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26)
#26화 목표는 4년 후 (3)
“이 사람아, 나이 90을 넘겨서도 그렇게 할 생각이야?”
“저는 충분히 그럴 생각입니다.”
“이거, 100살 먹고도 병정놀이를 하게 생겼어.”
거스터는 끌끌거리긴 했지만, 싫진 않은 듯 입가와 눈에 미소가 어려 있었다.
아직까지는.
“그나저나 자네가 손주를 꼭 한 번 만나 달라고 부탁의 부탁을 해서 오기는 했지만, 이 아이가 자네의 손자인가?”
“예, 그렇습니다. 정말 어려운 발걸음을 하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어렵긴, 1등석 타고 편히 왔는걸.”
당연한 말이지만 거스터는 현재 한국에 있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윤기는 거스터를 초청하기 위해 1등석 티켓과 함께 콜슨 준장의 힘을 빌려 구매한 벤츠를 기사까지 딸려 공항으로 보냈다.
그렇기에 거스터는 나름대로 성의 있는 대접에 아직까지 윤기를 바라보는 눈길이 괜찮은 편이었다.
“안녕하세요. 최윤기라고 합니다. 미국에서 만난 사람들은 저를 ‘윤’이라고 부르기도 하고요.”
“상당히 똘똘해 보이는구먼. 그런데 이 아이가 어째서 나를 보자고 한 거지? 윤, 너는 나를 왜 보자고 한 거냐?”
거스터는 더 이상 호의적인 눈초리가 아니라, 냉정한 판단의 태도로 윤기를 바라보았다.
“일단 서서 이야기할 것은 아니니, 앉아서 이야기하시는 것은 어떨까요?”
윤기의 말에 거스터는 고개를 끄덕이며 스위트룸에 있는 테이블 자리에 착석했다.
그 과정에서 윤기가 거스터의 의자를 빼 주었는데, 거스터는 어린아이가 가지는 의외의 눈치에 아주 약간 감탄한 눈치였다.
“흐음, 콜슨, 자네 손자가 몇 살이라고 했지?”
“열 살입니다.”
“한국 기준으로? 미국 기준으로?”
“한국 기준입니다. 68년에 태어났지요.”
“미국 기준으로는 8살이나 9살이 되겠구먼.”
“그렇지요.”
“흐음.”
콜슨 준장은 현재 정신이 없었다.
손자가 거스터를 불러 달라고 한 이유는 100퍼센트 사업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거스터는 그만큼 자신에게 있어 어려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콜슨은 반쯤 넋을 내어놓은 채로 묻는 말에만 답했고, 테이블에서는 거스터와 윤기의 대화만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래, 다시 한번 물으마. 나를 왜 불러 달라고 했지?”
어린아이를 상대하는 것 같지 않은 진지한 눈빛.
이것은 콜슨 준장에 대한 예우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쓸데없는 일로 자신을 부른 것이라면 콜슨 준장에 대한 예우가 싸그리 사라질, 양날의 검이기도 했다.
“거스터 대장님의 보호막을 사고 싶습니다.”
“내 보호막을 사고 싶다……?”
상당히 의외이면서도 구체적인 요구에 거스터 대장이 테이블 위에 놓인 홍차를 한 잔 소리 내지 않고 마셨다.
“내 보호막이 어떤 것이지?”
“저에게는 할아버지가 두 명 있어요. 한 명은 여기 계시는 콜슨 할아버지.”
“그래, 내 평생의 전우이자, 내가 가장 아끼는 ‘부하들 중’ 한 명이지.”
거스터는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한국에서 현재 사업을 하고 있는 분이세요. 최기현이라는 분이죠.”
“내가 들어본 적은 없는 이름이다.”
거스터의 말은 거만하긴 했지만, 실제로 거스터는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거스터가 이름을 기억해둘 만한 사람은 잘해야 현재 재계 3위 정도의 그룹 회장, 정말 넉넉하게 잡아도 5위 정도다.
그러나 현재 삼우 그룹은 고작해야 그룹 순위 100위의 기업.
애초에 콜슨 준장의 힘이 아니고서는 거스터와는 그 흔한 티타임조차도 가지지 못한다.
“네, 당연히 모르실 거예요. 왜냐하면, 거스터 대장님이 이름을 기억하시는 그룹이 되기 위해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할아버지한테 부탁을 한 거니까요.”
“음.”
논리적인 말에 거스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원하는 보호막. 그것은 한국에서 안전하게 사업을 할 수 있는 보호막이에요.”
“지금도 사업은 충분하게 하는 것처럼 보인다만?”
“부족해요.”
“부족하다고?”
윤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의 삼우 그룹은 기껏해야 한국에서 100위 정도의 그룹밖에 되지 않아요. 여기서 더 올라가려면, 이미 대통령과 더 끈끈한 관계를 구축해 둔 기업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데, 그랬다가는 회사가 찍힐 가능성이 너무 커요.”
“확실히 한국에서는 그럴 수 있지.”
거스터는 임시지만 주한 미군에 있었던 경우가 있고, 그때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정부가 기업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어떠한 행동을 하는지 많은 보고를 받았었다.
그런 만큼 지금 눈앞에 있는 열 살짜리 꼬마가 말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물론 그 말을 하는 게 열 살이라는 사실에 속으로 다소 놀라고 있었지만.
“하지만 말이다. 내가 왜 보호막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것이냐?”
“할아버지를 통해서 배웠으니까요.”
“콜슨을 통해 배웠다고?”
“네. 할아버지를 통해 우리는 지금까지 성장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할아버지보다 더 높은 분의 보호막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거예요. 그래서 제가 할아버지에게 곤란한 부탁을 드려서라도 이 자리를 마련한 거고요.”
“총명하구나.”
“감사합니다.”
거스터는 솔직하게 윤기를 인정하면서도 아직까지 가드를 내리진 않았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다. 내 보호막을 얻고 싶다면, 거래를 하자는 건데. 아무리 생각해도 네가 네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그룹 전체를 보호해 줄 대가를 내놓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네, 저는 그만한 대가가 없어요.”
옆에서 듣던 콜슨은 대경실색했지만, 거스터는 오히려 ‘호오’하며 속으로 다음 대답을 기대했다.
눈앞의 똘똘한 어린아이가 아무런 대책 없이 이렇게 인정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저는 할아버지의 그룹을 지켜 줄 보호막이 필요한 게 아니거든요.”
“그렇다면 어떤 것을 보호해 주길 바라는 것이냐?”
“제 회사요.”
“너의 회사? 그렇다면 규모는 네 할아버지 회사보다도 훨씬 작을 것이 아니냐?”
“그렇지요.”
“그런 조그만 회사를 굳이 내가 귀찮음을 감수하면서까지 보호해야 할까? 대가도 적을 텐데?”
“아무 일도 안 하셔도 얻는 대가치고는 클 테니까요.”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된다?”
거스터는 꼬마와의 대화가 점점 더 흥미로웠다.
자신의 앞에서 이렇게 거침없이, 그리고 공손하게 말을 하는 꼬마를 보는 것은 쉽지 않았으니까.
“보여드릴 게 있어요.”
윤기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가방에서 지도와 함께 서류들을 꺼냈다.
“여기에 지도에 표시한 땅이 전부 제 땅이에요.”
“이렇게나 많이?”
“네. 저는 여기에다가 백화점을 세울 거예요.”
“백화점이라…….”
“주한 미군 전용으로요.”
“호오……?”
마침내 거스터의 입에서 속마음이 서서히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주한 미군을 위한 프리미엄 백화점. 당연히 상품들은 대부분 미국의 것들로 채워질 것이고, 한국에서 즐길 거리가 많지 않은 미군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장소가 되겠죠.”
지켜보고 있던 콜슨 준장마저 눈을 크게 떴다.
“미군을 한정으로 미국 상품을 수입하겠다면, 국가에서도 어느 정도 인정을 해 주겠지만, 그보다 더 확실한 방법은 따로 있어요.”
“그게 바로 나의 보호막이다?”
윤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지만 내가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들었던 거 같은데?”
“맞아요. 거스터 대장님은 기타비 상무 이사를 맡아 주세요.”
원래 이사는 중소기업에 한 명만 있으면 되고, 그마저도 사내 이사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윤기는 거스터 대장의 보호막을 위해 ‘기타비 상무 이사’를 요청했다.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좀 더 강하게 표현하면 돈만 받는 명예직 이사.
하지만 기타비 상무 이사로 거스터 대장이 있다면 군부는 그 어떠한 곳에서 입김을 받더라도 함부로 윤기의 계획을 방해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호오, 그러니까 내 이름만 이사로 올려두고, 연봉을 나에게 주겠다?”
“네. 하지만, 그거로는 대가가 적죠.”
“잘 아는구나.”
눈앞의 아이가 똘똘하다는 것을 안 이상, 거스터 대장 역시 시원하게 대화를 이어나가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혹시 가족 중에서 눈길이 가는데 아직까지 자리를 잡지 못한 분이 있을까요?”
“그건 왜 묻는 것이냐?”
“그분을 사내 이사로 고용하려고 해요. 물론 지분은 없을 테고, 경우에 따라 지급한다 하더라도 우선주만 지급하겠지만요.”
“한마디로 놀고먹을 수 있게 해 준다는 거로군?”
“예, 맞아요. 더불어서 제 사업이 성공한다면 대가는 더욱 커질 것이고, 사업이 확장된다면 거스터 대장님의 더 많은 가족들이 편하게 살 수 있게 되겠죠.”
“흐음…….”
확실히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물론 거스터 대장은 이미 미국에 있는 연줄로 어느 곳이든 갈 수 있는 권력이 있다.
더불어서 약간의 능력만 있어도 괜찮은 곳에 가족들을 취직시킬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콜슨 준장의 손자에게서 받은 제안 역시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내가 자식들을 일반적인 대기업에 꽂아 주면 평생 그 정도에서 끝나겠지. 하지만, 이 아이가 내가 생각하는 수준만큼의 역량을 가졌다면……?’
미국 회사에서의 근로자로 일하도록 자식을 꽂는 게 아니라, 한국 회사에서 수뇌부로 일을 하게 될지도 몰랐다.
뱀 꼬리보다는 용 머리.
‘더군다나 나는 손해 볼 게 없어.’
기껏해야 백화점 하나에 이사로 있어 주는 것.
더군다나 이사의 기본 임기는 3년이니, 아니다 싶으면 그만두고 손을 털면 될 일이었다.
‘그리고 콜슨과의 인연도 있으니…….’
냉정한 실익 판단 80퍼센트, 콜슨 준장과의 인연 20퍼센트로 내린 결론은 ‘승낙’이었다.
“좋다. 네 ‘부탁’을 들어주마.”
거스터는 마지막까지 자신이 위에 있다는 사실을 윤기에게 알렸다.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윤기 역시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었기에 절대 거스터를 거스르지 않았다.
거스터가 이름을 빌려준다는 의미.
원래대로라면 절대적으로 불가능했을 이야기니까.
“콜슨, 자네 왜 이렇게 조용해?”
“아, 아닙니다. 제가 끼어들 자리가 아닌 것 같아서…….”
화들짝 놀란 콜슨이 멋쩍은 웃음과 함께 비워진 거스터의 찻잔에 홍차를 새로 따르려고 할 때, 잘 닫히지 않았던 스위트룸의 문을 열고 금발의 소녀가 안으로 들어왔다.
* * *
“메릴, 밑에서 기다리라고 하지 않았느냐?”
말은 이렇게 했지만, 거스터 대장은 웃으며 메릴이라 부른 여자아이를 자신의 옆자리에 앉혔다.
“콜슨 자네는 알지? 내 손녀. 나한테 표가 두 장이 왔거든.”
“아……, 같이 왔던 겁니까? 메릴, 나 콜슨이란다. 기억하지?”
그러자 메릴은 콜슨을 향해 꾸벅 머리를 숙였다.
“저는 아직 메릴이랑 안 친한가 봅니다. 이렇게 낯을 가리는 걸 보면…….”
콜슨의 말에 거스터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자네 손자가 있잖나.”
“아!”
메릴은 윤기를 바라보기가 힘든지 고개를 돌리고 있었지만, 윤기는 메릴을 티 나지 않게 관찰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웨이브 진 금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주인공이 입을법한 원피스.
무언가 새초롬한 느낌의 단아한 표정.
예뻤다.
나이는 한국 나이로 13살에서 14살 정도나 되었을까?
“콜슨, 우리는 저쪽에서 오랜만에 가볍게 술이나 한잔할까?”
“좋지요.”
* * *
거스터와 콜슨이 별실로 사라지자, 테이블에는 어느새 메릴과 윤기만이 남았다.
분명 새초롬한 표정을 짓고는 있었지만, 무언가 지루하다는, 심심하다는 표정.
그것을 바라보며 윤기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
그나마 같이 남은 윤기마저 테이블에서 일어나자 메릴은 아주 약간은 아쉬운, 그리고 의아한 표정으로 윤기를 곁눈질했다.
하지만, 윤기는 자리를 뜬 것이 아니라, 약간 묵직한, 호리병 모양의 가방을 열었고, 그 안에서 바이올린을 꺼냈다.
‘짬짬이 연습해 두길 잘했지.’
전생에 여자를 후리던 젊은 노가다 동료의 말.
[외모가 적당히 되는 상황에서 악기 하나 다룰 줄 알면, 여자를 꾈 수 있는 스펙트럼이 늘어난다니까요? 호감 진짜 한 번에 확 살 수 있어요.]의도는 다르지만, 윤기 역시 사람의 호감을 쉽게 사기 위해 짬짬이 바이올린을 배웠고, 가족을 제외한 사람 앞에서는 난생처음으로 연주를 하게 되었다.
바로크 시대의 애절한 춤곡 사라방드.
특유의 잔잔하면서도 애절한 선율이 스위트룸에 울려 퍼지자, 메릴의 시선이 점차 윤기에게 향했고, 이윽고 고개가 돌려졌으며, 마침내 얼굴에 홍조까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