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189)
#189화 불쌍한 중소기업? (2)
“이야, 이거 볼수록 계속 보고 싶네.”
마석일은 자기 집 서재에서 쭉 늘어놓은 지원서들을 바라보았다.
이번 일에 지원한 공장의 목록.
사실, 대단한 공장들은 지원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서 국내 1위 기업의 1차 하청이라든가 하는, 그런 우량 공장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제작은 연속성이 존재하는 계약이 아니라 상품 하나를 단기간 제작하는 것에서 그치는 계약이었다.
따라서 규모가 있는 공장들이 군침을 흘릴 이유는 전혀 없는 상황.
그렇기에 마석일의 예전 회사가 이번 일에 지원을 한 것이다.
‘그만큼 회사가 휘청이고 있다는 얘기겠지.’
최소 중규모는 넘어가던 마석일의 옛 회사.
하지만, 이번에 지원한 것을 보면 규모가 확실히 줄어든 것이 분명했다.
‘하긴, 영업직 소중한 줄 모르는 놈이었으니까.’
옛 사장의 얼굴이 떠오르자 자신도 모르게 허공에 주먹질을 한 마석일은 이내 쓴웃음을 짓고는 서재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니 나도 정말 컸어. 예전에는 이런 집에 살 여력이 전혀 없었는데…….’
서재가 딸린 나름 큰집.
예전 같았으면 거실 혹은 안방에서 이 자료들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시끄러우니까 조용히 해!]예전에 종종 자신이 자식들에게 했던 말을 떠올린 마석일은 이러한 환경을 갖추게 해 준 와이케이에 감사하며, 보고서들을 하나둘 훑기 시작했다.
‘일단 신생 회사는 가능하면 제외하자. 그렇지 않아도 와이케이가 의류나 식품이 아닌 물건을 처음으로 제조하는 건데 불량률이 높아서는 안 돼.’
아닌 곳도 분명 있겠지만, 신생 회사는 운영에 있어서 미스가 많기 때문에 그만큼 실수가 나올 확률이 높았다.
물론, 상대가 ‘제발 계약하게 해 주세요’라면서 파격적인 조건을 제안해 오겠지만, 이번 영업은 기본적으로 ‘무조건 싼 가격’을 따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물론, 싸면 쌀수록 좋겠지만 그게 1순위가 아닌 이상 위험 부담을 쓸 이유가 없잖아?’
비슷한 이유로 지나치게 건실한 업체도 배제했다.
‘굳이 비싼 곳에서 살 이유도 굳이 없지?’
영업 판에서 오랜 기간 구른 데다가, 기자들에게 접대하면서 들은 정보가 많았기 때문에, 마석일은 많은 업체의 상황을 나름대로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결정된 업체 하나.
‘좋아, 여기면 되겠지.’
하지만 순간, 마석일은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이곳으로 결정을 하면 안 된다는 무언의 경고.
영업직을 하면서 무수히 많은 매출을 올리게 해 준 감이 ‘이건 아니다’라고 말해 주고 있었다.
‘내가 뭔가를 놓치고 있는 건가?’
마석일은 담배를 하나 꺼내 태우기 시작했다.
서재가 생겨서 좋은 점.
그것은 바로, 담배를 피울 때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90년대까지는 아버지들이 집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 당연시되던 시절이었지만, 마석일은 은근히 공처가 기질이 있었기 때문에 담배를 피울 때 눈치를 보면서 피웠다.
하지만, 서재에서만큼은 마음껏 피워도 좋다는 아내의 허락이 있었기에, 마석일은 사무용 의자에 앉아 편히 연기를 내뿜었다.
“후우우…….”
몸은 편한 자세를 취했지만, 머리는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아!!!”
마석일을 그제야 자신이 놓치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 * *
성강물산.
예전에 마석일이 근무하던 회사의 이름이었다.
“예? 사장님, 또요?”
20대 후반의 경리가 사장인 김학수를 향해 난감하다는 표정을 짓자, 김학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왜 그따위 반응인데?”
귀와 목덜미를 가리는 장발과 큰 눈이 인상적인 모습.
마석일보다 한 살 더 많았지만, 김학수는 80년대 중반의 대학생 같은 헤어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었다.
“아니, 그게……. 요새 저희 공장이 사입하는 품목도 줄어들고 해서, 그런 것을 요청하기가 좀…….”
김학수는 자신의 공장에 부품을 납품하는 회사의 사장들에게 툭하면 무언가를 가져오기를 요구했다.
돈부터 시작해서, 명절 선물이나, 해당 납품 업체가 담당하고 있는 물건들까지.
물론, 이러한 일들의 갹출 담당은 당연히 경리인 이 여직원이 하고 있었는데, 아닌 말로 사장이 먹어야 할 욕을 죄다 대신 먹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가 거래를 끊으면 아쉬운 게 그놈들인데. 너 혹시 그놈들한테 뭐 받은 거 있냐?”
게슴츠레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김학수를 향해 경리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사장님. 도대체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해요.”
납품 업체들에서 회식비 명목으로 돈을 갹출해 오면 10원 동전 하나까지도 꼼꼼하게 체크하는 것이 김학수의 성격.
그런 만큼, 여직원은 경리인데도 재미 같은 건 딱히 경험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고로 경리는 회사의 돈을 담당하는 직급인 만큼, 자잘한 돈들은 적당한 선에서 슈킹할 수 있었다.
사장 역시 자신의 치부를 부탁하는 만큼, 경리들의 이러한 행동들을 적당히 눈감아주는 것이 사회통념이고 말이다.
하지만 성강물산은 달랐다.
직원들이 두루마리 휴지 한 칸 쓰는 것까지 낭비라고 고함을 지르는 것이 일상이었기에, 여직원은 김학수 몰래 무언가를 착복한다는 상상을 아예 해 본 적조차 없었다.
‘내가 더러워서 어떻게든 이직하고 만다.’
이러한 경리의 생각을 전혀 모르는 김학수는 다시 경리를 다그쳤다.
“그러면 걷어 와! 못 걷어 올 이유가 없겠네?”
“어휴……, 알겠어요. 걷어 오면 되잖아요.”
경리의 작은 반항.
하지만, 김학수는 여기서 더 다그치지는 않았다.
이것이 바로, 자기 나름대로 경리를 배려해 주는 것이었으니까.
“흐음, 이번에 돈 들어오면 냉장고나 바꿔야겠어.”
경리에게 돈을 갹출하라고 한 명목은 다름 아닌 직원 회식.
하지만 김학수에게 그 돈을 회식에 쓸 생각은 전혀 없었다.
어디까지나 명목이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로 직원들 회식을 시켜 줄 생각은 전혀 없었으니까.
‘내가 쓸 돈 가져오라고 하면 모양새가 떨어지잖아?’
물론 납품업체 사장이나 직원들은 김학수를 포함한 성강물산의 직원들을 오지게 욕하고 있겠지.
[아니, 그놈들 때문에 맨날 우리가 쓸 돈이 줄어들어!]하지만, 성강물산의 직원들은 억울할 뿐이었다.
단 한 번도 돈 안 쓰는 회식을 경험해 본 기억이 없으니까.
따르르릉-!
순간, 익숙한 80년대의 전화벨 소리가 울렸고, 김학수가 전화를 받았다.
“네, 성강물산 사장 김학수입니다.”
수화기에 귀를 대고 몇 초나 지났을까? 김학수의 안색에 환희가 차올랐다.
“예? 그게 정말입니까?!”
몸을 쭈욱 펴서 직선을 만든 김학수의 모습.
그와 동시에, 김학수는 자신의 몸으로 기역 자로 만들었다.
“예! 예! 당연히 준비할 수 있습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상대가 보이지 않음에도 허리를 숙이는 모습.
그야말로, 강자에겐 한없이 약한 모습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됐어! 됐다고!”
전화를 끊자마자, 뭐가 그리 좋은지 양 주먹에 불끈 힘을 주는 김학수의 모습.
강자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 주었으니, 이제는 약자에게 강한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할 때였다.
“박 상무!!”
사장실에서 나온 김학수의 외침이 공장에 퍼지기 시작했다.
“박 상무!!!!!!!!!”
두 번째 외침이 퍼지고 얼마 후, 저 멀리서 박상무가 헐레벌떡 김학수를 향해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50대 중반에 반백의 머리를 가진 평범한 남성의 모습.
하지만, 스트레스를 꽤 받았는지 표정에 그늘이 짙게 져 있었다.
“사장님, 부르셨습니까?”
공손한 박 상무의 태도였지만, 김학수는 그런 박상무를 향해 삿대질부터 시작했다.
“아니, 박 상무. 내가 부르면 재깍재깍 달려와야지,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던 거야?”
“죄송합니다. 잠시 손님을 상대하느라…….”
“손님이고, 뭐고! 내가 사장인데, 내가 부르면 재깍 달려와야 할 거 아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는 김학수를 바라보며 박 상무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겉으로 나온 말은 소시민의 사과였다.
“죄송합니다.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자신보다 15살가량 많은 박 상무의 사과를 받고서야 마음이 풀린 듯, 김학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당연히 그래야지. 박 상무는 말이야, 사람이 다 좋은데 눈치가 없어. 윗사람의 기분을 살필 줄 알아야 성공하는 법인데 말이야.”
곱씹어 보자면 ‘넌 눈치가 없어서 그 모양으로 사는 거다’라는 뜻이 되지만, 김학수는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 타입이었다.
자신이 받아들일 때는 입체적으로, 상대에게 말할 때는 평면적으로.
그러니 어떤 의미로는 중소기업 사장을 하기에 최적인 성격이겠지.
“그리고 보니 사장님, 무슨 일로 부르신 겁니까? 제가 기억하기로 사장님이 지시하실 만한 일은 일정에는 없는 것 같거든요.”
“아, 왜 불렀냐고? 좋은 일이 있어.”
“예? 좋은 일이요?”
김학수의 환한 미소를 보며, 박 상무 역시 뭔가 희망적인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보너스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박상무는 김학수를 너무 착한 존재로 보았다. 하긴, 그렇기에 지금까지 김학수의 옆에서 버틴 것이겠지만.
“이번에 와이케이에서 공시한 납품 말이야. 우리 공장으로 결정될 것 같아.”
“앗, 그렇습니까?”
“그래! 내일 담당 간부가 직접 공장으로 시찰을 온다고 하더라고.”
딱히 자신한테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박 상무는 사람이 좋아서인지 김학수에게 축하의 말을 건네었다.
“축하드립니다, 사장님.”
“하하, 이 사람이. 내가 축하받을 일이야? ‘우리’가 축하받을 일이지.”
“아, 그렇죠. 그렇죠.”
고개를 끄덕이는 박 상무를 향해 김학수가 진짜 본론을 꺼냈다.
“그러니까, 오늘 직원들 바로 퇴근시키지 말고, 공장 미싱 싸악 시켜.”
“예?”
순간, 박 상무는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반문했고, 김학수는 아니나 다를까 눈을 부라렸다.
“직원들 동원해서 공장 대청소하라고. 내 말 귓구녕이 아니라 똥구녕으로 들었어?”
“아니, 저…… 지금부터 말씀이신가요?”
“쓰읍-! 지금은 공장 일을 해야 할 거 아냐! 야간 라인 돌아가는 거 제외하고 대청소해. 알겠어?”
“저, 사장님. 공장 대청소가 말처럼 쉬운 것도 아니고 직원들도 퇴근해야…….”
그러나 김학수는 박 상무의 말을 잘랐다.
“야! 이게 나 좋자고 하는 일이야? 이번 거래 못 따내면 공장 문 닫아야 할 수도 있는 거 몰라? 다들 직장 짤릴래?”
생업을 무기로 들고나오는데, 박 상무가 무어라 말하겠는가.
결국, 박 상무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한 명도 빠지지 말고 최선을 다해서 청소해! 아침에 확인할 거야!”
한마디로 아침까지 청소하라는 소리.
거짓말 같겠지만, 80년대에 이런 사장들은 정말 흔하게 있었다.
물론 2010년대에도 있는 게 함정이지만.
* * *
“좋아, 정말 깨끗하게 청소했네!”
공장의 기계를 손가락으로 훑은 김학수는 먼지가 묻어나지 않자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심지어 김학수의 손에는 라텍스 장갑까지 있는 상태였다.
병원에서 의사가 수술할 때나 쓰는 그 장갑.
군대에서 선임이 각 잡고 후임을 털기 위해 쓰는 게 바로 이 방법인데, 김학수는 이걸 사회에서 쓴 것이다.
“예, 저희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눈이 퀭한 박 상무를 필두로 공장 직원들의 눈 밑 다크서클이 죄다 진한 게, 딱 봐도 철야를 한 것이 분명했다.
실제로, 김학수가 손가락을 훑은 것은 밤사이에 네 번.
자고 있다가 박 상무가 청소를 다 했다고 하면 잠깐 일어나서 손가락을 훑고 다시 시키기만 한 것이다.
덕분에 상대적으로 매우 활력이 넘치는 김학수가 다시 한번 박 상무를 치하했다.
“그래, 정말 고생했어.”
기분이 좋은 김학수의 모습에 박 상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장님, 저희 어제랑 오늘 무지 고생했는데, 회식이나 한 번…….”
“생각 좀 해 보고.”
애매한 미소와 함께 대충 넘어가는 김학수의 모습에 박 상무는 한 번 더 말을 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애초에 해 준다고 말해 놓고도 지키지 않는 사장인데, 저런 말을 한 것을 보니 마음에 전혀 없다는 뜻이었으니까.
“아, 오셨다!”
회사 대문 바깥으로 약간 고급스러운 차 한 대가 서자, 김학수는 눈치 빠르게 차를 향해 전력으로 뛰었다.
그리고 잠시 후.
차 문을 열고 나타난 마석일을 보며 김학수가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