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263)
#263화 이번만큼은 못 굽혀 (2)
“원장님, 그건 안 됩니다!”
다급하게 말리는 부원장 고유승의 말에 백서홍이 도끼눈을 떴다.
“뭐 이 새끼야?”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너무 이릅니다!”
자신의 말을 정정하는 고유승을 향해 백서홍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이번 일은 사안이 커도 너무 큽니다. 현재 와이케이 그룹은 사실상 한국 재계 1위인 데다가, 최기현 회장은 각하께서 대단히 신임하는 인물입니다. 그 인물이 안기부장에게 직접 둘째 아들을 찾아달라고 연통을 넣은 상황인데, 우리가 함부로 살인멸구를 했다간 큰일 납니다.”
고유승이 착해서 최철민을 죽이면 안 된다고 한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애초에 원장이나 부원장이나 만세복지관을 통해 인간이라 부를 수 없을 정도의 착취를 하며 부를 축적한 인물들.
그런 상황에서, 타인의 고통을 갑자기 이해할 리는 절대로 없었다.
“으음…….”
고유승의 조언을 받아들인 백서홍은 잠시 흥분을 가라앉힌 후,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각하께 연락을 드리고, 지시가 내려오면 그에 따라 행동하자는 거지?”
고유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만약 각하께서 풀어주라고 하시면, 각하가 어떻게든 우리의 변명거리를 만들어 주신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각하는 절대로 우리를 버리지 못할 것입니다.”
“하긴, 그건 당연한 이야기지.”
백서홍과 고유승이 이렇게 장담하는 이유는 매우 간단했다.
[이 시설이 JD의 비자금 조성을 하기 위한 장소 중 하나이니까.]군부 시절에는, 멀쩡한 사람이 갑자기 사라진다고 해도 사라진 사람의 가족들이 전혀 울분을 토해내지 못했다.
토해내는 순간 가족 중 한 명이 추가로 사라질 뿐이었으니까.
군부 시절에 있었던 범죄에 대한 기록이 너무나 많이 유실되어서 그렇지, 당시에 피해를 본 사람들은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이를 빠득빠득 간다.
대통령이 인신매매를 유도해서 그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한다?
남미 국가에서나 있을 일 같지만, 대한민국에서는 불과 70년대와 80년대에도 존재했었고, 섬 노예는 아예 현재까지도 존재하고 있는 형국이다.
물론, 천일염 자체가 상품성이 떨어지면서 섬 노예 수요 자체가 줄긴 했지만, 인신매매 자체가 아예 사라진 건 아니라는 얘기다.
“일단, 각하께 보고를 드려야겠군. 지금 당장 죽으면 곤란하니까 상처를 잘 치료해 두고, 먹이는 것도 잘 먹여 둬.”
“구매처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말을 들은 백서홍이 짜증을 섞어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널린 게 상품들인데 뭘 그리 고민해? 그냥 아무나 대충 던져 주고, 그 녀석이 맞다고 해. 뭐가 문제야?”
백서홍의 살벌하면서도 싸늘한 목소리가 원장실에 울려 퍼졌다.
* * *
“이런, 시팔!”
집무실에 홀로 있던 JD는 한 통의 전화를 끊기가 무섭게 전화기를 바닥에 내던졌다.
쾅-!
양탄자가 깔리지 않은 바닥 부분에 떨어진 전화기는 큰 소리를 내며 박살이 났지만, JD는 그것으로도 화가 풀리지 않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JD는 아무도 부를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만세복지관과 관련된 사항은 비서실장에게도 말할 수 없는 극비 중의 극비였으니까.
‘이런, 개 같은 새끼들. 납치한 대상이 누구인지 제대로 파악도 안 해?’
JD는 최철민이 납치되었다는 사실을 지금 처음 들었다.
애초에 최기현이 JD가 아니라 JSD에게 부탁을 했기 때문이었다.
현재 JSD는 사실상 JD와 척을 진 상태.
그렇기 때문에, JSD 역시 JD에게 보고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최철민을 추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JD에게 가해진 페널티.
‘빌어먹을, 시간이 없어!’
만약 보고를 일찍 들었다면 어떻게든 잔머리를 굴렸을 것이다.
예를 들어서, 조직 하나를 물색하고 그 녀석들이 납치한 것으로 사건을 조작한 다음에 죄를 확 뒤집어씌우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너무나 없었다.
당장, 안기부가 언제 자신들을 찾아낼지 모른다고 백서홍이 보고를 한 상황.
그런 상황에서, 안기부까지 속여 가며 사건을 조작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심지어 만세복지관과 관련된 사항은 JSD조차도 잘 모르는 사항.
정확히 말하자면, JD가 해당 사항과 관련하여 아예 신경조차 쓰지 말라고 지시를 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JSD에게 지시를 내려? 안 돼, 그랬다가는 JSD가 최 회장에게 사실을 전달할지도 몰라.’
JD 역시 이미 JSD를 크게 신뢰하지 않게 된 지 오래였다.
최기현을 신뢰하는 것은 맞았지만, JSD는 신뢰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JSD가 최기현에게 보고하고, 분노한 최기현이 만세복지관에 칼을 겨눌 경우의 수를 생각한 것이다.
최기현은 반드시 자신을 찾아와 만세복지관을 극형을 처해 달라고 할 것인데, 그렇게 했다가는 만세복지관에 자신이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된다.
가뜩이나 지금은 1987년 1월.
올해 대통령 선거를 하느냐, 헌법을 수정해서 영구 독재를 하느냐를 정해야 하는 상황인데, 이 상황에서 만세복지관이라는 아킬레스건이 드러났다가는 절대로 정권을 잡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JD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어쩌지? 어떻게 하면 최적의 결과를 낼 수 있지?’
하지만, JD에게 주어진 길은 단 두 대…… 아니, 단 두 개밖에 없었다.
하나는 최기현의 말을 들어주어 백서홍과 고유승이라는 패를 버리는 것.
이는 만세복지관이라는 돈줄을 포기함과 동시에, 둘을 비롯한 관계자들의 폭로를 감당하는 길이었다.
대신, 최기현과의 관계는 지금처럼 유지할 수 있겠지.
다른 하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로 만드는 것이었다.
만세복지관에서 최철민이라는 존재가 아예 사라지게 된다면?
둘 사이의 접점이 사라지는 것이니 JD는 최기현에게 ‘최선을 다했다’라는 체면도 세우고, 돈줄도 잃지 않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올해 대선을 앞둔 JD가 선택할 길?
그것은 너무나도 뻔했다.
“야, 전화기 하나 더 가져와!”
집무실 바깥으로 빼액 고함을 친 JD는 전화기가 도착하기가 무섭게 집무실의 문을 닫고는 다시 만세복지관으로 전화를 걸었다.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해. 절대 흔적 남기지 말고.”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했던가.
분명 집무실의 문을 닫고 한 말이지만, 이러한 JD의 말은 이미 새와 쥐, 둘 다 들어 버렸다.
* * *
뉴스에서는 종종 야산에서 백골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발견된 백골들은 의외로 범인이 잡히기도 한다.
그렇기에, 야산에 범죄의 흔적을 숨기는 것은 하수나 하는 짓.
진짜 범죄자들은 건설 현장에 범죄의 흔적을 처리한다.
그리고 수십 년 후, 재개발될 때 백골이 발견된다면?
돈에 눈이 돌아간 건설사들은 대부분 백골을 없던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한 마디로 무급으로 봉사해주는 증거 인멸자들.
그렇기에 최철민 역시 근처의 공사 현장과 하나가 되는 미래가 결정되었다.
아니, 결정되려고 했다.
왜냐하면, 아직 일어난 사실은 아니니까.
“미안해, 하지만 어쩌겠어? 본인이 운이 없는 것을 택해야지. 그러게 왜 와이케이 그룹으로 태어났으면서 그렇게 투박하게 살래? 도대체 가문에다가 뭔 짓을 한 거야?”
현재 최철민은 보름 동안 거의 굶다시피 했기 때문에 얼굴은 말랐지만, 배나 팔, 허벅지 등은 살집이 좀 붙어 있었다.
왜냐하면, 서민의 삶을 살면서 양질의 음식이 아닌 양 많은 음식을 먹었기 때문에, 자기 관리를 사실상 할 수 없었으니까.
“야, 떨지 마. 어차피 사람은 언젠가 한 번은 죽잖아? 그러니까 좀 일찍 죽는다고 생각하면 억울할 것도 없어.”
고유승의 말에 최철민은 벌벌 떨면서 눈물을 흘렸다.
자신이 예전에 했던 일이 이렇게 후회될 수가 없었다.
만약 자신이 그냥 조용히 윤기가 세대를 잇는 것을 지켜보았다면?
적어도 지금과 같은 일을 겪지는 않았겠지.
“자, 특별히 한 방에 보내 줄게.”
놀랍게도 고유승은 고문실 테이블 서랍에 들어있던 권총을 꺼내려고 했다.
하지만, 갑자기 지하실 복도 쪽에서 소란이 울려 퍼졌다.
심지어 총소리까지 울려 퍼졌다.
‘아니, 난 아직 총을 안 쐈는데……?’
고유승은 서랍에 들어 있는 총과 고문실 문에 달려 있는 작은 유리창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뭐, 뭐야. 자동소총 소리잖아?’
권총과는 확연히 다른 연발식 파열음.
‘뭐야, 왜 영어 소리가 들려?’
전혀 매치업되지 않는 소리에, 고유승은 순간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하고 그저 멍하니 작은 유리창을 바라만 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쾅-!
중무장을 한 백인 군인의 군홧발에 고문실의 문이 터질 듯이 열렸고, 동시에 고유승은 자신도 모르게 서랍에 있는 권총을 집어 들었다.
탕-!
총을 쏜 것은 고유승이 아니라 군복 차림의 백인.
백인은 고유승의 손을 향해 정확히 총알을 적중시켰고, 덕분에 고유승은 비명을 지르며 기절했다.
영화에서야 손에 맞으면 비명을 지르며 절대 기절하지 않지만, 현실에서는 손에 총을 맞아도 충분히 기절하는 법.
그렇기에 최철민은 고유승의 손에 의해 이 세상을 하직하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포심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눈앞에 있는 군인 복장의 사내가 자신에게 총을 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백인은 자신을 바라볼 뿐, 움직이지 않았기에 최철민은 점차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기 시작했다.
그렇게 약 1분여가 흐른 후.
갑자기 고문실에 윤기가 나타났다.
“구하러 왔어요.”
대단히 무미건조한 음색.
하지만 최철민은 지금 순간, 윤기라는 존재가 구세주 그 이상으로 느껴졌다.
“미안해…….”
마침내, 인생 전체의 후회를 담은 최철민의 사과가 윤기에게 닿았다.
* * *
만세복지관 사태.
윤기는 자신의 휘하에 있는 보디가드들을 전부 동원하여 최철민을 구해 냈다.
사실, JSD가 워낙 열심히 수색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다리려고 했지만, 시간이 없었다.
왜냐하면, 최덕배가 ‘야, 걔 몇 분 뒤에 죽을 것 같아’라고 알려 왔으니까.
그나마 만세복지관 주변에 이미 보디가드들을 비롯해서 본인까지 전부 대기하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서울에서 추이를 지켜보고 있었다면 최철민은 백 퍼센트 죽었을 것이다.
‘일단, 시간이 촉박해서 구하기는 했는데…….’
지금 최철민은 윤기가 준비한 밴에 올라타서, 데려온 의사에게서 진료를 받는 중이었다.
‘문제는 그게 아니란 말이지.’
만세복지관은 최철민만 납치한 것이 아니었다.
남녀 구분 없이, 노인과 어린아이 구분 없이.
그야말로 수백 명이 넘어가는 사람들이 복지관 내에서 강제노역을 당하고 있었고, 마찬가지로 공평하고 평등하게 모진 구타와 학대를 당하고 있었다.
‘어쩐다…….’
만세복지관을 빙 둘러싸고 있는 윤기 소유의 차량과 보디가드들.
그 원 안에는 수백 명의 피해자가 보디가드들의 보호를 받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자신들이 겪은 일들을 녹음하고 있었다.
최철민을 구조하고 지금까지 겨우 30분.
하지만, 윤기에게는 더는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이제는 해결 방법을 선택해야 할 시간.
‘이미 JD가 단서를 주었지.’
윤기는 JD와 백서홍의 통화 내용을 최덕배를 통해 전달받았다.
즉, JD가 와이케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쐐기가 박힌 상황.
그렇기에 윤기는 이번만큼은 굽히지 않기로 작정했다.
“방송국들에 순차적으로 연결하세요.”
리무진에 달아 놓은 카폰(Car-phone).
그것이 메이저 방송국들을 향해 맹렬히, 그리고 순차적으로 전화를 연결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