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29)
#29화 삼우 물산은 안 돼 (2)
류근태가 서울로 올라갔다가 윤기를 데리고 내려오기까지의 며칠.
김정선 역시 마냥 놀고만 있지는 않았다.
자기가 아는 연줄을 동원해서 삼우 그룹에 대해서 가능한 한 조사했으니까.
물론 자세한 내용까지야 힘의 차이가 워낙 커서 알 수 없었지만, 최소한 삼우 물산의 외견적인 조직도만큼은 알아낼 수 있었다.
‘삼우 그룹에 삼우 건설은 아직 없지만, 물산 쪽에 건설 파트를 담당하는 부서가 있어.’
이 사실로 인해 김정선에게는 큰 의문이 하나 떠올랐다.
‘왜, 삼우 물산에 건설 의뢰를 하지 않고 굳이 새로운 회사를 세우려는 거지?’
물론 생각나는 이유가 있긴 있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너무 리스크가 컸기에 김정선은 이것을 확실히 짚고 넘어가려는 것이다.
“사장님.”
나지막한 윤기의 목소리에 김정선이 비슷하게 대답했다.
“말씀하시죠.”
“사장님은 자제분들을 몇이나 데리고 계시죠?”
순간 김정선은 눈앞의 도련님이 절대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만약 자신 앞에서 미주알고주알 다 이야기했다면 확실히 이해는 빨랐겠지.
하지만 동시에 ‘역시 아이구나.’라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비서의 삼촌이라고는 하지만, 처음 본 사람에게 미주알고주알 다 털어놓는 건 결코 좋은 대화방식이라고 할 순 없었으니까.
‘최소한 삼우 물산에 있는 회장의 아들하고는 척을 졌거나 지겠다는 소리군. 그렇다면 왜 삼우 물산을 쓰지 않는지 이해가 돼.’
지방의 사업체라고는 해도 운만으로 지금까지 끌어올린 것은 아니었기에 김정선은 윤기에게 다음 단계를 물었다.
“저희가 왜 그런 리스크를 감수해야 할까요?”
윤기 역시 김정선이 자신의 말을 잘 이해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뱀인지 곰인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능력이 없는 사람을 인맥이랍시고 데려온 것은 아니겠네.’
김정선의 어투는 비꼬는 쪽이 아니라 진지한 물음이었다.
100위권 기업이라고 해도 마음만 먹으면 지방 사업체쯤이야 간단하게 뭉갤 수 있다.
실제로 건실한 중소기업이었던 제일 방직 역시 이원희의 실수 때문에 사실상 오너가 바지사장이 되었으니 말이다.
“인생이란 선택의 연속이니까요. 저는 강요하지 않습니다. 지방 사업체를 계속 운영하는 것도 선택이 될 것이고, 저라는 사람에게 배팅을 해서 후에 대기업 계열사 사장이 되는 것 역시 선택입니다.”
대기업 계열사 사장.
분명 리스크도 컸지만, 과실 역시 매우 달콤하게 느껴졌다.
‘내가 이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면, 나뿐만이 아니라 회사 식구들 전부가 리스크를 감당하게 되는 거야.’
만약 자신이 아직 소수의 인원으로 막 사무실을 열었을 때라면 ‘옳다구나!’하고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규모였다면 눈앞의 꼬마 사장님이 이쪽에 관심을 안 가졌을 가능성도 있겠지.’
고심에 잠긴 김정선을 바라보며 윤기가 최선책 대신 차선책을 내밀었다.
“그럼, 이렇게 하시는 건 어떨까요?”
“어떻게 말인가요?”
“어차피 제 밑으로 들어오면 서울에서 일을 해야 할 겁니다. 공사 자체가 서울에서 이루어질 거니까요.”
“그건 어렴풋이 예측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서울 인력 사무실에 끈을 만들고, 중장비 기사들과의 커넥션 같은 것을 생각하면 분명 준비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그걸 어떻게……?”
“동네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막걸리 한 사발에 안주 한상 차려 주면 인생 경험쯤이야 쉽게 들을 수 있죠.”
사실 회귀 전의 기억이었지만, 윤기의 말은 김정선에게 아주 그럴듯하게 들려왔다.
“현장 실무를 확인하려고 그런 일까지 하고 계시다는 건가요?”
“모르는 것을 아는 척 할 순 없으니까요.”
김정선은 갑자기 며칠 전에 본 마이크로소프트의 매출 그래프가 떠올랐다.
눈앞의 사장님에 대한 평가가 수직 상승하는 기분에 김정선의 어투가 점점 더 공손해지기 시작했다.
“그 다음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류 비서의 말을 들어보니까 규모가 그래도 ‘작다’라고 말할 수준은 아닌 것 같더군요.”
“그렇습니다. 나름대로 이 동네에서는 이름이 있고, 다른 지방이나 서울 쪽에도 업무 의뢰가 들어오니까요.”
“그러니 서울에 분점을 내시죠. 단, 분점은 이 회사의 지점이나 자회사가 아니라, 제 사업체 소속이 될 겁니다.”
“그렇다는 건……?”
윤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중견급 인원 하나에 실무급 인원 둘, 보조급 인원 하나둘 해서 일단은 사표를 내게 하세요. 그럼, 그 인원들은 제가 고용하겠습니다. 그리고 서울에서 사업을 위한 예열을 하는 거죠.”
김정선은 크진 않지만, 그래도 사업체를 운영하는 감각으로 지금의 승부의 때라고 생각했다.
‘지금마저도 거절하면 이 사장님은 우리에게서 관심을 끌 거다!’
실제로 김정선의 예측은 정확했다.
현재 윤기의 자금이 바닥난 상태라 류근태가 공격적인 스카우트를 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었으니까.
만약 윤기가 올해가 아닌, 내년에 류근태한테 스카우트 명령을 내렸다면 류근태는 삼촌에게 내려오지 않았을 것이다.
“사장님의 의뢰를 수락하겠습니다. 그걸 토대로 지금부터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대답이 끝난 순간, 김정선은 윤기의 입가에서 지어지는 미소를 보았다.
일부러 보여 주는 미소가 틀림없었고, 보여도 상관이 없는 미소임이 틀림없었다.
왜냐하면, 저 미소의 의미는 바로 여유, 그 자체였으니까.
“전자와 후자, 둘 중 어떤 것을 하실 생각이시죠?”
“솔직히 제가 나이가 젊고, 책임져야 할 식구가 몇 안 된다면 지금 당장 사무실 땡처리하고 서울로 올라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는 것도 현실이라서요. 사장님도 기업들의 세계가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강요를 하지 않는 거죠.”
김정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후자로 가겠습니다. 믿을 만한 녀석들로 골라서 서울로 올려보낼 테니 사장님이 잘 챙겨 주셨으면 합니다.”
윤기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일이죠. 저 역시 공수표를 던지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가 없네요. 그러니, 한 번만 공수표를 사용하겠습니다. 서울지점에 먼저 올라온 인원은 4년 뒤에 백화점이 오픈되면 중진으로 기용될 겁니다. 늦게 합류하는 인원보다 확실한 대우를 받을 거라는 얘기죠.”
“배, 백화점이요?”
처음 듣는 얘기에 김정선이 깜짝 놀랐다.
“네. 제가 건설사를 원하는 이유가 바로 백화점 건설 때문입니다. 그것도 옛날 화신을 훨씬 뛰어넘는 당대 최고의 고급백화점을 세울 생각이라서요.”
화신백화점은 광복 전 종로에서 1위를 달리던 백화점으로 김정선 역시 어릴 때, 부모님의 손을 잡고 갔을 때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사장님의 생각은 십중팔구 백화점의 확장을 노려보겠다는 건데……. 아니, 최소한 백화점으로 벌어들인 수익으로 무언가 추가적인 공사를 한다는 것은 확실해.’
만약 이 끈을 놓치지만 않는다면, 김정선이 운영하는 사업체는 더 이상 영업을 위해 비굴하게 뛰어다닐 이유가 없다는 얘기가 된다.
“사장님이 걱정하지 않도록 빠르게 일 처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일주일……, 아니 5일만 주시면 근태를 통해서 인원을 보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일어나도록 하지요.”
“예,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근태와 함께 서울로 떠나는 차량을 보며 김정선은 복권을 떠올렸다.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거라면, 실컷 이용만 당하다가 팽당할 수도 있어.’
하지만, 반쯤 긁어진 복권에는 똑같은 숫자 세 개가 보이는 것만 같았다.
‘차에 타기 직전 나를 바라보면서 지은 표정…….’
삼우 그룹 회장의 맏손자이자, 근태의 주인이 지은 표정은 분명 말을 담고 있었다.
[같이 클 수 있는 기회는 지금뿐입니다.]김정선이 주먹을 꽉 쥐었다.
* * *
윤기와 김정선이 만남을 가진지 3일.
불과 3일 만에 김정선은 류근태의 집 문을 두드렸다.
윤기의 비서라고 보기에는 힘들 정도로 낡은 옥탑방.
그것도 2000년대에 볼 수 있는 허가받은 옥탑방이 아니라, 주택 옥상에 대충 지은 가건물식 옥탑방이었다.
주소를 받고 문을 두드린 김정선은 조카가 아닌 파마머리의 푸짐한 아줌마가 나오자 한 번 놀랐고, 아줌마의 말을 듣고 집 옆 계단을 올라 옥탑방을 보자 두 번 놀랐다.
“아, 삼촌. 오셨어요?”
“야, 근태야……. 너……, 대우가……, 도대체…….”
기껏 큰 각오와 함께 서울로 올라온 김정선은 말을 잇지 못했다.
쩍쩍 갈라진 옥탑방의 벽처럼 마치 심장이 갈라지는 기분을 느끼고 있는 김정선을 향해 류근태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삼촌이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에요. 일단 안으로 들어오세요. 다 설명해 드릴게요.”
안으로 들어가자 상황은 더욱 나빴다.
건물이 바람을 막아 줘서 덜 추워야 했는데, 옥탑방이 아예 냉골이 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이쪽으로 들어오세요.”
류근태는 집 안에 추가로 쳐놓은 텐트에 김정선을 불렀다.
그나마 이불들이 잘 깔린 텐트 안으로 들어가자 추위가 꽤 가시는 기분이 들었기에 김정선은 한숨을 내쉬었다.
“너, 왜 이렇게 사냐? 내가 진짜 믿어도 되는 거냐? 괜히 올라온 거 같아지는데…….”
“그게 아니라니까요. 저 비서실에 있을 때보다 돈 더 많이 받고 있어요.”
“진짜야?”
“그렇다니까요. 원래 비서실에서 나오는 월급, 거기에 사장님이 추가로 주시는 월급. 다만, 제가 그 돈을…….”
류근태가 목소리를 낮추며 삼촌의 귀에 속닥거렸다.
“사장님의 계획에 따라서 저도 적당히 근처의 땅을 매입하고 있거든요. 도련님이 암묵적으로 허락하시는 수준으로요. 그리고 사장님이 거래하시는 회사의 제1 거래처의 주식들도 좀 사놓고 있고요.”
한마디로 윤기를 따라 월급을 재투자하고 있다는 조카의 말.
윤기 역시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사실상 이인자인 류근태의 이러한 행동을 적당히 눈감아 주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런 것이야말로 이인자의 특권이니까.
“그렇게까지 할 가치가 있어?”
“물론이죠. 저 의외로 알부자예요. 뭐, 주인집 가족들은 저를 전혀 그렇게 생각 안 하겠지만요.”
류근태는 최근에 불어난 자신의 땅과 주식 등을 떠올리며 웃음을 흘렸다.
“야, 그렇게 좋은 거면 나도 같이 좀 알자.”
김정선이 류근태를 향해 엉덩이를 지익 끌며 다가가자 류근태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안 돼요.”
“왜, 같이 좀 알자니까.”
“이건 사장님이 눈감아 주고 있으니까 가능한 거예요. 만약 삼촌이 합류하게 되면 사장님의 심기를 건드리게 되겠죠.”
“야, 내가 너한테 얼마나 잘해 줬는데…….”
류근태는 그래도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안 돼요.”
“지금은 안 된다면……?”
“사장님의 눈에 드세요. 그러면 그 정보를 삼촌이랑 공유할 수 있을 거예요.”
“으음…….”
그래도 약간 아쉬워하는 김정선을 향해 류근태가 정신 똑바로 차리라는 듯이 눈에 힘을 주고 말했다.
“삼촌, 정신 차려요. 사장님은 어지간한 재벌 그룹의 총수……, 아니, 그 정돈 아니더라도 최소 후계자 정도는 될 법한 심계를 가지고 있어요. 사장님이 제 이 행동을 왜 이해해 주는지 아세요?”
“네가 말을 잘 따라서 아니야?”
류근태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사장님은 제 목줄을 잡은 거예요. 제가 충견이라면 저는 지금 사탕을 목으로 넘기고 있는 중인 거죠. 그런데 제가 충견이 아니라 사장님을 무는 개가 되면……?”
“되면……?”
“콱!”
류근태가 삼촌의 목줄에 손바닥을 갖다 대며 살짝 틀어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