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31)
#31화 기회도 능력이 있어야 제대로 쓴다 (2)
“환대라니요. 당연히 해드려야 할 대접인걸요.”
최철민이 이렇게 이성원에게 깍듯이 대하는 이유.
그것은 바로 비서실에 심어 두었던 자신의 끄나풀이 얼마 전에 잘렸기 때문이다.
이유야 당연히 저번에 서재에서 끄나풀에 대한 사실을 스스로 말한 것 때문.
이후로 새로운 끄나풀을 심을 수 없어 전전긍긍하던 차에 이성원이 직접 연락해 왔다.
이성원은 윤기에 대해 최철민이 궁금하던 것들을 시원하게 알려 주었고, 자신이 최철민의 뒤에 서겠다고 은근히 의사를 타진해 왔다.
그렇지 않아도 기댈 곳이 없던 최철민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황금 밧줄.
최철민은 이성원이 건넨 밧줄을 잡았고, 이후로 최철민과 이성원은 종종 만나며 정보 교류를 하고 있었다.
교류라기보다는 최철민의 일방적인 수혜에 가까웠지만.
“사실 좋은 곳에서 대접을 해드리고 싶은데, 요즘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아서 정말로 죄송합니다.”
삼우 그룹 회장 직속 비서실장.
그런 사람을 대접하는 데에 이런 왕대포집은 어울리지 않는다.
당장 주변에 있는 사람들 복장만 봐도 남루한 것이 서민들이 싼값에 배불리 취하기 위한 곳이었으니까.
“아뇨, 저는 이런 곳도 좋아합니다. 예전만 해도 큼지막한 사발에 막걸리 가득 따라서 그걸 두부랑 같이 먹으면 아주 죽여줬죠.”
이렇게 말을 하는 이성원의 나이는 50대 후반.
최기현의 밑에서 일을 한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사실 대폿집을 다녀본 지는 꽤 되었지만, 이성원은 전혀 개의치 않고 거짓을 말했다.
애초에 들키지 않을 거짓말이니까.
하지만 최철민은 이성원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며 미소를 지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단 한 잔 받으시죠.”
“예, 감사히 받도록 하겠습니다.”
각자의 사발에 똑같이 막걸리를 채웠지만, 둘의 행동에서 차이가 났다.
최철민은 막걸리가 입맛에 맞지 않아 몇 모금 마시다가 내려놓았고, 이성원은 사발을 양손으로 들어 시원하게, 그리고 단숨에 비웠다.
수북한 검은 머리숱과 짙은 검은 눈썹에 막걸리의 하얀 물기가 묻을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잘 드시니 제가 마음이 좀 놓이네요.”
이성원의 배려심 넘치는 행동에 최철민의 가드가 아예 확실히 내려갔다.
비서실에서 비서 목이 날아갔는데 비서실장이 갑자기 접근한다?
만약 최철규였다면 분명 의심부터 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상 고립무원이었던 최철민은 이러한 이성원의 행동에 힘입어 아무 의심 없이 이성원을 의지했다.
“그건 그렇고, 요새 소식이 좀 있나요?”
애가 닳은 최철민의 말에 이성원이 번데기를 하나 입에 털어 넣고 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윤기 도련님이 무언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셨습니다.”
“그, 그래요?”
깜짝 놀란 최철민이 원형 철판 테이블에 몸을 바짝 붙이며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보니까 밑의 지방에서 건설 업체 인력을 몇 명 끌고 온 것 같더라고요. 보니까 어딘가에 공사를 하려고 물밑 작업을 하는 것 같던데, 구체적으로 어디에 무엇을 세울 것인지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최철민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다른 건 몰라도 윤기가 잘되는 것은 볼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이 자신이 뒤를 잇는 데에 가장 큰 장벽이 될 테니까.
“으음……, 혹시 누구를 데려온 건지는 아시나요?”
“저도 구체적인 명단까지는 입수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윤기 도련님이 삼우 그룹에 소속되어서 활동하시는 것이 아니니까요.”
“아…….”
“하지만, 전혀 손을 쓰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말을 들은 최철민이 반색했다.
“역시, 비서실장님!”
웃었다가 심각해졌다가 우울해졌다가 반색했다가.
최철민은 자신의 감정을 이성원 앞에서 고스란히 드러냈다.
“여기 적힌 곳이 윤기 도련님이 새로이 개설한 사무실입니다.”
“건설 인력들이 있는 사무실을 말씀하시는 거죠?”
“네, 맞습니다. 저도 주변의 눈이 있는지라 이 이상은 움직일 수 없지만, 도련님이 잘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말을 들은 최철민이 크게, 그리고 여러 번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요. 제가 잘해야 이 정보가 가치가 있는 거니까요. 그리고 제가 잘되어야 비서실장님한테도 좋은 거고요. 저는 앞으로도 비서실장님만 믿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둘째 도련님 편입니다.”
이성원이 사발을 들자, 최철민은 ‘어이쿠’하는 소리와 함께 두 손으로 이성원의 사발을 막걸리로 채워 주었다.
회장의 비서실장과 회장의 차남.
둘의 그림은 보편적인 모습과는 완전히 반대로 나타나고 있었다.
* * *
옆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까 왜 이리 막걸리가 마시고 싶어지는지 모르겠더라.>
“참아요. 지금 통금 시간이잖아요.”
윤기의 말에 최덕배가 입맛을 쩝쩝 다시며 윤기의 침대 주변을 부유했다.
지금 시간은 밤 12시 20분.
최덕배는 대폿집에서 이성원과 최철민의 만남을 확인하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현재 최기현이 머무르는 곳은 최철호의 집.
당연히 윤기 역시 최철민이 집에 왔을 때 방에 있었지만, 공부를 하겠다는 이유로 방에서 밥을 먹었고, 최기현 역시 그것을 허락했다.
하지만, 최철민이 왜 왔는지는 알아두어서 나쁠 것이 없었기에 최덕배를 최철민에게 잠시 붙여놨던 것이다.
아무튼, 이성원 녀석이 너에 대한 거 좔좔 읊었어. 네가 건축 인력 데리고 온 것도 그렇고, 네가 어디에 사무실을 세워 줬는지도 말이야.>
“고생하셨어요.”
걱정이 안 되냐?>
최덕배의 물음에 윤기가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요. 제 생각으로는 비서실장이 현재까지는 우리의 적이 아닌 것 같아서 말이에요.”
네 적이 아니라고?>
“네. 물론 첫째 작은아버지가 계속 저렇게 등신짓을 한다면야 이성원 비서실장이 욕심을 부릴 수도 있겠죠. 자신이 확실히 뒷배가 되어서 회장을 뒤에서 조종하는 실세가 되는 쪽으로 말이에요.”
확실히 그럴 능력은 있는 놈이지. 물론, 네가 회귀하기 전을 기준으로 둔다면 도둑놈이 그전에 쳐냈지만.>
“그래요?”
윤기가 최덕배와 대화하면서 가장 흥미로워하는 주제.
그것은 바로 도둑놈이 회귀 전에 삼우 그룹에서 어떤 일을 했느냐였다.
물론 최덕배가 배려를 하려고 하는 것인지 그것과 관련된 말을 아끼고 있긴 하지만, 모처럼 최덕배 입에서 도둑놈과 관련된 말이 나오자 윤기가 반색했다.
더 말해 줄 생각 없는데?>
“내일 막걸리 세 병 사서 제사 지내 줄게요.”
90년대까지만 해도 미성년자가 슈퍼에서 술이나 담배를 사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
마법의 단어 ‘심부름’이 있었으니까.
더군다나 윤기는 거리에서 70년대의 토대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술대접을 하며 많은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근처 슈퍼 상인들이 거리낌 없이 술을 내어주었다.
흠, 좀 끌리긴 하네.>
“뭐, 더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생두부에 김치가 그렇게 맛있어 보이더라고.>
“그거야 어렵지 않죠.”
좋아, 그렇다면 말해 주지. 네 할아버지가 죽고 나서 이성원 비서실장은 바로 실각 돼. 왜냐하면, 최철규 녀석은 미래에 될 삼우 화학의 회장으로 만족해서 이성원의 설득이 통하지 않았거든.>
“설마 그것뿐만이 아니겠죠?”
미간을 찡그린 윤기의 표정을 본 최덕배가 설명을 잇기 시작했다.
뒤늦게 이성원 녀석이 넷째, 그러니까 너의 셋째 작은아버지인 최철준에게 가지만, 최철준은 최철민 뒤에 섰다가 망했고, 너의 넷째 작은아버지인 최철재는 도둑놈의 편을 들었기 때문에 이성원은 새로운 끈을 잡지 못하게 돼.>
“할아버지의 비서실장을 할 정도라면 분명 뒤로 챙겨둔 것이 많을 텐데요? 당장 류 비서만 해도 제가 주는 정보로 알음알음 그릇에서 떨어지는 꿀물을 받아먹고 있고요.”
원래대로라면 노후는 확실했지. 하지만, 도둑놈이 이성원의 뒷재산에 눈독을 들이면서 이야기가 달라져. 히트맨을 시켜서 이성원을 죽였고, 그의 차명 재산들을 전부 착복해.>
“……도둑놈답네요.”
새삼 회귀 전이고 회귀 후고, 사람 성격은 정말 똑같다는 생각에 윤기는 혀를 내둘렀다.
“그 시기가 대략 언제쯤인가요?”
“도둑놈이 32살일 때. 이미 그 전부터 녀석은 외인들과 교류했으니까. 네 할아버지가 죽는 것도 그때쯤이야. 어디 보자, 시대를 생각하면 장수한 건가?”
할아버지가 죽는다는 말에 잠시 얼굴이 어두워진 윤기였지만, 이내 다시 표정을 원래대로 되돌렸다. 아직 20년이 넘게 남은 일인데 사서 걱정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류근태가 주인을 한 번 정하면 충신인 것처럼 이성원 역시 비슷한 놈이야. 하지만, 도둑놈은 빠른 판단을 내린 거지. 자신은 이성원을 제어할 수 없다고 말이야.>
“그래서 죽였다……?”
그래, 후환을 제거하고, 돈도 챙긴 거지.>
윤기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건 그렇고 어떻게 할 거냐? 네 운명이 바뀌면서 작은 역사가 바뀌기 시작한 거라면, 이성원이 빠르게 최철민의 뒤에 선 것도 이상하진 않아.>
최덕배의 진솔한 조언이었지만, 윤기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왜?>
“스스로 말씀하셨잖아요. 할아버지는 이성원을 제어 가능하다고 말이죠. 이성원이 왜 첫째 작은아버지를 만났겠어요.”
아!>
“걱정할 필요 없을 거예요. 할아버지가 하시는 일이라면 전 뭐든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윤기는 마음 편하게 잠이 들었다.
나도 할아버진데…….>
윤기 주머니의 대추가 생각나는 최덕배였다.
* * *
최덕배가 대화를 엿들은 다음 날.
삼우 물산의 회장실에서 최기현과 이성원이 독대를 하고 있었다.
“어떻든가?”
“회장님 말씀대로 둘째 도련님을 찾아가서 윤기 도련님이 무엇을 하는지 전부 말씀드렸습니다.”
“반응은?”
“무언가 훼방을 놓을 생각이 가득해 보이더군요.”
“그게 다 드러나던가?”
“표정을 숨기지 못하더군요.”
최기현이 미간을 찡그렸다.
이성원을 시켜서 윤기가 무엇을 하는지 알려 준 이유.
그것은 윤기가 미워서도 아니고, 최철민은 후계자로 생각하기 때문도 아니다.
그저 최철민이 삼우 그룹의 지분을 나눠 받을 가치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윤기의 밑으로 들어가든가, 그게 아니면 철규 녀석처럼 조용히 내실을 다지든가. 하다못해 넷째나 다섯째처럼 기업 운영에 별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자기 할 일을 하든가!’
비록 차남에 대한 기대감은 옛 저녁에 버린 최기현이었지만, 어쨌거나 차남 최철민 역시 최기현의 손가락이었다.
최소한 자기 할 도리만 하면 조금이라도 지분을 물려줄 텐데, 최철민은 아예 능력이 없었다.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해 봤자 무엇 하겠는가.
현실 감각이 제로에 가깝고, 성격 또한 경영자의 성격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을.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의 밑에 들어가서 일을 할 수 있는 성격도 아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추후 최철민은 삼우 일가에서 그야말로 고립될 것이다.
그나마 원활히 살 가능성이 있다면 최기현이 최철민에게 지분을 좀 많이 물려주는 것 정도?
하지만 최기현은 그럴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삼우 그룹이 무너지는 꼴은 절대 상상도 할 수 없었으니까.
‘이 녀석이랑 같이 세트로 미리 쳐내야 하나…….’
비록 지금 자신에게 충성을 다하고는 있었지만, 최기현은 그 누구보다도 이성원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자기가 죽으면 제어가 안 될 거라는 것을 말이다.
최철민을 조종하려 들 수도 있고, 삼우의 기밀을 들고 경쟁 기업에 가서 이사직을 받을 수도 있다.
‘내 가장 충신조차도 의심해야 하다니…….’
최기현은 다시금 외로움을 느끼며 아들인 철호와 맏손자인 윤기를 떠올렸다.
그중에서도 윤기.
철호는 좀 힘들겠지만, 윤기라면 능히 비서실장을 제어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윤기야,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을 너에 대한 배신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이 정도도 극복하지 못하면, 넌 절대 삼우를 지켜낼 수 없단다…….’
* * *
부잣집 아들, 그중에서도 망나니 정도가 되면 떡고물을 얻어먹기 위해 달라붙는 기생충 같은 녀석들이 반드시 생기게 마련이다.
삼우 그룹의 망나니는 단연코 최철민.
그렇기에 최철민은 자질구레한 일을 시키는 데에 자신의 인맥을 십분 활용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형님, 요새 불러 주시는 게 뜸한데. 혹시 다른 깔치 같은 거 생기신 거 아닙니까?”
볼에 흉터가 있는 반삭 머리의 남자.
꼬질꼬질한 밤색 스웨터는 그나마 빨래라도 했는지 냄새는 그다지 나지 않았다.
이 남자뿐만이 아니었다.
얇실하거나 험상궂게 생긴 사내들 세 명이 더 앉아 있었고, 최철민은 그들과 함께 고깃집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야야, 나 또 걸리면 끝장이야. 한동안은 조용히 지내야 해.”
“흐, 아쉽네요. 형님이랑 놀면 마무리 코스로 그런 곳 가는 게 아주 딱인데. 그래도 형님이 후계자 되시면 다 형님 거 아닙니까? 나중에 저희 잊어버리시면 안 됩니다.”
밤색 스웨터의 사내.
오중선의 말에 최철민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당연하지. 너희들이 아니면 내가 누구랑 놀겠냐. 안 그래?”
“저희들도 형님 아니면 노는 재미가 없습니다. 안 그러냐?”
오중선의 말에 사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이며 외쳤다.
[그렇습니다. 형님!]오중선은 패거리를 끌고 다니며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자질구레한 일을 해 주는 녀석이었고, 오늘 최철민이 오랜만에 오중선을 부른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너네 혹시 건설 사무소에서 잠시 일해 볼 생각 없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