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32)
#32화 기회도 능력이 있어야 제대로 쓴다 (3)
“형님, 저희가 사무실에서 일을 하는 모습이 상상이 되시는 겁니까?”
오중선이 피식 웃으며 동생들을 바라보자, 동생들 역시 얼굴에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은 힘없는 상인들에게서 돈을 갈취하거나 시빗거리가 생겼을 때 한몫 단단히 챙기는 게 일이지, 일과는 거리가 먼 녀석들이었으니까.
“이번에는 건수가 좀 크다고. 일이 잘되기만 하면 너희들 1년 생활비쯤이야 우습게 줄 수 있어.”
1년 생활비라는 말에 오중선의 눈빛이 조금 달라졌다.
방금까지는 그냥 농담으로 생각했는데, 눈앞에 있는 이 부잣집 호구가 무언가를 부탁하려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뭔가 일거리가 있나 보죠?”
은근한 오중선의 눈빛에 최철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희한테 자세히는 말 못해 주지만, 너희가 내가 알려 주는 건설 사무소에 취직해서 일을 하고 있으면 내가 나중에 일을 시킬 거야. 그 일만 제대로 수행하면, 한 몫 단단히 챙기게 해 줄게. 너희도 언제까지 길거리 돌아다니면서 수금할 거야? 그래도 한 50석은 되는 룸살롱 하나는 운영해야 하지 않겠어?”
비록 배운 건 없지만, 눈칫밥 하나로 지역 조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왈패를 운영하는 오중선이다.
그렇기에 오중선은 이번 일거리가 생각보다 큰 건이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눈치챘다.
“그냥 취업해서 일만 하고 있으면 되는 겁니까?”
“그렇다니까. 거기서 조용히 일하고 있어. 시간은 좀 걸릴지도 모르겠지만, 대가는 확실하게 치러 줄 테니까. 언제 내가 너희들 섭섭하게 대우한 적 있어?”
말을 들은 오중선이 얍실한 웃음을 터뜨리며 최철민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으흐흐흐, 형님이 우리들 대우해 주시는 거야 누구보다도 우리가 잘 알고 있죠. 그런데 시기가 너무 길어지면 중간중간에 저희한테 기름칠은 좀 해 주셔야겠는데요? 아무래도 저희가 어디 한 군데에서 오래 일할 녀석들은 아니지 않습니까.”
최철민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돈이야 어떻게든 마련되겠지. 철규 녀석도 도와준다고 했었으니까.’
고장 난 계산기가 알려 준 결과에 최철민은 속으로 계획이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달에 한 번씩. 어때?”
“형님, 그건 너무하는 겁니다. 그래도 주 한 번은 하셔야죠.”
한동안 입씨름을 하던 둘은 보름에 한 번으로 타협하고는 서로 손을 맞잡았다.
“잘해야 해. 정말 중요한 일이니까.”
“물론이죠. 일 처리는 저희가 전문 아닙니까.”
최철민에게서 취직해야 하는 건설 사무소를 귀띔받을 때까지도 오중선은 건설 사무소에 취직하는 게 어렵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 * *
“일자리를 찾으러 온 녀석들이 있다고?”
아침 지역 신문을 읽으며 지역의 현황을 파악하고 있던 김정선은 신문을 내려놓고는 설계 부장인 유진희 부장을 바라보았다.
“네. 어떻게 할까요?”
“유 부장, 혹시 사람 구한다고 앞에 붙였어?”
집안 특성으로 인해 머리가 반들거리는 유진희 부장은 40대 초반의 나이로 김정선이 밑에서 데려온 정예 중의 정예였다.
그렇기에 충분한 자율권이 있었지만, 적어도 유 부장은 사무실 앞에 ‘사람 구함’이라고 쓰인 종이를 붙인 적이 없었다.
“없는데요?”
“그런데, 왜 일자리를 달라고 찾아와?”
“뭐, 흔한 일이잖아요. 돌려보낼까요?”
“아니, 일단 들여보내 봐. 창피함 무릅쓰고 일자리 찾으러 돌아다니는 거 보면 싹수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현재 김정선이 윤기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고 있는 사무실은 김정선을 포함해서 6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사장 김정선에 부장 둘, 그리고 각 부장 밑에 한 명과 경리까지.
아직까지 인력이 그렇게 아쉬운 상황은 아니지만, 추후를 대비해서 괜찮은 녀석 하나쯤은 뽑을 가치가 있었다.
“아이구, 사장님. 감사합니다! 저희가 일자리가 정말 급했거든요!”
오중선은 패거리 동생 세 명과 함께 우르르 사무실로 들어와 김정선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젊은 친구들이 아주 의지가 뛰어나구먼. 이런 아침부터 일자리를 찾으러 돌아다니고 말이야.”
“저희가 원래 다른 건설 사무소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그곳이 망하는 바람에 다 같이 길거리에 나 앉게 생겼습니다. 건설 쪽이라면 자신이 있으니 저희 꼭 좀 채용해 주십시오. 월봉은 주시는 대로 받겠습니다.”
70년대, 아니 90년대까지만 해도 정말 ‘주는 대로 받는다’라는 개념이 강했다.
더불어서 취업할 때 이 말을 하면 사장에게 상당한 환심을 살 수 있었기에 취직이 급한 사람들은 으레 이런 말을 하곤 했다.
물론 한 달 뒤, 무급에 가까운 월급봉투를 보며 자기 말에 책임을 져야 하는 사태가 꽤 잦기도 했지만.
“급여야 일을 하는 만큼 줘야지. 다른 사무소에서 일을 한 적이 있다면 더더욱 말이야. 일단 앉지.”
김정선이 자리를 권유하자, 오중선을 포함한 네 명은 쿠션감이 별로 없는 대기용 3인 소파에 몸을 구겨 앉았다.
“그래, 이름이 뭔가?”
“저는 오중선이라고 합니다.”
“호오, 나하고 끝 이름이 똑같구먼그래?”
“이거 아무래도 우리 인연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게 말이야. 하하하핫!”
여기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정말로 좋아 보였고, 오중선의 위장 취업은 쉽게 풀릴 것만 같았다.
“어디 보자……, 사는 곳은 어디고?”
“예, 저희 모두 이 주변에서 살고 있습니다. 다들 사이가 좋거든요.”
“그러면 출퇴근하기에는 편하겠구먼.”
“야근이나 주말 출근도 문제없습니다.”
“그래, 아주 좋은 정신이야.”
다른 인원들의 이름을 마저 파악한 김정선은 진짜 면접에 들어갔다.
“그래, 자네는 이전 사무소에서 무슨 일을 했지?”
순간 오중선은 말문이 턱 막혔다.
“어, 그게…….”
오중선이 생각한 건설 사무소의 개념은 소위 말하는 ‘막노동’의 개념이었다.
하지만, 김정선이 운영하는 건설 사무소는 수주와 설계를 통해 공사를 확보한 뒤, 건설 인부를 고용해서 공사에 들어가는 회사.
즉, 애초에 오중선이 이곳에 취직할 수 있을 가능성은 한없이 낮았다.
“음? 무슨 특별한 일이라도 한 건가?”
“아뇨, 그게 아니라……. 그냥 이것저것 다 했습니다.”
김정선은 오중선의 이 대답을 듣자마자 이들이 경력직이 아니라는 사실만큼은 확실히 눈치챘다.
“자네들, 건설 사무소에서 일을 해 보기는 한 건가?”
“예, 예! 물론이죠. 저희가 아니면 공사가 안 된다니까요. 저희 몸을 좀 보십쇼. 공사랑 아주 천생연분입니다!”
“에잉.”
김정선은 응접용 자리에서 일어나며 자신의 자리에 앉아 버리고는 뱉듯이 말했다.
“나가 봐. 여기가 무슨 인력 사무소인 줄 알아?”
“사장님! 저희 정말 잘할 수 있습니다. 건설 사무소에서 일한 적이 있다고 한 것은 거짓말이지만, 제발 저희 일 좀 가르쳐 주십시오. 먹여 주시기만 하면 그냥 개처럼 일하겠습니다.”
“필요 없어! 여기가 무슨 학교인 줄 알아? 기술 모른다고 하면 한가하게 가르쳐 줄 줄 알게?”
“사장님!”
“나가 보래도!”
순간 오중선의 패거리 중 하나가 발끈하려는 듯했지만, 오중선이 빠르게 패거리를 진정시키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공손하게 말했다.
“진짜 어쩔 수 없는 겁니까? 저희 중 한 명이라도…….”
“안 된다니까. 몸 쓰는 일을 원하면 새벽시장에 나가 봐. 거기 가면 공사장에서 원하는 만큼 일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다 보면 나중에 우리 현장에서도 일할 수 있게 되겠지.”
“정말 잘할 수 있는데……, 마지막으로……, 정말 안 될까요?”
“안 된다니까.”
김정선은 이제 오중선을 바라보지도 않았다.
“죄송합니다. 그러면, 나중에 혹시 다시 보게 되면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공손하게 나가는 오중선이었지만, 이미 김정선은 오중선에게서 관심을 끈 상황이었다.
쌀쌀한 사무실 바깥.
사무실에서 꽤 멀리 떨어졌을 때 오중선이 걸음을 멈추자, 패거리 중 하나가 씅을 냈다.
“형님, 그냥 저기 사무실 뒤엎어 버리죠? 어디 감히 형님한테!”
순간 담에 벽돌 던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씅을 낸 동생의 뒤통수가 거의 바닥에 닿을 정도로 내리 찍혔다.
“어우, 이 녀석 머리 단단한 것 봐. 야, 우리가 저기 사무실 뒤집어서 얻을 이득이 있냐? 어떻게든 사무실이랑 관계를 맺어야 하는데? 저기 공사 시작하면 그때 인력 시장 쪽으로 가서 어떻게든 현장으로 잠입하면 되는 거야. 그때까지 우리가 공손한 녀석인 것처럼 보여야지, 다 된 밥에 재 뿌릴래?”
“죄, 죄송합니다. 형님.”
뒤통수를 문지르며 고개를 숙이는 동생을 잠시 바라보던 오중선은 다시 한번 최철민을 만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 * *
“형님, 구체적인 상황을 알아야지 저희가 잠입할 수 있다니까요.”
오중선의 말에 최철민이 ‘으음’거리는 소리와 함께 고심에 잠겼다.
“저는 형님이 저희보고 취직하라고 하길래 인력으로 때우는 곳인 줄 알았는데 전문 지식이 필요한 곳이더라고요. 저희가 얼마나 창피했는지 알아요? 그래도 보니까 나중에 인부 고용할 때 저희가 잠입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제때 움직이려면 저라도 정확한 상황을 알아야 해요. 형님, 저 못 믿으시는 겁니까? 진짜 섭섭합니다.”
감정에 호소하는 오중선의 말에 최철민은 결국 가능한 숨겨야 하는 고급 정보를 말하고야 말았다.
“내 조카 녀석이 조만간 청계천에다가 공사를 할 모양이야. 너희들은 그 공사가 시작되면 어떻게 해서든 그 공사를 방해해. 그냥 시간을 미루는 수준이 아니라, 공사 자체를 공중분해 시키든, 아니면 나중에 건물에 문제가 생기게 하든 말이야.”
말을 듣는 순간 오중선은 이 건수는 꼭 맡아야겠다는 확신을 세웠다.
‘일을 시작하기 직전에 이 호구 놈한테서 각서 하나만 받아 놓아도 엄청난 돈을 뜯어낼 수 있겠어.’
아무리 오중선이라 해도 공사를 공중분해 시키긴 어렵다.
하지만 인부로 잠입을 한다면 건물이 완공되고 몇 년 뒤, 부실 공사의 영향으로 와르르 무너지게 할 수는 있다.
“이제야 계획이 좀 그려지네요. 형님, 걱정하지 마세요. 이 동생이 나중에 공사 시작되면 아주 확실하게 처리하겠습니다.”
최철민은 오중선의 속마음을 전혀 모르는 상태로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만 해 줘. 일이 잘 풀리면 진짜 제대로 보상할 테니까.”
“어차피 공사 시작되고 활동하면 되는 거니까, 이전에 저희 물 빼주시기로 한 거는 안 해 주셔도 될 것 같습니다. 형님도 요새 곤란하시잖아요.”
“지, 진짜냐?”
“물론이죠. 제가 누굽니까? 형님, 아우 아닙니까.”
“고, 고맙다. 고마워! 내가 나중에 꼭 50석 넘는 룸살롱 차려 줄게.”
자신을 와락 끌어안는 최철민의 어깨 위에서 오중선은 음산하게 웃었다.
‘50석은 무슨, 500석짜리 룸살롱을 최소 열 개는 내놔야 할 거다.’
* * *
78년 1월.
최철민과 오중선의 밀담이 이루어지고 2개월이 지난 시점이었지만, 아직까지 삼우 그룹은 평온하기만 했다.
윤기의 공사가 아직 시작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윤기는 다시 한 발 걸어야 할 때라는 것을 직감했다.
‘슬슬 신군부에 연줄을 대야겠어.’
내년 가을, P는 죽는다.
P의 뒤를 이어 정권을 잡는 JD의 힘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미리 연줄을 이어놔야만 했다.
쿠데타가 성공한 이후에 연줄을 잇는 것은 지금 연줄을 만드는 것보다 수백 배는 더 어려울 테니까.
물론, 외할아버지인 콜슨 준장과 최근에 교류한 거스터의 힘이라면 감히 JD가 사업을 방해하지는 못하겠지만, 윤기는 그 앞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방해를 받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특혜를 받아야 해. 내가 대학교를 입학하기 전에 반드시 삼우 그룹이 최소 재계 60위 안에는 들어야 할 테니까.’
윤기가 기억하는 한 자신이 대학교를 졸업하고 몇 년 후인 97년에 IMF가 터지게 된다.
정부가 세금을 쏟아부어서 도와주는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의 100위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입학할 때 60위, 졸업할 때 최소 40위!’
달성 가능한 여부를 떠나서 윤기는 마음속으로 최소한의 마지노선을 정했다.
‘신군부와 접촉하려면 외할아버지나 거스터에게 부탁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지금부터 쓰기에는 너무 탄환이 아까워.’
그렇다고 류근태를 쓸 수도 없었다.
지금부터 접촉해야 하는 군부의 하나회는 류근태를 달가워하지 않을 게 뻔하니까.
‘이득만 보장해 주면 충분히 나를 위해 움직여 줄 능력 있는 인물.’
윤기는 조건에 맞는 한 사람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