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305)
#305화 꿈과 희망의 돈지랄 (3)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들어…… 악!”
지우개가 이마에 정통으로 꽂히자, 핀잔을 주던 4급 공무원이 이마를 감싸 쥐고 회의 테이블에 몸을 웅크렸다.
“괜찮으니까 계속 말해. 와이케이가 뭐라고?”
지우개를 던진 시장이 7급 공무원에게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며 방금 한 말을 반복하길 재촉했다.
“아…… 예! 와이케이에서 놀이공원을 세우고 싶다고, 우리 시청으로 연락을 보내 왔습니다. 우리 시청에만 보낸 게 아니라, 시청들 전부에 연락했다고 하더군요.”
“놀이공원이라면, 용인에 그 자연공원 같은 거?”
“네, 그렇습니다. 생각이 있다면 실무 협의를 하고 싶으니, 답변을 달라고 하더군요. 지금은 회의 중이라 충분히 안건을 낼 만한 것 같아서 폐를 무릅쓰고 보고 드립니다.”
7급 공무원의 단출하게 요약된 표현에, 이동길 시장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잘했어! 너 이름이 뭐냐?”
“예, 박철영이라고 합니다!”
“좋아, 내가 너 이름 기억해 둔다.”
“감사합니다!”
의외로 사람들이 모를 수 있는 사실이지만, 이 시기는 지방자치가 시작된 시절이 아니었다.
한국에서 지방자치가 제대로 시작된 것은 1995년.
원래대로라면 4·19 혁명을 통해 지방자치가 시작되어야 했지만, P의 5·16 군사 정변이 일어났고, 이후 P는 지방자치를 사실상 금지했으며, JD 역시 어물쩍 이를 유지했다.
따라서 이동길은 선거로 뽑힌 시장이 아니라 ‘임명된’ 시장.
그렇기 때문에, 이동길의 눈에 들었다는 것은 박철영에게 있어서 대단한 이득이었다.
왜냐하면, 선거에 떨어지면 사실상 힘을 거의 잃어버리는 선거제 시장과 달리, 임명제 시장은 고위 공무원이라는 파워를 계속 가지고 있었으니까.
“야, 어디 나가냐?”
“네? 아, 죄송합니다!”
보고가 끝났기에 밖으로 나가려던 박철영은 이동길 시장의 말을 듣고는 멋쩍은 미소와 함께 은근슬쩍 자리 하나를 잡아 앉았다.
한마디로, 와이케이와 관련된 안건에 대하여 자신의 의견을 낼 절호의 기회를 얻은 것.
더불어서 이동길이 박철영을 좋게 보기 시작했다는 인식이 다른 시청 고위 공무원들의 뇌리에 꽉 잡혔다.
[쟤는 잘해 줘야겠네.]“자, 그러면 다시 시작하자고. 어떻게 하면 대전을 그럴듯한 도시로 바꿀 수 있는지 말이야.”
대주제는 이것이었지만, 소주제도 사실 확정되었다.
[어떻게 하면 와이케이의 놀이공원을 대전으로 끌고 올 수 있을까?]많은 공무원이 이미 파악을 끝낸 상황이었으나, 세상에는 눈치가 없는 사람도 분명 있는 법이었다.
“시장님, 와이케이가 놀이공원 세워 봤자 솔직히 별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럴 바에야, 차라리 우리 대전 청사를 좀 멋지게 지어서 시민들이 자부심을 가질 수…….”
딱-!
“악!”
지우개가 다시 한번 4급 공무원의 이마에 꽂히며, 4급 공무원은 다시 회의 테이블에 몸을 웅크렸다.
“저 새끼는 진짜, 어떻게 4급까지 올라왔는지 모르겠다니까?”
혀를 차는 이동길의 말에 많은 회의실 공무원들이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야, 여기서 와이케이가 지을 놀이공원에 반대하는 녀석 또 있어?”
당연하지만 공무원들은 다들 가만히 있었다.
“자, 그러면 진짜 안건이 뭔지 알겠지? 어떻게 하면 와이케이가 우리 대전에 놀이공원을 짓게 할 수 있을까?”
이동길은 생각보다 꽤 통찰력 있게 와이케이의 연락을 꿰뚫어 보았다.
만약 와이케이가 대전에만 연락했다면 밀당 같은 걸 할 수 있었겠지.
하지만, 와이케이는 모든 시청에 연락을 돌렸다.
그렇다는 건, 조건을 가장 좋게 해 주는 도시에 놀이공원을 짓겠다는 뜻.
어중간한 조건으로는 경매에서 이기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일단 와이케이의 특성상 외부 출자를 통해 짓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3급 공무원 역시 꽤 괜찮은 통찰력을 보이며 이동길에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맞는 말이야. 와이케이는 상장 회사가 아닌데도, 사실상 국내 1위를 먹고 있는 괴물 회사니까.”
지금 공무원들이 하는 회의를 일반인들이 들으면 꽤 큰 혼란을 겪을지도 몰랐다.
[뭐지? 뭔가 유능한 것처럼 보여.]의외로 유능한 공무원이 섞여 있는 게 맞다.
왜냐하면, 공무원 시험과 관련한 제도는 계속 바뀌었으니까.
7급은 73년에 학력 제한이 폐지되기 전까지는 초급대학 졸업이 필수였고, 63년까지는 고등학교 졸업이 필수였다.
63년을 기준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있었을까?
그 당시 살았던 사람 중에서는 최종 학력이 초등학교 졸업인 경우가 수두룩했던 만큼, 고등학교 졸업이라는 것은 충분히 엘리트의 반열에 들었다.
박철영 역시 72년에 보통고시에 합격하여 6급을 목전에 두고 있는 7급 공무원.
그렇기에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한 지금, 박철영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어, 박철영이. 뭔가 하고 싶은 말 있어?”
이동길의 지원 사격에, 박철영은 다른 공무원들을 향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께서 괜찮으시다면, 제가 의견 하나를 내어놓아도 될지 여쭙고 싶습니다.”
“괜찮아! 괜찮아! 내가 괜찮다는 데 누가 반대를 해? 자, 빨리 좋은 의견이 있으면 내 봐.”
감히 누가 반대를 할까.
그렇기에 박철영은 공손하면서도 경건한 자세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시작했다.
“와이케이는 다른 기업들과 달리 자신의 회사에서 일하는 직원들에 대한 복지를 최상급으로 해 주기로 유명합니다.”
“그래, 그렇지.”
시장이 박철영을 좋게 봐주고 있다는 게 명백해진 이상, 다른 공무원들도 박철영의 말에 추임새를 넣기 시작했다.
“그렇다는 것은, 놀이공원을 건축하는 동안 그곳에서 발생할 경제적 효과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아, 그렇지. 거기까지 생각이 뻗쳤구만?”
이동길의 말에 박철영이 고개를 가볍게 꾸벅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렇습니다. 와이케이는 특이하게도, 건설 노동자가 원한다면 일용직이 아닌 계약직으로 채용해 주기도 합니다. 만약 이들이 대전에서 생활한다면, 숙소와 식당 등이 호황을 이루게 되겠죠.”
“그렇지. 놀이공원의 건설에는 한두 명이 동원되는 게 아닐 테니까.”
“더군다나 놀이공원이 완성된다면, 놀이공원에서 상시 근무할 인력들을 위해 주택을 지을 것이고, 이들을 위한 복지센터 역시 건설될 것입니다. 이것 역시 추가적인 경제적 효과를 가져오겠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엇보다도?”
“와이케이와 다른 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에도 대단히 편해질 겁니다. 현재 국내에서 와이케이만큼 시민들에게 우호적인 기업이 어디 있겠습니까? 따라서 이번 안건은 단순 놀이공원으로 끝나는 사건이 아니라, 추후 와이케이와 대전의 관계를 정하는 승부수가 될 겁니다.”
“그래, 아주 좋은 분석이야!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도 생각해 뒀겠지?”
이동길은 아주 기대된다는 눈빛으로 박철영을 바라보았다.
자고로 무언가 좋은 안건을 낼 때는 대상에 관한 분석만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분석 후에 어떻게 해야 할지, 행동 지침까지 명확하게 해야 하는 법.
그렇지 않으면 분석은 분석대로 해 놓고, 과실은 남에게 뺏길 가능성이 컸다.
“물론입니다.”
“그래,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속도’입니다.”
“속도?”
이동길이 궁금하다는 듯 되물었다.
“그렇습니다. 공무원들이 욕을 먹는 가장 큰 이유는 행정 처리 속도이지요. 이번 와이케이의 요청에 대해서는 아예 시간이 걸리지 않을 정도로 허가해 주겠다고 약속하는 겁니다.”
“으음…… 괜찮을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에게 2시간만 주신다면, 이 부분에 있어서 더 상세한 내용을 담아 시장님에게 따로 보고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박철영이 하고자 하는 진짜 말은 ‘이렇게 오픈된 곳에서 말하기는 어려운 내용이다’라는 것이었고, 이동길 역시 빠르게 그것을 이해했다.
“좋아! 그럼 회의 끝나고 2시간 후에 시장실로 찾아오라고. 자, 다른 사람은 안건 낼 거 있나?”
이미 분석은 이동길이 완벽하게 끝냈고, 안건은 지금 당장 떠올리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
그렇기에 공무원들은 여러모로 아쉽다는 눈빛과 함께 이동길에게 부러움의 눈길을 보내며 회의 종료에 찬성했다.
“아니, 그냥 청사를 호화롭게 짓자니까…….”
마지막까지 자신의 의견을 포기하지 못한 4급 공무원의 혼잣말이 회의실에 낮게 울려 퍼졌다.
딱-!
* * *
9급 공무원으로 4급 공무원이 된다면, 그야말로 전설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옛날에는 ‘상대적으로’ 그 난이도가 쉬웠기에, 지우개를 맞은 4급 공무원 같은 존재가 있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물론, 80년대의 모든 9급 공무원들이 날로 먹었다고 생각하면 오산.
이 시대에도 국가직이나 서울 일반 행정 쪽은 경쟁률이 상당히 높았다.
2010년대의 절반 정도는 되었으니까.
2010년대의 국민이 이해하는 ‘날로 먹은 공무원’, ‘뇌물 써서 공무원 된 사람’, ‘능력 없이 젊은 사람 고혈 빨아먹는 공무원’들이 80년대 국가직 공무원에 포함될 가능성은 적다고 보면 된다.
당장 경쟁률 10 대 1에서 20 대 1을 뚫고 들어와야 했던 것이 국가직이었으니까.
박철영은 그러한 9급 국가직보다 더 힘든, 7급 보통고시를 통해 들어온 인물.
그렇기에, 이동길은 박철영의 신상명세서를 읽어 본 후 더욱 신뢰감을 가지며 그의 방문을 기다렸다.
‘아, 언제 오는 거야?’
그야말로 애가 타는 상황.
지금 순간 다른 시청들이 어떤 행동을 하고 있을 줄 몰랐기에, 이동길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굴렀다.
심지어 지금은 회의가 끝난 지 아직 30분도 되지 않은 상황.
약속한 2시간이 되려면 1시간 30분이 더 지나야 하는데, 이동길은 벌써 애가 타는 기분이었다.
끼익-!
“오!”
문이 열리는 소리에 이동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시장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와이케이보다는 전통시장과 청사 재건축에 신경을 쓰시는 편이…….”
딱-!
“악!”
“나가, 이 새끼야!”
애꿎은 지우개만 바닥을 뒹굴었고, 4급 공무원은 눈물을 찔끔 흘리며 열었던 문을 도로 닫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새끼 저거, 전통시장 쪽에 자리 하나 사 둔 거라니까? 그게 아니면, 청사 재건축 한다고 공고 걸면 지원할 업체에서 뇌물을 처먹었든가.’
꽤 예리하게 4급 공무원의 속마음을 파악한 이동길은 성질을 가라앉히며 다시 박철영을 기다렸다.
그리고 3분 후.
마침내 박철영이 문을 열었다.
“오! 어서 와! 어서 앉으라고!”
자신 역시 빠르게 일어나며 응접 소파에 앉은 이동길은 박철영에게도 자리를 권했다.
“야! 여기 얼음 동동 뜬 냉커피 두 잔 가져와라!”
1월의 추운 날씨지만, 몸이 달아오른 이동길은 냉커피를 주문했고, 잠시 뒤 시장실에는 두 잔의 냉커피가 들어왔다.
“크아! 좋다!”
냉커피를 원샷한 이동길은 바로 박철영에게 물었다.
“좋아, 아까 말하지 못했던 것을 말해 보게나.”
“네, 시장님.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래, 나 숨넘어갈 거 같으니까, 빨리 좀 이야기해 봐.”
“알겠습니다.”
이동길은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말을 이었다.
“우리는 와이케이가 부정을 저지를지에 대해선, 아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