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218)
#218화 날아간 1,000억 (1)
“으음, 제가 고아원에 기부했었던 것도 알고 계셨습니까?”
“재단 사업 관련해서 고아원 쪽에 우선 투자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회장님의 이름이 들리더군요.”
대화는 본론이 아닌 정우호의 과거 쪽으로 흘러갔지만, 워낙 자연스러웠기에 정우호는 최철규가 의도를 가지고 말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뭐……, 그런 때도 있었지요.”
정우호는 아련한 눈빛으로 고아원 건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우수에 찬 눈빛으로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예전의 저는 사람이 은혜를 받으면 반드시 은혜를 갚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가 젊은 시절이었나요?”
“네. 비록 전쟁을 겪기는 했지만, 적어도 순수와 열망이 있던 시절이었죠.”
정우호는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는 6·25 전쟁으로 가족과 친척들을 전부 잃었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죽기는 싫었기에 바로 장사에 뛰어들었지요.”
“저희 아버지랑 비슷하시군요.”
“뭐, 1세대 재벌들이 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자신의 말을 잘 들어 주는 최철규가 마음에 들었는지, 정우호가 부드럽게 미소를 짓고는 말을 이었다.
“조금 먹고살 만해졌을 때, 거리의 아이들이 눈에 밟히더군요. 저처럼 혈혈단신인 아이들. 그래서 저는 아이들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뜻깊은 일을 하셨군요.”
“뜻깊은 일이라……. 그렇게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죠.”
정우호는 한숨을 내쉬고는 입을 닫았다.
지금의 대화만으로는 정우호의 속내를 확인할 수 없다는 얘기.
그렇기에 잠시 상황을 가늠하고 있던 최철규의 눈에 생겨선 안 될 상황이 보였다.
‘아니, 애들이 왜 밖으로 나와?’
원래 아이들을 밖으로 내보내지 말라고 고아원 직원들에게 부탁했었다.
둘이 대화를 하는 데 아이들이 가까이 다가오면 곤란하니까.
그런데 이 상황이 오히려 정우호의 입을 열게 했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보면 참 귀엽지 않습니까? 정말로 순수해요. 젊은 시절의 저는 거리에서 고통받는 아이들을 보는 것이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고아원에 후원을 하셨군요.”
“예.”
단답으로 끝난 정우호의 말.
최철규가 다시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정우호의 시선에 무엇인가가 잡혔다.
고급스러운 복장의 한 여성, 그리고 그 여성에게 안기며 환히 웃는 고아원생의 모습.
“그래요. 바로 저 미소들을 보고 싶었습니다. 가능하면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죠. 그래서 저는 아이 둘을…….”
순간 정우호는 아차 하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닫으려고 했다.
하지만, 정우호는 끝내 입을 닫지 못했다.
왜냐하면, 고급스러운 복장의 여성이 몸을 돌려 등이 아닌 앞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었다.
“저……, 저분도 직원입니까?”
하지만, 최철규도 답을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정말 깜짝 놀랐으니까.
“누, 누나?”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
하지만, 그 말은 정우호의 관심을 끌기에 대단히 충분했다.
“누나라고요?”
“예? 아, 예. 제 둘째 누나입니다. 희망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한 것은 저도 알고 있었는데, 오늘 여기에 있을 줄은…… 정말로 몰랐네요.”
전혀 연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최철규의 행동에는 어색함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최철규의 모습은 호재로 작용했다.
“누나분이시면 결혼을 하셨……겠군요?”
무언가 기대감을 품고 묻는 정우호의 모습.
최철규는 상당히 당황한 상태였기 때문에 정우호의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예, 결혼했죠.”
순간 정우호의 안색에 절망이 어렸고, 그제야 최철규도 상황을 파악했다.
‘잠깐, 이거 설마……? 아차차!’
자신의 실책을 파악한 최철규는 빠르게 말을 이었다.
“정확히는 했었습니다. 남편과 사별한 지 몇 년 지났거든요.”
“아……, 정말 안타까운 일이네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정우호의 안색은 상당히 밝아져 있었다.
“최 사장님.”
“네, 회장님.”
“저는 말입니다. 저는 제 인생에서 저런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길 원했습니다.”
고아원생들에게 진심으로 자애로운 미소를 보여 주는 최유정의 모습.
윤기에 의해 재단 이사장 자리에 앉기는 했지만, 결혼 생활을 하면서 자식을 얻지 못했기에 고아원생들에게 애틋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저런 모습은……, 보신 적이 있지 않으신가요? 자제분들이 있으신 거로 아는데…….”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지만, 최철규는 돌직구를 날리는 것보다 일부러 변화구를 날렸다.
그리고 변화구는 일정 부분 성공했다.
“최 사장님.”
“네, 회장님.”
“이번 일은 며칠 후에 다시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 * *
‘최유정’이라는 변수는 최철규는 물론이고 윤기조차도 전혀 상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재에는 당혹감이 넘쳐흘렀다.
“예?”
뜨악한 표정을 짓는 윤기의 모습에 최철규는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본인 역시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도 놀랐다니까. 그런데 아무리 봐도 누나한테 마음이 있는 것 같아.”
남자가 여자한테 반하는 일이야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다만, 정우호가 이번 일에 있어서 핵심 ‘적’이라는 게 문제였다.
재계 서열은 상대적으로 낮지만, 가장 일선에 서서 움직이고 있는 존재.
그렇기에 윤기는 머리가 아팠다.
‘어떻게 해야 하나?’
그냥 놔둬도 될걸?>
윤기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최덕배가 있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뭐라구요?’
그냥 놔둬도 될 거라고.>
‘진심이에요?’
최덕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심심해서 철규 녀석 옆에 붙어 있었는데, 그 덕분에 정우호였나? 그 녀석 표정을 볼 수 있었거든. 그 녀석 표정이 어땠는지 알아?>
‘어땠는데요?’
너를 처음 본 메릴이랑 비슷한 표정이었어.>
대단히 납득가는 표현에 윤기는 자신도 모르게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려 버렸다.
“윤기야?”
갑자기 윤기가 고개를 돌리고는 픽 하고 웃기까지 하자, 최철규는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아, 죄송해요. 잠시 딴생각을 했거든요.”
“별일이네. 네가 딴생각을 다 하고.”
“저도 사람이니까요.”
윤기가 다시 집중했다고 생각했는지, 최철규는 다시 말문을 열었다.
“그나저나 어쩌지? 이거 도대체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거야?”
“며칠 기다려 보죠.”
“기다리자고?”
“네, 어차피 기존 계획을 못 쓰는 건 아니잖아요?”
윤기는 정우호와 정우호의 입양 자식들의 사이가 어그러져 있다는 것을 이미 파악한 상황이었다.
정우호에게 있어서 그나마 ‘가족’이라고 할 만한 것은 오로지 그 둘뿐.
그 둘과의 사이가 지금보다 더 어그러진다면?
정우호 입장에서는 증여와 상속에 대해서 아예 생각을 지워 버릴 것이다.
피도 섞여 있지 않은데, 사이마저 극단적으로 나빠진다면 챙겨줄 이유가 없으니까.
그렇기에 윤기는 그들의 사이를 헝클어뜨릴 준비는 이미 해 놓은 상황이었다.
‘지금은 자신이 입양했으니 어쨌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정도겠지.’
윤기의 이러한 결정 덕분에, 정우호는 며칠 간의 말미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본인은 전혀 모르겠지만.
“순수한 의미의 연모인지, 아니면 고모를 통해 수작을 부리는 것인지 보자고요. 사나이의 순정이라면 조금은 이해해 줘도 되지 않겠어요? 만약 순정이 아니라 다른 의도가 있다면…….”
윤기는 그릇에 놓인 매실을 하나 집더니 그대로 으스러뜨렸다.
“이렇게 될 거예요.”
뚝뚝 떨어지는 매실즙 위로 싱긋거리는 윤기의 미소가 서재에 퍼졌다.
그리고…….
아, 씨, 튀었잖아!>
* * *
희망 고아원에는 때아닌 기부 풍년이 이루어졌다.
와이케이에서 주는 지원이 아닌, 정우호 개인이 주는 지원.
그렇기에 아이들의 입술은 그야말로 귀에 걸렸다.
왜냐하면, 학용품부터 시작해서 과자에 옷에 장난감까지 정말 많은 양의 기부가 이루어졌으니까.
덕분에 정우호는 희망 고아원에서 일약 스타가 되었다.
[아저씨, 고맙습니다!]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삼촌이 최고예요!]아이들이 정우호를 부르는 호칭은 각양각색이었지만, 어쨌거나 정우호는 고아원 한쪽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
그네 하나에 앉아 아이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때로는 조용히 혼자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만, 한 가지.
정우호의 시선이 고정될 때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최유정.
‘정말……, 너무 닮았어…….’
최유정을 바라보는 정우호의 눈은 언제나 습기가 가득 차 있었다.
왜냐하면, 최유정의 모습에서 첫사랑의 모습을 보았으니까.
그리고, 최유정이 아이들과 함께 노는 모습들을 보면서 옛날에 첫사랑과 함께 한 약속을 떠올렸으니까.
‘제길…….’
6·25 전쟁 당시, 피난 중에 자신을 대신해 죽은 첫사랑을 떠올린 정우호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톡 하고 떨어졌다.
‘수란이 누나하고는 전혀 다른 사람이야. 전혀 다른 사람인 건 아는데…….’
닮아도 너무 닮았다.
첫사랑이 나이를 먹었다면 분명 저 모습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우호의 첫사랑과 최유정은 닮아 있었던 것이다.
“어머, 우세요?”
순간 귀에 들려오는 목소리에 정우호는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외치듯이 말했다.
“수, 수란이 누나?”
“네?”
그네에 앉은 상태로 고개를 위로 올린 정우호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아…… 맞아……. 그래……. 아니었지…….’
분명 첫사랑과 비슷한 외모.
하지만, 그넷줄을 붙잡고 있는 주름진 손이 정우호에게 현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이걸로 닦으세요.”
정우호는 자신도 모르게 최유정이 건네준 손수건을 받았고, 손수건에 배어 있는 냄새를 맡았다.
‘모르겠어……. 비슷한 향기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니, 애초에 수란이 누나가 아닌데…….’
정우호가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때, 최유정은 자연스럽게 옆에 있는 그네에 앉았다.
“아이들을 좋아하시나 봐요.”
눈에 들어오는 최유정의 푸근한 표정.
그 모습에 정우호는 자신도 모르게 대화를 이어 나갔다.
“예, 좋아합니다.”
거짓말.
하지만, 정우호는 어쩐지 이 대화를 빨리 끝내고 싶지 않았다.
“사장님처럼 아이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저는 사실 고아원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이번에 얼떨결에 이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거든요. 부모 없이 힘든 아이들에게 제가 조금이라도 희망이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최유정은 정우호의 정체를 몰랐다.
그렇기에 ‘사장님’이라는 호칭으로 정우호를 불렀고, 정우호는 정우호대로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왜냐하면, 자신이 해신 그룹의 회장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수란……, 아니 최유정은 자리에서 일어나 버릴 테니까.
“그러고 보니, 방금 말씀하신 ‘수란이 누나’라는 분은 누군가요? 저하고 착각하신 것 같은데, 저하고 닮은 분인가요?”
“예? 어…… 그게……, 제 첫사랑입니다.”
정우호는 그냥 솔직하게 말해 버렸다.
옆에 있는 최유정에게 언제 자신의 정체를 들킬지 모르는 상황.
그렇기에 지금 순간, 차라리 솔직한 대화를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머, 첫사랑!”
최유정은 매우 흥미가 간다는 듯 손뼉을 짝 쳤다.
자고로 남의 첫사랑 얘기는 재밌는 법이니까.
“그분은 지금 뭐하고 계세요? 혹시 지금의 아내분?”
장난기 가득한 최유정의 모습에 정우호는 더더욱 첫사랑을 떠올렸다.
[너! 커서 다른 여자랑 결혼하면 죽어?] [이 누나만 따라와! 부산까지만 가면 돼!] [세상 다 망해도 이 누나가 너 굶게는 안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이 수란이 누님이 너 먹여 살릴게.] [이 주먹밥 먹어. 어떻게 구했냐고? 엄마가 나 혼수로 쓰라고 준 옥가락지랑 바꿨어. 이 누나가 너 굶게는 안 한다고 했잖아? 나중에 네가 더 좋은 가락지로 사 줘야 해. 알겠지?]자신보다 다섯 살이 많았던, 수란이 누나.
하지만, 그 수란이 누나는 지금 이 세상에 없었다.
“아뇨, 제 아내는 아닙니다.”
“아쉽다. 헤어지셨어요?”
정우호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헤어졌죠.”
“원래 첫사랑은 이루어지기 힘든 법이래요.”
30대를 넘긴 사람들이 첫사랑과 헤어진 이야기를 할 때 심각한 표정을 짓는 일은 없다.
그렇기에 최유정은 별생각 없이 다음 질문을 던졌다.
“첫사랑분은 지금 뭐 하고 계시는지 아세요?”
“아마도 저를 지켜보고 있겠죠.”
중의적인 표현을 담은 정우호의 말을 최유정은 순간 이해하지 못했다.
“여기서 일하세요? 그래서 기부를 하신 건가요?”
정우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먼저 좋은 곳에 갔어요. 6·25 전쟁 때요.”
순간, 살짝 흔들거리던 최유정의 그네가 우뚝 멈추었다.
“죄, 죄송해요……. 그런 쪽이라고는 정말 생각도 못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진심으로 사과하는 최유정을 향해 정우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오래전 일인걸요…….”
“그래도……”
“죄송하시다면, 이 늙은이랑 조금 더 대화해 주실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