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187)
#187화 제대로 팔아 보자 (2)
‘그래! 바로 그거야!’
윤기가 시선을 집중한 곳은 다름 아닌 주연 배우 타네다 히로유키의 손목.
딱히 장신구가 없는 상태였지만, 그렇기에 더욱 윤기의 시선을 끌었다.
‘그래, 좀 더 확실한 구매 요인을 만들어 두는 게 훨씬 낫겠지!’
바로 서재로 가려던 찰나, 정아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촬영 중인데도 쪼르르 달려와 안기는 정아의 모습.
“컷! 컷!”
감독이 황급히 컷을 외쳤고, 어느새 촬영장의 모든 시선이 윤기에게로 집중되었다.
“어이쿠, 조용히 보고 가려고 했는데, 우리 정아가 오빠를 다 봤네?”
“왜, 벌써 가!”
살짝 부루퉁해진 정아의 모습이 너무나 귀여웠기에 윤기는 자신도 모르게 아빠 미소를 지었다.
‘이대로 한동안 놀고 싶기도 한데, 안 되겠지?’
윤기의 대외적인 신분은 와이케이 그룹의 소유주이자 바지사장.
그리고 이 스튜디오는 와이케이 산하 기업인 MEV의 소속이었다.
더불어, 정아는 윤기의 여동생.
그런 만큼 지금 이곳에서 윤기와 정아의 면전에서 무어라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제로였다.
하지만, 윤기는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기로 마음먹었다.
“오빠 집에 가지 마?”
“응!”
환히 밝아지는 정아의 얼굴에, 윤기는 자신도 모르게 미래에 자신이 낳을 자식을 떠올렸다.
여동생도 이렇게 귀여운데, 진짜 자식이 생기면 얼마나 더 소중하게 느껴질까?
하지만, 윤기는 흡족한 미소를 조금 숨기며, 정아를 향해 짐짓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조금 아쉬운 일이 생길 거 같은데?”
“왜?”
“오빠가 집에 가면서 정아랑 먹을 케이크를 사 가려고 했거든. 정아는 케이크 안 먹어도 돼?”
정아는 나이가 어린 만큼 단 것을 정말 좋아했다.
윤기의 말에 정아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키며,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아야, 오빠가 집에 맛있는 케이크 준비해 놓을 테니까, 이따가 촬영 끝나면 집에 와서 오빠랑 같이 먹자. 응?”
“그럼, 난 딸기 케이크!”
“알겠어!”
살짝 호들갑을 떤 윤기는 정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일부러 스튜디오 바깥으로 나갔다.
그리고 나가기 직전, 옆에 있는 경호원에게 귓속말로 감독을 스튜디오 바깥으로 불러오라는 지시를 내렸다.
[자, 이렇게 된 거 우리도 잠깐 쉬자. 15분간 휴식!]감독의 말에 스태프들은 화장실을 비롯한 각자의 볼일을 보기 시작했고, 윤기는 감독과 함께 조용히 감독실 안으로 들어갔다.
“방금은 정아 때문에 조금 당황하셨죠?”
미소를 지으며 하는 윤기의 말에 감독이 살짝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런 감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정아는 어리니까요.”
애초에 이 영화 자체가 윤기가 직접 지휘해서 만드는 영화였기 때문에 감독은 사회성을 발휘해서 적당한 답변을 꺼내놓았다.
하지만, 윤기는 자신의 위세만으로 이번 일을 대충 무마할 생각은 없었다.
“정아가 가족들을 너무 좋아해서 그러는 거니까 조금만 이해해 주세요. 아마 나이를 먹게 되면 알아서 줄어들지 않을까요?”
말을 들은 감독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도 그러리라 생각합니다.”
절대적 갑이어야만 성립하는 대화. 만약 정아가 윤기의 동생이 아니라 그냥 평범한 가정 출신의 아역배우였다면, 아마 엄청나게 혼났겠지.
아니, 향후 스크린 앞에 설 기회가 영영 사라질 수도 있었다.
‘여기서 대화를 끝내면 그냥 갑과 을의 대화가 되겠지?’
윤기는 그렇게 만들지 않기 위해 품에서 돈 봉투 하나를 꺼냈다.
“이걸로 스태프들이랑 회식 좀 하시고, 남는 건 감독님 활동비에 보태 쓰세요.”
“아니, 뭘, 이런 걸 다……. 괜찮습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눈동자는 어느새 살짝 두툼한 봉투를 따라 움직이는 감독의 모습이었다.
‘만약 여기서 안 주면 어떻게 될까?’
다시금 떠오르는 악동과도 같은 생각.
사실 이런 생각은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해 보지 않았을까?
상대가 ‘아유, 괜찮아요’라고 했을 때, ‘아, 정말요?’하면서 그만두는 것 말이다.
하지만, 윤기는 이러한 생각을 실행으로 옮기는 쪽은 당연히 아니었다.
“감독일 하시다 보면 아무래도 주변에 돈 쓰실 일도 많을 텐데 받으세요. 뇌물이 아니라 활동비랑 품위 유지비입니다. 못 받으실 이유가 없어요.”
재차 이어지는 윤기의 손길에 감독은 못 이기는 척 봉투를 양손으로 받으며 허리를 숙였다.
“어유, 감사합니다. 제가 스태프들 회식은 확실히 시켜 주겠습니다.”
윤기가 적은 돈을 담았다면 감독은 대충 짜장면이나 사 주고 나머지는 자신이 가져갔겠지만, 나름 큰돈이 들어 있었기에 오늘 스태프들은 갈비 정도는 뜯게 될 것이다.
“그럼, 앞으로도 정아 좀 잘 부탁드립니다. 다른 사람들도 정아를 좀 잘 봐줄 수 있게끔 해 주시면 정말 바랄 게 없을 것 같네요.”
“어유, 물론이지요. 염려 푹 놓으십시오.”
윤기가 미성년자임에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화.
윤기는 정말로 재벌, 아니 경영자에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 * *
서재로 돌아간 윤기가 부른 것은 다름 아닌 페르난데즈.
모처럼 윤기와 페르난데즈가 둘만의 만남을 서재에서 가졌다.
“이렇게 둘이서만 이야기를 하는 것은 꽤 오랜만인 것 같네요.”
정말로 추억에 잠긴 듯한 페르난데즈의 모습.
실제로 페르난데즈가 윤기의 옆에서 일한 지도 벌써 여러 해가 지났다.
“음? 오래되다뇨. 분명 얼마 전에 연봉 인상을 하면서 만남을…….”
윤기가 말을 꺼내자 페르난데즈는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앗, 아니! 그러니까, 일과 관련된 부분에서 그렇다는 말이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멋쩍은 미소를 짓는 페르난데즈를 향해 윤기가 악동과도 같은 미소를 지었다.
“혹시 저번에 만난 것을 까먹었으면 연봉을 원래대로 되돌리려고 그랬죠.”
“그, 그것만은……! 오른 지 얼마나 되었다고 깎으면 어떡합니까?”
울상을 짓는 페르난데즈의 행동은 어디까지나 윤기에게 맞춰 주는 것이었고, 윤기 역시 그것을 알기에 장난은 여기까지만 하기로 했다.
“농담이에요. 그나저나, 오른 연봉은 마음에 들어요?”
“예, 아주 만족스럽습니다!”
페르난데즈의 얼굴에는 ‘흡족’이라는 단어가 쓰일 정도의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실제로도 제대로 대우를 해 주셨으니까요. 저는 리안나가 한국에 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쌍수 들고 환영했다니까요?”
페르난데즈는 윤기가 리안나를 고용한 순간, 와이케이 그룹의 최측근다운 연봉을 받게 되었다.
하버드 출신의 인재들이 윤기에게 받는 대우가 결코 나쁜 것은 아니지만, 페르난데즈는 이미 세운 성과가 있었기 때문에 다른 외국 인재들과 비교해서 아주 압도적인 대우를 받고 있었다.
“솔직히 예전에는 겐슬러에서 일할 때의 생각이 가끔이지만 나긴 했는데, 이제는 그때보다 지금이 좋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당장 악몽과 관련한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도 와이케이를 떠날 일은 없을 것 같네요.”
윤기 입장에서 최고로 듣기 좋은 말이 페르난데즈에게서 흘러나오자, 윤기는 아주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말을 해 주니 고맙네요. 앞으로도 와이케이를 위해서 열심히 일해 줬으면 해요.”
“물론입니다.”
살짝 고개를 숙이는 페르난데즈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가벼운 초장 인사가 끝났다.
그렇기에 이제는 본론으로 들어가야 할 때.
“페르난데즈.”
“예, 회장님.”
“팔찌를 하나 디자인해 줬으면 해요.”
“팔찌 말인가요? 용도는요?”
“싸구려 액세서리예요.”
“싸구려 액세서리요? 제가 디자인을 하는 순간부터 싸구려가 아니게 될 텐데요?”
“그게 바로 우리 와이케이의 장점이죠.”
명품이 비싼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브랜드 이미지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브랜드 이미지는 제조자가 누구인지에도 굉장히 영향을 받는다.
만약 다른 회사가 윤기가 생각한 것을 따라 하려고 한다면, 디자이너를 구하는 것 때문에 단가가 올라간다.
하지만, 와이케이에서 페르난데즈는 이미 고정적인 비용으로 들어가 있기 때문에, 지금 맡기려는 일을 추가로 한다고 해서 비용이 발생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초특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싸구려 액세서리’라는 말도 안 되는 정의가 성립하는 것이다.
“제가 빠칭코의 신이라는 영화를 촬영하고 있는 건 아시죠?”
“아, 네.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영화에서 주인공이 손목에 팔찌를 하나 찰 거예요. 브레이슬릿, 아시죠?”
팔찌는 영어로 브레이슬릿. 윤기는 시계와 비슷한 느낌이지만 시계 부분은 없는, 그런 느낌의 팔찌를 주문했다.
“흐음, 그렇다면 빠칭코의 신 대본을 제가 한번 읽어 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가능할까요?”
“얼마든지요. MEV에 연락해 놓을 테니, 가서 편히 보시길.”
“알겠습니다. 그러면 대본을 읽어 보고 디자인도 짜 보도록 하겠습니다.”
“좋아요. 그러면, 마지막으로 정리해 줄게요. 첫째, 시계 타입의 팔찌. 둘째, 남녀공용으로 착용 가능해야 할 것. 셋째, 성인이라면 나이 층과 관계없이 착용이 부담스럽지 않을 것. 넷째, 제작 비용이 1만 엔이 넘지 않을 것. 이 정도만 지켜 주면 될 거예요.”
순간 페르난데즈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제가 할 수 있을까요?”
“못 해요?”
오히려 의아한 표정을 짓는 윤기.
순간, 페르난데즈는 반 토막 나는 자신의 연봉을 상상했다.
“아, 아닙니다! 할 수 있습니다!”
“믿어요.”
씨익 웃는 윤기의 눈동자에서 각각 연봉과 노동이라는 글자를 읽은 것만 같은 페르난데즈의 심정이었다.
* * *
빠칭코의 신 대본을 읽은 페르난데즈는 내친김에 일본에서 흥행한 영화의 비디오를 몇 편 구해서 직접 감상하기까지 했다.
물론, 페르난데즈가 일본어를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영상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표정, 동작, 상황만으로도 어떤 느낌인지는 파악할 수 있었고, 페르난데즈가 원하는 정보 역시 바로 그런 것이었다.
‘흐음, 일본 영화는 기본적으로 감정들이 과장되어 있네?’
확실히 감각의 천재답게, 페르난데즈는 일본 영화계의 특징을 단숨에 파악해 냈다.
그것은 바로 ‘감정의 과장’.
별로 어려울 것도 없는 게, 한국 영화에서 ‘이야, 대단한데?’라고 할 것을 ‘우와아아아아아앗! 대단해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라고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일본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사는가 보군.’
이번에도 거의 완벽한 페르난데즈의 분석.
실제로 일본에서 살아 본 한국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하는 말은, 일본은 앞과 뒤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앞에서는 괜찮다고 해도, 뒤에서는 반드시 뒷말이 나온다는 것.
물론, 한국도 이런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일본은 이게 더 심했다.
직설적인 한국 사람이 일본에 가면, 답답해서 죽으려고 할 정도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까?
‘영화에서 나올 팔찌니까 당연히 등장인물들의 반응도 비슷한 반응이 나올 거야. 그리고, 가격대를 설정하신 것을 보면 분명 나중에 판매 계획을 가지고 계시겠지? 그러니까 너무 복잡한 디자인 역시 사용할 수 없어.’
페르난데즈의 머릿속에서 무수히 많은 설계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설계도들이 한곳에 모이기 시작하더니, 서서히 팔찌를 제작하기 위한 설계도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영화에서 나온다고 하더라도 나중에 팔 것을 감안한다면 너무 화려하거나 투박한 색상은 안 돼. 그러니까 빨강, 검정, 노랑은 예외야. 그리고 하양도 제작 시 불량이 날 가능성이 크니 역시 제외. 그리고 남녀 간의 색상 취향 역시 비슷해야 하니까, 역시 남은 것은 초록인가. 그것도 밝은 초록……. 아니지, 진한 에메랄드 색깔이 낫겠어.’
페르난데즈는 색깔을 비롯한 기본적인 모양까지 초안을 잡은 뒤, 자신이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뭐지? 무언가 놓치고 있는데…….’
잠시 뒤, 페르난데즈는 그게 무엇인지 깨닫고는 황급히 윤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회장님, 이거 어떻게 제작하실 건가요? 제가 디자인을 해도 제작을 못 하면 답이 없잖아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윤기의 대답은 평온하기만 했다.
[공장을 사면 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