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200)
#200화 드디어 (1)
플래그를 세운다.
그것은 바로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게 거의 확실시 될 때 쓰이는 말이다.
‘이 전쟁이 끝나면 여자친구랑 결혼한다는 말 같은 거요?’
그래, 바로 그거. 그런 말 하는 녀석은 거의 곧바로 죽잖아? 멀리서 미사일이 날아온다거나, 지뢰를 밟는다거나, 아니면 저격수한테 당한다거나 해서 말이야.>
‘에이, 설마요.’
뭐, 나도 그런 일이 안 벌어지면 좋겠지만 말이야.>
최덕배의 말을 애써 흘리며 윤기는 진수의 옆으로 이동했다.
“드디어 집안 빚을 다 갚는 거야?”
“응. 정말……, 길었던 거 같아.”
오래전, 박연지의 화상을 대신 입어 준 보답으로 진수네는 특별 혜택을 받았다.
그것은 바로 상당한 액수를 월급으로 받는 파출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야 빚을 다 갚았다는 말에 윤기는 혀를 내둘렀다.
“도대체 빚이 얼마였던 거야?”
“나도 잘은 몰라. 그런데, 할아버지가 노름으로 집안을 다 털어먹어서 어쩔 수가 없었대.”
노름은 요즘 시대의 말로 다름 아닌 ‘도박’.
요즘이야, 도박을 하면 경찰이 잡아가지만, 1960년대 이전에는 그냥 시골집에 모여서 도박을 하는 일이 흔했다.
그야말로 타짜들의 시대.
그렇다 보니 만석꾼이라 할지라도 도박꾼들에게 ‘작업’을 당하면, 가산을 순식간에 털리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힘들었겠구나…….”
친구 사이에 집안의 안 좋은 부분까지 파고들기는 힘들었기 때문에, 윤기는 지금까지 구태여 물어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빚의 이유를 듣고 나니 어쩐지 진수에게 안쓰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괜찮아! 이제 빚 다 갚았잖아. 오늘 아버지 월급만 빚 갚는 데 쓰면, 우리 집 진짜 이제 빚은 하나도 없어!”
쾌활한 진수의 얼굴에 원희 역시 환히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내가 사야지!”
“내가 산다니까?”
좋은 일이 생겼음에도 서로 옥신각신하는 진수와 원희는 정말로 친구였다.
‘보기 좋네.’
나중에 원희와 진수가 와이케이에서 일하는 모습을 상상한 윤기는 진수에게 좀 더 잘해 줘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러려면 둘을 열심히 공부시켜야겠지만.’
윤기가 이런 사악한(?)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진수는 이날, 정말 기분 좋게 빵값을 냈다.
* * *
왜 항상 안 좋은 예감은 적중하는 걸까?
사실, 항상 적중한다기보다는 안 좋은 일에 대해 더 집착하는 사람의 심리 때문이지만, 안타깝게도 최덕배의 예감은 적중하고 말았다.
“야! 빚 다 갚았냐?!”
원희는 등교하기가 무섭게 진수를 향해 달려가며 몸을 마구 흔들었다.
평소대로라면 ‘아, 씨! 뭐야!’ 하면서 짜증을 내야 하는 진수.
하지만, 진수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뭐야, 왜 그래?”
원희는 진수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다가 깜짝 놀랐다.
진수의 얼굴이 정말 곧 죽을 것처럼 어두웠기 때문이었다.
“야, 너, 뭐야. 무슨 일 있었어?”
원희는 진수를 채근하다가, 윤기가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윤기야! 얘, 상태가 좀 이상한데?”
말을 들은 순간 윤기는 최덕배의 예감이 적중했다는 것을 직감했다.
사실, 어제 쟤네 집에 잠깐 갔다가 듣게 되었는데, 너한테 미리 말해 주기가 좀 그랬다.>
최덕배의 말에 윤기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면서, 착잡한 표정과 함께 진수에게 다가갔다.
“무슨 문제 생긴 거 맞지?”
그래도 원희보다는 기댈만한 윤기였기에 진수는 눈물을 주륵 흘리며 입을 열었다.
“아버지가……, 월급을 소매치기당했어…….”
하지만, 진수는 갑자기 눈물을 닦으며 웃기 시작했다.
“괘, 괜찮아. 그래도 다음 달이면 다시 갚을 수 있으니까. 다음 달이면……, 다음 달이면…….”
억지로 스스로를 다독이는 듯한 진수의 모습에, 윤기나 원희나 서로 할 말이 없었다.
‘내가 갚아 준다고 할 수도 없고…….’
진수가 어제 그렇게 기뻐한 이유.
그것은 바로 가족의 힘으로 빚을 갚았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진수네가 갚아 달라고 부탁만 했으면, 빚쯤이야 오래전에 갚았을 것이다.
진수네가 극구 거절을 해서 그렇지.
“힘내라…….”
윤기나 원희나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진수를 안아 주는 것뿐이었다.
* * *
“윤기야.”
“응?”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찍어 올리던 윤기는 원희의 말에 포크를 멈췄다.
“진수한테만 왜 항상 나쁜 일이 일어날까?”
진수가 집에 일찍 가 봐야 한다며 돌아갔기에, 윤기와 원희는 서로 이야기도 할 겸 지금의 자리를 만들었다.
“나쁜 일이라는 개념이 상대적이라서 그럴 거야.”
“상대적이라고?”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원희를 향해, 윤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원희야.”
“응?”
“너는 길 가다가 천 원 잃어버리면 기분이 어때?”
“천 원? 뭐……, 그냥 기분이 조금 나쁘지만 그러려니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진수가 천 원을 잃어버리면 어떤 기분일까?”
“그야……, 으음,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겠다.”
불행의 척도는 마음가짐이라는 말이 있지만, 사실 대부분의 불행의 척도는 주머니 사정으로 결정된다.
윤기는 주식이 떨어져서 1억쯤 날려도 ‘그런가?’ 하면서 넘어갈 수 있지만, 원희는 한동안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할 것이다.
반면, 진수가 1억을 날린다면?
애초에 날릴 1억이 없다.
아, 물론 방법은 있다.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서 1억을 투자하는 것.
그리고 그 1억을 날리면, 당연히 감당하기 힘든 불행이 다가올 것이다.
윤기는 이러한 예시를 아주 간단하게 원희에게 알려준 것이다.
“에휴, 아무튼 안타깝네. 그렇게 좋아하는 게 눈에 보였는데……. 윤기야, 뭔가 방법이 없을까? 내가 돈을 준다고 해도 받지 않을 거고, 그렇다고 해서 한 달 동안 저렇게 끙끙대는 모습 보기도 안쓰럽고…….”
착잡한 표정을 짓는 원희를 향해 윤기가 물끄러미 시선을 보냈다.
“왜, 왜?”
“아니, 그냥. 네가 만약 여자였으면 진수 여자친구가 아닐까 싶어서.”
“무슨 헛소리야!”
거의 진심으로 화내는 원희를 향해, 윤기가 픽 하고 웃음을 보였다.
“미안, 농담이야. 물론 해결할 생각이야 하고 있었지.”
“진짜? 무슨 좋은 방법이라도 있어?”
해결이라는 말에 원희가 화를 냈던 것도 있고 윤기의 말에 관심을 가졌다.
“어차피 경찰에 신고했겠지만, 사실 잡기는 힘들 거야.”
“그거야……, 그렇지.”
“그러니까, 네가 힘을 좀 써야 할 거 같아.”
“응? 내가?”
당황한 표정을 짓는 원희를 향해 윤기가 사악한 표정을 지었다.
* * *
2010년대의 한국에선 소매치기를 보기가 정말 힘들다.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CCTV와 블랙박스가 없는 곳이 없다 보니, 소매치기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후일 잡히는 경우가 많았다.
나머지 하나는 현금.
2010년대에는 사람들이 카드만 들고 다니는 탓에 훔쳐도 쓸 수가 없었다.
그러나, 80년대 사람들은 현금을 정말 많이 가지고 다녔다.
특히, 대부분의 월급날인 10일이나 말일에는 소매치기들의 축제였다.
왜냐하면, 월급봉투를 뒷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사람들이 무진장 많았으니까.
아마, 60년대에서 70년대 사람들은 많이 공감하지 않을까?
월급날, 아버지가 돼지고기를 사 들고 퇴근하기만을 기다렸는데, 월급봉투 없이 돌아오신 날을 말이다.
돼지고기 김치찌개는 간장으로 변하고, 그 간장 종지는 한 달 동안 사라지지 않았던 경험.
80년대라고 해서 다를 건 없었고, 진수의 아버지 역시 소매치기를 당해 월급을 고스란히 잃었던 것이다.
“윤기야, 정말 괜찮을까?”
평상시와 달리 일상복을 입은 원희를 향해 윤기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걱정하지 마. 너라면 충분히 소매치기들을 끌어모을 수 있을 거야.”
꽤 어수룩하게 생긴 원희의 외모.
그렇기에, 윤기는 아예 코디까지 ‘어수룩한 부잣집 도련님’으로 맞춰 주며 진수의 뒷주머니에 두툼한 지갑을 넣어 주었다.
“그냥, 지금 그대로 지하철을 두 시간만 타고, 집으로 돌아가면 돼.”
“응? 그냥 집으로 돌아가라고?”
“응. 그래야, 진수를 도와줄 수 있거든.”
“으음……, 알겠어.”
고개를 끄덕인 원희는 곧바로 지하철을 향해 내려가기 시작했다.
윤기 역시 마찬가지.
원희와 거리를 꽤 벌린 상태를 유지한 윤기는 다른 사람이 모르게 원희 쪽을 주시했다.
오늘은 경호원들에게 원거리 경호만 하라고 일러두었기에, 사람들도 윤기를 주시하는 일은 없었다.
애초에 최덕배라는 초고성능 레이더가 있는데 무슨 걱정일까.
‘진수의 말대로라면, 한 30분쯤 후 입질이 올 텐데…….’
진수의 아버지가 어느 회사에 다니고 있는지는 이미 알고 있는 상황.
그렇기에, 윤기는 진수의 아버지가 퇴근할 때 타는 지하철역과 진수의 집 부근의 지하철역 사이에서 일이 일어날 것이라 추측했다.
‘분명, 지하철을 탈 때까지만 해도 지갑이 있었다고 했어. 그리고 지하철을 타고나서 지갑에 승차권을 집어넣었고, 월급봉투도 확인했다고 했지.’
2010년대야, 지하철을 타려면 핸드폰을 대충 개찰구에 쓱 문지르면 되지만, 이 시대에는 ‘승차권’이라는 게 꼭 필요했다.
그런 만큼, 지하철을 탈 때까지만 하더라도 월급봉투가 있었다는 진수 아버지의 말은 신빙성이 있었다.
더불어서 진수의 아버지가 소매치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안 것은 집 부근 지하철역 개찰구.
승차권을 꺼내기 위해 지갑을 꺼내려던 진수의 아버지는 그때 지갑과 월급봉투의 분실 사실을 알았다고 진수가 이야기해 주었다.
‘자아, 미끼를 물어라. 너희들 입장에서 정말 매력적인 먹이잖아?’
뒷주머니가 두둑한 원희의 모습은, 소매치기들 입장에선 그야말로 노다지.
더군다나 소매치기들은 자신들의 활동 지역이 거의 정해져 있기 때문에, 윤기는 원희의 지갑을 훔치는 녀석이 이번 일과 어떤 방식으로든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을 하고 있었다.
‘조금 지루한가 보네.’
아무것도 안 하고 2시간 동안 지하철을 타는 것은 그야말로 지루한 일.
그렇기에, 원희는 미리 준비해 놓은 책을 읽기 시작했다.
‘역시 어수룩해.’
쓴웃음을 짓긴 했지만, 오히려 윤기는 그 행동이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다른 곳에 관심이 쏠려 있는 미끼는 정말 먹기 쉬운 법이니까.
‘됐다!’
실제로, 원희가 책을 보고 나서 5분도 되지 않아, 원희를 향해 슬슬 접근하는 녀석이 나타났다.
그리고, 잠시 뒤.
녀석이 정말 빠른 속도로 원희의 뒷주머니에서 자연스럽게 지갑을 빼는 모습 역시 드러났다.
때마침 멈추기 시작하는 지하철.
한마디로, 상대는 정차 타이밍까지 알고 있는, 닳고 닳은 소매치기란 증거였다.
‘넌 뒤졌다.’
옆 칸에 타고 있던 윤기는 지하철에서 내리며 밖을 확인했고, 소매치기가 빠르게 지하철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확인했다.
‘놓칠 수 없지.’
윤기 역시 다년간의 운동으로 다져진 몸.
그런 만큼, 소매치기를 따라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요금도 안 내는구나.’
개찰구를 점프로 빠져나가는 소매치기의 모습.
윤기는 혹시나 모를 직원들의 시비를 피해, 최대한 빨리 개찰구에 승차권을 넣고 빠져나왔다.
하지만, 그때.
타다다닥-!
소매치기가 상당히 빠른 속도로 도망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눈치 하나로 먹고사는 녀석들답게, 윤기의 접근을 눈치챈 것이다.
‘오히려, 나야 고맙지!’
천천히 뒤를 따라가야 할 필요 없이, 전력을 다해 달릴 수 있었다.
그렇기에 윤기는 지하철 밖으로 뛰쳐나간 소매치기를 쫓아, 그리 멀지 않은 골목에서 소매치기를 붙잡을 수 있었다.
“뭐야! 넌 왜 따라와!”
지금까지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는지,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소매치기는 정말 상투적인 말로 발악했다.
“그러는 너야말로 왜 도망가는데?”
“네가 쫓아오니까 도망갔지!”
“아, 그러세요?”
윤기는 녀석의 점퍼 안 주머니에서 원희의 지갑을 꺼냈다.
“그, 그건…….”
원래대로라면 지갑을 던지고 도망갔어야 맞다.
하지만, 원희의 지갑이 워낙 두툼했기 때문에 이 녀석도 차마 욕심을 버리지 못했다.
물론, 윤기는 평범한 상대가 아니었기에, 지갑을 버렸다 하더라도 계속 쫓아왔겠지만.
“네 오야지가 누구야?”
보스를 대라는 윤기의 말에 상대가 눈알을 굴리기 시작했다.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나는 독고로 뛴다고!”
혼자 일한다는 상대의 말에 윤기는 지그시 상대의 팔을 꺾었다.
“말해, 누가 보스야?”
“어, 없다니까!”
“말하라니까?”
“끄아아아아악!”
윤기가 제대로 힘을 주자, 상대는 관절이 부러질 것 같은 고통에 미친 듯이 비명을 질렀다.
“말하면 편해져. 그러니까 말해.”
“어, 없어. 진짜로 없다니까!”
“흠.”
윤기는 관절 꺾던 것을 풀었고, 그제야 소매치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캬아아아아아악!”
검지를 감싸 쥔 소매치기는 그야말로 눈물 콧물을 다 흘리기 시작했고, 윤기는 그러한 소매치기의 팔을 다시 꺾었다.
“다시 물어볼게. 누가 오야지야? 말하지 않으면 다음은 중지야. 그다음은 약지고, 뭐, 선택은 네 자유야. 언제 말할지에 대한 선택 말이야.”
결국, 오줌까지 지려 버린 소매치기는 자신의 윗선을 말했다.
“규, 규식이 형님!”
“규식이 형님……?”
순간, 윤기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분명 어디에선가 들어 봤던 이름.
윤기는 그야말로 과거를 더듬어 가기 시작했다.
10년 전쯤에 한 번 멈추고, 660년 전에 한 번 멈춘 과거.
“혹시, 김규식을 말하는 거야?”
“혀, 형님을 알아?”
개백정의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