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297)
#297화 믿을 수 없는 속도 (2)
그야말로 파격적인 조건.
러시아의 기초과학 능력은 2010년대를 기준으로 두고 봐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80년대를 기준으로 두고 본다면?
당장 미국과 우주과학 경쟁을 하고 있던 것이 소련인만큼, 그 자료는 어마어마할 것이 분명했다.
물론, 윤기가 소련 휘하에 있던 과학자 중 꽤 많은 숫자를 흡수했기 때문에 소련 자체의 기초과학 발전 속도는 상당히 느려진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쌓아 올린 것을 준다는 건 그만큼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물론, 에이즈 치료제와 관련되어야 한다고 했으니 제한이 상당히 붙는 조건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제약 회사에는 엄청난 도움이 될 거야.’
에이즈 바이러스 치료제는 그야말로 미지의 세계.
그런 만큼, 연구를 위해서 필요한 기초과학과 관련된 자료 역시 방대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 자료들은 추후 다른 약품들을 개발하는 데 엄청난 도움을 주겠지.
“사실, 저는 최 회장님의 진심을 믿기 때문에 더 많은 부문의 기술을 개방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여러 가지 무리수가 따르기 때문에…….”
미안한 표정을 짓는 고르바초프의 말에 윤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일이에요. 그런 특혜까지 받게 되면 레이건 대통령이 저를 크게 의심하겠죠. 소련과 친밀한 수준을 넘어서, 소련으로 넘어간 것이 아니냐고 말이죠.”
“아…… 그런 부분도 있었군요.”
“음?”
고르바초프는 정치국을 비롯한 소련 내부에서의 의심을 생각했는데, 윤기는 미국의 의심을 생각한 상황.
그렇기에, 심각했던 분위기에 잠시 실소가 머금어지면서 긴장이 조금 완화되었다.
“일단 과학 자료의 지원이라면 첫 시작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서기장님 덕분에 소련 정부에 소속되어 일하던 과학자나 의사들이 와이케이 제약으로 많이 넘어오기는 했지만, 자료는 사실상 거의 제로였으니까요.”
실제로 와이케이 제약에서 일하는 과학자 중 상당수는 소련 정부 소속이었다.
공산주의의 가장 큰 단점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인텔리들의 월급’.
상식적으로 의사나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상식을 초월하는 공부량이 필요하다.
그런데 공산권에서 의사나 과학자들의 대우는 어떨까?
놀랍게도 중간 혹은 그 이하다.
괜히 북한에서 의사 아버지가 아들마저 의사 직업을 배분받자 탈북을 종용하는 게 아니다.
소련 역시 사정이 크게 다르지는 않은 상황.
미국으로 목숨 걸고 망명한 소련 과학자들의 숫자를 생각해 본다면, 소련에서의 과학자 대우는 확실히 찬밥이었다.
‘그래서 과학자들이 와이케이 제약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지.’
윤기는 와이케이 제약으로 들어온 소련 의사와 과학자들에게 한국에서 데려온 직원들과 차등을 두지 않았다.
오히려 기존 성과가 있는 자들이라면 더 나은 대우를 해 줬다.
그들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자들이니까.
덕분에 그들은 와이케이 제약에 엄청난 충성을 하는 상황이었지만, 문제는 그들이 기존에 연구하고 있던 자료들을 가져올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들의 머릿속에 수많은 자료가 있다고 하더라도, ‘기억’과 ‘기록’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 상황.
그렇기에 윤기 입장에서 고르바초프의 제안은 확실히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신약 개발에 들어가는 비용이 그야말로 천문학적일 것이라는 점?
‘핸드폰 게임 과금하는 기분이야.’
그야말로, 돈을 써서 시간을 앞당기는 기분.
윤기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고르바초프가 윤기의 대답을 받았다.
“그렇다면 제 제안이 조금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실 수 있으시겠군요. 그리고 다른 지원 역시 있습니다.”
“오……?”
윤기가 흥미를 보이자 고르바초프가 자신감을 가지고 말을 이었다.
“임상 시험에 필요한 자원 역시 소련 정부에서 책임지고 조달하겠습니다. 물론, 강제 차출은 없을 것입니다. 납득하는 인민들로만 엄선해서 적극적으로 임상 시험을 지원하겠습니다.”
“괜찮을까요?”
“당장 미국만 봐도 다들 납득할 것입니다.”
실제로, 미국은 1986년에 AZT를 통해 에이즈 치료제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이 보이기가 무섭게 1년도 되지 않아 치료제를 출시했다.
원래 FDA(미국 식품의약국)는 짧아도 6년, 길면 15년을 넘어가는 자료를 들고 와야 치료제를 인정해 준다.
하지만 AZT를 이용한 치료제는 불과 1년도 되지 않아 빠르게 승인했다.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속도.
이것은 에이즈 바이러스가 그만큼 계층을 구분하지 않고 어마어마한 공포라는 증거였다.
당장 미국의 톱스타나 정·재계의 인물 중에서도 에이즈 바이러스로 인한 사망 사례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
그런 만큼, 고르바초프의 이러한 지원은 약속된 지원이나 다름없었다.
“마지막으로. 에이즈 바이러스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성공한다면, 소련을 제외한 타국의 판매에 대해 소련 정부는 그 어떠한 터치도 하지 않겠습니다. 단, 소련 내부에는 저렴한 가격에 지급해 주신다는 약속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은 그야말로 결정타.
윤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르바초프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와이케이 제약의 첫 번째 프로젝트가 결정되었다.
* * *
“뭐? 에이즈 바이러스 연구?”
40대 중반의 과학자인 그레고리가 다소 당황스럽다는 듯, 한국인 동료 한석찬을 향해 물었다.
“응, 우리 회사의 첫 번째 프로젝트라던데?”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회장님이 단단히 돌아 버린 것 같은데? 미국의 AZT조차도 에이즈 바이러스가 변이되거나 내성이 생길 경우에는 답이 없다고 생각되는 판국인데, 에이즈 바이러스 치료제라…….”
“그래도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아? 만약 개발하기만 하면, 우리는 불치병을 치료해 낸 위인이 될 수 있다고.”
“하긴, 그렇긴 한데. 기껏 취직한 좋은 회사가 되지도 않을 도전을 하다가 휘청일까 봐 그러지.”
“아마 그러지는 않을걸? 회장님의 개인 재산을 생각해 봐.”
한석찬의 말에 그레고리는 자신이 멍청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차, 그렇지. 그런데 생각해 보면 회장님도 참 신기해. 나였으면 소련에 투자 안 하고, 그냥 미국에서 돈놀이나 실컷 했을 텐데 말이야.”
“내 생각은 조금 달라.”
“왜?”
한석찬이 색다른 식견을 내놓을 것 같자, 그레고리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한석찬을 바라보았다.
“미국에서 사업을 했으면 다른 재벌들의 견제를 엄청나게 받지 않았을까? 오히려 소련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이러한 행보를 보일 수 있는 거지.”
“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그런데, 회장님 아내의 할아버지가 미국의 거스터 아니야? 그 정도면 인맥은 짱짱할 텐데?”
한석찬은 고개를 저었다.
“에이, 아무리 그런 인맥이 있다고 하더라도 미국 재벌들이 연합하면 당해 내기가 힘들지. 거스터가 대단한 인물인 것은 맞지만, 미국에는 거스터만큼 대단한 사람들이 또 있잖아?”
“하긴…… 그건 또 그렇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와이케이 그룹이 하찮은 그룹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야. 난 와이케이 소속이라서 너무 행복해.”
“동감이야.”
후룩.
둘의 대화는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무언가 빨아들이는 소리에 잠시 끊겼다.
“야, 너는 그게 지겹지도 않냐?”
그레고리의 핀잔은 휴게실에 같이 있던 또 다른 동료인 류드밀라를 향했다.
긴 치마는 무릎을 움직이기가 불편해서인지, 다소 짧은 스커트를 입고 있는 류드밀라는 포크를 써서 후루룩거리며 슬라브멘을 먹고 있었다.
“딱히? 5분 안에 후딱 먹고 연구하려면 슬라브멘이 최고야. 비스킷 같은 건 딱딱하고 차가워서 별로 땡기지 않거든.”
“그렇게 계속 먹다간 살찐다.”
“후후, 우리 집안은 살이 안 찌는 체질이거든. 우리 아빠도, 엄마도, 우리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먹기는 엄청 먹는데 살이 안 쪘어.”
“젠장…… 나는 조금만 먹어도 살이 찌는데.”
“아깝네, 머리가 빠지는 것처럼 살도 잘 빠지는 체질이면 좋았을 텐데.”
“야! 죽고 싶냐?”
“살찐다고 오지랖 떤 것에 대한 복수야. 베에-”
입술을 쏙 내미는 류드밀라의 모습을 한석찬은 멍한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나를 보고 반한 거야? 하긴, 내가 좀 아름답긴 하지.”
류드밀라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기지개를 쭉 켜는 척하며 자신의 몸매를 과시했다.
물론, 종일 연구실에만 처박혀 있기 때문에 기름기가 흐르는 긴 머릿결과 부스스한 피부가 도드라져 보일 뿐이었지만.
“아줌마 주제에…….”
“얌마!”
그레고리와 류드밀라의 대화.
사실, 한석찬이 멍한 표정을 짓는 것은 류드밀라가 아름다워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이 녀석들, 소련 사람 맞아?’
심각할 정도로 유창한 한국어.
그렇다.
이들은 지금까지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은 의사이자 과학자.
그런 만큼 두뇌가 굉장히 뛰어난 편에 속했고, 와이케이 제약의 절대 조건인 한글 사용에 빠르게 적응했다.
물론, 소련 정부에서 받았던 대우가 찬밥이었던 만큼, 와이케이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총력을 다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류드밀라는 독신이었어?”
“헉!”
한석찬의 물음에 그레고리가 기겁을 하며 헛바람을 들이켰다.
“어? 왜 그래?”
그레고리를 향한 한석찬의 물음.
그리고 동시에 류드밀라는 바닥에 웅크리더니 검지로 바닥에 무언가를 그리며 한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하아…….”
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서 수많은 남성이 갈려 나가고, 이후로도 여러 이유로 인해 남성이 우선 갈려 나간 소련은 애석하게도 여성의 숫자가 남성의 숫자보다 많은 상황이었다.
그렇다.
류드밀라는 아름다운 노처녀였다.
* * *
1987년 10월.
시간은 정말 빠르게 흘렀다.
N은 아직도 군부의 잔재를 청소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이것은 YS와 DJ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윤기는 소련에서 할 일에 집중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제약 회사의 연구원들이 올린 보고서를 읽는 일이었다.
‘젠장, 거의 모르겠어.’
아무리 윤기가 머리가 좋다고 한들, 과학자들이 수십 년에 걸쳐서 쌓아 온 지식을 하루아침에 이해하는 것을 절대로 불가능.
물론, 몇 년 이상의 시간을 들여서 공부한다면 상당 부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윤기는 그런 쪽에 시간을 투자할 여력이 없는 상황.
그렇기에 윤기는 사실상의 치트키를 썼다.
‘이게 합성물이란 말이지?’
원래 신약 개발이라는 건 대단히 복잡하지만, 그 순서를 최대한 축약해 보면 크게 4단계로 나눌 수 있다.
효과를 내는 원재료 찾기.
찾은 원재료를 최적화하기.
동물에 대한 임상 시험하기.
사람에 대한 임상 시험하기.
이 기간에 짧으면 5년, 길면 15년 이상이 걸렸다.
특히, 뉴스나 신문에 기사가 실리기 시작하는 단계가 세 번째 단계인데, 절대다수의 신약들이 네 번째 단계에서 실패하게 된다.
‘우리는 현재 1단계지.’
와이케이 제약의 과학자들은 각각의 팀을 나누어서 에이즈 바이러스에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원재료를 찾아냈다.
그리고 최적화는 하지 않았지만, 그 원재료를 가공하여 하나의 물질을 만들어 냈고, 그것을 윗선에 올렸다.
현재 윤기의 앞에 놓인 물질들은 이인해가 가져온 것들.
‘이제 활약할 시간이에요.’
윤기는 진동기를 사무실 중앙에 위치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