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28)
#28화 삼우 물산은 안 돼 (1)
삼촌의 정색 가득한 대답을 듣는 순간 류근태는 정신을 번쩍 차렸다.
‘아, 이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었는데…….’
윤기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거의 국민학생이나 할법한 말을 꺼내버린 것이다.
“네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회사를 팔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 네가 회사라도 운영하려고?”
자신을 향해 질문을 해 오는 삼촌을 보며 류근태는 속으로 안도하면서도 침을 꿀꺽 삼키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나마 삼촌이니까 이 자리에 계속 있는 거지, 전혀 관계없는 중소기업의 사장이었다면 문을 박차고 나가 버렸을지도 몰라. 정신 바짝 차리자, 힘들다는 이유로 말실수를 하는 것은 변명이 안 돼.’
큰 실수.
하지만 큰 실수의 대상이 친족이 된 덕분에 류근태는 큰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삼촌, 죄송해요. 제가 너무 앞뒤를 자르고 말했네요.”
“너 다른 회사에도 이런 식으로 말했냐?”
“아, 아뇨. 회사 단위로 찾아온 것은 삼촌이 처음이에요.”
“개인 단위로는 돌아다녔다는 거 같은데. 도대체 뭐가 필요한 거냐? 진짜 건설사라도 창업할 생각이냐?”
류근태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마음을 다잡은 뒤, 삼촌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삼촌, 제가 삼우 그룹 비서실에서 일하는 것은 알고 계시죠?”
“알고 있지. 우리 가문에 고려대 출신 하나 생겼다고, 사성 입사하겠구나 싶었는데, 우리나라 지역의 벽이 그렇게 높은 줄은 나도 너를 보고 알았으니까.”
씁쓸한 표정으로 담배에 불을 붙인 김정선은 크게 연기를 한 번 내뿜고는 검지와 중지 사이에 담배를 낀 채로 조카를 바라보았다.
“삼촌이 서울말 연습하신 것도 뭐, 그런 쪽 영향 아니겠어요?”
“그렇긴 하지. 여기 지역 공사만 가지고 회사 운영하려면 쉬운 건 아니니까. 아무튼, 뭐, 말은 그걸로 끝이야?”
류근태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제가 얼마 전에 삼우 그룹 회장님 비서실에 있다가 자리를 옮겼거든요. 이건 제가 말씀 안 드렸죠?”
“뭐야, 좌천이라도 된 거야?”
“아뇨, 좌천이 아니라 회장님의 맏손자를 전담하게 됐어요.”
“아들이 아니라 맏손자? 삼우 그룹 회장 나이가 많은 모양이지? 맏손자가 비서를 둘 정도로 경영에 깊게 참여하고 말이야.”
“아뇨. 회장님 맏손자는 미성년자예요.”
김정선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중졸을 낙하산으로 내리박은 거야?”
“중졸이 아니라, 지금 10살이에요.”
순간 김정선은 자신도 모르게 담배를 떨어뜨렸다.
“고려대를 나온 너를 10살짜리 꼬맹이 비서로 줬다고? 회장이 미친 거 아냐?”
류근태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전 진짜 대박을 잡은 거예요.”
김정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그거 헛소리야. 회장이 너한테 ‘나중에 잘해 줄게.’라고 말하든? 세상에서 나중에 잘해 준다는 새끼들이야말로 절대로 신뢰하면 안 돼. 보증 서주는 거랑 똑같은 거야, 그거! 차라리 때려치워! 삼촌 밑에서 5년 정도만 구르면 부장 자리 내어줄 테니까!”
길길이 날뛰는 삼촌을 바라보며 속으로는 마음이 푸근해졌지만, 류근태는 떨어진 담배를 주워 주며 삼촌을 일단 진정시켰다.
그러자 김정선은 다시 자리에 앉으며 바닥에 떨어졌던 담배를 입에 물었지만, 표정은 펴지지 않았다.
“도련님은 일반적인 10살이 아니에요. 일반적인 공부 레벨은 벌써 중학교 후반……, 아니 고등학생 레벨에 올라섰고, 그중 영어는 준원어민 수준에 경영학 지식도 대학교 3학년 수준은 될 거예요.”
“10살짜리가……? 진짜냐? 진짜면 그건 그냥 천잰데……?”
“그렇다니까요. 저도 맨 처음에 비서실장님이 오더 내렸을 때는 좌천인 줄 알았어요. 왜냐하면, 삼우 그룹 취직한 것도 친구 인맥발로 들어간 거였으니까요.”
“그런데 내려가 보니까 도련님이란 녀석이 물건이더라?”
“네. 제가 삼촌이니까 믿고 말씀드리는 건데, 잘하면 삼우 그룹의 후계가 한 세대를 건너뛸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열정적인 조카의 설명에 김정선은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에이, 천재여도 그건 말도 안 되지. 그 녀석의 아버지야 뭐, 자기 아들이 후계를 잇는다고 하면 물러날지도 모르지만, 회장이 다른 자식들이 없데? 말도 안 되지.”
“그게 아니라니까요. 이미 도련님은 사업체를 소유하고 사장님 신분이에요.”
“야, 그거야 뻔하잖아. 일부 재벌들이 자기 손자들한테 미리 유산 물려주는 거. 말이 사장이지 사실상 바지사장이잖아.”
“아니라니까요. 이것들을 보세요.”
류근태는 서류 가방에서 미리 준비해 놓은 서류들을 꺼냈다.
동문들은 서류를 꺼내기도 전에 다들 완강히 거절했기에, 이 서류를 보여 주는 것은 사실상 삼촌이 처음이었다.
“이게 뭐냐?”
“도련님의 현재 보유 자산이에요. 원래 일부만 꺼내야 하는데, 삼촌한테는 다 보여드리는 거예요.”
“얼만데?”
“4억이 좀 넘어가요.”
현대 기준으로 치면 30억이 넘어가는 금액으로 10살짜리 아이 기준으로 보기에는 상당한 금액인 것은 사실이었다.
“확실히 대단하긴 한데……, 그래도 그 돈으로 회사 운영에 뛰어드는 것은 또 다른 문제지. 네 얘기 들어보니까 도련님이 건설사 하나 운영해 보고 싶은 모양인데, 나는 재벌가 도련님 장사 놀이에 목숨 걸 생각 없다.”
굉장히 현실적인 답변.
동시에 조카의 요청이었기에 이렇게 신사적으로 답변해 줄 수 있는 것이었다.
“삼촌, 이걸 자세히 보시라니까요.”
김정선은 솔직히 조금 짜증이 나긴 했지만, 조카가 오죽하면 이럴까 싶어서 눈앞에 들이 밀어진 서류를 슥 읽어 보았다.
“마이크로소프트? 뭐야, 이건?”
“미국에 있는 작은 기업이에요.”
“작은 기업이 뭐.”
“사장님이 여기에 현 20만, 토탈 70만 달러를 투자하실 계획이거든요.”
“작은 기업에? 70만 달러를?”
김정선은 인상을 찌푸렸다.
“이 기업의 매출을 보세요.”
“작은 기업 매출이 높아 봤자…….”
원래대로라면 마이크로소프트의 76년 매출은 10만 달러, 78년 매출은 100만 달러가 나와야 한다.
하지만, 김정선이 본 종이의 차트는 여름을 기점으로 그래프가 고공 행진을 하는 중이었다.
“묘하게 여름부터 잘되고 있네?”
“네. 사장님이 투자하신 게 여름이거든요.”
윤기의 거금 투자로 인해 마이크로소프트는 MITS와의 소송을 1년 빠르게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부모 인맥까지 동원해서 78년에 끝나야 하지만 말이다.
재판의 빠른 결착 덕분에 마이크로소프트는 IBM과의 접촉도 빨라지고, 다른 분야에서의 매출도 크게 올랐다.
“으음……, 이 투자를 전적으로 그 도련님이 했다는 거냐?”
“그렇다니까요. 저는 제가 좌천당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실시간으로 옆에서 보고 있어요.”
김정선이 조카를 바라보는 눈빛이 조금은 사업적으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다시 묻자. 네 도련님은 건설사를 얻거나 설립해서 구체적으로 뭘 하려는 거냐?”
“당연히 건축이죠. 하지만 자세한 건 말씀드릴 수가 없어요. 사장님이 저에게 주신 시간은 2년이니까, 앞으로 20개월 정도는 기다려야 확실한 윤곽이 나올 거예요.”
“뭐? 20개월?”
어처구니가 없는 듯 김정선이 ‘핫’하고 탄성을 질렀다.
“그……, 건설사라는 게 마냥 초짜만 데려와서 설립이 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사장님이 2년이라는 시간을 주신 거예요. 그런데 시간이 아무리 많아도 안 될 것 같은 게 있잖아요. 동문들은 삼우 쪽으로 올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고, 그렇다고 신참들로만 꾸릴 순 없고……. 그래서 생각이 난 게 삼촌이었어요.”
“그래서 처음에 그렇게 다급하게 나한테 부탁을 했던 거냐.”
“……네.”
얼굴이 붉어지는 조카를 바라보며 김정선이 한숨을 내쉬었다.
“근태야.”
“네, 삼촌.”
“네 부탁대로 우리 회사가 그 도련님 밑으로 들어간다고 치자.”
“네.”
“그러면, 20개월 동안 우리는 뭘 해야 하냐?”
“그거야 본격적인 일 시작 전까지는 본연의 일을 하시다가, 프로젝트에 시동이 걸리면 추가적인 외부 일은 받지 않는 방식으로…….”
회사 자체는 유지하는 쪽으로 설명하는 조카의 모습을 보며, 김정선이 곧바로 새로운 물음을 던졌다.
“그래, 네 말대로 그런 방식의 운영을 한다고 치자. 그러면 추후 우리 회사를 도련님이라는 녀석이 산다는 건데, 우리 회사 사놓고 우리를 싹 다 자르면?”
한 주체의 지분이 50퍼센트가 넘어가면 일어나는 일.
마이크로소프트가 윤기의 대규모 투자를 고민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고, 승낙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윤기의 열망은 진심처럼 보였으니까.
하지만 건설사 쪽에 윤기는 아직 그와 같은 열망을 보이지 않았고, 김정선의 의심 역시 합리적이었다.
“만약 그 도련님이 장기적인 사업을 할 게 아니라 단기적인 사업을 할 거라면 차라리 우리한테 의뢰를 하는 게 어떠냐? 네 소개로 하는 거니까 단가도 가능한 만큼 낮춰 줄 테니까 말이야.”
조카와의 관계를 고려한 최대한의 양보.
류근태 역시 삼촌이 많은 양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여기에서 물러나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생각했다.
“사장님을 직접 만나 보시는 건 어떨까요?”
* * *
“삼촌의 회사라고요?”
윤기의 말에 류근태는 고개를 깊이 숙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건 정말 인맥을 만들려고 한 것이 아니라 제가 쓸 수 있는 방법이 이것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요?”
“네……. 처음에는 동문들을 떠올렸는데,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동문들은 삼우 그룹에 전혀 관심을 가지질 않았습니다.”
류근태는 자신이 판단한 윤기의 성격을 믿기에 솔직히 이야기했다.
“확실히 그렇겠지요.”
“다음으로는 삼우 그룹에서 떨어져 나간 사람들을 생각해 봤지만, 그 사람들을 우리가 흡수할 경우, 추후 사장님의 사업체가 커졌을 때 삼우 그룹의 인원들과 마찰을 일으킬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음.”
윤기는 류근태의 추론이 합리적이라고 여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삼우와 거래하고 있는 하청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청들 대부분이 본청 직원들 앞에서야 웃지만, 뒤에서는 그야말로 가루가 될 때까지 씹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에……. 당장 우리도 우리가 하청일 때 똑같이 하니까요.”
“여러모로 생각을 해 보셨네요.”
류근태가 어렵사리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인원을 뽑으려면 완전 외부에서 뽑아 와야 하는데, 그나마 말을 끝까지 들어줄 사람이라면 인맥이 있는 쪽뿐이라……. 결국, 삼촌 회사에 먼저 찾아가게 된 겁니다.”
“하지만, 삼촌은 합리적인 사람이었고, 제가 직접 만나야 한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삼촌도 사장님을 직접 만나 본다면 생각이 바뀔 테니까요.”
류근태가 윤기를 부르는 호칭은 어느새 도련님에서 호칭으로 바뀌어 있었다.
삼촌네 회사에서 윤기를 옹호하던 그때, 마음속으로 자신의 방침을 정했기 때문이다.
윤기 역시 조만간 호칭을 재정립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류근태가 스스로 바꾸었기에 속으로 만족하고 있었다.
“좋아요. 한번 만나 보도록 하죠. 근태 아저씨……, 아니 류 비서의 선택이 옳았는지 제 눈으로 확인해야 할 테니까요.”
삼촌의 시험을 통과하겠다는 말이 아닌, 자신이 삼촌을 시험하겠다는 발언.
그 오만함과 오만함을 뛰어넘는 자신감에 류근태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 * *
윤기와 김정선의 만남은 김정선의 사무실에서 이루어졌다.
즉, 윤기가 먼 거리를 이동했다는 이야기다.
김정선은 조카의 말을 아직까지 별달리 신뢰하지 않는 상황이었기에 당연한 것이었고, 윤기 역시 추후에 이것이 자신에게 이득으로 작용할 것이기에 표정에 전혀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왔……, 아니, 오셨습니까?”
김정선은 윤기가 열 살이라는 생각에 별생각 없이 반말을 하려다가 삼우 그룹의 맏손자라는 사실을 재차 떠올리고는 존댓말로 바꾸었다.
더불어서 윤기의 외모.
서구적인 외모다 보니 또래보다 두셋은 많아 보이는 느낌인 데다가 어머니를 닮아 빼어난 외모가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예,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근태의 부탁이니까요. 앉으시죠.”
김정선의 안내에 모두가 자리에 앉았고, 잠시 뒤 직원 하나가 적당한 음료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나가자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되었다.
“지금 상황은 굳이 이런저런 말로 시간을 질질 끌 필요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궁금한 것을 물어보시죠. 답해 드릴 수 있는 건 전부 답해 드리겠습니다.”
윤기의 말에 김정선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시간 낭비할 생각이 없는 것은 김정선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말이 빨라서 좋군요. 좋습니다. 왜, 삼우 물산 쪽으로 거래를 하지 않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