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223)
#223화 정계의 약속 (1)
“그래, 어떻게 되었지?”
한호준의 말에 비서가 N과의 대담 내용을 말하기 시작했다.
“충분한 대가가 주어진다면, 이번 일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각하와 척을 지게 될 텐데도?”
날카로운 한호준의 지적에도 비서의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의원님의 말씀으로는 현재 ‘하나회’에서도 각하를 향한 불만이 팽배해 있다고 합니다. 와이케이를 너무 편애하다 보니 측근 귀한 줄 모른다고 말입니다.”
“하긴, 벌써 3허 중 둘이 나가리가 되었으니 말이야. 하나회에서도 불안해할 만하지.”
원래의 역사를 기준으로 90년대까지 대한민국의 권력을 독점했던 군부 집단, 하나회.
YS가 기습적으로 하나회를 강제 해산시키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은 2010년대에도 군부독재의 시대가 이어졌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자랑하고 있는 그 하나회.
JD는 그동안 그 하나회의 총수가 되기에 충분한 능력을 갖춘 인물이었지만, 요즘 들어서 인망을 잃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습니다. 측근을 쉽게 쳐 내다니. 그것은 함부로 결정할 일이 아니지요. 아마, 언제 자기 차례가 될지 슬슬 불안할 겁니다.”
양이윤의 맞장구에 박해찬도 말을 거들었다.
“그리고 보니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하나회에서는 새로운 총수를 뽑고 싶을지도 모르겠군요?”
까딱 잘못하면 안기부에 잡혀갈지도 모를 대발언.
하지만, 이곳에 있는 3명의 회장과 1명의 비서는 서로를 확실히 믿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속내를 거리낌 없이 드러냈다.
“박 회장님의 말씀처럼 하나회에서 각하의 편을 들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아 보입니다. 사실, 1인자는 자신의 독재를 이어 나가고 싶어 하지만, 그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오매불망 자기의 차례를 기다리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사실, P도 자기 차례를 넘겼으면 궁정동에서 죽는 일이 없었을 것 같습니다.”
농담조가 섞인 박해찬의 말에 한호준과 양이윤이 둘 다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핫! 그거 정말 맞는 말씀입니다. 우리 같은 경제인들이야 죽을 때까지 1인자 자리를 유지할 수 있지만, 정치권의 1인자는 ‘선거’라는 개념이 있는 이상, 자리를 유지할 명분이 없지요.”
여기까지 말한 한호준은 다시 비서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돈은 어떻게 달라고 하던가?”
“아닙니다. 아무리 자신이 입김이 있다고 하더라도 입김만으로 확정 지을 수는 없으니 의원들을 개별로 찾아가서 돈을 전달해 달라고 하시더군요.”
“오, 그게 정말인가?”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기에 한호준이 자세를 비서 쪽으로 가까이했다.
그 덕분에 전등의 불빛이 한호준의 대머리에 반사되었고, 비서는 그 반사광에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물론, 왜 물러났는지 한호준은 모르겠지만.
“예, 그렇습니다. 저도 ‘한 번에 받으시는 게 편하시지 않습니까’라고 떠봤는데, 그래도 고개를 저으시더군요.”
“확실히 N은 된 사람이구만.”
한호준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사실, 이번 계획을 시행하면서 가장 부담되었던 것이 돈을 주는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정우호한테 당한 것처럼, N이 돈을 몰아받은 다음에 배신하면 그야말로 방법이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N을 거치지 않을 수도 없었다.
현재 여당에 가장 큰 입김을 가지고 있는 N을 설득하지 않으면, 아무리 다른 의원들에게 돈을 뿌려도 효과가 떨어질 테니까.
“정말 다행입니다. 이제 한숨 돌려도 될 것 같아요.”
마주 안도의 한숨을 쉬는 박해찬의 말에 양이윤이 고개를 끄덕이며 비서를 향해 물었다.
“지금까지 말대로라면 여당은 완료되었고, 야당은 어떤가?”
“야당 쪽도 완료입니다.”
그야말로 좋은 소식만 가져온 비서의 말에 세 명의 회장 모두가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이번에는 성공하겠군.]]]* * *
개정안에 관한 국회 투표는 생각보다 굉장히 빠르게 이루어졌다.
JD는 JD대로 돈은 잃었지만, 여론이라도 확실히 붙잡아야 했고, 의원들 역시 재벌들에게서 돈을 받기로 한 만큼 빠르게 추진을 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투표 결과 상당히 재밌는 일이 벌어졌다.
여당의 압도적인 찬성과 야당의 압도적인 반대.
분명 한호준을 위시한 재벌들이 국회의원 전부를 매수했는데도, 여당의 압도적인 찬성이 나온 것이다.
애초에 여당의 의석수가 많은 편이었던 데다가, 야당 의원 전부가 반대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개정안은 통과하고 말았다.
“이야기를 듣기로는 한 회장이 뒷목을 잡았다고 하더군.”
윤기의 별장.
그곳에서 윤기와 N은 홍차와 함께 티타임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가요?”
“당연하지. 정우호 회장이 1,100억을 꿀꺽한 데 이어서 이번에는 의원들한테 막대한 자금을 뿌렸는데도 개정안이 통과되어 버리고 말았으니까.”
N의 얼굴에는 웃음이 어려 있었는데, 절반 정도는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
“한 회장 측에서 돈을 줄 때, 각서 같은 것을 써 달라고 안 하던가요?”
“그거야 이미 예상했지. 그래서 다른 의원들에게 각서장을 써 줄 때 반드시 ‘정자체’로 써서 주라고 했어. 그러면 나중에 필적 문제로 시끄러워질 일도 없으니까.”
한호준도 나름대로 2중, 3중의 안전책을 깔았다.
하지만, 윤기에게 대부분 분쇄당하고, 마지막 남은 필적마저 N에 의해 마무리되었다.
만약, 의원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필적을 증거로 폭탄을 터뜨리려고 했는데, 그마저도 실패한 것이다.
“하긴, 만나기 전에 몸수색을 당할 테니 녹음기 같은 것을 소지하기도 힘들었겠죠.”
2010년대야 기술이 워낙 발전해서 양복 단추에 녹음기가 달린 경우도 있었지만, 이 시대에는 그것이 불가능했다.
대충 몸 여기저기를 터치해 보면 녹음기가 적발될 수밖에 없었으니까.
“솔직히 말해서, 이번 법안은 통과되는 게 불가능한 법안이었어. 와이케이가 아니었다면 말이야.”
N의 말에 윤기는 미소를 지었다.
“정치와 경영은 분리될 수가 없어. 이것은 다른 국가, 그리고 역사가 증명하는 일이지. 그렇기 때문에 이번 개정안을 다른 의원들이 입안했다고 한다면, 그냥 묻혔을 거야.”
한마디로 표결에 부쳐지는 것조차 안 된다는 이야기.
하지만, 이번 개정안은 표결에 부쳐졌다.
“와이케이, 아니, 자네의 자금력은 정말로 대단해. 여당 의원 대부분을 매수할 수 있는 수준이라니…….”
“아뇨. 의원님의 지도력이 빛을 발한 결과죠.”
“그렇게 겸손할 것 없네. 현재 한국에서 자네만 한 개인 자산을 가진 사람은 없으니까.”
2010년대를 두고 비교하면, 윤기보다 돈이 많은 한국인은 몇 명 존재한다.
하지만, 이 시대를 기준으로 윤기보다 돈이 많은 한국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이 80년대라서 이게 통했던 거지. 재벌과 정치인들의 핏줄이 별로 겹치지 않아서 다행이야.’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재벌과 정치인들의 핏줄이 점점 겹쳐지게 된다.
괜히 80년대에 ‘사법고시만 패스해도 재벌 집 사위가 된다’라는 말이 돌았겠는가.
70년대까지는 한국 재벌들이 P의 지원에 힘입어 대성장을 했었고, 80년대에는 성장한 재벌들이 금력을 바탕으로 정치인들을 매수했다.
그게 수십 년 동안 이어져 2010년대의 정경유착이 된 것이다.
하지만, 윤기는 자신의 금력으로 정경유착을 막았다.
아니, 늦췄다.
분명 시간이 흐르면 결국 유착이 되겠지만, 적어도 그걸 늦출 힘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괜찮겠는가?”
문득 나온 N의 걱정에 윤기가 살짝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엇을 말씀이신가요?”
“아무리 자네의 금력이 대단하다고는 하더라도, 수백 명에 달하는 의원들의 선거운동 자금이나 노후를 보장해 주기는 힘들 것 같네만. 아니, 힘든 건 둘째치고 그 돈이 자네한테도 결코 아깝지 않은 것은 아닐 텐데…….”
진심 어린 걱정이 섞인 말에 윤기가 미소를 지었다.
“돈은 더 벌면 되니까요.”
말을 들은 N이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자네다운 말이야.”
윤기는 의원들에게 선거 자금 및 정치 활동 자금과 노후를 보장했고, 의원들은 그런 윤기에게 국회에서의 한 표를 약속했다.
이러한 협약은 사실상 윤기가 지원해 주는 동안에만 가능한 일.
특히 이번 개정안 자체가 여론의 힘을 입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의원들이 윤기의 제안을 승낙한 것이었다.
N의 지시, 윤기의 제안, 한호준을 비롯한 재벌들의 뇌물.
이 3박자가 겹쳐졌기에 가능했던 기적.
“어차피 정치란 생물이라고들 하잖아요? 제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의원들은 서둘러 재벌들 쪽으로 돌아가겠죠.”
“그리고 재벌들 역시 의원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지.”
밉다고 해서 영원히 척을 질 수 없고, 좋다고 해서 영원히 친할 수 없는 정치판.
‘열심히 돈 벌어야겠네.’
영향력을 오랜 기간 유지할 마음을 먹은 윤기의 생각에 최덕배가 끼어들었다.
제사상 차려 주려고?>
* * *
정우호 회장과 더불어 여당의 먹튀로 인해 한호준을 위시한 재벌들의 현금 동원력은 박살이 났다.
물론, 전 재산을 잃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시대의 재벌들은 자기 회사의 주식을 상당수 보유하고 있었고, 부동산 역시 나름대로 가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가용할 수 있는 현찰을 죄다 잃어버린 것은 재벌들 입장에서 엄청난 타격이었기에, 와이케이와 재벌들의 전쟁은 잠시 소강상태에 빠졌다.
한호준 회장은 병원에 입원, 박해찬 회장은 자택에 칩거, 양이윤 회장이 그나마 다른 재벌들의 구심점이 되고 있었지만, 연이은 실패로 인해 재벌들이 잘 따르지 않으면서 와이케이는 상대적으로 굉장히 쾌적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지금처럼.
“아, 고모, 고모부, 어서 오세요.”
윤기의 말에 최유정과 정우호는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빨리 저를 고모부라고 불러 주시다니……, 조금 송구스럽네요.”
“말씀 놓으시라니까요. 이제 ‘가족’이잖아요? 일단, 앉으세요.”
윤기의 환한 미소에 정우호는 앉으며 뒤통수를 긁었다.
“솔직히, 엄청 놀랐습니다. 지금까지 와이케이를 일군 것이 삼우에 있는 최 회장님이 아니라, 눈앞에 있는 최 회장님이었다니…….”
“쓰읍!”
짐짓 윤기가 화를 내자, 정우호는 깜짝 놀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진짜……, 놔도 되……나?”
“놓으시라니까요. 안 그러면, 저 고모한테 혼나요.”
“그래, 당신이 계속 그러면, 내가 윤기 혼낼 거야.”
최유정이 웃으며 자신을 흘겨보자 정우호는 어렵게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그러면 어……, 알겠어.”
마침내 시작된 반말.
윤기가 정말 기분 나쁜 표정을 전혀 짓지 않았기에, 정우호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겪은 인생에서 말 놓으라고 해서 놓았다가 피를 보는 경우도 꽤 보았었으니까.
“그런데, 진짜로 후회 안 하시겠어요?”
윤기의 말에 대답한 것은 정우호가 아니라 최유정이었다.
“얘가! 지금 고모부한테 고모와의 결혼을 후회하냐고 물어보는 거니?”
뾰로통한 음색과 함께 자신을 쏘아보는 최유정의 모습에 윤기가 ‘윽’ 소리를 내며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아니, 그, 그런 뜻이 아니라…….”
“오히려, 손해는 내가 본 거 아니니? 남편 나이가 50대고, 나는 30대야. 이 정도 나이 차이에 800억이면 싼 거지.”
대단한 자신감이었지만, 이 모든 것이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한 말이었기에 윤기도 정우호도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800억은 그냥 안 받기로 했어.”
말을 하면서 최유정은 조심스럽게 윤기의 눈치를 보았다.
왜냐하면, 정우호가 800억을 와이케이에 상납하겠다는 뜻을 밝혔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기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그거 제 돈 아니에요. 고모부 돈이죠.”
“내 돈인데? 이 사람 나한테 준다고 했어.”
“월급으로 매달 800억씩 주는 남편이에요? 이야!”
최유정의 농담과 윤기의 맞장구.
덕분에 정우호는 마음이 편한 것과는 별개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 아니, 매달 800억을 가져다줄 수는…….”
“농담이에요, 농담.”
씨익 웃는 윤기의 표정에 정우호는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 버렸다.
“휴우.”
“그냥, 800억은 이 사람이 알아서 운용하라고 했어. 800억을 나한테 주면 돈이 아까워서 나를 사랑할 수도 있지만, 800억을 자기가 가지고 있으면, 800억을 가졌는데도 날 사랑한다는 거잖아?”
은근히 말 되는 최유정의 논리에 윤기가 정우호를 바라보며 한마디를 더 보탰다.
“3,000억만큼 사랑할 수 있게 더 노력하세요.”
“어……, 아, 알겠어. 그래, 3,000억……!”
주먹을 불끈 쥐는 정우호를 향해 윤기가 물었다.
“그나저나, 어떻게 하실래요? 예전 신상의 강석호 회장은 지금 제 비서이자 와이케이의 간부로 활동하고 있거든요. 고모부는 생각 있으세요?”
정우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그러고 싶지는 않아. 지금까지 너무 열심히 살아왔어. 그것도 내가 일방적으로 사랑하는 녀석들을 위해서 말이야. 이제는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을 사랑하면서 좀 여유 있게 살고 싶어. 돈은 이미 넘치도록 있잖아?”
최유정을 바라보는 정우호의 눈에는 따뜻한 사랑이 정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내가 3,000억을 가지지는 못할지라도, 3,000억을 가진 사람처럼 당신을 평생 사랑할게.”
“그 약속 못 지키면 죽어?”
눈을 흘기는 최유정을 향해 정우호가 쓴웃음을 지었다.
“진짜, 어떻게 하는 생각이나 행동이 이렇게 똑같을까?”
“제가 듣기로 고모가 학창시절에도 상당한 왈가닥이었다고 하더라구요.”
“윤기야!”
사실상 국내 1위 기업 총수인 윤기, 그리고 국내 8위 기업 총수인 정우호.
그야말로 재계의 거물들이었지만, 그들을 말 한마디로 휘어잡을 수 있는 것은 아줌마였다.
“아, 그리고 보니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는데…….”
살짝 분위기가 변한 정우호의 태도에 윤기가 관심을 가졌다.
“무엇인가요?”
“대영의 김남익 회장이 계속 가만히만 있지는 않을 거야. 나도 자주 대면한 적은 없었지만, 그 사람이 이번에 재벌 측에 합류했다면 일이 이 정도로 쉽게 풀리지는 않았을 테니까.”
정우호의 이러한 말처럼, 이미 대영은 움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