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228)
#228화 소련, 개방! (1)
한국 역사에 길이 남을 1위 기업의 몰락.
그렇게 85년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사건을 남긴 채 저물었다.
그리고 다가온 86년.
대영의 김남익과 김정태, 그리고 재벌 전쟁에서 살아남은 김남익의 식솔들은 전부 베트남으로 향했다.
자신들의 ‘개인 자산’을 들고.
본래대로라면 상대 재벌들에게 막대한 위자료를 배상받은 후, 그 돈을 빼돌려서 개인 자산화하려던 것이 김남익의 계획.
하지만, 대영그룹이라는 법인이 사라지게 되면서 그들이 가져갈 수 있는 돈은 철저하게 개인 자산으로 한정되었다.
하지만, 그 개인 자산은 원래 생각했던 액수에 비하면 너무나 하잘것없었다.
왜냐하면, 주식이 휴짓조각이 되었으니까.
재벌들의 재산 대부분은 상장된 기업의 주식.
하지만, 대영그룹이 싹 망해 버리면서 주식은 휴지만도 못하게 된 것이다.
더군다나 부동산도 치명타를 보았다.
대영그룹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드러나면서 사람들은 대영그룹의 식솔들이 가진 부동산을 감히 사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걸 사는 순간 JD가 진노할 테니까.
결국, 김남익은 자신을 비롯한 자기 식솔들의 부동산을 매우 싼값에 JD에게 넘길 수밖에 없었고, 그 대가로 식솔들이 무사히 베트남으로 넘어갈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김남익을 따라가지 않은 일부 식솔들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는 김남익을 따라갔다.
어차피 한국에 남아 있어 봤자 좋은 대접은 받기 힘드니까.
‘원래대로라면 막대한 자금력으로 베트남의 경제를 휘저으려고 했는데…….’
비행기 이등석.
한 푼이라도 베트남에서의 재기를 위해서 써야 했기 때문에, 일등석조차도 타지 못한 김남익은 두 손가락밖에 없는 손으로 주먹을 부르르 쥐었다.
베트남쯤이야 얼마든지 장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현재 가진 자산으로는 그냥 베트남의 재벌이 된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똑같은 재벌이라 하더라도, 너무나도 달라…….’
2010년대조차도 국내 여행을 할 돈이면 베트남에서 5성 호텔에서 내내 숙박하는 여행을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 80년대는 어떻겠는가?
결국, 한국 재벌에서 베트남의 재벌이 된 상황에서 다시 뿌리를 박아야 하는 김남익의 마음은 타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
‘빌어먹을……. 최 회장, 내가 이 치욕은 절대로 잊지 않겠다.’
한 차례 성공했던 경험을 살려 베트남에서 재기해 보겠다는 생각을 하던 김남익이었지만, 절대적인 수치는 그게 쉽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이미 와이케이 그룹, 아니, 윤기의 자산과 김남익의 자산은 비교 자체가 모욕일 정도의 차이를 보이게 되었으니까.
* * *
윤기는 진정으로 평온한 한 때를 보내고 있었다.
86년 1월.
재벌들은 가진 현금 대부분을 잃었고, 우두머리가 전부 교도소에 가 있어서 자기들끼리 싸우기 바빴다.
8월이 되면 광복절 특사로 그들 전부가 빠져나오게 되겠지만, 그들이 나온다고 해서 기업 내부의 혼란이 사그라들 리가 없다.
8개월간 임시로 우두머리가 되었던 자와, 교도소에서 나온 자가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시작할 테니까.
결국, 와이케이는 사실상 국내 1위 기업이 된 셈이었다.
그것도 비상장회사가!
분명, 매출에 있어서는 1위가 되지 못한다.
하지만 순익, 그리고 실질적인 능력에 있어서 이미 1위 기업이 된 것이다.
그렇기에 윤기는 평온할 수 있었다.
물론, 본인이 그럴 마음이 있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왜 그렇게 전전긍긍하고 있냐. 군대 때문에 그래?>
“아, 씁.”
군대라는 말에 윤기는 자신도 모르게 쓴소리를 내뱉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군대는 정말 현실로 다가오는 공포였으니까.
국내 1위 기업의 회장이라 하더라도 입대에 대한 공포는 버틸 수 없는 법.
하물며 군대 2회차라는 말도 안 되는 현실은, 윤기를 현실에서 도피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냥……, 군대 관련해서는 나중에 일이 닥치면 생각할래요…….”
그냥 군대도 아니고 80년대 군대.
그것을 두 번이나 겪어야 한다는 사실에 윤기의 눈동자가 어두워졌다.
그, 그래. 그건 나중에 생각하자.>
최덕배조차도, 윤기 앞에서 함부로 군대 얘기를 꺼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빠르게 화제를 전환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그렇게 뭘 기다리는 태도를 취하는 거냐? 딱히 급할 일도 없잖아?>
“소련 개방이요. 제가 소련에 대해서 여러 번 생각하는 모습은 보여 드렸잖아요?”
윤기의 말을 들은 최덕배가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엥? 소련의 개방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최덕배의 반응에 윤기 역시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왜요? 뭔가 이상해요?”
아니, 네가 말한 개방이 뭐냐?>
“네?”
윤기와 최덕배의 대화가 수평선을 달리기 시작했다.
네가 말한 개방이 뭐냐고.>
“그거야 당연히, 소련이 시장을 오픈한다는…….”
…….>
최덕배가 말이 없어지자 윤기는 무언가 불안감을 느꼈다.
“왜요. 뭔가 문제라도 생긴 거예요?”
86년에 소련에 진출 못 하면 어떻게 되냐?>
“선점 효과를 누릴 수 없게 되겠죠. 소련은 아직 공산주의, 그렇기 때문에 가장 먼저 진출하는 기업이 무조건 유리할 거예요. 그런데, 정확한 날짜를 모르니까 이렇게 전전긍긍할 수밖에요. 강 비서와의 약속도 지켜야 하고요.”
그렇구만.>
“그리고, 체르노빌을 막아야 해서 그래요. 체르노빌이 정확히 언제 일어날지는 모르지만, 소련에 먼저 진출한 상황에서 체르노빌 사태로 제가 다져 놓은 인맥이 붕괴하면 말짱 꽝이죠. 소련이 러시아로 바뀌는 건 상관없지만, 제 인맥이 무너지는 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해요.”
아, 체르노빌……. 그거 아마 못 막을 텐데…….>
최덕배는 평소와 달리 무언가 자조적인 어조로 말을 하고 있었다.
“해 볼 수 있는 데까지는 해 봐야죠. 그리고, 이건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이유지만, 나중에 제 자식에게 방사능 가득한 분유를 먹일 순 없잖아요.”
86년 체르노빌 사태 이후, 국내 유제품 기업들은 방사능 가득한 해외 유제품들을 어마어마하게 사들였다.
원유에서부터 완제품까지.
그리고 그것들을 고스란히 국내에 팔았다.
후쿠시마 사태로 ‘일본 음식을 피하자’라는 말이 있는 2010년대지만, 이미 한국은 80년대 중반에 국내 기업들에 의해 비슷한 일을 당했다는 이야기였다.
윤기는 노가다 시절 이와 같은 사실을 비판하는 칼럼을 읽은 적이 있었던 만큼, 가급적 체르노빌 사태를 막고자 했다.
후쿠시마가 터지기 전까지 인류 역사상 최악의 방사능 사고로 기억되어 냈던 체르노빌 사태.
하지만, 최덕배는 윤기가 이걸 막을 수 있다는 사실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왜 그래요? 평상시랑 너무 텐션이 다르잖아요.”
살짝 불안해진 윤기의 질문에 최덕배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네가 생각하는 개방이랑 올해 소련이 하는 개방이랑은 전혀 다른 거야.>
“다르다고요?”
최덕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무지하게 달라. 정확한 용어까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네가 알고 있는 86년의 개방은 ‘정보’에 대한 개방이야. 그러니까 일반 대중들에게 정부가 가진 이런저런 정보를 개방한다는 이야기의 개방이라고. 시장을 오픈한다는 얘기가 아니야. 내가 아는 한 대한민국은 90년은 되어야 소련이랑 수교해.>
“어, 시발.”
윤기는 정말 모처럼, 자신도 모르게 욕을 내뱉고 말았다.
86년도에 소련이 개방하리라고 정말 철떡 같이 생각하고 계획을 세웠는데, 실제 개방은 90년대라니. 그야말로 말도 안 될 시차가 벌어진 것이다.
“……진짜 90년대예요?”
어.>
“진짜로?”
그렇다니까.>
“진심?”
차라리 대추를 던져라…….>
윤기가 주머니에서 대추를 꺼내자 최덕배가 다급하게 외쳤다.
진짜라고! 좀! 내가 이런 거 가지고 너한테 농담하겠냐?!>
절박한 최덕배의 외침에, 윤기는 침대에 걸터앉아 있던 상황에서 그대로 몸을 뒤로 젖혔다.
쿵-!
“윽!”
윤기의 키가 컸던지라, 뒤통수가 벽에 부딪혔고, 덕분에 윤기는 제정신을 차렸다.
“아……, 진짜……, 상상도 못 했던 상황이네요…….”
목소리에 탈력감이 남아 있기는 했지만, 윤기는 빠르게 상황 파악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86년에 소련이 하는 개방은 대중에 대한 정보의 개방이고, 실제 시장 개방은 90년이라는 말이죠?”
그렇다니까. 넌 도대체 왜 86년이 왜 개방이라고 생각한 거냐?>
“노가다 시절 때 읽은 신문에 86년 소련 개방이라는 내용이 있었던 기억이 나거든요.”
허허……. 하 기사, 나도 소련 개방에 대해서 알고 있는 이유는 따로 있으니까.>
“뭔데요?”
러시아 누나들이 예쁜 프랑스 옷 입은 게 90년이었거든.>
순간, 윤기의 얼굴에서 지독한 혐오의 표정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진짜 믿는 건 아니겠지?>
“안 믿는 게 더 이상할 것 같은데요?”
……아무튼, 조금 미안하긴 하네. 나는 네가 지금까지 잘해와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거든.>
“끄응……, 결국 제 실책이니까요. 그런데, 혹시 체르노빌은 언제 일어나는지 아세요?”
나도 정확히는 모르는데, 아무튼 올해 봄이야.>
“아니, 시발?”
윤기는 자신도 모르게 침대에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
윤기가 하루에 욕을 두 번이나 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윤기는 그만큼 다급했다.
현재 세워 둔 미래 계획은 체르노빌 사태를 막아 낸다는 조건으로 성립된 계획.
소련은 자연스럽게 자본주의체재로 이행을 해야지, 체르노빌 사태를 시발점으로 붕괴해 버린다면 추후 중국과 대립할 때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벌컥-!
윤기의 방문이 열리고, 윤기는 곧바로 할아버지 집의 서재로 출발했다.
하지만, 그때.
아버지인 최철호가 거실에서 보고 있던 TV에서 윤기의 발걸음을 잠시 세우는 기사가 흘러나왔다.
[속보입니다. 소련의 서기장인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정보의 자유와 공개를 선언했습니다. 이에 소련 내부에서 활발한 정보 교환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정보가 소련 대중에게 들어갈 시…….]일단 ‘윤기가 알고 있는 개방’이 이루어진 상황.
그렇다는 것은 체르노빌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더 빨리 움직여야겠네.’
다시 현관으로 나가려던, 윤기를 아나운서의 추가적인 말이 붙잡았다.
[……또한, 고르바초프 서기관은 외국인의 소련 산업에 대한 투자를 허용했으며…….]이 뉴스를 보고 있던 것은 윤기뿐만이 아니었다.
아니, 시발?>
다시 방으로 들어온 윤기는 곧장 최덕배에게 물었다.
“90년에 시장이 오픈된다고 하지 않았어요?”
아니, 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지. 그런데 소소한 역사가 바뀌면서 저것도 바뀔 줄 내가 알았냐?>
정확히 따지자면 87년에 고르바초프는 소련 산업에 대한 외국인들의 투자를 허용한다.
이것이 여러 가지 나비효과로 인해, 86년 1월인 현재 시행된 것이다.
“어쨌든 우리 입장에서는 천만다행이라고 할 수 있어요. 체르노빌 사태까지 빠르면 두 달, 늦으면 넉 달. 그때까지 어떻게든 해결해 봐야죠.”
그래서,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이 뭔데?>
윤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JD의 허가를 다시 확인해야죠.”
* * *
국교를 수립한다는 말.
이 말은 60년대에서 90년대까지는 사람들이 꽤 자주 들어 본 말일 것이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거의 들어 본 일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2010년대의 대한민국이 국교를 수립하지 않은 나라는 시리아와 쿠바 뿐이기에, 수립할 곳이 사실상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 80년대와 90년대에는 국교를 수립한다는 말이 자주 나왔다.
원래 역사에서도 1990년에 대한민국과 소련이 정식으로 국교를 수립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86년.
국교 수립하지 않더라도 민간 교류는 충분히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소련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분명 JD의 허가를 다시 한번 받을 필요성은 있었다.
“……해서, 이번에 와이케이가 소련에 진출해 보고자 합니다. 각하, 허락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분명 예전에 그리 해 주겠다고 약속한 JD였지만, 입에서 화끈하게 ‘그렇게 하십시오’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현재 미·소 무역 분쟁은 그야말로 대단한 수준이었으니까.
“으음……, 그게…….”
JD가 고민하며 대답을 하지 못하자, 최기현은 윤기에게 들은 말을 전했다.
“사실, 거스터 님께서 각하의 허가를 받지 못하면, 미국에 법인을 세워서 소련에 진출하자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