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300)
#300화 믿을 수 없는 속도 (5)
“증세가 호전되었다고요?!”
막 자리에 앉으려던 이인해는 깜짝 놀라 무릎을 튕기듯 일어났고, 덕분에 이인해의 몸이 허공으로 솟구쳐오르는 듯했다.
“네! 보세요!”
류드밀라는 자신이 들고 온 검사 기록지를 넘겼다.
이인해도 산부인과 의사 출신이었기 때문에 류드밀라의 기록지 정도는 읽을 수 있었고, 그러부터 잠시 후, 이인해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세, 세상에……!”
에이즈가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는 이인해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리나의 혈액 속에 포함된 바이러스의 숫자가 분명 줄어들었다는 것이 검사상으로도 나타났다.
더군다나 에이즈 바이러스로 인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에이즈 증후군’들의 수치 역시 떨어진 것으로 보아 약품이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사장님, 완치제는 아니에요. 하지만, 증세를 늦추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대발견이라고요!”
실제로, 에이즈 완치제는 2010년대가 될 때까지도 없다.
하지만, 와이케이 제약은 세계 에이즈의 역사를 5년 앞당긴 것과 다름없는 발명을 한 셈이었다.
“부작용은요?”
“현재로서는 발견되지 않았어요. 장기적인 부작용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애초에 에이즈는 그냥 놔두면 ‘장기적인 부작용’을 경험할 수조차 없잖아요!”
류드밀라는 마치 칭찬받은 소녀처럼 신이 나서 방방 뛰었고, 이인해 역시 그런 류드밀라와 함께 양손을 찰싹 붙이며 팔짝팔짝 뛰었다.
“류드밀라! 지금까지도 잘해 왔지만, 이리나 씨를 더더욱 집중적으로 관찰해요! 이건 잘하면 세계 의학의 역사를 바꿀 발명이에요!”
“네, 사장님!”
류드밀라는 다시 빠르게 사장실을 나갔고, 잠시 후, 이인해의 연락을 받은 윤기가 사장실로 돌아왔다.
* * *
“장기적인 부작용까지 확인하기에는 아무래도 좀 힘들겠죠?”
윤기의 말에 이인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애초에 에이즈에 걸리면 면역력 문제로 인해서 자기 수명을 살지 못하고 죽는 게 일반적이거든.”
“그게 아마 ‘에이즈 증후군’이라고 하는 거였죠?”
“응. 면역이 파괴되어서 수많은 질환을 겪게 되고 그로 인해서 죽는 게 에이즈잖아. 그런 만큼 에이즈 자체의 진행을 늦추면 수명을 확보할 수 있는 거지.”
여기까지 말하던 이인해는 무엇인가 떠올랐다는 듯 설명을 이었다.
“아, 혹시 부작용이 너무 걱정되는 거라면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거야.”
“그래요?”
“응. 애초에 부작용이 있는 약인데도 사용되는 것들이 엄청 많거든. 당장 스테로이드만 봐도 그렇고.”
“아…….”
윤기는 자신이 부작용에 너무 집착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약이라는 게 부작용이 없으면 좋겠지만, 부작용을 감수하고서라도 써야 할 때가 있는 법이거든. 효과가 부작용보다 큰 경우가 대표적이지. 방금 내가 말한 스테로이드가 바로 그런 케이스고.”
피부 혹은 신장 질환에 있어서 스테로이드를 쓰는 일은 생각보다 흔했다.
‘코르티솔’ 스테로이드의 부작용 중에는 얼굴이 빵빵해지는 문페이스부터 시작해서, 뼈가 약해지는 등의 수많은 부작용이 있지만, 그래도 의사가 스테로이드를 처방할 때가 있었다.
왜냐하면, 스테로이드를 쓰지 않으면 더 큰 일이 벌어질 테니까.
물론, 의사 역시 엄청나게 고민을 하다가 처방하는 게 스테로이드이긴 하지만, 어쨌든 부작용을 감수하고 처방하는 것은 분명 존재하는 일이라는 얘기다.
“난치병일수록 부작용을 처방할 때 감수하는 일이 많아. 아마, 나도 지금 당장 거론하라고 하면 떠오르지 않아서 힘들기는 한데, 극소수만 걸리는 병들의 증상을 늦추는 완화제 같은 것들은 부작용이 있는데도 그냥 쓰이곤 해. 일단 살아야 하니까.”
본인 스스로도 마뜩지는 않다는 느낌이었지만, 이인해는 담담하게 사실을 이야기했다.
“그렇군요.”
“그런 면에 있어서, 지금 이 약은 환자의 주 질병 진행을 늦추고, 증후군 증상을 호전시키고 있으니 오히려 합리적인 물건이지. 축하해, 윤기야! 너 돈방석에 앉…… 아니, 이미 돈방석에 앉아 있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하는 이인해의 모습에 윤기는 푸흐흐 웃음을 흘렸다.
“아, 그런데 솔직히 나는 아직도 신기해. 어떻게 5안과 6안을 채택한 거야? 만약 평범한 제약 회사였으면 이런 일이 절대로 불가능했을 텐데……. 진짜로 감으로 고른 거야?”
“네.”
“……세상에.”
얼굴에 철판을 까는 윤기의 말이었지만, 이인해는 이걸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최윤기.
세계 최강 약팔이의 이름이었다.
* * *
1987년 11월.
비록 몇 주밖에 되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이리나는 착실하게 증상이 호전되어 가기 시작했다.
비록, 기존에 진행되고 있었던 에이즈 증후군들로 인해 여러 가지 후유증을 앓게 될 것은 확실했지만, 적어도 곧 죽을 것 같은 상황은 극복했다는 이야기다.
곳곳에 갈라졌던 피부들은 서서히 아물고 있었고, 증후군 중 하나인 끝없는 설사가 멎었기 때문에 천천히 살도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으흐흐흑……. 고마워요, 삼촌……. 고마워요…….”
이리나는 눈물을 흘리며 삼촌인 슬라바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니다, 이리나. 너는 내 소중한 조카야. 가족도 지키지 못하는 녀석이 정치는 뭐 하러 하겠느냐. 다행이다, 다행이야…….”
이리나는 부모님을 일찍 잃었고, 슬라바는 그런 이리나를 어릴 때부터 맡아 키웠다.
따라서 둘 사이는 사실상의 부녀 관계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삼촌. 저 때문에 삼촌도 무리하셨을 텐데…….”
슬라바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전혀 무리하지 않았다. 다 내가 감수할 수 있는 일이야.”
그때, 멸균실이었던 장소에 고르바초프가 나타났다.
이미 며칠 전부터 멸균실이 필요 없다고 연구자들이 결론을 내렸기 때문에, 이렇게 슬라바가 이리나와 함께 있을 수 있었던 것.
고르바초프라고 해서 오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꿀꺽.
고르바초프를 발견한 슬라바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분명 조카인 이리나 앞에서는 강한 척을 했지만, 고르바초프를 직접 보자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뚜벅. 뚜벅. 뚜벅.
실내에 울려 퍼지는 고르바초프의 구두 소리가, 어쩐지 슬라바에게는 사형 선고를 내리는 재판관의 법봉 소리처럼 들렸다.
“이보게, 슬라바.”
고르바초프가 슬라바의 어깨에 한쪽 손을 얹었다.
“서, 서기장님! 삼촌은 아무 잘못 없어요! 전부 제가 아파서…….”
삼촌을 옹호하려는 이리나.
하지만, 고르바초프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고르바초프가 무어라 말하기 전에 슬라바가 눈을 질끈 감고 자신의 양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마치 수갑을 채우라는 것처럼.
“이미 각오했습니다. 저는 굴라그에 가겠습니다.”
“삼촌!”
깜짝 놀라는 이리나의 모습이었지만, 슬라바는 굳건했다.
그리고 잠시 후.
“푸흐흐.”
난데없이 흘러나오는 웃음 소리에 슬라바가 눈을 떴다.
그러자 큭큭거리는 고르바초프의 모습이 슬라바의 동공에 맺혔다.
“뭐…… 처음에는 굴라그에 정말 보낼까 생각도 했었는데, 어쨌든 결과가 좋았지 않나? 자네와 조카 덕분에 현재 다른 환자들에 대한 임상 시험 역시 진행되고 있어.”
“서, 서기장님. 그렇다면……?”
고르바초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를 굴라그에 보내지는 않겠네. 하지만, 한동안 야근을 맡아서 해 줘야겠어. 그리고 조카 역시 에이즈 치료제 개발을 위해서 선전에 동원되어야 할 거야.”
말을 들은 슬라바가 조카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는 이리나의 모습이 보였다.
“하, 할게요! 할 테니까, 삼촌을 굴라그에 보내진 말아 주세요!”
만족스러운 대답에 고르바초프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당장 하라는 것은 아니야. 어디까지나 상태가 더 호전되었을 때, 그때 하라는 이야기지. 에이즈라는 게 어디서 어떻게 감염되는지 모르는 이상, 에이즈 환자들을 한곳에 모아야 할 필요가 있거든. 그러기 위해서 자네 조카의 힘이 필요한 거야.”
“알겠습니다, 서기장님.”
와이케이 제약에서 에이즈 치료제가 개발되었다는 사실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가기까진 그야말로 초읽기 상황이 되었다.
* * *
히야, 이 녀석이 진짜 효자네, 효자야.>
혀를 내두르는 최덕배의 평가.
그것은 바로 진동기를 향한 평가였다.
“그러게요. 정말 상상 이상의 성과를 내주었어요.”
윤기 역시 최덕배와 같은 평가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한곳에 모아 놓은 에이즈 격리 환자들에 대한 임상 시험이 대단히 순조롭게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임상 시험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수준이었다.
왜냐하면, 증세가 전부 호전되고 있었으니까.
격리된 환자 중에는 이리나의 호전 상황을 보고 스스로 임상 시험에 자원한 자들이 많았다.
고르바초프는 그들에 대한 임상 시험을 전부 승인했고, 와이케이 제약 역시 그들의 희망에 따라 상황이 심각한 사람들에게 먼저 치료제를 투여했다.
결과는 청신호.
이후로 차순위 사람들에게도 처방을 늘려 가기 시작했고, 이윽고 처방을 받은 모두가 증세의 호전을 보였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에이즈 치료제 개발은 성공이네요.”
그러게. 진짜 약 개발에 있어서 임상 시험이 진짜 중요하구나.>
여기까지 말하던 최덕배가 이윽고 뭔가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한약이 몸에 좋은 것도 다 그 전에 먹어 본 사람이 있어서 그런 거겠지? 먹어 보고 효과가 있으니까 그걸 기록으로 남겨 두고, 그게 의술 서적이 되고 그런 거였어.>
윤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현대처럼 ‘누군가 주도하는’ 대규모 임상 시험이 없었던 거지, 사실상 의학이라는 학문은 인류 전체를 토대로 한 임상 시험의 집합이죠.”
그렇게 따지면, 처음 복어를 먹은 녀석은 정말로 용감한 녀석이야. 어떻게 복어를 먹을 생각을 했을까?>
“에이, 두 번째로 먹은 사람이 가장 용감한 거죠.”
아……! 그렇네!>
첫 번째로 먹은 사람은 복어가 독이 있는지 몰라서 먹었을 수도 있으니 용감과는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두 번째로 먹은 사람은 첫 번째로 먹은 사람이 죽었는데도 먹은 것을 봐선 정말 용감한 사람이었다.
물론, 두 번째 사람은 가축이나 노예에게 먼저 먹였다는 학설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렇게 엄청난 걸 발명했으니까 조만간 네가 더 바빠지겠네.>
“그렇죠.”
그렇지 않아도 레이건이 윤기를 호출한 상황이었다.
* * *
현재 와이케이 제약에서는 두 번째, 세 번째 물질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었다.
에이즈 바이러스는 기본적으로 변이와 내성이 쉽기 때문에 여러 개의 약품을 같이 쓰는 칵테일 요법을 기본으로 한다.
연구자들이 이것을 건의했기 때문에 윤기는 에이즈 프로젝트를 결론짓지 않았고, 이것은 새로운 물질을 찾아내는 데까지 이르렀다.
물론, 진동기를 써서 심사한 것이지만 말이다.
그렇게 두 번째와 세 번째 물질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을 때, 윤기는 레이건의 호출에 따라 백악관을 방문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미국 대통령의 호출.
이것을 거절하는 순간, 지금까지 그려놓은 밑그림이 싹 망하기 때문에 절대 거절할 수 없는 초대였다.
애초에 레이건이 불러준다는 것 자체가 호재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어서 오게, 윤기 군.”
집무실에서 양팔을 활짝 벌리며 환영하는 레이건의 모습.
윤기는 그런 레이건을 향해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각하, 오랜만에 뵙습니다.”
역시나 집무실에 함께 있는 거스터의 모습.
거스터는 아주 대견하다는 표정으로 윤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었네. 소련에 세운 와이케이 제약에서 에이즈 치료제를 개발했다면서?”
“아직 FDA의 승인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치료제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저 에이즈 공포를 겪은 고르바초프가 들볶는 바람에 원치 않는 임상 시험을 한 결과이지요.”
윤기는 일부러 레이건 앞에서 고르바초프를 깎아내렸다.
그렇기에, 레이건은 친밀감 넘치는 눈으로 윤기를 바라볼 수 있었다.
“그래도, 부작용 없이 사람들이 치료되고 있다면 그게 바로 치료제지. 안 그런가?”
레이건은 계속해서 윤기의 공을 치하했다. 마치 무슨 목적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윤기는 그런 레이건에게 아예 돌직구를 날렸다.
“그렇게 생각해 주신다니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래서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무엇인가?”
“제가 만약 미국에 에이즈 치료제를 판매해서 얻는 순익의 10퍼센트를 각하에게 드린다면, 그것이 뇌물이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