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25)
#25화 목표는 4년 후 (2)
‘항상 느끼는 거지만, 참 정신머리가 없는 형이라니까.’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최철규는 최철민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커피 잔을 들었다.
아버지를 많이 닮은 최철호는 몸이 우락부락하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둘 다 닮은 최철민은 평균적인 육체를 가졌다.
반면 최철규는 어머니를 많이 닮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몸의 선이 가늘었고, 얼굴 역시 꽤 동안이었기 때문에 여성적인 느낌이 더욱 강했다.
최철민보다 한 살 어린 30살이었지만, 20대 초반으로 보일 만큼의 동안이었다.
더군다나 최철규는 자신의 겉모습을 무기로 삼고 있었기 때문에 포마드를 바르지도 않았고, 양복 색깔도 다소 부드러운 색으로 따로 맞췄다.
그렇다 보니 현재 최철규는 비록 대리지만, 자신의 강점을 활용해 남들의 허를 찔러 삼우 화학에 차근차근 깃발을 꽂고 있었다.
“오느라 힘들지 않았어?”
부드러운 최철규의 말에 최철민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힘들긴, 동생을 보러 오는 건데.”
말을 들으면서 최철규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웃기는군, 우리가 그리 친한 사이도 아닌데 말이야. 그나저나 또 근무 시간 중에 자리를 비우다니. 최근에 아버지한테 혼나고도 정신을 못 차렸어.’
최철민은 비서실에 사람을 심진 못했지만, 아버지의 집에 가정부를 심어 두었다.
하필 아버지가 맏형의 집으로 가는 바람에 한동안은 의미가 없었지만, 방학 중에 조카가 미국으로 간 덕분에 다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최근 최기현에게 크게 혼났다는 가정부의 말.
점심시간인 지금 삼우 물산에서 이곳으로 왔다는 것은 분명 점심시간 전에 출발했다는 뜻인데, 최철규는 최철민에 대한 평가를 한 단계 더 낮추었다.
“나야 형이 이렇게 나를 봐주러 오면 고맙지.”
뼈가 담긴 말이었지만, 최철민은 전혀 다른 생각을 했다.
‘철규 녀석이 나에게 이렇게 우호적이니 일이 편하겠어.’
달걀노른자가 동동 뜬 쌍화차를 한 모금 마신 최철민이 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사실, 너에게 할 말이 있어서 왔어.”
“무슨 일인데?”
“우리, 힘을 합치자.”
순간 최철규는 미간을 찡그릴 뻔한 것을 참았다.
무능한 인물을 가장 싫어하는 최철규의 성격상, 형이 아닌 다른 인물이 이런 말을 했다면 핀잔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힘을 합치자고? 그게 무슨 말이야?”
속마음과 전혀 달리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식으로 반응하는 최철규의 행동에 최철민이 목적을 좔좔 읊기 시작했다.
“윤기 녀석 있잖아.”
“조카가 왜?”
“아무래도 좀……, 위험하지 않아?”
“위험하다고?”
“응. 내가 알아보니까, 그 녀석 제일 방직 사장 월급만큼의 돈을 용돈으로 받고 있고…….”
“그거 경영 전략이 성공해서 그런 거 아니었어? 걔 꽤 똘똘하잖아. 어쩌면 큰형이 걔 이름으로 아버지한테 전략을 올린 거일 수도 있고.”
“그것뿐만이 아니야. 그 녀석 그 돈으로 청계천의 땅을 매입하고 있어.”
“청계천의 땅을? 뭐,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돈을 은행에만 둘 이유는 없잖아.”
“이것도 끝이 아니야.”
“또, 있어?”
최철규는 형의 말을 들으면서 좋아죽을 지경이었다.
어지간해서는 얻기 힘든 고급 정보를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듣고 있으니 당연히 행복할 수밖에.
그렇기에 최철규는 아주 흥미롭다는 표정을 연신 지어 주며, 최철민이 더욱 많은 말을 뱉어 내도록 유도했다.
“아버지가 윤기 녀석에게 개인적으로 돈을 빌려주셨어. 청계천의 땅을 담보 삼아서 말이야. 이게 말이 돼? 왜 윤기 녀석만 특혜를 받아야 하느냐고.”
최철민은 최철규 앞에서 자신의 밑천을 완전히 다 드러냈다.
윤기에 대한 적개심과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고급 정보.
하지만 최철규는 무엇 하나 최철민 앞에서 드러낸 것이 없었다.
“형, 진짜 대단한데? 나는 그런 거 전혀 몰랐어.”
동생의 말에 최철민은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힘 좀 썼지. 그나저나 네가 생각하기에 어때?”
“뭐가?”
최철민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쳤다.
“야, 이대로 가다가는 윤기가 삼우 그룹을 먹을 수도 있단 말이야. 그 어린애가 벌써 그룹을 들쑤시고 다니는데, 이러다가는 우리 그룹 망해.”
전혀 근거 없는 말이었지만, 최철민은 자신의 감정을 우선하였기 때문에 스스로 말을 하면서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으음……, 그래서, 형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말했잖아. 우리 힘을 합치자고. 그 녀석은 외할아버지 잘 둬서 우리랑 스타트 라인 자체가 달라. 하지만 너랑 나, 그리고 다른 형제들이 힘을 합친다면 충분히 대항할 수 있어. 너도 너보다 20살이나 어린애를 나중에 회장님이라고 부르긴 싫을 거잖아?”
최철규는 예나 아니오라는 답변 대신 화제를 살짝 전환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러면, 어떻게 힘을 합치자는 거야? 나는 끽해야 대리 직함의 샐러리맨이라구.”
“걱정하지 마, 내가 아버지한테 이야기해서 너한테 힘을 실어 줄게. 그리고 우리도 진급을 하다 보면 당연히 힘이 더 세질 거 아니야? 결정적일 때에 윤기 녀석의 뒤통수를 치는 거지.”
“음, 그런데 지금은 너무 나중의 일 같은데, 나중에 도움이 필요할 때 다시 말해 줄 수 있어? 구체적인 이야기가 있어야지 나도 어떤 행동을 하든가 하지.”
“알았어!”
절대로 OK 대답이 아니었지만, 최철민은 동생이 승낙을 했다고 착각하고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형, 여기 커피 되게 맛있는데? 형 덕분에 좋은 곳 찾은 거 같아. 나중에 거래처 사람들 한번 데려와야겠어.”
“거래처 접대와 관련된 거라면 나한테 언제든지 물어봐. 내가 그런 거에 빠삭하잖냐.”
“고마워, 기대할게.”
동생과 친해졌다는 생각을 하던 최철민은 문득 한숨을 쉬었다.
“형, 왜?”
“그나저나 윤기 녀석 아버지한테 빌린 돈으로 뭘 하려는 걸까? 그걸 알아야 대책을 세울 텐데, 비서실에 심어 둔 내 끈이 사라져서 난감해.”
또다시 고급 정보를 흘린 최철민의 말에 최철규는 잠시 저울추를 매달았다.
‘짐작 가는 게 있긴 한데 형한테 말해 줄까? 아니면 말해 줄 필요가 없나?’
저울의 무게는 말해 주는 쪽으로 기울었다.
최철민과 힘을 합치려는 의도가 아니라, 최철민이 조카와 어떻게 대적하는지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글쎄, 땅을 산 다음 돈을 빌린 거면 거기에 건물을 지으려는 거 아닐까?”
“아!”
그저 지나가듯이 해 준 말이었지만, 최철민은 너무나 고마워하며 동생의 손을 잡았다.
“고마워!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머저리니까.’
하지만 최철규는 전혀 내색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되레 최철민을 칭찬했다.
“아무래도 요새 신경 쓰는 게 많아서 그럴 거야. 너무 무리하지 말고, 몸부터 챙겨. 형은 우리 그룹의 대들보잖아?”
“그래, 그래야지. 아무튼, 나는 빨리 대책을 세워야겠어. 이만 가 볼게, 고마워!”
황급히 자리를 뜨는 형을 보며, 최철규는 속으로 비웃음을 흘린 뒤, 커피를 마저 비웠다.
‘큰형이 개입한 게 아니라면, 윤기 녀석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건 확실한데 말이야…….’
최철규는 삼우 그룹을 잇겠다는 생각을 확고하게 가진 것은 아니었다.
최철민과 달리 유학파 출신인 최철규는 가문 단위로 이루어진 초거대 기업에서 계열사 회장이 얼마나 부를 누리는지 이미 확인한 뒤였다.
그렇기에 누가 삼우 그룹의 뒤를 잇든, 확실한 부만 보장해 준다면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물론 자신보다 능력이 뛰어난 자가 없다면 자신이 그룹을 먹어야겠지만.
‘조카가 저렇게 열심히 뛰는데 작은아버지로서 마냥 두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지. 윤기와 대적하든, 나중에 윤기에게 인정을 받든, 나도 신경을 써야겠어.’
자리에서 일어나며 다방 밖으로 나가려던 최철규는 누군가가 자신의 팔을 붙잡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입에 담배를 물고 있는 30대 남성의 모습.
“뭐죠?”
“계산을 안 했잖아.”
지금까지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던 최철규의 표정이 와락 구겨진 순간이었다.
* * *
방학이 끝나고, 윤기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미국에 있으면서 윤기의 영어 실력은 그야말로 ‘일취월장’이라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늘었는데, 고용한 하버드의 인재들이 계절학기 수업을 청강시켜 준 덕분이었다.
강의에서 네이티브 발음을 듣고, 호텔에 돌아와서는 끊임없이 스피킹 연습.
게다가 이걸 류근태와 함께한 덕분에 류근태 역시 영어 실력이 대단히 향상됐다.
비록 아직까지는 별로 의미가 없을지 몰라도, 추후 외국 기업과의 거래가 있을 때, 이는 굉장한 호재로 작용할 것이다.
생각해 보니까, 네가 마음만 먹으면, 좀 더 일찍 백화점을 세울 수도 있지 않았냐? 백화점을 세워서 돈을 벌고, 그걸로 투자를 했다든가?>
최덕배는 윤기의 행보에 궁금증이 아주 많았고, 윤기는 자신의 행보를 재점검할 겸 대답해 주는 일이 많았기에 최근에는 서로의 대화가 잦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79년에 P가 총에 맞아 죽잖아요.”
그렇지.>
“P가 죽고 나서 권력의 구도는 그야말로 대격변을 이뤄요. 2010년대에 대통령이 되는 P의 딸도 이 시점에서는 힘을 잃어버리잖아요?”
맞아, 맞아.>
“그러니까 굳이 79년 이전의 구군부에 힘을 쓸 필요가 없는 거죠. 사업 본격적으로 시작하면 뇌물을 다방면으로 뿌려야 할 텐데, 갓끈 떨어질 사람들에게 굳이 투자를 해야 할까요?”
크으, 역시 대단하구만.>
“그리고 P와 JD의 정책 차이도 커요.”
왜?>
“P는 기본적으로 국민을 압박해야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봤고, JD는 국민을 적당히 풀어 줘야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봤어요. 결론적으로 혁명은 일어나게 되지만, JD의 3S 정책이 발효되어야 제가 백화점 사업하기도 편할 거예요.”
사치품이니까?>
“정확해요. 사치품이나 기호품, 그것도 외국에서 유행하는 물품들을 들여올 예정인데, 이왕이면 좀 더 말이 통하는 JD 쪽이 낫죠.”
그럼, 혹시 네가 게임기 쪽에 관심을 안 가진 이유도……?>
“네, 맞아요. 제가 기억하기로 80년대에 만화 같은 걸 엄청 탄압했거든요. 그리고 이재룡이 게임 산업에 뛰어드는 것도 90년대고요. 왜, 80년대에 그 사업을 안 했을까 생각을 해 보니, 당시 이재룡의 나이가 약간 어리기도 했지만, JD가 그쪽 사업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최덕배는 다시 한번 윤기의 통찰력에 감탄했다.
그래서 오늘 밑 작업을 하러 가는 거냐?>
“그런 셈이죠.”
잠시 시간이 지나자, 밖에서 콜슨 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윤기야, 시간 됐다.”
최기현의 저택.
하지만, 오늘은 콜슨 준장 역시 와 있었다.
저녁 6시.
윤기는 콜슨 준장의 차를 타고 조선 호텔로 향했다.
70년대 한국 최고급 호텔을 꼽자면 엠파이어 호텔과 조선 호텔 등이 있는데, 그중 조선 호텔로 향한 것이다.
“객실로 모시겠습니다.”
벤츠라는 차종을 확인한 호텔 직원들이 굉장히 공손한 태도로 스위트룸까지 콜슨 준장과 윤기를 안내했고, 이윽고 둘은 약속한 사람을 기다렸다.
“윤기야, 정말 자신 있는 거냐?”
“무리한 부탁드려서 죄송해요. 하지만, 이건 정말 큰 기회가 될 거예요.”
“네 얘기를 들어보니 나도 확실히 그럴듯하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구나.”
“절대 후회하지 않으시도록 주의할게요.”
“부탁하마. 나와 막역한 사이이신 분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나에게 있어서 어려우신 분이야.”
“명심할게요.”
시간이 무려 40분이나 지나서야 약속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러자 콜슨 준장은 정확한 자세로 거수경례를 하며, 등장한 사람을 맞았다.
“하하하, 내가 퇴역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그렇게 대하나? 그냥 편히 대하게.”
나타난 사람은 7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노인이었다.
하지만 굵은 입술과 몸 여기저기에 있는 흉터가 강직한 군인의 인상을 보여 주었다.
“저에게 대장님은 영원한 대장님이십니다.”
콜슨 준장이 이토록 어려워하는 사람.
노인의 정체는 바로 미군의 전 대장, 거스터 대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