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22)
#22화 돈은 돈을 낳고 (1)
“네.”
윤기는 주눅 들지 않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너에게 돈은 이미 충분히 주고 있는 것으로 안다만. 어째서 돈이 필요한 것이냐?]“공짜로 빌려달라는 게 아니에요.”
[윤기야.]최기현은 대답하기보다는 윤기를 나지막하게 불렀다.
“네, 할아버지.”
[지금 너는 나한테 비즈니스를 요청한 거란다.]“맞아요.”
[그런데 비즈니스에는 세 종류가 있어. 하나는 동등한 비즈니스, 다른 하나는 내가 위에서 행하는 비즈니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내가 아래에서 행하는 비즈니스. 네가 생각하기에 너는 지금 어떤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말을 듣는 순간 윤기는 자신의 실수를 눈치챘다.
“죄송해요, 할아버지. 만날 약속을 잡을 수 있을까요?”
손자가 빠르게 자신의 잘못을 깨닫자 최기현의 목소리는 다소 누그러졌다.
[손자가 할아버지를 찾아온다는데 언제든지 시간을 낼 수 있지. 그것이 바로 가족의 특권이니까. 하지만 찾아온다고 해서 내가 들어주리란 보장이 없다는 것 역시 알아야 한다.]“물론이죠. 설득할 자신은 충분히 있어요.”
[그래서, 언제 올 거냐?]냉철한 경영인의 마인드가 섞여 있다고는 해도, 손주를 보고 싶다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는 법이다.
* * *
최기현은 심심했다.
물론,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것은 사실이었다.
허구한 날 직원들이 결재 서류를 가져오고, 실제 회사들의 상황까지 파악하려면 그야말로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랐으니까.
하지만 10년 가까이를 거의 항상 옆에 있던 손주가 자리를 비우고, 그 이상 함께 있었던 첫째 며느리가 미국에 있는 데다가, 생명의 전우인 콜슨 준장마저 한국에 없다.
그렇다 보니 최기현은 밤에 잠자리에 들려고 해도 뒤꿈치로 방바닥만 긁을 뿐 영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내일이면 손주가 온다고 하는데…….’
물론 다른 손주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둘째 며느리인 박경자도 현재 아들을 낳았고, 셋째 며느리도, 넷째 며느리도 손주를 낳았으며, 장녀와 차녀도 각각 자식들을 낳았다.
그러나 문제는 따로 있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은 없지만, 더 아픈 손가락은 있다는 것.
다른 손주들 중에서도 귀여운 녀석들이야 있지만, 윤기만큼 눈에 차는 녀석이 없다는 게 문제인 것이다.
그렇기에 최기현은 윤기가 도착하기 전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아침을 맞았다.
덜컹!
집 정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자 최기현의 고개가 팩하고 돌아갔다.
‘에이, 아니네.’
가정부가 찬거리를 사 온 모습에 최기현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고개를 원래대로 돌렸다.
덜컹!
‘왔나?!’
하지만 이번에도 아니었다.
정원을 관리하기 위한 정원사가 들어왔을 뿐이었다.
‘아오, 생각 같아서는 아무도 문 못 열게 하고 싶네.’
부하 직원을 통해서 윤기를 데리러 가게 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자신이 직접 갈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 최기현이었다.
덜컹!
“으헉!”
잠시 딴생각을 하던 중 문이 열리는 바람에 최기현은 깜짝 놀랐고, 문 쪽을 바라보는 게 조금 늦었다.
하지만.
“할아버지!”
가장 사랑하는 손주인 윤기가 자신을 부르면서 저택을 향해 달려오는 모습에 최기현은 벌떡 일어나 자신 역시 저택 현관문을 향해 뛰어나갔다.
“아이구, 우리 손주!”
“할아버지, 보고 싶었어요!”
“이 할아버지도 보고 싶었다. 그런데 너는 정말 보고 싶었던 게 맞냐?”
약간 토라진 할아버지의 표정에 윤기가 알쏭달쏭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미국 가지 말고 그냥 한국에서 할아버지랑 같이 있는 게 낫지 않겠느냐? 요새 이 할아비는 심심해 죽겠다.”
죽을상을 짓는 할아버지를 보며 윤기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할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려면 저는 아직 더 배워야 해요. 대신에 방학이 끝나면 바로 내려올게요.”
“꼭 그래야 한다?”
“그럼요.”
“그럼, 자세한 건 일단 안에서 이야기하자꾸나.”
최기현이 윤기를 안아 들고 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저택 입구의 문이 다시 한번 열렸다.
덜컹!
“아버지, 나와 계셨네요.”
최기현의 차남인 최철민이 다소 어색한 공손함이 담긴 음색으로 말을 걸어 왔다.
“왔느냐?”
최기현은 차남이 찾아왔는데도 원래 목적 그대로 서재 안으로 손주를 데리고 들어갔다.
“작은아버지를 먼저 만나 보시는 게 낫지 않아요?”
“네가 먼저 왔으니 당연히 너를 먼저 봐야지. 내가 너를 제치고 철민이를 먼저 만나면 네가 섭섭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겠느냐?”
“이유가 있다면요.”
최기현은 상당한 의미를 담은 손주의 대답이 마음에 든다는 듯 아래로 내려 준 다음에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어쨌거나 먼 곳에서 왔고, 너도 그게 결론이 나야 마음이 편할 테니, 먼저 그 이야기부터 해 보자꾸나.”
최기현은 서재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그러자 순식간에 최기현의 분위기가 변하며, 손주를 보는 할아버지가 아닌 경영인의 분위기가 흘러나왔다.
“나는 이미 너에게 특급 대우를 해 주고 있다. 제일 방직을 사라는 조언이 시의적절했기에 너에게 제일 방직 사장만큼의 연봉을 용돈으로 주고 있지. 증여세까지 지불해 가면서 말이다.”
“네, 그래서 항상 감사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말해 보거라. 지금까지 제일 방직을 통해서 받은 월급, 그리고 그걸 불린 금액을 생각하면 네가 가진 돈은 대략 2억을 왔다 갔다 하겠지. 그 돈을 다 어디다 쓴 것이냐?”
최기현의 분석력은 굉장히 뛰어났다.
윤기가 갖은 방법을 통해 최대한 불린 자산의 총액은 2억 2천만 원.
일반적으로 통장에 입금을 했다면의 말이지만, 현재 윤기의 통장에는 정확히 7,820원만이 남아 있었다.
그나마 류근태와 함께 한국으로 잠시 돌아올 때도, 1등석도 아니고, 2등석도 아니고, 3등석을 탔다.
돈이 없었으니까.
그나마도 류근태에게 한국 온 김에 집에 다녀오라면서 약소한 보너스를 주었기에 지금의 윤기는 그야말로 알거지 수준이었다.
“청계천의 땅을 제가 목표한 만큼 매입했고, 현재는 용산의 땅을 매입 준비 중이에요. 그중에는 미리 조금 산 곳도 있고, 사기로 구두 계약이 된 곳도 있고요.”
“그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돈이 남을 텐데? 미국에서 무엇을 한 것이냐?”
“마이크로소프트에 70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계약을 맺었어요.”
“뭐, 뭣이라고?”
최기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70만 달러의 투자.
이것은 최기현이 계산한 윤기의 자본을 훨씬 상회할뿐더러, 투자 계약을 맺어 놓고 약속한 투자금만큼 투자를 못 할 경우, 분명 그와 관련된 페널티가 있을 게 분명했다.
‘듣도 보도 못한 회사에 투자를 하다니, 내가 윤기 녀석을 잘못 본 건가…….’
미국에 가서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한 맏손자를 바라보고 있자니 현기증이 나려고 했지만, 시선과 귀는 다시 열리는 맏손자의 입을 향하고 있었다.
“선불 투자금 20만 달러, 이후에는 매년 10만 달러씩 투자하기로 했지요.”
“윤기야, 이 녀석아…….”
허탈한 할아버지의 목소리에 윤기는 가방에서 갈색 서류 봉투를 꺼내 할아버지에게 건넸다.
“이게 무엇이냐?”
“마이크로소프트가 어떤 회사인지 할아버지에게 알려 드리려고요.”
영어로 된 문서와 윤기가 자필로 번역한 문서 두 개가 있었기에 최기현은 일단 한글로 된 문서를 읽었다.
“자본금 1,500달러에 매출 10만 달러라고……?”
윤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인건비를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최소의 금액으로 엄청난 매출을 달성한 회사예요. 게다가 그뿐만이 아니에요. 넘겨보세요.”
최기현은 빌 게이츠의 가족 사항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호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의 부모님과 할아버지는 미국에서도 상류층이라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람들이에요.”
“마이크로소프트라는 회사가 망하면 이 사람들이 투자할 거라는 생각이냐?”
“아뇨. 사장에게 다양한 인맥의 기회가 있다는 얘기죠. 그리고 사장의 부모와 할아버지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망하면이 아니라 잘나가면 투자를 할 거예요.”
“응……?”
“지금이야 매출 10만 달러지만, 나중에 매출이 100만, 1000만이 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때 제 배당금이 얼마나 될까요? 저에게 배당금이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방어 투자가 있을 것이고, 새로운 투자자 역시 나타날 거예요. 마이크로소프트는 조금만 물살을 타면, 분명 엄청난 대기업이 될 거예요.”
“확실히 근거는 있는 투자였구나.”
최기현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걱정을 끼쳐 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손주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이야기를 끝까지 들을 수 있었다.
만약 부하 직원이나 다른 자식이었다면 일단 따귀가 날아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왜냐하면, 윤기 정도로 신뢰감을 주는 녀석들이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마이크로소프트에 돈을 다 투자했다는 말이냐?”
“아니요.”
“그러고도 돈이 남았어?”
“적지만 남았어요. 그걸 하버드 대학교에 있는 대학원생들에게 투자했어요.”
“대학원생들에게……? 어차피 고용은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에 있는 애들을 고용하면 될 일 아니냐? 한국말도 못 하는 코쟁이들을 어디다 쓰게?”
하버드가 세계 최고의 명문이라는 사실은 최기현도 안다.
그러나 삼우 그룹은 어디까지나 한국의 기업.
그렇기에 최기현은 윤기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궁금해졌다.
“저는 미국에 가기 전에는 삼우 그룹을 한국 최고의 그룹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비록 경영인의 태도였지만, 최기현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래, 그런 포부야말로 나의 원동력이었지.”
“그런데 미국에 가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어째서……?”
조금 실망한 표정, 오늘 최기현은 서재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감정이 진동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세계 최고의 그룹으로 키우고 싶어졌거든요. 그러려면 한국어를 쓰는 엘리트가 아니라 세계공용어를 쓰는 엘리트를 미리 선점해야 해요. 저는 미국 대학원생 졸업자나 대학교 졸업자를 붙잡을 능력은 없지만, 대학원생들을 후원할 능력은 있으니까요.”
“오……!”
최기현은 양손으로 의자의 손잡이를 꽉 잡았다.
손자의 엄청난 포부.
비록 현실성은 아직까지 제로에 가까웠지만, 그 포부에 근거하는 합리적인 언변이 최기현의 감성을 자극했다.
“그래서, 투자를 어떻게 한 것이냐?”
“대학원 생활을 하는 동안의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해 주기로 했어요. 대신 다른 회사에 입사하기 전에 반드시 ‘제가 운영하는 회사’에 입사 지원을 해야 한다고 했죠.”
“입사가 아니라 입사 지원을?”
윤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들이 거절하지 못할 제안을 할 생각이에요. 꼭 필요한 인재에 꼭 필요한 투자를 하는 건 낭비가 아니잖아요? 하버드 인재들을 한 명이라도 손에 넣는 순간, 다른 하버드, 그리고 프리스턴이나 예일의 인재들을 손에 넣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닐 거예요.”
윤기의 대답을 들으며 최기현은 속으로 ‘세상에’라고 되뇔 수밖에 없었다.
고작해야 열 살짜리인 자신의 손자가 이렇게 통찰력을 보여 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녀석, 만약 조선 시대에 태어났다면 능히 구도장원공이 되었겠구나.’
구도장원공.
과거에 아홉 번 장원 급제한 조선 시대의 대학자 이율곡을 말하는 것인데, 최기현의 눈에는 맏손자가 능히 그럴 만한 천재로 보였다.
하지만 최기현은 억지로 흥분을 가라앉히며, 경영자적인 입장에서 냉철하게 물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정말로 합리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너에게 돈을 빌려줘야 할 이유는 되지 않아.”
“네, 맞아요. 이건 아직까지 실체화가 되지 않은 미래 이야기니까요.”
“그래, 그러면 어떤 방법으로 나에게서 투자를 끌어내겠느냐?”
할아버지의 물음에 윤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짤막하게 대답했다.
“담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