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259)
#259화 국가가 필요로 하지 않는 자들 (3)
미군.
그중에서도 월남전에 참여했던 자들은 미국 시민들에게 거국적인 질타를 받았다.
심지어 ‘징병’이었음에도 말이다.
“여러분은 그저 국가의 명령에 따랐을 뿐입니다. 그리고 묵묵히 그 임무를 수행했죠. 원치 않는 전쟁이었음에도 말입니다.”
1천 명의 퇴역 군인들은 윤기의 말을 들으며 심장으로 울고 있었다.
그랬다.
이들은 정말로 원해서 파병을 갔던 것이 아니었다.
정말 많은 사람이 모르는 사실이지만, 미국은 1948년부터 1973년까지 징병제를 실시했다.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처럼 수많은 미국의 젊은이들이 국가의 명령에 따라 강제로 전쟁터에 보내졌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월남전이 끝나고 고국에 돌아왔을 때, 2차 세계 대전 때와는 전혀 다른 국민들의 냉소와 욕설을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미국 사회는 여러분을 받아들여 주지 않았습니다. 당신들이 월남전에서 겪었던 끔찍한 일들을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도 단지 국가가 시켜서 한 것뿐인데 말입니다.”
어느새 몇몇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저는 월남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책으로, 신문으로, 그리고 라디오로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여러분이 월남에서 무슨 일을 겪으셨는지 저에게 알려 주신다면 진정으로 감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 있는 영웅분들 중, 누구 월남에서의 기억을 말씀해 주실 분 있으십니까?”
1천 명의 사람들은 움찔움찔하기는 했지만, 차마 손을 들지는 못했다.
그동안 미국 사회에서 ‘월남전 파병자’라는 이유만으로 받았던 질시, 말을 꺼내는 것만으로도 떠오르는 그 끔찍한 PTSD 때문이리라.
“힘드시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영웅적인, 슬픈 이야기를 후손들이 알게 하려면 지금이 바로 기회입니다. 저는 영웅들의 역사를 바로잡을 것입니다.”
마침내 3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백인 남자가 어렵사리 손을 들었다.
“저기 한 명의 영웅이 용기를 내주셨습니다. 모두 박수로 맞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윤기의 말에 천 명의 인원이 손뼉을 치자, 강당이 엄숙하게 울렸다.
짝 짝 짝 짝!
아직은 어색하고, 딱딱하기 그지없는 박수.
그렇기에 30대 중후반의 백인 남자는 다소 떠는 몸으로 단상까지 올라왔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에릭……, 에릭이라고 불러주십시오.”
대머리에 뺨에 긴 흉터가 있는 에릭은 눈을 한곳에 쉬이 고정하지 못했다.
“여러분, 여기 에릭이 베트남에서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기쁨은 나누면 두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절반이 된다고들 하죠. 모두 에릭의 이야기에 집중해 주세요.”
윤기는 에릭에게 마이크를 넘겨주었고, 에릭은 주춤거리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저는 72년에 징병이 되었습니다…….”
1975년에 종료된 베트남 전쟁임을 감안하면, 에릭은 베트남 전쟁 후반부에 징병이 된 인물이었다.
심지어 미국의 징병제는 1973년에 종료되었음을 감안할 때, 에릭은 ‘억세게 운이 나쁜’ 사람이기도 했다.
몇 년만 늦게 태어났어도 전쟁의 참상을 보지 않아도 되었을 테니까.
“저는 결혼을 일찍 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아내가 웃는 얼굴로 저에게 기쁜 소식이 있다고 말을 하더군요. 그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에릭의 말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분명 답을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아직 사람들이 적극성을 가지기에는 강당의 열기가 부족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에릭은 실망하지 않고 자신의 말을 이었다.
떠올리기도 괴로운 기억.
하지만, 그 기억을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에게 털어놓는다고 생각하자, 자신도 모르게 용기가 조금씩 생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내는 자신의 임신 사실을 알렸습니다. 두 달이라고 했지요. 그때, 저는 너무나 기뻐 아내와 소파에서 사랑을 나눴죠.”
몇몇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자고로 행복한 추억이란 듣기만 해도 기쁜 법이니까.
“그러던 때, 저에게 편지가 왔습니다.”
갑자기 강당에 탄식 소리가 터졌다.
“예,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것이 맞습니다. 징병 통지서였죠. 저는 얼마 안 있어서 임신한 아내를 두고 훈련소로 떠나야 했습니다.”
‘하아’, ‘휴’ 등 각양각색의 한숨 소리가 다시 한번 강당에서 터졌다.
“저는 그래도 훈련소에서 훈련을 잘 받았습니다. 그리고 베트남에까지 가게 됐지요.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 아내의 유산 소식을 들었습니다.”
강당의 탄식은 더욱 커졌다.
“하지만, 상부는 저에게 휴가를 주지 않더군요. 저는 아내에게 곧 돌아가겠다는 편지만을 쓰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유산 이후 아내는 저에게…… 편지를…… 보내지 않았죠…….”
단상 위에 올려둔 두 주먹을 부르르 떨던 에릭은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있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 힘든 상황 속에서 그나마 제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전우들이 괜찮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다른 중대, 다른 소대는 부조리가 심했지만, 우리 소대는 유난히 분위기가 좋았죠. 그렇기에 저는 소대원들의 위로를 받으며 어떻게든 버텼습니다.”
징병제는 필연적으로 부조리를 불러온다.
징병제 당시 미군의 병영 부조리가 80년대의 한국을 가볍게 능가할 정도라면 믿을 사람이 있을까?
한국에는 인종차별을 할 이유가 부족하지만, 미국에는 존재한다.
그것만으로도 어떤 것인지 능히 상상이 가리라.
백인 선임과 흑인 후임, 혹은 흑인 선임과 백인 후임 등이 한 소대에 밀집하는 순간, 그냥 지옥도가 펼쳐지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에릭은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소대원들과의 행복은 오래 가지 못하더군요…….”
모두가 숨을 죽이고 에릭의 말에 집중했다.
“우리 소대는 마을 하나를 제압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날 휴식을 취하기로 했죠. 그러던 중, 아기를 업은 여성이 마을 밖에서 나타났습니다.”
에릭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이었다.
“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에릭이 몸을 떨었다.
“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에릭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모두가 그 여인을 도와주기 위해 뛰어갔죠. 하지만, 몇 초 후…… 하늘에서 붉은 비가 내렸습니다…….”
에릭의 말만으로 모두가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상상한 듯, 몸을 떨었다.
“저는 요즘도 꿈을 꿉니다. 하늘에서 붉은 비가 내리는 꿈을요……. 소대원들의 비명조차도 들리지 않습니다. 그냥…… 그냥…… 붉은 비가 내립니다. 계속…… 계속……. 그리고 제가 숨을 쉬지도 못할 정도로 붉은 비가 내리면, 저는 땀투성이가 되어 잠에서 깹니다. 이제는 아내가 없는 제 침대에서 말이죠…….”
에릭은 이 말을 끝으로 고개를 숙인 뒤, 눈물을 줄줄 흘렸다.
에릭의 아내가 어떻게 된 것인지는 에릭이 말하지 않았기에 아무도 모른다.
유산 당시에 죽었을 수도 있고, 에릭이 귀환한 후에 이혼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결말이 낯설지 않은 사람들이었기에 모두가 훌쩍이며 에릭처럼 눈물을 흘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행복을 조국을 위해 바친 영웅이었습니다…….”
윤기 역시 촉촉해진 눈으로 에릭을 바라보았고, 그런 에릭을 부드럽게 안아 주었다.
그렇게 에릭이 안정되자, 윤기는 에릭을 내려보내고, 붉어진 눈으로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누구 한 분 더 말씀하실 분 없으십니까?”
그러자 수십 명의 사람들이 손을 들었다.
갑자기 적극적으로 변한 사람들.
사실, 이것이 바로 이 사람들을 PMC 요원으로 쓸 수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미국에서 심리 치료 관련 비슷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괜히 한곳에 모으는 것이 아니다. 서로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끼리 모이면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되니까.
더군다나 이들은 복무 중 부적합으로 전역한 자들이 아니었기에 PTSD의 수준이 낮았을뿐더러, 사회에서 자신의 가치를 잃었기에 PTSD가 발현된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이들은 PMC 근무에는 별다른 문제의 소지가 없다고 볼 수 있었다.
“저기 갈색 털모자를 쓰신 분, 부탁드립니다.”
윤기의 말에 체격이 건장한 40대 초반의 흑인이 단상으로 올라왔다.
“이름을 부탁드립니다.”
“카터라고 합니다.”
“그렇군요. 카터, 당신의 기억을 모두와 함께 공유해 주시겠습니까?”
윤기의 말에 카터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마이크를 받았다.
그리고 카터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자세한 소속은 말씀드릴 수 없지만, 저는 특수 부대 소속이었습니다.”
카터의 말에 모두가 살짝 감탄 어린 표정으로 카터를 바라보았다.
“저와 전우들은 월남전에서 정말 많은 일을 했죠. 폭탄을 설치해서 적의 기지를 폭파하기도 하고, 인질을 구출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장갑차를 몰고 소수의 인원으로 적 중대를 몰살시키기도 했습니다.”
카터는 자부심 어린 표정 같은 건 짓지도 않았다.
그저 묵묵히, 자신이 했던 일들을 읊고 있는 카터의 모습.
어쩐지 그 모습이 쓰라릴 정도로 아련하게 다가왔다.
“전쟁이 끝나고 저는 퇴역했습니다. 제가 했던 일들이 끝없이 떠올라서 버틸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죠.”
모두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만이라면 참았을 겁니다. 하지만…….”
카터의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기자 하나가 제 신상을 지역 사회에 뿌렸습니다. 어떻게 알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제가 베트남에서 했던 일이 공개되었죠. 그 이후로 제 가족들은 이웃들에게 무수히 많은 괴롭힘을 받았습니다…….”
카터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이는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아내가 집에 혼자 있을 때면 창문에 돌과 달걀이 날아왔습니다. 어떤 때는 원인 모를 불까지 나더군요…….”
많은 사람이 탄식을 흘렸다.
“저는 직장에서도 잘렸습니다. 아직도 상사의 말이 기억에 있습니다. ‘베트남 사람들을 죽인 손으로 우리들도 죽일 거냐’라며 냉대하던 상사의 말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이런 씨발!]갑자기 강당에 욕설이 울려 퍼졌다.
누구 하나가 터뜨린 욕설.
그러자 너도나도 욕설을 터뜨리며 카터가 받은 부당한 대우를 성토했다.
[우리가 죽이고 싶어서 죽였어? 국가가 죽이라고 했잖아!] [상부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상사의 총에 맞아 뒤지게 생겼는데 우리가 어떻게 해야 했다는 거야?] [지들이 징병을 당해 봤어? 왜 어쩔 수 없이 해야 했던 것을 인정해 주지 않는 건데?]그야말로 화산과도 같은 폭발.
하지만, 카터가 다시 말을 하기 시작하자 모두가 씨근거리면서도 경청하는 자세를 취했다.
“군대에 있을 때, 저는 스페셜리스트였습니다. 폭탄도 설치할 줄 알고, 장갑차도 운전할 줄 알며, 인질도 구출할 줄 알았죠. 구출된 인질들은 모두 저에게 눈물을 흘리며 고마워했습니다.”
사람들을 조금 누그러뜨릴 만한 카터의 말이었지만, 반전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인질을 구출했던 저라도 가족들을 구하지는 못했습니다……. 아내는 스스로 세상을 떠났고, 아들은 학교에서 집단 구타를 당해 병원에서 앓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는 조국을 위해 젊음을 바쳤지만, 조국은 제 가족들의 복수를 해 주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스스로 세상을 떠나서 가해자가 없고, 아들은 가해자들이 너무 어려서 제대로 된 처벌이 나오지 않더군요…….”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강당은 그야말로 맹렬히 활동하는 화산이 되었다.
사람들은 분노하여 마구 고함을 쳐 댔고, 그 고함에는 세상을 향한 욕설이 마구 뒤섞여 있었다.
개중에는 큰 소리로 구슬프게 우는 사람도 있었고, 그런 동료를 안아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기를 20분.
마침내 윤기가 카터를 다독여준 뒤 내려보내고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여러분.”
나지막하지만 절도 있는 말에 사람들이 붉게 충혈된 눈으로 윤기를 바라보았다.
“저는 여러분을 절대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윤기는 강당에 준비된 칠판에 숫자를 썼다.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