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33)
#33화 신군부의 황태자 (1)
‘둘째 작은아버지.’
머릿속에 떠오른 인물은 다름 아닌 최철규.
윤기가 최철규를 낙점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회귀 전, 류근태라는 인재를 알아봤다는 점.
둘째는 회귀 전, 삼우 그룹의 회장이 누가 될지 내다봤다는 점이다.
최덕배가 말해 주지는 않았지만, 윤기는 최철규라면 능히 삼우 그룹에 문제가 생기기 전에 개인의 잇속은 충분히 챙겨 놨을 거라는 판단을 내렸다.
“둘째 작은아버지의 그룹 내에서의 생활은 어땠죠?”
어느 정도 들어서 알고 있지 않냐?>
“망하기 전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서요.”
나도 망하기 1년 전까지는 사실상 너랑 거의 붙어 있어서…….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룹 전체 주식이 외인들에게 휘둘리는 상황 속에서 삼우 화학의 주식만큼은 방어 잘했던 거 같네. 그만큼 리더십이 있는 녀석이었지.>
“역시 그랬군요.”
근데, 그건 왜 물어보냐?>
“아무래도 새로운 카드가 필요할 것 같았거든요.”
윤기는 집 안 전화의 다이얼을 돌렸다.
* * *
최철규가 윤기와 약속을 잡은 곳은 공교롭게도 저번에 형인 최철민과 만났던 바로 그 다방이었다.
‘어떻게 형이라는 작자가 애만도 못한 건지 이해가 안 간다니까.’
낮 12시 20분.
점심에 만나자고 한 것은 윤기가 아니라 다름 아닌 최철규였다.
윤기는 오히려 일에 방해되지 않게 저녁에 만나자고 했지만, 최철규가 도리어 점심시간으로 잡은 것이다.
약속 시간까지 10분.
단순히 삼촌을 만나고 싶어서 보자고 한 것이 아닐 테니, 분명 무언가 용무가 있을 터.
그런 상황에서 상대에게 넉넉한 시간을 주는 것은 오히려 자기에게 손해라는 판단하에 내린 결론이었다.
‘혹시……, 윤기 녀석이 넉넉한 시간을 원해서 나한테 퇴근 후에 만나자는 계산까지 한 것은 아니겠지?’
먼저 홍차를 한 잔 기울이고 있던 최철규의 머릿속에 스치듯이 지나간 생각이었다.
‘슬슬 시간이로군.’
시간이 7분 정도 남자, 최철규는 점원을 불러 자기 자리에 놓인 잔을 치우게 했다.
“제가 차를 미리 한 잔 마셨다는 티를 이따가 내지 말아 주세요.”
천 원 한 장을 내밀자 종업원이 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잔을 치웠고, 조금 더 기다리자 윤기가 나타났다.
“작은아버지,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그동안 건강하셨어요?”
“그래, 너도 잘 지냈니? 일단 앉거라.”
“네, 감사합니다.”
공손한 윤기의 모습을 보며, 최철규는 또 다른 조카인 최정기를 떠올렸다.
‘윤기가 정기 나이 때를 생각해 보면…….’
그냥 비교 자체가 불가능했다.
혹시나 윤기가 어릴 때는 아이다웠었나 생각했지만, 윤기는 어릴 때부터 굉장히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하긴, 철호 형보다도 더 어른스러운 모습을 자주 보일 정도니까.’
둘째 형인 최철민이 경박한 모습을 보인다면, 첫째 형인 최철호는 순박한 모습을 보인다.
물론, 비교하는 것 자체가 형인 최철호에게 모욕일 수 있지만, 최철규는 윤기가 첫째 형인 최철호보다 성숙하다고 느꼈다.
“뭐 마실래?”
“커피요.”
“무리할 필요 없단다.”
“아뇨, 전 커피를 자주 마셔요. 밤에 공부하려면 한 잔씩 마시는 게 도움이 되거든요.”
“그래.”
최철규는 담담하게 커피 두 잔을 시키면서도 계속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윤기가 우유나 사이다 같은 것을 시켰으면 작은아버지 앞에서 긴장을 풀었다고 여겼거나, 어차피 애는 애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자리에 맞는 음료수가 무엇인지도 알고, 자기가 찾아와야 하는 상황인 것도 알고 있고…….’
만약 최기현이 예전에 준 교훈이 아니었으면, 윤기는 최철규가 언제 할아버지 집에 오는지 물어보는 우를 범했겠지만, 이것까지 최철규가 알 리는 없었다.
달각 달각.
둘의 자리에 조용히 차를 마시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시간은 전적으로 최철규의 편.
차를 한 모금 입안에서 굴리는 시간조차도 윤기에게 아까운 상황이었다.
‘설마 이런 식으로 자리를 여러 번 가져서 나랑 친해지겠다는 생각 같은 것은 아니겠지?’
만약 그런 쪽이라면 최철규는 윤기에 대해 대단히 실망하게 될 것이다.
물론, 나이를 생각해 보면 그 정도 생각이 한계일지도 모르지만.
“요즘 들어서 첫째 작은아버지가 굉장히 부산스러우시더라고요.”
“그래?”
천연덕스럽게 대답을 해 주며 찻잔을 접시에 내려놓기는 했지만, 최철규 역시 상황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작은형이 윤기를 방해하려고 애를 쓰고 있기는 한가 보네.’
동시에 역시 속으로 최철민을 비웃었다.
움직이려면 조용히 움직일 것이지 애한테 자신의 동선을 다 들켰다는 말이 되니까.
“네. 아마, 조만간 할아버지한테 크게 또 한 번 혼나지 않을까 싶어요. 이번에는 평소처럼 혼나는 수준이 아닐 것 같긴 한데…….”
윤기는 여기까지만 말한 뒤 입을 다물었다.
물론, 최철민이 최기현한테 혼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최철규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으나, 머릿속으로는 맹렬하게 주판알을 튕기고 있었다.
‘형이 아버지한테 혼난다고? 이번에 윤기한테 하는 짓거리가 도를 지나친 일인가? 하지만, 윤기가 아는 것을 아버지가 모를 리가 없잖아. 그렇다면 아직까지 시행이 되지는 않았다는 건데. 그러면, 지금 윤기가 하는 일에 아버지가 관여하고 있다는 뜻? 아니, 그건 또 아닐 거란 말이지.’
윤기는 최철규가 주판알을 튕길 시간을 충분히 주었고, 최철규는 마침내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작은형이 하려는 일 자체가 가족 사이에서 할 만한 일의 범주를 넘는 것이로구나!’
그게 무엇인지 아직 감은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윤기의 말이 사실이라면 작은형이 집안에서 기반을 완전히 잃을 것이라는 점은 불 보듯 뻔했다.
‘……!’
동시에 최철규는 눈앞의 조카가 자신이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만약 주판알을 튕기고 있던 도중에 조카가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면 이런 판단을 내리지 못했을 테니까.
‘무서운 녀석……!’
최철규는 일단은 백기를 들었다.
절대 정공법으로는 눈앞의 조카와 대적할 수 없다.
만약 자신에게 최철호와 같이 어느 정도 재력이 있는 아버지가 있고, 콜슨 준장처럼 막강한 미군의 지원이 있었다면 비벼볼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지역 유지인 아내 집안의 배경으로는 아무래도 조카와 비벼볼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재산 싸움을 한다고 해도 오랜 기간 아버지와 함께 고락을 같이한 형의 재산은 자신과 비교해서 그야말로 차원이 달랐으니까.
‘이 녀석은 운도 타고났군.’
최철규는 내색하지 않고 조용히 차를 한 모금 더 마시며 대놓고 주판알을 더 굴렸다.
어차피 상대가 시간을 준 이상 충분히 생각할 자격만큼은 가지고 있는 것이니까.
‘하다못해 내가 이 녀석과 연년생인 형제라거나 철호 형의 위치에 있었다면 욕심을 부려볼 만하겠지만, 지금은 경우의 수가 떠오르질 않네. 그렇다면…….’
결론이 떨어졌다.
그것은 바로 조카의 부탁을 들어줌과 동시에 자신의 기둥을 세우는 것.
만약 조카가 흔들리지 않고 삼우 그룹의 뒤를 이을 자격을 보여 준다면 자신은 그저 자신의 기둥을 더 굵고 높게 세울 생각이었다.
물론 기둥 자체는 조카의 기둥이 더 굵고 높겠지만.
“흐음, 여기 커피 맛은 정말 좋다니까.”
조용히 잔을 내려놓은 최철규가 조카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 작은아버지가 졌다.”
만약 주변 사람들이 둘의 대화를 신경 써서 듣고 있었다면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정도로 둘의 짧은 두뇌 싸움은 일반인의 궤를 달리하는 것이었다.
“그걸로 만족하세요?”
곧바로 본론을 꺼낼 줄 알았건만, 뜬금없는 조카의 말에 최철규가 드물게 한쪽 눈썹을 잠깐 들어 올렸다.
“그게 무슨 소리일까……?”
“작은아버지는 삼우 화학의 사장이나 회장 자리로 만족하시느냐는 거죠.”
“글쎄……. 삼우 그룹이 지금 같은 속도로 성장한다면 충분히 가치가 있는 자리가 되지 않을까?”
최철규의 유일한 단점.
그것은 바로 능력 대비 야망이 작다는 것.
만약 최철규의 야망이 능력만큼 컸다면, 도둑놈이 삼우 그룹을 접수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첫째 작은아버지가 운영하는 삼우 그룹의 삼우 화학이 과연 지금보다 규모가 커질까요?”
단순한 물음이라 여길 수도 있지만, 최철규는 이 질문의 속내를 곧바로 파악했다.
그것은 바로 집안 후계 구도에서 최철민의 편을 들지 않는 것을 넘어서 자신의 측근이 되라는 것.
‘어차피 작은형이 윤기를 이길 가능성은 전혀 없어. 윤기의 문제를 떠나서 아버지가 작은형을 후계자로 지목할 리가 없으니까.’
최철규가 최철민의 편을 든다는 것은 최철민을 후계자로 민다기보다는 윤기를 끌어내린다는 의미에 더 가깝다.
그리고 이를 통해 스스로가 최종적으로 후계자가 된다는 목표를 가져야 최철민과 힘을 합치는 것이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최철규는 주판알을 통해 자신이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판단했다.
‘이 녀석, 단순히 집안싸움에서 도와달라는 의미가 아니라, 나를 아예 자기 쪽으로 끌어들이려고 하고 있어. 내가 판단한 이 녀석의 성격은 피아 구분이 확실하다는 건데…….’
77년에 최소한의 재산 상속 개념인 ‘유류분’과 관련된 법안이 발의되고, 79년에 시행되긴 하지만,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재벌가의 상속 싸움은 그야말로 피를 튀기는 수준이었다.
자식들 중 한 명에게 재산을 몰아줘도 남은 자식들이 할 수 있던 게 전혀 없었으니까.
‘철민 형의 편을 드는 것도 바보 같은 짓이고, 이득도 생기지 않는데 윤기와 대척점에 서는 것도 멍청한 짓이지. 결국, 윤기 녀석의 측근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군. 뭐……, 삼우 화학에서 혼자 동떨어져 있는 것보다 윤기 주변에서 고급 정보를 얻어 두는 게 훨씬 좋으려나? 형제는 쉽게 버릴 수 있지만, 측근은 쉽게 못 버리는 법이지.’
고민을 끝낸 최철규는 짐짓 내는 신음을 통해 다시 대화의 꼭지를 열었다.
“으음…….”
“기왕이면 파이가 줄어드는 선택지보다는 커지는 선택지를 택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너는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거니?”
“작은아버지의 안목이라면 이미 답은 나왔을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 제 안목이 틀린 건가요?”
윤기는 상당히 날카로운 말을 들고 나왔다.
‘그렇다’라고 대답하면 윤기의 안목이 틀린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능력이 없다고 스스로를 욕하는 꼴이 되고, ‘아니다’라고 대답하면 방금의 대화가 쓸데없는 것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작은아버지 체면 좀 한번 살려 주면 안 될까?”
마침내 진정한 백기가 나오자, 윤기는 웃으며 진짜 본론을 꺼냈다.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그래,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쪽이라면 최대한 도와주마.”
“좋아요. 그러면, 앞으로는 저희 집에 종종 찾아와주세요. 이런 곳에서 이야기할 것은 아니니까요.”
“그래, 그게 좋겠구나. 그럼, 오늘 저녁에 찾아가마.”
“네, 그러면 저녁에 뵐게요.”
둘 다 자리에서 일어난 뒤, 윤기는 빠르게 계산대로 달려가 찻값을 계산했다.
“450원입니다.”
점원이 말한 것은 차 석 잔의 가격. 순간 최철규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점원을 바라보았다가 빠르게 평정심을 되찾고 조카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차를 두 잔 먹었다는 사실을 들킨 것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기는 전혀 내색하지 않고 최철규를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한 뒤, 자리를 떴다.
“…….”
조용하지만 묵직한 배려.
윤기라는 이름의 배가 녹슬지 않는 한, 최철규가 배에서 뛰어내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 * *
윤기의 방.
이곳에는 윤기의 부모나 류근태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들어왔다.
그것은 다름 아닌 최철규.
최철규는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윤기를 찾아왔고, 꽤 오랜 시간 윤기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확실히 네 계획은 그럴듯해. 군부가 힘을 쓰고 있는 이 상황에서 군부에 미리 연줄을 만들어 놓아서 나쁠 게 없으니까.”
윤기는 최철규에게 조만간 P가 죽는다는 말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현재 저는 나이가 어려요. 미리 적당한 수준의 인맥을 만들어 놓으면, 제가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 때 큰 힘이 될 거예요.]납득 가능한 조카의 계획에 최철규는 고개를 끄덕이며 적극적으로 돕겠다는 입장을 비쳤다.
다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굳이 JSD에게 접촉할 필요가 있을까? 그냥 JD에게 곧바로 접촉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JSD는 77년 기준으로도 신군부의 황제가 될 JD의 측근이었고, 신군부가 들어서는 순간 신군부의 황태자가 될 인물이었다.
미래에 어지간한 사람들에게 한 번쯤은 언급될 그런 존재가 바로 JSD인 것이다.
“저도 그 생각은 안 해 본 게 아닌데, JD는 지금 우리가 접촉하기에는 너무 단가가 세요. JD와 JSD가 막역한 사이니까, JSD와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거예요.”
최철규는 윤기가 어떻게 이런 고급 정보를 알고 있는지 전혀 궁금해하지 않았다.
외할아버지가 미군에서 힘깨나 쓰는 콜슨 준장이었으니까.
‘미군의 힘을 빌린다면 하나회의 기본적인 권력 구조쯤이야 모를 리가 없겠지.’
오히려 최철규는 윤기를 향해 추가적인 주문을 했다.
“윤기야, 혹시 JSD의 가족 사항에 대해 조사해 줄 수 있니?”
“예, 며칠 정도만 기다려 주세요.”
“그러면, 그 내용이 나오면 다시 이야기해 보자. JSD가 생각보다 나이가 많아서 계획을 잘 짜야 할 것 같아.”
“그게 좋겠네요. 시간이 늦었는데, 식사라도 하고 가실래요?”
“그럴까?”
최철호의 집에서 밥을 먹는다는 의미.
그것은 바로 최기현 역시 같이 밥을 먹는다는 것을 뜻한다.
최기현은 윤기가 최철규와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고 대략적인 감을 잡았고, 딱히 최철규에게 이런저런 것을 묻지 않았다.
그리고 최철규가 집을 나섰을 때, 정문이 열리며 최철민이 들어왔다.
“어……?”
동생을 바라보고 의아해하는 최철민의 모습.
“철규야, 이 시간에 네가 여길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