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30)
#30화 기회도 능력이 있어야 제대로 쓴다 (1)
“윽!”
순간 김정선은 자신의 목에 사탕이 걸린 것 같은 기분에 뒤로 몸을 빼며 양손으로 자신의 목을 잡았다.
그러자 텐트가 요동치면서 류근태 역시 자신도 모르게 허리가 앞쪽으로 숙여졌다.
“어구구…….”
부서지진 않았지만, 뭉개진 텐트에서 기어 나온 김정선은 침을 몇 번이나 삼키면서 자신의 목을 확인했고, 뒤이어 나온 자신의 조카를 향해 말했다.
“야, 무슨 설명을 해도 그렇게 실감 나게 하냐?”
“윗선의 두루뭉술한 말을 구체적으로 해석하는 게 비서의 역할이니까요. 뭐, 삼우 그룹이 국내 10대 그룹 같은 건 아니어서 나쁜 일은 크게 할 일이 없지만, 그래도 알음알음 선이라는 걸 조금씩 넘을 때가 있거든요.”
“하긴, 나 같이 지방에서 작은 회사 운영하는 녀석도 더러운 일 해야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닌데 대기업쯤 되면 오죽하겠냐. 그나저나 사탕은 달콤하냐?”
“잠시만요. 이거부터 다시 세우고요.”
류근태는 텐트를 원래대로 되돌린 뒤 다시 안으로 들어갔고, 삼촌을 향해 다시 들어오라는 듯 손짓을 했다.
“그래도 텐트랍시고 따뜻하긴 하네. 젠장, 예전에 피난 다닐 때는 한겨울에 목숨 걸고 밖에서 잤어야 했는데 세상 참 좋아졌어.”
“그래서 더 돈을 벌어야 하는 거죠. 젊을 때 좀 고생하고, 나중에 정승같이 써야 해요.”
“그렇지. 아무튼, 사탕은 달달하든?”
삼촌의 말에 류근태가 씩 웃으며 입술을 한 번 핥았다.
“달달하죠. 아주 겁나게 달달하죠. 그래서 제가 살이 어마어마하게 쪘죠.”
“네가 살이 쪘다고……?”
김정선은 조카를 바라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야말로 표준 체형.
절대 살이 쪄 보이지 않는데 자신이 살이 쪘다고 하니 순간 의아해하던 김정선은 이내 조카의 말이 무슨 뜻인지 깨달았다.
“아……!”
“이해되셨어요?”
“그래, 네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살이 많이 찌긴 했나 보구나.”
“그래서 저는 다른 곳에 갈 수도 없어요. 살이 너무 쪘거든요. 그저 사장님이 주시는 사탕을 넙죽넙죽 받아먹으면서 사장님이 시키시는 일이나 하는 게 앞으로 제 인생 목표가 될 거예요.”
조카의 말을 듣던 김정선이 검지로 오른쪽 구레나룻을 긁으며, 약간 씁쓸하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그런데 너는 그걸로 되냐?”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니, 스스로를 개라고 표현하는 거 말이야. 그래도 자괴감이 안 드는지 궁금해서.”
일리 있는 말이었지만, 류근태는 피식하고 코웃음을 쳤다.
삼촌을 비웃는 게 아니라, 삼촌의 걱정은 자신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이었다.
“삼촌, 아시잖아요. 저 삼우에 취직할 때까지 엄청나게 고생한 거.”
“알지, 나도 잘 알지.”
“삼촌도 서울에서 취직하려고 하다가 안 돼서 그냥 회사 차린 거잖아요?”
“그렇지.”
김정선이 쓴웃음을 지었다.
“최하층 인간으로 살면서 정승 집 개한테 고개 숙이느니, 정승 집 개가 되어서 손님들한테 절 받는 인생을 살겠습니다. 그리고 사장님은 충신을 개로 취급하는 분이 아니에요. 그저 제가 개처럼 모시겠다고 표현하는 것뿐이니까요.”
주인이 자신을 사람 취급해 주기 때문에 개처럼 충성하겠다는 결심.
류근태는 진실로 윤기에게 모든 것을 바칠 생각이었다.
“네가 그렇게까지 표현한다면……, 나도 배팅을 해 볼 가치가 있겠지?”
김정선은 아직까지 고민이 섞이긴 했지만, 그래도 목소리에 ‘혹한 느낌’이 들어가 있었다.
“어차피 그러려고 서울 올라오신 거 아니에요? 직접 오신 거잖아요. 아니면, 데려오신 분들 소개만 하시고 내려가시게요?”
“아니, 내가 직접 올라온 거 맞아. 솔직히 나도 느낌이 왔거든. 그리고 최소한 내 아들, 아니 손주들 정도는 서울에서 살게 해 주려고…….”
삼촌의 말이 무슨 뜻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류근태였기에 그 심정이 절절히 이해가 되었다.
“그런데, 다른 분들은요? 내일 따로 올라오세요?”
지금 시각은 밤.
통금 시간이 몇 시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다른 직원들이 뒤늦게 서울로 올라온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따랐다.
“여인숙에서 다들 기다리고 있어. 지금 생각해 보면, 안 데리고 오길 잘한 거 같아.”
류근태는 쓴웃음을 지었다.
“잘하셨어요. 아무튼, 내일 사장님을 뵈러 가죠.”
“그래, 그러자. 그리고 나도 사탕 좀 먹게 해 줘.”
“그러려면 절대 저를 속이지 마시고, 그럴 상황이 되기 전에 뒤로 잇속 챙기지 마세요. 더 이득 보게 해드릴 순 있어도, 지은 죄를 없애 드리는 건 저도 불가능하니까요.”
“조금도?”
“네, 조금도요.”
뭔가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김정선은 한 번 한숨을 내쉰 뒤 후련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까짓것 잘만 되면 계열사 사장이 될 수 있는 기회인데 조그만 거에 연연하면 안 되겠지. 아무튼, 우리 잘해 보자. 내가 믿을 수 있는 건 너뿐이고, 너도 믿을 수 있는 건…….”
여기까지 말하던 김정선은 이내 얼굴을 붉히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적어도 제 삼촌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죠.”
“그래, 그렇지?”
조카의 손을 맞잡으며 김정선은 마치 젊은 시절처럼 마음을 비웠다.
* * *
“할아버지~!”
최철호의 저택에 울리는 어린아이의 목소리.
겨울이다 보니 털이 달린 아동복을 단단하게 입고 있는 아이는 윤기가 아니었다.
“아이구, 우리 손주!”
런닝만 입고 있던 최기현은 두 번째 손주의 등장에 환히 웃으며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손주를 번쩍 안아 주었다.
“아버님, 잘 계셨어요?”
둘째 며느리인 박경자의 말에 최기현이 적당한 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덕분에 잘 지냈다. 밖은 추우니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고.”
저택 거실로 들어가자 러닝만 입고 있어도 될 정도로 훈훈한 공기가 손주의 점퍼를 덥혔고, 금세 이슬이 맺혔다.
“형은요?”
“모처럼 둘이 외식한다고 나갔다.”
최기현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칭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할아버지, 나 더워.”
“그래, 덥구나. 그러면 옷을 벗어야겠지.”
손주의 옷을 벗겨 주는 최기현의 표정은 손주를 향한 따스한 미소가 감돌고 있었지만, 그 미소를 보고 있는 최철민은 속으로 답답하기만 했다.
‘시선이 달라, 시선이.’
아버지가 첫째 손주를 바라보는 시선과 둘째 손주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는 것이 분명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윤기를 바라볼 때는 기대감이 눈에서 철철 넘쳐나는데, 정기를 바라볼 때는 그냥 할아버지가 손주를 바라보는 눈빛일 뿐이다.
‘끄응.’
최철민의 아들인 최정기.
71년생으로 윤기보다 3살이 어리기 때문에 현재 7살이다.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할아버지에게 눈도장을 많이 찍을 생각으로 종종 데려오는데, 최기현이 정기를 바라보는 눈빛은 결코 변하는 일이 없었다.
‘젠장, 애 엄마가 멍청하니까 애도 똘똘하지 못해 가지고는…….’
최철민은 자신의 부족함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아내인 박경자의 경박함을 탓했다.
왜냐하면, 자신은 우수하다고 생각했으니까.
“나 이거 먹기 싫어!”
식사 시간이 되자 최철민의 생각은 더욱 짙어졌다.
밥상머리에서 밥 먹기 싫다고 숟가락을 내던지다시피 하는 아들 정기의 행동에 최철민이 눈을 부릅떴다.
“정기야! 할아버지 앞에서 그게 무슨 버릇이야!”
“으아아아아앙!”
아빠의 꾸지람에 정기는 대성통곡을 하며 울기 시작했고,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 빈방에 들어가더니 문을 닫아 버렸다.
“정기야!”
엄마인 박경자는 빠르게 일어나 뒤를 따라갔고, 최철민은 한숨을 한 번 내쉰 뒤 아버지를 향해 고개를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애가 아직 어려서 버릇이 없네요…….”
손자가 사라진 순간, 최기현의 표정은 이미 사무적인 태도로 바뀌었다.
“내 앞에서 저러면 안 되는 게 아니라, 밥상머리에서 저러면 안 되는 거지.”
심장을 향해 날아오는 차가운 화살과도 같은 말.
냉정한 아버지의 말에 최철민은 등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계속 고개를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꼭 주의시키겠습니다.”
“괜찮다, 괜찮아.”
최기현의 뒷말에 ‘애가 그럴 수도 있지.’는 전혀 따라오지 않았다.
심지어 말을 하면서 자신의 차남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기대감이 그야말로 단 하나도 담기지 않은 수준이었다.
방금 난리를 치고 자리를 비운 정기를 바라볼 때보다도 더욱.
그렇기에 최철민은 속으로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이게 다 윤기, 그 개자식 때문이야.’
윤기가 손주들의 허들을 높여 놓아도 너무나 높여 놓았다.
당장 자신의 아들인 정기만 봐도 고집이 세고, 과외 선생을 붙여놨다지만 초등학교 2학년 수준의 공부를 하고 있을 뿐이다.
윤기같이 자산 불리기?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더군다나 할아버지 앞에서 예의를 갖출 줄도 모른다.
‘이놈의 여편네는 집에서 도대체 뭘 하길래 애를 저따위로 키운 거야!’
생각할수록 화딱지가 났지만, 아버지의 앞인지라 화도 내지 못하고 최철민은 결국, 저녁 식사가 끝나고 얼마 후에 자리에서 일어나야만 했다.
“아버지, 그럼 다음에 또 오겠습니다.”
“너무 힘들게 시간 내서 올 필요는 없다.”
“아닙니다. 아들 된 도리로 자주 와야죠.”
대답은 이렇게 했지만, 차를 운전하면서 최철민은 그야말로 속이 탔다.
‘윤기 녀석에게는 절대로 하지 않을 말일 텐데…….’
처음에는 아버지가 손주라는 이유로 윤기를 좋아하는 줄 알았다.
그렇기에 자기에게 아들이 생기면 윤기에게 가는 사랑이 자신의 아들로 바뀔 거라 확신했다. 원래 어른들은 막내를 가장 좋아하는 법이니까.
하지만, 정작 아들이 생기고 아버지에게 데려갔어도 아버지의 손주 사랑은 5년을 넘지 못했다.
[할아버지, 냄새나!]5살 때 정기가 할아버지에게 한 말.
이 말 이후로 아버지가 정기를 대할 때, 마치 유리 하나를 두고 대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건 다른 손주들에게도 적용되었다.
마치 무언가 어려워하는 느낌.
하지만, 윤기를 대할 때만큼은 언제나 환한 미소를 지으며 최고의 사랑을 쏟는 모습이 보였다.
‘이 녀석이라도 제대로 해야 내가 뒤를 잇는데 도움이 될 텐데…….’
엄마 품에서 곤히 잠든 아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쉰 최철민은 집으로 돌아간 뒤, 다시 밖으로 나갔다.
“곧 통금인데 어디 가요?”
“사업상 이야기할 게 있어.”
“당신, 또 밖에서 여자 만들고 오면 정말 큰일 날 줄 알아요.”
“그런 거 아니라니까!”
최철민이 소리를 빼액 지르자 잠들었던 정기가 깨어 울기 시작했고, 덕분에 형인 최철호의 집과는 비교도 안 되게 작은 최철민의 집이 울리기 시작했다.
형이야 10년이나 더 빨리 아버지 일을 능숙하게 도우면서 벌써 계열사 사장이 되었지만, 최철민은 어디까지나 삼우 물산의 대리였으니까.
‘젠장, 나도 10년 빨리 태어났으면…….’
애는 울지, 집은 작지, 아내는 볼수록 마음에 안 들지.
최철민은 길거리의 애꿎은 깡통을 발로 차며 오늘 밤의 약속 장소로 향했다.
평상시라면 들어갔을 단란주점이 아닌, 그냥 평범한 술집.
통금 시간이 되면 가게 문을 닫고 안쪽에서 술판을 벌이는 70년대의 명물이다.
물론 재수가 없으면 경찰한테 뒷돈을 대고도 유치장으로 끌려가기도 했지만.
‘아직 통금까지 시간은 넉넉하니까.’
자리에 앉아 술과 먹을 것을 시키고 기다리고 있으려니 문이 열리며, 오늘 만나기로 한 당사자가 훈훈한 술집의 증기를 뚫고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오셨습니까. 앉으시죠.”
그 최철민이 공손히 일어나 앞자리를 권하는 상대.
“항상 이렇게 환대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최기현의 비서실장인 이성원이 환한 미소와 함께 앞자리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