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331)
#331화 편집자? (2)
작가는 베스트셀러 하나를 내는 순간 인생이 꽤 바뀐다.
만약, 책을 썼는데 100만 부 베스트셀러가 된다면?
1988년을 기준으로 몇백 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의 가격은 대략 6천 원.
이 책을 100만 부 판매하게 된다면 10퍼센트의 인세로 계산했을 때, 작가는 6억의 세전 수입을 얻게 된다.
그렇다면 손민관은?
손민관의 소설은 4천 원 정도의 평균 정가를 보였는데, 이를 따지면, 인세를 통한 수입이 ‘아무리 못해도’ 20억은 된다는 얘기다.
왜냐하면, 손민관은 베스트셀러를 몇 개 이상 내어놓은 현세대의 스타 작가였으니까.
세후 수입은 최소 10억 이상.
즉, 손민관은 윤기와 인연을 맺은 덕분에 2010년대를 기준으로 잡으면 대충 30억 이상의 돈을 벌었다는 얘기가 된다.
1988년을 기준으로 이제 20대 후반인데 10억대 자산가가 된 손민관.
이러한 손민관의 일상은 어떻게 변했을까?
놀랍게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흐아아아암.”
햇빛이 짱짱한 봄날의 아침.
늘어지게 하품을 한 손민관은 부엌의 찬장에서 라면 하나를 꺼냈고, 동시에 가스레인지에 불을 올렸다.
‘치치치치칙’ 하는 소리와 함께 가스레인지의 불이 켜졌고, 적당히 물이 들어간 양은 냄비가 불 위에 올라가자 어느새 보글거리며 끓기 시작했다.
후루룩! 후룩! 후루룩!
스타 작가의 아침 식사는 그냥 라면.
손민관은 거실에서 라면을 먹으며, TV를 통해 아침 방송을 보았고, 이후로는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10시.
뒤통수를 긁던 손민관은 서재로 들어갔다.
손민관에게 유일하게 바뀐 것이 있다면 집.
손민관은 가장 큰 방을 서재로 꾸몄고, 그 서재에서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심.
손민관은 다시 라면을 끓였고, 또 저녁까지 책을 보았다.
그리고 저녁은 또……
“너는 맨날 라면만 먹냐?”
어느새 나타난 마석일이 손민관을 향해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아, 형. 오셨어요?”
마석일은 예전 손민관의 직속 상사.
당시 마석일이 손민관에게 아주 많은 것들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손민관은 마석일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마석일은 손민관의 집 열쇠를 가지고 있었고, 아주 편하게 들어온 것이다.
손민관 역시 마석일이 들어온 것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상황.
하지만, 마석일은 손민관의 부엌을 보고는 혀를 끌끌 찼다.
“라면 봉지가 세 개인 걸 보니까, 오늘 종일 라면만 먹었구만?”
“뭐, 그렇죠.”
“하이고…….”
마석일은 냉장고를 열었다.
그러자, 마석일이 가져다준 반찬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보였다.
“야, 가져다준 반찬은 왜 안 먹냐? 우리 와이프 음식 맛있다며.”
“아, 그거 데워 먹기가 귀찮아서요.”
손민관은 뒤통수를 긁으며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야, 그냥 냉장고에서 꺼내 먹기만 해도 되잖아.”
어처구니없어 하는 마석일을 향해 나오는 답변이 그야말로 걸작.
“그냥…, 반찬통을 꺼내는 게 귀찮아요. 그리고 밥 먹으면 밥해야 하잖아요.”
마석일은 손민관의 대답에 뒷목을 잡았다.
“아, 내 뒷골. 야, 가스레인지 꺼!”
“네? 방금 면 넣었는데요?”
“그건 버리든지 하고, 일단 꺼!”
“어…, 네.”
손민관은 마석일의 말을 잘 듣는 편에 속했기 때문에 가스레인지의 불을 껐다.
그러자 마석일은 손민관을 식탁 의자에 앉혀 놓고는 양복을 입은 상태 그대로 부엌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오, 밥 상태 봐라.”
마석일은 저번에 왔을 때, 손민관의 밥솥에 밥을 안쳐놨다.
그렇다면 지금은?
“그나마 절반은 먹었네…….”
“라면에 밥 말아 먹으면 맛있잖아요.”
그러나 먹은 것은 어디까지나 절반뿐.
“돌겠네. 너 70년대에는 어떻게 살았냐?”
70년대에는 사실상 보온밥솥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나마 77년쯤부터 등장하기는 했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부유층의 전유물.
그렇다면, 손민관은 70년대에 어떻게 생존한 것일까?
“라면이요.”
“아…….”
어찌 보면 당연한 대답에 마석일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밥이냐? 누룽지지. 아니, 누룽지도 이것보단 촉촉하겠다.”
지은 지 무진장 오래되어서 흑갈색으로 변색된 것도 모자라 퀴퀴한 냄새에 딱딱해지기까지 한 밥솥의 밥.
마석일은 수세미를 들더니 기스가 나든 말든 일단 밥솥의 내열 용기를 빡빡 닦았다.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냄새가 가시지 않을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답이 없었다.
“어우, 씨. 야! 가서 보온밥솥 하나 사 와!”
“네? 그거 멀쩡한데…….”
“너는 이게 멀쩡해 보이냐?”
마석일은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밥솥을 손민관의 앞으로 들이밀었다.
그러자 보관이 전혀 되지 않은 내열 용기에서 나오는 냄새가 손민관의 코를 자극했다.
“으음…….”
“사 와!”
“아까운데…….”
“나보다 잘 버는 녀석이 무슨 돈 타령이야. 잔말 말고 사와!”
결국, 손민관은 밍기적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바깥으로 나갔다.
반팔 티셔츠에 반바지에 슬리퍼.
마석일은 그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회계사들의 말이 진짜 틀린 게 없네.’
마석일은 회계사들과도 친분이 있었는데, 회계사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
그것은 바로 작가들에 대한 것이었다.
[작가들이 제일 돈 안 써요. 못 버는 작가든, 베스트셀러 작가든 돈을 안 쓰더라고요.]손민관이 하는 행동을 보면 정말 베스트셀러를 몇 개나 쓴 작가라고 보기가 힘들었다.
물론, 집이 좀 넓어지고 서재가 생기긴 했다.
하지만, 나머지 부분에서 손민관의 일상은 한 달에 며칠 막노동을 나가는 사람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냥 내가 다시 옆에서 끼고 살까?’
업무가 주어지면 그 부분은 잘하는 녀석이 집에 혼자 있으면 이런 생활을 하니, 마석일은 정말 손민관이 이해되지 않았다.
“사 왔어요.”
손민관이 보온밥솥을 내밀자, 마석일은 쌀을 씻으면서 물었다.
“야, 너는 혼자 이렇게 지내면 안 외롭냐?”
그러자 손민관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요?”
답변이 ‘왜요’란다.
그렇다.
저건 정말 불편함을 전혀 느끼고 있지 못해야 나올 수 있는 말이다.
‘하이고, 저런 얼굴로 저런 말을 하는데 어떻게 내가 끌고 다닐 수 있겠냐고.’
손민관이 자신의 일상에 회의를 느끼고 있다면야, 마석일도 손민관을 옆에 끼고 살 명분이 생긴다.
하지만, 본인이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끼어드는 것은 그야말로 오지랖.
그렇기에 마석일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밥솥의 취사 버튼을 눌렀고, 이어서 자신이 가져다주었던 반찬들을 확인했다.
“어우…….”
당연한 말이지만, 죄다 상했다.
“돌겠네.”
마석일은 집에 전화를 걸어 아내에게 구조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약 40분 후.
마석일의 아내가 반찬들을 바리바리 싸 들고 찾아왔다.
“민관아, 또 내 반찬 안 먹었어?!”
소리를 버럭 지르는 마석일의 아내 김세영.
손민관과 마석일이 엄청 친해져서 완전한 형, 동생이 된 이후, 김세영 역시 손민관의 누나 같은 사람이 되었다.
“어…, 음…….”
손민관이 대답을 못 하자, 김세영은 손민관의 등짝을 쫙쫙 때렸다.
“너 하루 세끼 라면만 먹다가 몸 상해! 아직 30대도 안 된 녀석이 벌써 그렇게 인생 대충 살면 어쩌자는 거야!”
“아니, 그게…, 으윽…….”
어찌 보면 평화로운 일상을 방해받은 손민관이었지만, 사실 마석일이 이렇게라도 종종 찾아오지 않으면 손민관은 진작에 영양실조로 병원에 입원했을지도 모른다.
하루에 라면 세 개만 먹는 것으로 사람의 몸이 제대로 유지될 리 없으니까.
“자, 먹어!”
김세영이 솜씨를 발휘하자, 순식간에 식탁에 제대로 된 식사가 차려졌다.
“당신도 먹을 거지?”
“응? 아, 그렇지.”
아내의 말에 마석일이 고개를 끄덕였고, 어느새 셋이서 저녁을 먹는 모양새가 되었다.
“어때, 민관아. 라면보다 이게 더 맛있지?”
마석일의 말에 손민관이 그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누나, 맛있네요.”
김세영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일 때, 마석일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면, 평소에도 제대로 차려 먹어. 여기 누님이 너한테 반찬 챙겨 주잖아.”
“그게 좀…. 김치 꺼내는 것도 귀찮더라고요.”
“하이고…….”
마석일은 물론이고 김세영까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결국 해결하지 못한 손민관의 게으른(?) 습관.
아내가 돌아가고 나서 마석일은 손민관과 커피 한 잔의 시간을 가졌다.
“너는 글 쓰는 건 부지런한데, 왜 다른 부분은 그런 거냐?”
“음, 글쎄요…? 그냥, 글 쓰는 거 말고는 크게 흥미가 없어서 그런가…?”
“아니, 너 사회생활은 또 열심히 했잖아.”
“그건, 글 쓸 때 도움을 주는 경험이잖아요. 근데 밥 먹는 건 지금까지 많이 해봐서 딱히 경험이 될 만한 게 없고요.”
뼛속까지 작가다운 생각에 마석일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고…, 넌 도대체 누구랑 결혼할지 감도 안 잡힌다.”
“글쎄요…. 결혼하면 글 쓸 시간도 없을 것 같아서, 아마 안 할 거 같은데…….”
마석일의 고개가 뒤로 확 넘어갔다.
마치 의자 목에 머리를 쿵쿵 찧으려고 시도한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 정도로 손민관의 대답은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니, 이런 녀석이 글은 또 맛깔나게 쓰는 거 보면 신기하단 말이지?’
헛웃음을 짓던 마석일은 도저히 손민관을 바꾸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래, 그냥 부탁이나 하자.’
오늘 마석일이 손민관을 찾아온 이유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
그렇기 때문에 마석일은 조심스럽게 본론을 꺼냈다.
“민관아, 내가 요새 MEV 쪽에서 신문 관련으로 일하고 있는 거 알지?”
“예, 원고 가지러 오는 사람한테 대충 이야기는 듣고 있어요.”
2010년대야 작가가 메일로 원고를 보내는 시절이지만, 88년은 편집자가 직접 작가에게 원고를 받으러 와야 했다.
그렇기에 손민관은 마석일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대충 소식을 알고 있었다.
“그래, 그러면 이야기가 빠르겠네. 네가 연재해 준 덕분에 현재 중점적인 일은 아주 잘되고 있어.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이게 한계에 부딪히고 있거든.”
“그래요?”
손민관의 반문에 마석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지금 일일 발행 부수 150만 부를 넘긴 상황인데, 발행 부수 400만 부는 되어야 내가 생각한 전략을 실행할 수가 있어.”
“400만 부라…, 그 정도면 책으로 쳤을 때, 당해 베스트셀러 수준을 넘어서 2년 내지 3년은 연속으로 베스트셀러를 유지해야겠는데요?”
“그래, 되게 쉽지 않은 일이지. 그래서 내가 요새 골치가 아프던 참에 네가 떠올랐어.”
“제가요?”
“응, 네가 정말 힘들 거라는 것은 알고 있는데, 혹시 다른 소설도 좀 연재해 줄 수는 없겠냐? 현재 상황에서는 그게 발행 부수를 늘리는 확실한 방법이야.”
마석일이 생각하고 있는 방법.
그것은 두 개의 신문에 각기 다른 손민관의 소설을 연재하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손민관의 소설을 보기 위해 신문을 사는 사람들이 생길 테니까.
하지만, 이것은 전적으로 손민관을 갈아 넣어야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고민이 되었던 것도 사실.
그렇기에 마석일이 이렇게 조심스러운 것이다.
물론, 마석일과 손민관의 관계가 단순 지인을 아득히 넘어 친형제 수준이 되었기에 가능한 방법이기도 했다.
“다른 소설을요?”
“응, 어떻게든 안 될까?”
마석일의 말에 손민관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미, 민관아?”
손민관은 대답하지 않고, 갑자기 작은 방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손민관은 아주아주아주 두툼한 원고지 뭉치를 마석일 앞에 내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