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18)
#18화 자본금 1,500달러 (3)
빌 게이츠는 물론이고 그 뒤의 직원 두 명, 거기에 콜슨 준장까지.
그나마 덜 놀란 것은 류근태 정도였지만, 류근태마저도 이 정도 금액을 투자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한 듯, 눈을 떴다 감았다 하며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분명, 이 아이가 잘못 말한 거겠지?’
동양의 아이치고 영어를 어느 정도 하기는 했지만, 윤기의 영어는 확실히 어눌한 면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류근태에게서 영어를 배우고 있다고는 하지만, 류근태 역시 네이티브 발음이 아닐뿐더러, 과외 시간 자체가 그리 길지 않았다.
대부분이 독학을 통해 배운 것이다 보니 당연히 어눌할 수밖에.
그렇기에 빌 게이츠는 아이가 7백 달러, 잘해야 7천 달러를 말하려다 ‘영어를 잘 몰라서 잘못 말한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하며 다시 미소를 지었다.
“그래, 700달러를 투자하고 싶다고?”
빌 게이츠의 말에 다른 사람들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우리가 잘못 들은 거겠지.]하지만, 윤기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금액을 정정했다.
“아니요. 70만 달러요.”
빌 게이츠는 오른손으로 안경을 고쳐 쓰며 직원에게 종이와 볼펜을 받은 뒤, 윤기에게 내밀었다.
“숫자로 한번 써볼래?”
“네!”
볼펜을 건네받은 윤기가 숫자를 쓰기 시작하자, 빌 게이츠는 종이에 그려지는 숫자를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7
70
700
‘그래, 역시 700달러겠지?’
하지만 종이에는 쉼표가 찍혔다.
700,
‘아, 혹시 자국 화폐 단위를 말한 건가?’
분명 달러라는 말을 들은 것 같았지만, 빌 게이츠의 상식은 자신의 청각보다는 경험에 따른 판단을 지지했다.
700,000
‘그래, 뒤에 분명히 달러가 아닌 다른 표시가 붙을 거야.’
하지만 빌 게이츠의 생각, 아니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쌓아 올린 상식이라는 토대가 산산이 부서졌다.
700,000$
“이렇게 투자할 거예요!”
숫자와 기호까지 완벽한 종이에 빌 게이츠는 일단 콜슨 준장을 바라보았다.
“아, 내 외손자는 한국 100대 기업의 맏손자라네. 그 정도 금액을 당장 가지고 있는지는 나도 모르지만, 그걸 지불할 능력은 충분히 있을 거야.”
말을 들은 빌 게이츠가 다시 윤기를 바라보았다.
“지불할 수 있어요. 지금 당장 지불할 수 있는 건 20만 달러, 남은 50만 달러는 5년에 걸쳐서 매년 10만 달러씩 투자할게요.”
윤기는 경영학을 배우면서 ‘충격’이라는 단어를 따로 좋아하게 되었다.
물론 경영학 용어는 아니지만, 자기가 살아오면서 ‘충격’이라는 단어에 많이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노가다 임금을 올려 준다고 할 때, 큰 액수를 제시해 놓고서는 뒤로는 공제할 건 아주 죄다 공제했었지.’
임금을 올려 달라고 불평이나 건의를 했을 때, 업체가 자신을 비롯한 노가다 동료들에게 사용한 방식.
그 방식을 무려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사용한 것이다.
만약 윤기가 처음에 20만 달러를 이야기하고, 이후에 50만 달러의 추가 투자를 이야기했다면?
70만 달러를 꺼낸 것만큼의 효과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어…… 음……, 70만 달러는 작년 기준 우리 회사의 매출 7배에 해당하는 금액인데, 그걸 우리 회사에 투자하겠다는 거니?”
“네! 방금 개인적인 투자라도 반드시 받아 준다고 하셨잖아요. 저는 꼭 이 회사에 투자하고 싶어요.”
빌 게이츠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 이건 내가 개인적인 투자로 받아 줄 수 있는 범위가 아니야. 그러니까, 나와 팬의 관계가 아니라 사장과 투자자의 관계가 되는 거지, 아니 되는 겁니다.”
빌 게이츠의 말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하는 것처럼 매우 공손하게 바뀌었다.
“아저씨, 서류들을 빌 게이츠 아저씨에게 보여 주세요.”
윤기의 말에 류근태가 미리 준비해 온 금융 관련 서류들을 빌 게이츠에게 넘겼다.
그러자 빌 게이츠는 서류들을 확인하고는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나를 이렇게까지 알아봐 주는 사람이 부모님도 아니고, 할아버지도 아니고, 미국도 아니고, 바로 일본 옆의 대한민국이라는 작은 나라에 있었다니…….’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빌 게이츠는 가난한 집이 아닌 금수저 출신이다.
빌 게이츠의 아버지는 시애틀 최고 로펌의 경영자였고, 어머니는 퍼스트 인터스테이트 뱅크 시스템의 이사 임원이었으며, 할아버지는 은행의 창업자이자 빌 게이츠에게 선물로 포르쉐를 줄 정도로 재력가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조차도 빌 게이츠의 진짜 꿈에 있어서 ‘재력만큼의 투자’는 해 주지 않았다.
이들은 빌 게이츠가 하버드를 졸업해서 자신들이 깔아 준 레일 위를 달려 주길 바랐지, 컴퓨터 회사를 창업하길 바라진 않았으니까.
물론 재력가답게 지원을 어느 정도 해 준 것도 사실이고, 이후 IBM 등과의 소송에서도 부모의 인맥이 적용한 것도 사실이지만, 77년, 윤기가 찾아온 이 시점에서의 빌 게이츠는 분명 ‘집안 재력’에 걸맞은 지원은 분명히 받지 못하고 있었다.
“다시 한번 묻고 싶습니다. 저희 회사는 현재 매출액 10만 달러의 작은 회사입니다. 그래도 투자를 하실 건가요?”
“네. 저는 제가 좋아하지만 할 수 없는 것을 해 주는 아저씨에게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투자를 하고 싶을 뿐이에요.”
여기까지 대화가 이루어졌을 때, 조용히 서 있던 직원 중 하나가 빌 게이츠를 향해 귓속말을 건넸다.
“빌, 액수가 커도 너무 커. 이건 자칫하다간 경영권을 빼앗길지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너희 부모님께 지원을 받는 것도 아니고, 저 꼬마한테 이런 큰 금액을 받는 건 너무 위험한 것 아닐까? 저 꼬마는 그럴 생각이 없을지 몰라도, 주변 어른들이 꼬드기면 혹시 모르잖아.”
“폴, 네 생각도 맞기는 한데, 우리가 지금 이 투자를 받으면 MITS와의 소송에서도 분명 숨통이 트일 거야. 우리 부모님의 인맥이나 지원을 받을 필요가 없는 거라고.”
“그렇지만…….”
지금까지 조용히 서 있었던 직원 중 한 명은 바로 폴이었다.
심지어 다른 한 명은 스티브 발머.
비록 마이크로소프트에 입사하려면 아직 3년이 남은 시점이었지만, 친구의 회사에 놀러 왔을 때 미군 준장이 찾아왔다는 소리를 듣자 흥미가 생겨 자리를 지킨 것이다.
물론 윤기는 이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나마 TV나 신문, 그리고 책을 통해 ‘나이 든 빌 게이츠’의 모습을 알고 있었고, 그를 토대로 젊은 시절의 빌 게이츠를 알아볼 수는 있었지만, 폴과 스티브까지 알아보는 것은 무리였던 것이다.
애초에 홍진호를 제외하면 사람들은 2등을 잘 기억하지 못하니까.
“스티브 네 생각은 어때?”
빌 게이츠가 스티브에게 귓속말로 묻자 스티브가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일단 계약서를 작성해 봐, 그리고 계약서에 우리 경영권을 지킬 조항을 넣자고 해 보자고, 그게 반려되면 투자 액수를 낮춰서 다시 의사를 타진하고, 그래도 협의가 안 되면 포기하는 건 어때? 생판 외국인도 아니고 어쨌든 할아버지가 미군 준장인 데다가, 앤더슨 교수님의 추천이 있었으니 괜찮을 거 같은데. 게다가 이 투자로 회사가 커지면 빌 너희 부모님이나 할아버지한테서 구걸 원조가 아니라 진짜 투자가 들어올 수도 있잖아.”
“알았어, 그렇게 해 볼게.”
두 명을 다시 뒤쪽으로 보낸 빌 게이츠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투자 계약서를 작성해 볼까 하는데, 이분하고 협의를 하면 되는 거니?”
류근태가 지목당하자 윤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본적인 사항은요. 물론 저도 내용은 알고 싶어요.”
빌 게이츠는 고개를 끄덕였고, 곧바로 류근태와 투자 계약서의 작성을 시작했다.
대기업과 대기업 사이의 투자협약이나 M&A라면 하루 이틀로 끝날 일이 아닌 데다가 지루한 협상이 계속되었겠지만, 지금은 중소기업에 대한 일방적인 고액 투자.
그렇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았다. 중간에 자문 역할을 하는 직원이 와서 몇 가지 조정을 하긴 했지만 역시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았다.
“특약 사항으로 경영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만……. 아무래도 저희 매출을 아득하게 뛰어넘는 액수다 보니, 이 점에 있어서는 저희들의 자율권을 보장받고 싶습니다.”
빌 게이츠는 매출을 이야기했지만, 순익을 기준으로 생각해 보면 윤기가 투자하는 금액은 정말로 엄청났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순익률이 10퍼센트라고 치면, 윤기는 순익의 70배에 달하는 금액을 투자하겠다고 공언한 것이니까.
제일 방직 사장 월급만큼의 용돈을 받는 윤기의 현재 1년 용돈은 결코 적지 않은 수준.
더군다나 이걸 지난 2년 3개월 동안 다양한 방법으로 불려왔다.
애초에 사치로 돈을 쓸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사실상 100퍼센트 투자금으로 사용하며 상당한 금액으로 불려놨다.
물론, 그 과정에는 어머니인 박연지, 그리고 최근에는 류근태의 도움이 컸지만 말이다.
따라서 윤기는 땅을 매집하면서도 이 금액을 투자하는 데에 무리가 없었지만, 투자를 받는 빌 게이츠 입장에서는 액수의 부담감이 너무 컸다.
“자율권이라는 게 어느 정도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윤기의 말과 더불어 류근태가 첨언했다.
“호기심으로 물어보시는 것이니 부담가지지 않으셔도 될 듯합니다.”
류근태의 말에 빌 게이츠가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대답했다.
“회사를 우리들의 계획을 통해서 운영하고 싶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무래도 지금까지 해오던 것이 있는데, 갑자기 다른 강한 의견이 들어오면 우리들의 사기가 떨어질 수가 있으니까요.”
“그거야 당연한 것 아닌가요? 저는 컴퓨터를 좋아하지만 잘 몰라요. 하지만 아저씨는 잘 알잖아요. 그러니 이 회사의 경영은 당연히 아저씨가 하셔야죠.”
윤기의 말에 빌 게이츠는 물론 폴과 스티브의 얼굴에도 안도의 미소가 떠올랐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회사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해서 저는 아무 소식도 듣지 못하는 건가요?”
빌 게이츠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닙니다. 비록 저희가 상장 회사는 아니지만 사실상 대주주가 되시는 거니까, 일이 있을 때마다……, 아니 한 달에 한 번씩 원하신다면 우편을 통해서 회사의 상황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좋아요! 그런데,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어떤 건가요?”
약간 마음을 놓은 빌 게이츠의 물음에 윤기가 가장 중요한 쐐기를 위한 발판을 놓았다.
“아저씨가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까, ‘약속’을 하지 않으면 투자를 많이 한 사람은 회사에 간섭을 할 수 있다는 거잖아요?”
“그렇지요.”
“그렇다면 투자를 많이 한 사람끼리 뭉치거나 갈라져서 회사에 서로 다른 의견을 낼 수도 있겠네요?”
“맞습니다.”
류근태가 옆에서 첨언했다.
“도련님은 현재 후계 준비를 위해 경영 공부를 하고 계십니다. 대략 경영대학생 2학년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류근태의 말에 빌 게이츠가 살짝 놀라며 윤기의 말을 경청했다. 만약 자율권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 말을 들었으면 빌 게이츠의 긴장은 풀리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제 생각이 맞다면, 아저씨가 걱정하시는 건 제가 주식 지분을 독점해서 회사를 힘들게 하는 거잖아요. 이렇게 하면 어때요? 회사가 주주 배정 방식으로 신주를 배정할 때, 저의 우선권은 49퍼센트까지 한다는 걸로요. 여기에 주주 배정 방식으로 할 경우, 신주 발행에 대해서 제 의결권은 없다는 특약을 넣으면 되지 않을까요? 여기에 의결권 배제가 아닌 제한으로 넣으면 아저씨가 원하는 타입의 투자가 될 것 같아요.”
윤기의 조건을 따르게 될 경우, 투자 직후 윤기의 지분율은 99퍼센트가 되지만, 끊임없는 방어 투자가 이루어지면 결국 50퍼센트 밑으로 떨어지게 된다.
하지만, 그동안 윤기 역시 신주의 49퍼센트를 가능한 매입할 것이기 때문에 추후에도 마이크로소프트의 제1주주가 될 가능성은 제일 높았다.
어차피 지분 독점을 해 봤자, 그로 인해 빌 게이츠가 의욕을 잃으면 모든 것이 말짱 황.
윤기 입장에서는 적당한 선에서 양보를 하면서도 최대한의 이득을 끌어내는 조건이었고, 빌 게이츠의 입장에서도 아직 중소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에 있어서 엄청 우호적인 투자로 여겨졌다.
“잠시만요.”
말을 들은 빌 게이츠가 폴과 스티브를 돌아보자, 둘 다 조금 고민한 뒤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의 70만 달러는 굉장히 큰 투자 금액이지만, 제시된 조건대로라면 회사의 성장 정도에 따라 충분히 따라잡을 수도 있으니까.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죠.”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는 비상장 회사니까, 상장 전까지는 배당을 의무화했으면 해요. 순익 대비 배당률은 35퍼센트 정도가 어떨까요?”
비상장 회사의 주식은 사실상 휴지 조각이나 다름없다는 것은 사실이었기에 이 조항에 대해서는 빌 게이츠 역시 거절할 수가 없었다. 당장 뒤에 서 있던 폴과 스티브 역시 고개를 끄덕였으니까.
“그렇게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투자했다는 사실은 비밀에 부쳤으면 해요.”
“비밀로요……?”
빌 게이츠의 물음에 윤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괜히 제가 주목을 받아서 아저씨가 주목받지 못하는 건 싫거든요. 전 아저씨의 길을 보고 싶은 거지, 거기에 끼어들고 싶진 않아요.”
“정말로 비밀에 부치는 게 나을까요?”
“네.”
윤기의 재차 이어진 동의에 빌 게이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빌 게이츠가 윤기에게 악수를 청하자, 윤기는 작은 손으로 빌 게이츠의 손을 맞잡았다.
“형이라고 불러도 돼요?”
윤기의 말에 빌 게이츠가 대주주를 상대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전전긍긍했지만, 폴과 스티브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내 빌 게이츠 역시 씨익 웃었다.
“그래, 꼬마, 아니 윤기야. 앞으로 이 형을 잘 부탁할게.”
편의점 알바와도 악수를 못 했던 인생이 전생에서 세계 최고의 거부였던 사람과 악수를 하는 인생이 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