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214)
#214화 예? 국민의 대변인? (4)
이게 끝이 아니었다.
“더럽고 치사한 놈. 그렇게 많은 이득을 봤으면서 나한테는 뭐? 기껏 청와대까지 불러서 하는 말이 앞으로 잘 부탁한다고? 지 비자금이 그렇게 산처럼 쌓여 있으면서 나한테는 나눠 주지도 않아?”
N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마치, 서재에서 혼자 독백을 하는 것처럼.
“후…… 뭐, 상관없지. 어차피 그 녀석은 87년이 되면 나가떨어질 녀석이야. 87년에 내가 그 녀석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되면 바로 쳐 내 버려야지. 그리고 그 녀석의 돈을 전부 빼앗는 거지. 크크큭…….”
여기서 N은 녹음기의 버튼을 눌러 녹음을 종료했다.
그리고는 테이프를 꺼내 윤기에게 건넸다.
“이만하면 나를 믿어 줄 수 있겠는가?”
N은 그야말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성의를 보인 셈이었다.
TV에서 흘러나오는 뉴스.
이것은 녹음이 ‘언제’ 되었는지 추정을 할 수 있게끔 해 주는 증거였다.
방금 뉴스는 며칠 전 일어난 화재 사건에 대해 다루고 있었는데, 이 뉴스가 배경음으로 나오고 있었다면, 최소한 녹음이 85년 12월 초순 이후에 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니까.
“후회하지 않으시겠어요?”
마침내 윤기의 입이 열리자, N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후회하지 않을 걸세.”
“그렇다면 받아 두도록 하죠.”
윤기는 류천에게 했던 것처럼 굴지는 않았다.
류쳔의 앞에서는 공포탄이 든 리볼버를 건네며 연기를 했지만, N은 류쳔에 비해서 난이도가 압도적으로 어려운 존재.
그렇기에, 윤기는 실리를 택했다.
“휴, 그렇게 받아 주니 다행이군. 이것마저도 통하지 않을까 해서 걱정했거든.”
N은 소파에 등을 묻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상대는 자신을 존중해 주는 존재.
그렇기에 이 정도의 편안함은 가져도 된다는 것 정도야 N도 알았다.
“갑자기 이런 행동까지 하시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윤기의 물음에 N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상체를 세웠다.
“자네도 알다시피 현재 와이케이를 제외한 다른 재벌들이 반 와이케이 집단을 만든 상태야.”
“그렇죠.”
담담한 윤기의 태도에 N은 묘한 안정감을 느꼈다.
오늘 이렇게 찾아온 이유 자체가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였는데, 그 불안감이 어느 정도 해소된 것이다.
“그리고 그 녀석들이 현재 다른 국회의원들을 찾아다니면서 청탁을 넣고 있어. 물론, 아직은 가볍게 문의하는 수준이지만 말이야.”
“이번 개정안에 대한 반대말인가요?”
N의 얼굴이 확연히 밝아졌다.
“그래……! 그래, 바로 그거야! 역시 자네는 알고 있었군!”
“어지간한 일들이야 예측하는 것쯤은 쉬우니까요. 중요한 건 그 예측의 내용이 자신에게 유리한 내용이냐이고, 어려운 건 그 예측이 불리한 내용일 때 유리한 내용으로 바꾸는 거죠.”
“역시……. 역시…… 오늘 찾아오기를 정말 잘했어.”
“불안하셨군요.”
N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아. 자네는 나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지. 그리고 그 말로 인해서 내 마음속의 욕망도 활활 타오르고 있는 중이고.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와이케이가 패배하게 된다면, 기껏 불씨가 오른 내 꿈이 사라지게 돼. 이기주의적이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지금 87년의 대통령직이 정말 간절하다네.”
N은 정말로, 아주 솔직하게 윤기에게 모든 것을 털어 놓고 있었다.
“처음 자네와 여기에서 만났을 때를 기억하지?”
“그렇습니다.”
“그때 나는 내가 갑이라고 생각했어. 자네가 아쉬우니까 나에게 접근을 한 것이라 생각했지.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니더군.”
“그렇습니까?”
담담한 윤기의 태도에 N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자네와 손을 잡은 후부터 갑자기 내 인생이 피기 시작하더군. 자네가 넘겨준 오정수의 신변,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이 미니 백화점에 좀 더 입점하기 시작했고, 주변에서는 나에게 줄을 잇기 위해 청탁을 해 오기 시작했지.”
N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여기에서 그쳤으면 사실 별 감흥이 없었을 거야. 그런데 JD가 나를 부르더군. 그 JD가 말이야……!”
감탄이 섞인 N의 말에는 성취감이 깃들어 있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JD는 나를 홀대했어.”
“확실히 그렇죠.”
“그런데, 자네로 인해서 3허 중 2허가 실각하고, 안기부장도 갑자기 JD에게서 신뢰를 잃은 듯한 기분이 들었지. 그것도 자네가 한 일일 거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네만…….”
윤기는 대답하지 않고 다시 빙글빙글 웃었다.
하지만, 이번엔 N도 그 미소에서 정답을 찾을 수 있었다.
“만약 자네가 아니었다면, JD가 나를 부를 일은 절대로 없었겠지. 절대로 없었을 거야.”
사실, 원래 역사에서도 JD는 N을 호출한다.
3허가 민중의 지지를 잃고, JSD는 민중의 지지를 잃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욕을 먹고 있는 상황.
그 상황에서 그나마 국민에게 다가갈 수 있는 JD의 인맥은 N 정도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역사에서는 달랐다.
JD가 N을 부르는 것까지는 똑같았지만, 그 과정이 달랐다.
‘역시, 역사의 본류는 똑같이 흘러가고 있어.’
윤기는 N의 반응을 보며 다시 한번 역사의 강줄기가 얼마나 큰지, 자신이라는 존재가 할 수 있는 일의 한계가 무엇인지 명확히 알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무력감은 느끼지 않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를 안다는 것, 그것은 역으로 말하면 ‘할 수 있는 일을 알게 된다’라는 의미이기도 했으니까.
“그래, JD가 나를 불렀어…….”
자조 섞인 혼잣말을 하던 N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난 그런 JD를 좋아할 수가 없네. 부르려면 나를 처음부터 불렀어야지. 이 사람 저 사람 다 쓰다가 도저히 쓸 사람이 없다가 나를 부르다니. 이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N의 표정과 어투에는 불신이 가득했다.
그 정도로 JD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었고, 그 기대를 배반당했다는 이야기였다.
“자네도 어린 시절, 친구들과 논 적이 있나?”
“당연히 있지요.”
“그렇다면 잘 알겠군. 가위바위보를 통해서 자기편을 할 사람을 뽑는 것을 말이야.”
윤기가 쓴웃음을 짓자, N은 윤기가 자신이 하려는 말을 이해했다고 확신했다.
“이제야, 그 시절 가장 마지막에 뽑힌 녀석의 심정이 이해가 가. 가장 마지막에 뽑히면서 무슨 기분이 들었을까? 한두 번도 아니고, 매일 마지막에 뽑힌 녀석의 심정은 그야말로 참담했겠지.”
‘그걸 누구보다도 제가 제일 잘 압니다.’
최윤기가 아닌, 김찬열로서의 삶을 떠올린 윤기는 좀 더 진한 쓴웃음을 지었다.
“JD는 내가 자신의 말을 잘 들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겠지. 하지만, 아니야. 내가 대통령이 되는 순간 JD의 모든 것을 쳐 내 버릴 거거든.”
이후로도 JD에 대한 성토가 꽤 이어졌고, 마침내 어느 정도 안정감을 되찾은 N이 조금 다른 화제를 꺼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87년의 정권 교체에 지대한 관심이 있다네. 하지만, 지금 재벌들이 국회의원들에게 접촉하고 있어. 그리고 만에 하나 그들이 승리한다면……. JD가 몰락하게 되고, 와이케이 역시 타격을 입게 되겠지.”
마침내 N의 입에서 진짜 고민이 튀어나왔다.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 와이케이의 몰락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네. 그러니, 말해 주게. 이번 일에 승산은 있는가?”
* * *
그야말로 확 바뀐 대화의 분위기.
방금까지만 해도 N의 독백과 넋두리가 차지하던 실내였지만, 지금은 권력을 향한 치열한 열기가 지배하고 있었다.
“물론이죠.”
하지만, 그 열기는 윤기의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대답에 빠르게 식었다.
“그, 그게 정말인가?”
쉬이 믿지 못하는 N을 향해 윤기가 설명을 붙였다.
N이 자신의 약점을 맡긴 상황에서 지나치게 불친절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이미 꺼벙이를 통해 이 테이프가 고장 나지 않았다는 것도 확인했고 말이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윤기는 꺼벙이의 능력에 대해 파악해 나갈 수 있었다.
컴퓨터와 관련된 능력.
그뿐만 아니라, 꺼벙이는 기계 장치의 고장 난 부분 역시 기가 막히게 찾아냈다.
컴퓨터는 알고리즘을 사용하는 기계 장치.
그것과 연관되어서인지, 꺼벙이는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곧 고장 날 제품이나 이미 고장 나 있는 제품을 찾는 데 정말 큰 도움을 주었다.
당장만 해도, 이 테이프.
원래대로라면 제대로 녹음이 되어 있는지까지 확인을 해야 맞는 거지만, 그렇게 하면 N이 대단히 실망할 것 또한 사실.
윤기는 꺼벙이 덕분에 그 과정을 건너뛸 수 있었다.
“각하가 내후년 대선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법안은 반드시 통과될 수밖에 없습니다.”
“JD가 내후년 대선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이긴다……?”
“예. 이번 개정안에 대해서 잘 생각해 보시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요?”
N은 개정안에 대해 크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와이케이와 다른 재벌들의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소식과 그 소식에 따른 흐름에만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처음으로 법안에 대해 고찰하기 시작했다.
“개정안의 내용은 분명 재벌들의 편법 증여와 상속을 막는 내용이었지. 그러면…… 아!”
“그렇습니다. 명분이 각하에게 있는 거죠.”
“하지만, 명분이 JD에게 있다고 해서 국회 투표가 바뀌지는 않아. 국민의 대변인은 바로 국회의원들이니까 말이야.”
“하하하핫!”
실로 오랜만에, 윤기가 다른 사람 앞에서 비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이 모습은 N을 놀라게 하기에도 충분했다.
하지만, 부정적인 효과가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나타난 것은 긍정적인 효과.
‘내 앞에서 진짜 모습을 보여 주는구나. 역시 녹음을 건네준 게 효과가 있었어.’
리스크를 감수한 보람이 있다는 생각에 N은 뿌듯한 기분으로 윤기를 바라보았다.
“뭔가 웃긴 일이라도 있는가?”
“당연히 웃기지요. 국회의원들이 국민의 대변인이라고요? 사전적 정의를 본다면 분명 맞는 말이겠지요. 하지만, 재벌의 편법 상속을 눈감아 주는 녀석들이 정말 국민의 대변인인가요?”
“무슨 의미인지 알겠군.”
고개를 끄덕이는 N을 보며 윤기는 말을 이었다.
“이번 일에 대해서만큼은 국민의 대변인은 각하가 될 겁니다. 국민은 마음 깊은 곳에서 ‘분배’를 바라고 있을 테니까요. 즉, 각하께서 재벌들과 국회의원들을 죄다 남영동에 집어넣는다고 해도 국민은 뭐라고 하지 않을 거란 말입니다.”
“신문 역시 조용하겠군.”
윤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좀 시끄럽겠죠. 재벌들이 돈을 있는 대로 뿌릴 테니까요.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여론은 각하를 지지할 겁니다.”
“자네의 말을 듣고 보니 나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군. 나도 결코 깨끗한 놈은 아니고, 더러운 쪽에 속하지만, 국민의 대변인으로 나선 녀석들이 당선되고 나면 재벌의 대변인이 된다니 말이야.”
스스로 고찰하는 N의 모습에 윤기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저는 그래서 ‘여당이 나쁘다’, ‘야당이 나쁘다’ 같은 말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습니다. 결국, 그들은 ‘당선’을 위해서라면 무슨 말이라도 하거든요. 그들이 하는 행동은 국민적 지지를 얻기 위한 것이지, 국민을 위한 행동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 나이에 그 정도까지 고찰하다니. 도대체 자네는 어떤 사람인가?”
윤기는 대답 대신 자신이 하던 말을 마저 이었다.
“과거 자신이 전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착각한 녀석이 있었죠. 그게 누구인지 아십니까?”
“누구인가?”
“오래전 인물이 아닙니다. 바로 P를 이야기하는 거니까요.”
윤기의 입에서 과거의 인물이자, JD의 이상향이었던 인물의 이름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