.
* * *
권력자 중에서도 상위권만 출입할 수 있다는 서울의 최고급 요정.
유명 연예인들이 드나든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화려한 이 요정에 3허가 모여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다만, 평소와 달리 옆에 한복을 입은 연예인들이 없는 것이 나름 심각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분명했다.
“쯧쯧쯧, 그런 말은 철저하게 믿을 수 있는 사람 앞에서만 해야지. 방심했구만?”
좁은 이마에 얇은 코가 인상적인 장난기 가득한 표정의 허도일이 혀를 차며 허청원에게 술을 한 잔 따라주었다.
“이 친구, 요새 감을 잃었어. 권력을 잡았다고 해서 모두 충성을 바치는 건 아니라는 걸 몰랐나?”
붉은 얼굴과 큰 눈, 얇은 입술이 인상적인 허성수가 허청원에게 오징어 다리를 하나 건네주며 마찬가지로 혀를 찼다.
“지금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거야?”
성을 내는 바람에 허도일이 따라 준 술이 술잔에서 흘러나왔고, 덕분에 허도일은 다시 술을 채워 줘야만 했다.
“아이고, 이 사람이. 우리가 하루 이틀 알고 지낸 사이야? 우리가 봐도 답답하니까 그렇지. 우리한테 성내지 말고, 일단 한잔해.”
다시 채워진 술잔을 입으로 가져다 댄 허청원은 단숨에 술잔을 비웠다.
“푸후-! 빌어먹을 늙은이 같으니라고. 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오늘 본 치욕을 갚아 주고 말겠어.”
허청원의 씨근거림에 허도일과 허성수는 쓴웃음을 지었고, 허성수가 둘을 대표하여 입을 열었다.
“삼우를 건드리게? 아니면 와이케이를? 자네도 미니 백화점에서 재미 쏠쏠히 보고 있잖아?”
“그깟 미니 백화점! 필요 없어!”
“이야, 이 친구 아주 마음을 단단히 먹었는데? 그래, 어떻게 치욕을 갚아 줄 건데?”
허성수의 물음에, 허청원은 술잔을 탁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각하께, 나를 국세청장으로 보내 달라고 요청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