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255)
#255화 환갑의 수학여행 (2)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두 명의 사내.
그들은 딱히 험상궂은 표정을 짓는다기보다는, 오히려 사근사근한 표정으로 약팔이를 시작했다.
“자, 여러분! 살면서 시계를 안 쓰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지요. 그래서 저희가 오늘 시계를 가져왔습니다!”
투명 비닐에 작게 포장된 시계.
하지만, 자세히 볼 수는 없었다. 이리저리 추임새를 넣는 사내들의 동작으로 인해 시계들의 모습이 고정되지 않았으니까.
“이 시계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명품 중의 명품! 원래 백화점에서 파는 가격은 50만 원인데, 이번에 저희 회사에서 ‘민간 소비 촉진 이벤트’를 기획해서 저렴한 가격으로 여러분들에게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약팔이는 아주 신명 나게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한테나 파느냐? 아닙니다! 여기 버스를 탄 분 중 오직 다섯 분! 다섯 분만 추첨해서 50만 원짜리 시계를 단돈 1만 원에 드리겠습니다. 자, 추첨권 드립니다!”
능숙한 솜씨로 학생들에게 추첨권을 뿌린 사내들은 학생들을 향해 마지막 추임새를 넣었다.
“자! 와이케이 백화점에 들어가는 최고급 명품 시계를 가져가실 행운의 주인공은 과연?”
이때, 진수가 상당히 큰 소리로 윤기를 향해 말했다.
“윤기야, 너희 백화점에 저 시계 들어가?”
“아니.”
어깨를 으쓱이는 윤기의 대답에 반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윤기에게로 향했다.
물론, 낯선 사내들 역시 마찬가지.
“너희들이 아직 어려서 모르나 본데. 이건 정말 와이케이 백화점에서 50만 원에 팔리는…….”
“아저씨가 백화점 주인보다 잘 알아요?”
“응……?”
순간, 사내들은 윤기를 좀 더 확실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설마……?”
사내의 말에 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여기 와이케이 그룹의 회장이 있는데, 거짓말하실 거예요?”
곁에 있던 원희도 거들었다.
“야, 왜 알려 줘. 모처럼 남영동 끌려가는 거 구경할 수 있었는데.”
남영동이라 하면 안기부의 본진.
그렇기에 사내들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죄, 죄송하게 됐습니다!”
사내들은 대경실색해서는, 시계를 그냥 내팽개치며 바로 버스 밖으로 튀었다.
사실상 한국 유일의 명품 취급점 와이케이 백화점.
그곳의 회장이 버스에 타고 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아싸, 공짜 시계.”
진수는 콧노래를 부르며 사내들이 떨어뜨리고 간 시계를 집어 들었다.
“그걸 또 차냐?”
원희의 핀잔, 하지만 진수는 뭘 그러냐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왜. 시계는 시간만 잘 가면 장땡이지.”
진수의 손목에 감기는 시계.
하지만.
“이야, 손목시계가 순식간에 벽시계가 되었네?”
원래 이런 곳에서 파는 시계는 공장 도매가 500원이면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조잡한 품목이다.
하지만, 손목에 차기가 무섭게 끈이 떨어지다니.
조금 심한 편이기는 했다.
“에이, 그냥 나중에 책상 위에 올려 둬야지.”
진수는 줄이 떨어진 시계를 주머니에 넣었고, 이러한 진수의 모습에 반 아이들은 슬금슬금 시계를 하나씩 챙겼다.
그야말로 절약 정신의 진수인 진수.
이렇듯, 버스에서의 약팔이는 윤기의 존재만으로 해결했지만, 버스 바깥으로 나갔던 아이 중에는 역시나 피해자가 있었다.
“야, 너 그거 어디서 샀어?”
싱글싱글 웃으며 안으로 들어온 남학생 하나를 향해 진수가 물었다.
“아, 이거? 부럽지? 되게 싸게 샀다?”
“어디서, 뭘, 얼마에 샀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진수는 많이 똑똑해졌다.
천진난만한 모습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예전에는 지식의 밀도가 낮았다면, 이제는 지식의 밀도가 높게 천진난만하다는 얘기다.
그렇기에 진수는 육하원칙과 비슷하게 친구를 향해 물었다.
“화장실 갔다 나오는데, 어떤 아저씨가 나를 부르더라고. 그래서 하는 말이, 회사가 부도가 나서 물건을 처분해야 하는데 내가 착해 보여서 특별히 불렀다고 하잖아. 역시, 내가 착하게 생기긴 했지?”
밀도가 낮은 친구의 대답에 진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그래서 그건 뭔데?”
친구는 상자를 열었다.
“산삼 엑기스래. 이거 부모님 드리면 좋아하실 거라고 하더라. 30개 들어 있는데, 만 원밖에 안 줬어. 산삼이야, 산삼!”
“에휴, 퍽이나 산삼이겠다.”
“산삼 맞거든?”
“아니라니까. 야, 너 같으면 상식적으로 만원에 산삼 엑기스를 팔겠냐?”
“나보고 착해 보여서 특별히 파는 거라고 했어!”
둘의 대립이 치열해질 것 같자, 윤기는 조용히 진수의 팔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동시에 건네주는 이어폰 한쪽.
진수는 적당히 눈치를 채고 친구와의 대화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잠시 후. 윤기가 입을 열었다.
“납치 안 당한 게 어디야.”
실제로 7~80년대, 아니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고속도로에서의 납치 사건은 분명히 존재했다.
좋은 물건이 있다고 하며 봉고차에 타라고 한 다음에 그대로 감금.
고속도로에서 쓰레기 같은 물건을 1~2만 원에 사는 것은 범죄의 축에도 못 낄 정도의 일이 횡행했다는 얘기다.
이제는 고속도로 휴게소에 블랙박스가 너무 많아서 그런 일은 꿈도 못 꾸지만.
“뭐……, 그렇긴 한데. 좀 그렇잖아.”
진수의 대답에 윤기는 그 친구를 향해 물었다.
“그 사람들 아직 그 자리에 있어?”
친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딱 하나 남은 거 특별히 나한테만 파는 거라면서 하나 팔더니, 바로 차 타고 고속도로로 나가던데?”
아직도 천진난만한 친구의 표정에 윤기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효자네. 부모님이 좋아하실 거야.”
“그렇지? 히히히.”
친구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고, 그런 친구를 바라보던 진수가 윤기를 향해 말했다.
“저거 못 먹는 거로 만드는 거 아냐?”
“그건 아닐 거야.”
윤기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아마, 산삼은 들어가지 않았겠지. 대충, 대추나 도라지 같이 값싼 약초를 달인 다음에 잔뜩 희석시켜서 저렇게 처리했을걸? 왜냐하면, ‘이상한 거’가 더 비쌀뿐더러, 괜히 저거 먹은 사람 잘못되면 경찰이 독극물 관련으로 수사를 시작하거든. 아마, 먹고 탈 날 일은 없을 거야.”
지극히 현실적인 윤기의 말에 진수는 살짝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렇네.”
지금까지 윤기와 진수의 대화를 조용히 듣던 원희가 창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또 다른 희생자들이 오고 있어.”
가짜 건강식품을 들고 개선장군처럼 버스에 들어오는 아이들을 향해 윤기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저걸 들고 수학여행 다니려면 꽤 피곤할 거야. 내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건 그 부분이거든.”
분명 첫 번째 수학여행인데도, 윤기는 어쩐지 산전수전 다 겪은 노인장의 포스를 뽐냈다.
하긴, 실제 나이는 환갑이니까.
* * *
현재 2~30대인 사람이 있다면, 부모님한테 신혼여행을 어디로 갔는지 물어보자.
그러면, 절반은 경주가 나올 것이고, 절반은 제주도가 나올 것이다.
돈이 좀 있거나 조금 무리해서라도 기분을 내려고 한 사람들은 제주도, 사정이 좀 빈곤한 사람들은 경주가 80년대의 신혼여행 국룰이었으니까.
그런 만큼, 이 시기의 제주도도 신혼여행으로 찾아온 부부들로 언제나 성황이었다.
그러다가 89년, 해외여행이 자유화되면서 부부들은 제주도 대신 해외를 택하기 시작했는데, 재미있게도 제주도 수학여행이 활성화된 것이 90년대였다.
한마디로 제주도는 이유가 어쨌든 관광명소로써 예전부터 지금까지 쭈욱 인기를 차지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는 것은?
이 시기에도 투어라는 이름의 판촉 활동이 존재했다는 이야기다.
“자, 학생 여러분! 부모님에게 효도할 수 있는 기회! 오미자로 말할 것 같으면 눈에도 좋고, 정력에도 좋고, 아무튼 건강에 다 좋아! 거기다 맛도 좋고! 거기 학생, 나와서 한번 먹어 봐!”
오미자 업자 하나가 학생 하나를 부르더니 오미자 액을 탄 물을 건네주었다.
“어때, 맛있지?”
업자의 물음에 학생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맛있다는 표정.
그렇기에 학생들은 그 표정을 보고, 너도나도 오미자 액을 달라고 성화를 부리고 있었다.
“뭐지? 둘이 짠 건가?”
진수의 말에 원희가 눈을 찡그리며 핀잔을 주었다.
“그게 가능하겠냐?”
“아니, 그런데 오미자 액이 저렇게 맛있을 리가 없잖아. 왜냐하면, 나 친척 집에서 오미자 액 마셔 본 적이 있거든.”
“맛없었어?”
“그냥 셨어.”
시다는 말에 진수가 눈이 아닌 얼굴을 찡그렸다.
자고로 레몬과 같이 신 것을 상상하면, 입술이 오므라들고 얼굴 근육이 경직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저건 파는 오미자 액이랑 다른 종류일걸?”
윤기의 말에 원희와 진수가 시선을 집중했다.
““응?””
“저 통에 들어 있는 오미자 액은 설탕을 많이 섞었거나, 꿀을 좀 넣었을 거야. 애초에 저거랑 파는 게 똑같은 물건이라는 보증이 없으니까.”
상당히 냉철한 윤기의 판단에 진수와 원희는 입을 떡 벌렸다.
아무리 학교에서 배운 게 많아도, 사회의 현실에 대해서 알기는 어려운 법.
그런 면에 있어서 윤기는 진수와 원희의 머리 꼭대기 위에 있었다.
‘뭐, 굳이 참견할 필요는 없겠지?’
만약 선을 넘는 일이 있었다면 참견하겠지만, 굳이 참견할 정도로 선을 넘는 일이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발생하지는 않았다.
괜히 참견했다가 아이들이 형성한 수학여행의 분위기가 싸그리 박살 날 수도 있기에, 윤기는 말 그대로 여행 그 자체를 즐겼고, 덕분에 숙소에 도착해서도 학생들은 모두가 들뜬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제주도라, 조선에서 제주도는 정말 초인들만 사는 곳이었는데, 많이 달라졌구만.>
추억이 깃든 최덕배의 말에 윤기가 호기심을 가지고 물었다.
‘그래요?’
응. 제주도는 각종 복지에서도 제외되었고, 국가에 바쳐야 하는 공물도 가장 많은 동네였거든. 그런데, 수확량은 또 적은 동네야. 난 조선 시대 때 제주도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
‘많이 힘든 시대였나 보네요.’
어느 정도였냐 하면, 제주도에서 왕한테 귤을 공물로 바쳐야 하거든? 그러면, 제주도에서 한양까지 운반해야 해. 그런데, 그 시절에 냉장 운송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잖아?>
‘그렇죠.’
운송하다가 배가 풍랑을 만나서 침몰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설마, 다시 보내나요?’
정확해! 그러면 다시 제주도에 있는 감귤 박박 긁어서 한양으로 보내는 거야. 풍랑 만났다고 해서 깎아 주는 것 따위는 없어. 왜냐? 왕실 입장에서는 제주도 사람들이 힘들어 뒤지든 말든 지들 목구멍에 감귤이 쳐들어가야 하거든.>
‘은근히 왕족들에 대한 원망이 느껴지는데요?’
흥선대원군이랑 놀다가 3개월 정도 제주도에서 귀양 생활한 적 있거든. 그때, 내 눈으로 제주도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직접 봐서 그래. 나야, 흥선대원군이 지원을 해 줘서 귀양 생활이 힘들지는 않았는데, 아무튼, 아주 대단했지.>
갑작스럽게 알게 된 최덕배의 의외의 과거에 윤기는 흥미를 느꼈다.
아무튼, 이유가 어쨌든 왕실에는 요구된 양의 감귤이 도착해야 해. 풍랑을 만났든, 도적을 만났든, 날씨가 더워서 썩었든, 추워서 얼었든. 양질의 감귤이 정해진 양만큼 도착해야 한다는 거지. 그런데 제주도가 감귤만 바쳤냐? 아니야. 전복, 사슴, 표고버섯, 말…… 하여튼 제주도는 초인들의 도시라니까?>
여기까지 말하던 최덕배는 문득 궁금하게 생겼다는 듯, 윤기에게 물었다.
그리고 보니, 제주도에 투자할 생각은 없냐?>
윤기는 숙소 창문을 통해 제주도의 바다를 바라보며 답했다.
‘딱히요? 산업 시설을 세우기에는 지반이 약하고, 원료 운송비도 비싸서 의미가 없거든요.’
관광업은?>
‘어차피 제가 손대지 않아도 잘 풀리는 게 제주도 관광업이잖아요. 애초에 제주도 땅은 이미 사 두고 있고요.’
윤기의 대답을 들은 최덕배가 은근한 어조로 다시 말했다.
대마도가 돈 벌게 놔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