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23)
#23화 돈은 돈을 낳고 (2)
“담보?”
“네.”
윤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제가 가진 청계천의 땅,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의 배당 권한을 담보로 할아버지에게 돈을 빌리고 싶어요. 만약 제가 돈을 갚지 못한다면 할아버지는 제 땅과 배당 권한을 가지실 수 있겠죠.”
“공부를 허투루 한 것이 아니구나.”
“할아버지가 힘들게 버신 돈으로 공부를 하는 건데 당연히 효과적으로 해야죠.”
최기현은 고작 열 살밖에 안 된 자신의 손자가 다른 3학년들처럼 곱셈, 나눗셈, 분수가 아니라 경영 공부를 할 수 있다는 데에 하늘에 감사했다.
‘비록 내 대에 삼우가 최고가 되진 못하겠지만, 신이 여지는 남겨 주셨구나.’
주변을 천천히 부유하고 있는 최덕배의 존재는 꿈에도 눈치채지 못한 채, 최기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렇다면 빌려주마.”
“고맙습니다. 할아버지!”
“삼우 그룹이 아닌, 내 개인의 돈으로 말이다.”
“그건…….”
윤기의 말이 시작되기 전에 최기현의 말이 이어졌다.
“내가 너의 투자자가 되겠단 말이다. 삼우 그룹의 경영자로서가 아닌, 최기현으로서.”
할아버지의 말을 들으며 윤기는 대단히 감격했다.
“할아버지!”
인간 대 인간으로서 자신을 믿어 보겠다는 말.
윤기는 자신의 능력이 진정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기분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할아버지에게 안겼다.
“녀석, 왜 우느냐. 이렇게 좋은 날에. 클클클.”
부족했던 자본이 융통된 이상, 최기현도 최윤기도 더 이상 경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이유가 사라졌다.
할아버지와 손자.
일주일 동안 둘은 정말로 화목한 휴가를 보냈다.
* * *
“하루만 더 있다가 가면 안 되겠느냐?”
공항으로 출발하는 차의 창문에 대고 최기현이 아쉽다는 듯이 물었다.
“방학 끝나면 바로 돌아올게요. 저는 해야 할 일이 있잖아요.”
“그래, 그렇기야 한데……. 아쉬워서 창문에서 손을 뗄 수가 없구나.”
“할아버지와 저의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해 주세요.”
“으……, 정말 하기 싫은 투자야. 하지만 해야지. 그래! 해야지!”
마침내 최기현은 창문에서 손을 떼었다.
잠시 뒤, 공항을 향해 출발하는 차의 뒷유리를 바라보며 최기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증손주 볼 때까지만 살았으면 좋겠어.’
입맛을 다신 최기현은 저택의 정문에 들어서자마자 냉철한 경영인의 표정으로 바뀌었다.
윤기가 있을 때의 표정은 오로지 윤기가 있을 때뿐.
다른 손주들이 태어났을 때도 윤기를 바라볼 때의 표정은 결코 지어 주지 않았다.
그렇기에 변한 최기현의 표정을 보며, 차남인 최철민이 입술 안쪽을 질겅질겅 씹었다.
‘젠장, 나는 보지도 않으시는군.’
최철민은 일주일 동안, 매일 저택을 들렀다.
하지만, 일주일 동안 최철민은 단 한 번도 최기현과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
물론 지나가면서 한두 마디야 걸 수 있었지만,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매 순간 맏손자를 끼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
더군다나 최철민은 회장 비서실에 심어 놓은 끄나풀을 통해 한 가지 사실을 확인하고는 굉장히 분노했다.
물론 최기현이라는 사자가 앞에서 아가리를 떡 하고 벌리고 있었기에 실제로 화를 내지는 못했지만, 아버지가 조카에게 해 준 특혜를 생각하면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아버지, 오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려던 최기현은 차남의 요청에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일주일 동안 정말 하루도 안 빠지는군.’
어쨌든 윤기가 자리에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최기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오너라.”
서재에 앉은 최기현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서릿발이 몰아칠 것만 같았다.
“아버지, 그러니까 그…….”
“5분 주마.”
단 한 마디에 최철민의 분노가 터졌다.
“아버지, 정말 너무하시는 것 아닙니까?”
“내가 무엇이 너무하단 말이냐?”
최철민은 주먹을 부들부들 떨며 아버지를 향해 쏘아붙이듯 말했다.
“윤기 녀석은 무려 일주일이나 아버지와 함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고작해야 5분이라니……. 제가 아버지의 아들이 맞기는 맞는 겁니까?”
“멍청한 놈…….”
활화산 같은 최철민의 행동과 달리 최기현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다.
“제가 어째서 멍청하다는 겁니까? 비록 서울대는 아니어도 고려대를 제 실력으로 졸업했습니다!”
“학력의 이야기가 아니야!”
아버지의 고함에 최철민이 순간 움찔했다.
“네 녀석은 지난 일주일 동안이나 ‘근무 시간’ 중에 이곳을 찾아왔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이냐?”
“윽……!”
“네가 원하는 대로 너를 삼우 물산의 대리로 배치해 주었다. 내가 삼우 물산의 회장으로 있는데도 말이다!”
최기현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네가 삼우 그룹의 후계자가 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는 일이고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네가 후계자의 자리에 어울릴 만큼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
“그, 그건 제가 경력이 아직 부족해서…….”
다급하게 변명을 하는 차남을 보며 최기현은 더욱 언성을 높였다.
“경력이 없으면 일을 해야 할 것 아니냐! 일주일 동안이나 근무 시간 중에 와서 대부분을 기다리는 것이 어디 정상이냐? 다른 직원들이 그렇게 하더냐? 그럼에도 나는 너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대체 삼우 물산에서 어떠한 일을 하고 있길래 일주일 내내 아무 일도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야?”
“그, 그건…….”
최철민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말을 받아들이기 싫고, 변명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변명을 할 수가 없었다.
“네가 가만히 있으면 삼우 물산의 회장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천만에! 능력 없는 자식에게 회사를 물려줘서 회사가 망하게 하느니, 능력 있는 자식에게 몰아 줄 것이다!”
“아, 아버지!”
최철민이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
최철민은 자신이 가만히 있으면 삼우 그룹을 물려받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희망이 있었다.
‘형은 경영에 관심도 없고 능력도 없고, 학벌도 없어. 하지만 난 고려대 경영학과 출신에 형보다 훨씬 나은 능력을 갖추고 있지. 형만 구워삶으면 나머지 녀석들이야 전혀 문제없을 거야.’
비록 최윤기라는 장애물이 뜬금없이 나타나기는 했지만, 나이 차이가 10년을 훌쩍 넘게 나기 때문에 최철민은 자신이 삼우 그룹의 진짜 후계자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진짜 너무하십니다!”
다시 한번 최철민의 울분이 터졌다.
“이놈이!”
“저에게는 제대로 된 지원도 해 주지 않으셔 놓고서는 이제 와서 왜 이리 기만을 하시는 겁니까?”
“내가 너에게 지원을 안 해 줬다고?”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너에게 지원을 안 해 줬다는 게 무슨 말이냐! 너에게 학비를 벌라고 했느냐, 아니면 유학을 보내 주지 않았느냐, 그것도 아니면 네가 원치 않는 결혼을 시켰느냐?”
삼남인 최철규부터는 결혼에서부터 적당히 손을 대긴 했지만, 최철민은 최철호와 최철규 사이에 껴서 굉장히 이득을 본 케이스에 속했다.
미래의 재벌가에서 태어났으면서 엄청난 자유를 얻었으니까.
하지만 최철민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만약 아버지가 저를 괜찮은 가문에 장가를 보내 주셨다면…….”
“크핫!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구나. 난 분명 너에게 이야기했다. 원한다면 괜찮은 가문의 아이를 찾아보겠다고 말이야. 그런데 딴따라 하는 여자에 미쳐서 결혼을 하겠다고 떼쓴 건 바로 너야. 그 책임을 나에게 떠넘기는 것이냐?”
논리도 없는 아들의 고성에 최기현의 심장은 점점 싸늘하게 식어만 갔다.
“하, 하지만!”
“또 무슨 할 말이 남은 것이냐?”
“차별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 않습니까!”
“도대체 무슨 차별을 말하는 것이냐?”
“윤기……, 윤기 녀석에게 엄청난 금액을 투자하셨다는 것을 제가 모를 줄 아셨습니까?”
순간 최기현의 분위기가 휘몰아치는 서릿발이 아니라 싸늘한 냉기가 되었다.
“네 녀석……, 비서실에 네 끄나풀을 심어 둔 것이냐?”
최철민이 가진 최고의 약점인 ‘경험’이 발목을 잡았다.
삼우 그룹 내부에는 이미 누가 후계자가 될 것인지 서서히 라인이 생기기 시작한 상황이었고, 그것은 비서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최철민은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다.
그것은 바로 비서실에 자신의 눈과 귀가 있다는 것을 고백한 것.
“아, 아버지. 그것이 아니라…….”
“됐다.”
최기현은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그 모습이 오히려 최철민에게는 부담이자 공포였다.
“받아라.”
최기현은 서재 책상에 놓여 있던 노트와 연필을 최철민에게 던졌다.
그러자 최철민은 깜짝 놀라면서도 반사적으로 노트를 받아 펼쳤지만, 노트에는 아무것도 적힌 것이 없었다.
“이, 이건…….”
“네가 원하는 지원 액수를 적어라.”
싸늘한 아버지의 목소리.
분명 공포스럽긴 했지만, 최철민은 속으로 희망을 잡은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래, 이참에 지원금을 두둑하게 타내서 나도 윤기 놈처럼 개인 사업을 하는 거야. 삼우 물산 대리로 시작하는 게 아니라, 내 사업체의 사장으로 시작하는 거라구.’
정확히는 모르지만, 최철민은 최윤기가 무언가 사업을 하고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제일 방직을 통해 얻는 돈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 성과를 통해 아버지의 호의를 사고 있다고 여겼다.
그렇기에 최철민이 종이에 쓰는 숫자는 0이 끝없이 늘어나고 있었다.
1,000,000,000₩
“10억을 달란 말이냐?”
“예. 10억을 주시면 반드시 성공해 보이겠습니다.”
“못 줄 것도 없지.”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며, 최철민은 강하게 나가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자는 매년 17.4퍼센트다.”
“예……?”
“뭘, 그리 놀라느냐? 윤기는 나에게 돈을 빌리면서 그만한 이자를 약속했다. 당연히 너도 같은 이자를 지불해야지?”
“자, 잠깐만요. 그냥 돈을 주신 게 아니었단 말입니까?”
최기현은 코웃음을 쳤다.
“푸핫! 네 녀석은 나를 어떻게 보는 것이냐? 나는 윤기에게 아무 생각 없이 지원해 준 것이 단 하나도 없다. 그리고 너는 담보도 붙잡아야 할 거야. 윤기는 나에게 내가 빌려준 돈 이상의 담보를 맡겼어. 너는 지금 그런 것이 있느냐?”
입을 떡 벌린 최철민은 잠시 뒤 정신을 차리고 어렵게 다시 말을 꺼냈다.
“하, 하지만 제일 방직은…….”
“그것은 성공적인 투자가 되었으니 보상을 주는 것이지. 너도 나에게 경영 전략을 상신한 적이 있지 않으냐? 비록 실패했지만 말이다. 불만이면 다시 경영 전략을 상신해 보아라, 이번에도 실패하면 삼우 물산의 대리 자리마저도 박탈당하겠지만 말이야.”
“그, 그런……, 말도 안 되는…….”
어처구니없어하는 아들을 바라보며 최기현이 혀를 찼다.
“밖에서 경영을 보니 쉬워 보이더냐? 아니면 안에서 경영 놀이를 하니 쉬워 보였더냐? 네 녀석은 철호나 윤기가 얼마나 큰 리스크를 지면서 일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어.”
“으으으…….”
“나가거라! 더 공부하고! 더 배우고! 더 확인하고 와! 네 녀석은 욕심만 많은 천덕꾸러기일 뿐이야!”
“우우욱…….”
최철민은 벌거숭이가 된 것 같은 기분에 눈물을 흘리며 서재를 뛰쳐나갔다.
물론 반성이 있는 것은 아니었고, 최기현 역시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최기현은 차남에 대해 안타까워하기보다는 아예 다른 쪽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비서실 쪽을 전면적으로 재점검해야겠어. 감히, 내가 정정한데 벌써 줄을 타?’
* * *
호텔 객실.
바닥에서 최덕배의 모습이 뾰로롱 하고 나오더니 윤기의 앞에 섰다.
어떠냐? 예전에 TV에서 봤던 애니메이션을 따라 한 건데.>
“뭐, 진화라고 외치면 변신이라도 해요?”
이럴 때는 순수하게 대단하다고 말해 주면 안 되냐? 너 때문에 방금까지 한국에서 있다가 왔는데.>
입맛을 다시는 최덕배의 말이었지만, 윤기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어땠어요?”
아주 개털렸지.>
최기현의 서재에서 있었던 대화를 최덕배가 들려주자, 윤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어요. 저택에서 대기하는 시간에도 공부를 하거나 물산에 대한 현황 파악을 하는 게 아니라 TV나 신문을 보는 게 전부였으니까요. 그것도 아니면 멍하게 있든가요.”
아무튼, 최철민은 너하고 확실히 갈라섰다고 봐야 하겠지.>
“당연한 일이에요. 눈앞에 황금 열매가 열려 있는데 눈이 안 돌아가면 이상한 거죠. 애초에 각오한 일이고, 저는 할아버지와 부모님, 동생, 그리고 절 진심으로 따르는 사람들 아니면 다 적이라 생각해요.”
맺고 끊는 게 확실해서 좋네. 흥선대원군은 잘못 맺은 걸 못 끊어서 나라를 말아먹었거든.>
“전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그나저나 저번부터 궁금했던 건데, 너 청계천의 땅을 산 이유가 도대체 뭐냐? 거기서 게임기 가게라도 차리려고?>
윤기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럼?>
“돈은 말이죠.”
윤기는 검지와 엄지를 말아 돈 모양을 만들어 냈다.
“구매력이 있는 사람한테서 버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