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34)
#34화 신군부의 황태자 (2)
최철규는 최후의 선택의 기로에 섰다.
그것은 바로 최철민에게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를 제대로 말해 주는 것.
하지만 최철규는 전혀 주저하지 않고 기존의 선택을 유지했다.
“형도 참. 아들이 아버지 보러 오는 게 무슨 대수겠어?”
“아, 그, 그렇긴 하지.”
자신이 멍청한 질문을 했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최철민은 동생을 향해 불안한 눈초리를 계속해서 보냈다.
아버지의 눈도장은 가능하면 자신만이 찍어야 하는데, 동생이 갑자기 나타났으니 불안했던 것이다.
“형, 내가 여기 그냥 왔겠어?”
심리를 눈치챈 최철규의 말에 최철민이 바로 반응을 보였다.
“그, 그래. 괜히 왔을 리가 없겠지?”
최철규는 최철민의 귀를 향해 입술을 가져다 댄 후, 조용히 속삭였다.
“아버지한테 형 칭찬도 하고, 무엇보다도……, 윤기 녀석에 대해서 적당히 나쁘게 둘러댔어. 이게 반복되면 아버지가 윤기 녀석을 바라보는 눈빛도 점점 달라지겠지.”
순식간에 최철민의 표정이 헤벌쭉하게 변했다.
“크으……, 역시 너한테 이야기하기를 잘한 거 같아. 앞으로도 자주 부탁할게.”
“걱정 마. 내 성격 몰라?”
“아주 잘 알지. 그럼 조심히 들어가라!”
손까지 흔드는 형을 바라보며 최철규는 미소를 지은 포커페이스를 잃지 않은 상태로 자신의 차에 올라탔다.
‘에효, 저걸 이용해서 윤기한테 대적하느니 지금 선택이 확실히 옳을 거야.’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를 차창 너머로 들으며 최철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 *
“저녁도 늦었는데 무슨 일이냐?”
아버지의 말에 최철민은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에이, 아들이 아버지 집에 찾아올 수도 있지요.”
“여긴, 내 집이 아니라 네 형 집이다.”
“그래도 아버지가 계시잖아요.”
“네 형이랑 형수한테 민폐가 되니까 너무 자주 찾아오지는 마라.”
대놓고 면박하는 아버지의 반응을 보면서도 최철민은 억지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이 있다면 동생이 아버지에게 윤기에 대해 이간질을 하고 있다는 점?
하지만, 그게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최철민은 꿈에도 몰랐고, 거짓이라는 점을 알아낼 수도 없었다.
아버지한테 직접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형의 집에 끄나풀을 심어 두지도 못했으니까.
“그래서, 또 무슨 말을 하러 온 거냐?”
“아뇨, 아버지가 아니라 윤기한테 볼일이 있어서요.”
“윤기한테?”
최기현이 굉장히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손자가 자기의 첫째 작은아버지에게 살갑게 구는 것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네. 윤기가 이번에 4학년 올라가잖아요. 이제 국민학교 고학년이 되는 거니까 선물을 좀 가져왔지요.”
“선물……?”
“네. 윤기 방에 있나요?”
“방에 있기는 하다만…….”
아버지의 말을 들은 최철민은 윤기의 방문을 두드렸다.
“윤기야, 안에 있니?”
“……네, 있어요.”
방문이 열리고 윤기가 고개를 꾸벅였다.
“오셨어요. 무슨 일이세요?”
지극히 사무적인 모습.
그러자 최철민은 들고 있던 가방을 윤기에게 건넸다.
“뭔가요?”
“선물이야. 너 나한테 선물 받아 본 적 한 번도 없지?”
“아, 예……. 감사합니다.”
윤기는 대놓고 떨떠름한 표정을 보이며 선물을 받았고, 아예 뜯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안 뜯어봐?”
“앞에서 뜯어보는 것은 예의가 아니니까요.”
“뜯어봐.”
“나중에 뜯어볼게요. 감사합니다.”
“으응…….”
“다른 볼일이 있으신가요?”
“아니, 그건 아니지만…….”
“그럼, 저는 일이 좀 있어서 이만 실례할게요.”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고, 최철민은 잠시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현재 최철민의 목적은 자신이 윤기를 적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윤기에게 보여 주는 것.
선물이나 좀 주면 어린아이 특성상 금방 자신을 따를 거라 생각했는데, 그야말로 오판 중의 오판이 따로 없었다.
“안 가냐?”
지금까지의 상황을 지켜보던 최기현의 말에 최철민은 아버지에게 고개를 숙였다.
“예, 아버지. 가 볼게요.”
최철민은 굳은 표정으로 형의 집을 나섰고, 현관문 소리가 나기 무섭게 윤기가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왔다.
첫째 작은아버지가 준 선물과 함께.
포장도 뜯지 않은 직육면체의 상자.
“할아버지, 이걸 제가 버려도 괜찮을까요?”
윤기는 약간의 도박 수를 걸었다. 만약 지금 행동을 허락받는다면, 앞으로 첫째 작은아버지를 상대할 때 거리낌이 없어질 테니까.
‘할아버지 성격이라면 반대하시진 않으실 거야.’
예상대로 최기현은 화를 내지는 않았다.
“결정한 거냐?”
“네. 혹시 할아버지께서 불편하시다면 하지 말까요?”
“아니, 아니다.”
최기현은 마음이 안쓰러우면서도 동시에 일부 안도하는 자신을 생각하며 속으로 다소 놀랐다.
윤기가 어정쩡하게 온정이 있으면 오히려 그게 더 안 좋은 일일 테니까.
손자의 이 행동은 자신에게 보고하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할아버지, 저는 첫째 작은아버지와는 완전히 척을 질 겁니다.]‘윤기가 산부인과에서 있었던 일을 알 리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둘째 며느리인 박경자가 하려고 했던 행동을 떠올리면, 윤기의 지금 이런 행동은 전혀 문제 될 게 없다고 최기현은 스스로를 다독였다.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되겠느냐?”
“네, 말씀하세요.”
윤기는 공손히 할아버지를 향해 몸을 돌려 자세를 잡았다.
“이렇게 대놓고 계기를 만들어 두려는 이유가 뭐냐?”
“첫째 작은아버지가 제대로 된 적이라면 저 역시 제 감정을 속이죠. 하지만, 그럴 필요조차도 없고, 여지조차도 만들어 두고 싶지 않아요.”
무서울 정도로 철저한 손주의 행동에 최기현은 아비로서의 마지막 정을 담아 손주에게 물었다.
“혹여, 철민이 녀석이 너에게 굽히고 들어온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어요.”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윤기는 할아버지가 어떤 심정으로 말을 하는지 알았기에 최소한의 여지는 주었다.
“만약 그렇다면……, 할아버지가 조금이라도 안심은 하실 수 있겠지요.”
“그래, 그만 들어가 보거라.”
“예, 할아버지도 안녕히 주무세요.”
닫힌 손주의 방문을 바라보며, 최기현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분재 하나를 살 생각을 했다.
‘이걸로도 못 알아먹는다면 내가 포기를 해야겠지. 손가락 하나 때문에 손을 자를 수는 없는 일이니까.’
* * *
최철규는 아버지의 집에 자주 드나들어도 작은형의 의심을 전혀 사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어제 큰형의 집 마당에서 마주쳤을 때는 포옹까지 받았을 정도였으니까.
‘어제는 정말로 굉장했지.’
막 정문을 나서려는 순간 안에서 작은형의 고성이 터져 나왔고, 최철규는 바깥 창문을 통해 조용히 안쪽의 상황을 살폈다.
찌그러진 선물 상자를 들고 화를 내고 있는 작은형의 모습.
아까 자신이 집에 갔을 때도 쓰레기통에 넣어져 있었던 것을 보면, 최근 작은형이 윤기에게 선물을 했던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창문을 통해서 보이는 윤기의 모습은 담담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다시 선물을 달라는 듯 손을 뻗고 있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난 지금.
아까 거실을 지나칠 때, 또다시 선물 상자가 더욱 구겨진 채로 쓰레기통에 들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윤기야,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되겠니?”
“얼마든지요.”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는 조카를 보며, 최철규가 물었다.
“어제, 형한테 뭐라고 변명……, 아니 대답한 거야?”
“가정부들 중 한 분이 실수로 버린 것 같다고 했죠.”
최철규는 속으로 ‘대단하네’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책임을 가정부들에게 떠넘기면서도 ‘들’이라는 표현을 씀으로써 가정부들이 최철민에게 혼날 여지를 없앤다.
더불어서 상대와 더더욱 척을 벌리는 방법.
‘작은형도 등신이 아닌 이상에야 조카가 어떤 신호를 보냈는지 명확히 알고 있겠지. 아니, 선물을 강제로 떠넘긴 것을 보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것 같기도 하지만.’
아마, 선물을 다시 떠넘기면서도 어지간한 머저리가 아닌 이상 그 선물이 다시 어떻게 될지는 알게 될 것이다.
‘예상을 했든 못 했든, 조만간 다시 한번 고성이 터지겠구먼.’
문득 최철규는 상자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궁금해졌다.
“안에 혹시 뭐가 들어 있는지는 확인해 봤어?”
“아뇨.”
윤기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어떤 것이 들어 있더라도 별 의미가 없을 테니까요.”
“예전부터도 느끼고 있던 거지만, 네가 정말 11살이 맞는지 궁금할 정도야. 가우스나 폰 노이만의 부모들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저는 그런 천재가 아니에요.”
천재가 아니라는 답으로 들릴 법도 하지만, 최철규의 귀에는 ‘그런 분야의 천재’가 아니라는 말로 들렸다.
‘뭐, 여기서 더 파고들 이유는 전혀 없으니까.’
어차피 작은형 쪽은 버리기로 작정했기에 최철규는 오늘 온 이유에 대해 말했다.
“혹시 저번에 부탁했던 거 준비됐니?”
“네, 물론이죠.”
윤기는 갈색 서류 봉투에서 JSD에 관한 서류를 꺼냈다.
“너는 읽어 봤어?”
“네.”
고개를 끄덕이는 조카를 보며 최철규는 자신이 시험당할지도 모르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최소한 윤기가 생각한 것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의 계획을 세워야 해.’
자신과 JSD의 나이 차이는 10년 이상.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접촉할 수 있을지 알아보기 위해 추가 자료를 요청한 만큼, 최철규는 꼼꼼하게 서류를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접촉해 볼 여지는 확실히 있어. 문제는 아내한테 이야기를 해 봐야 한다는 거지만.’
당장 윤기에게 답을 줄 수는 없는 상황이었기에 최철규는 시간을 필요로 했다.
“윤기야…….”
“삼촌, 죄송한데 제가 먼저 말을 해도 될까요?”
“어? 아, 그래. 당연하지.”
고개를 끄덕이자, 윤기가 말을 이었다. 아주 낮은 목소리지만, 적어도 방 안에서만큼은 확실히 전달될 어조.
“저는 청계천에 미군을 대상으로 한 프리미엄 백화점을 열 생각이에요.”
“아, 작은형이 말했던 공사가 그거였구나. 어떤 걸 지으려고 했는지는 나도 몰랐거든.”
“당연하죠. 이 계획을 알고 있는 것은 저와 류 비서, 그리고 작은아버지밖에 없어요.”
화끈한 특별 대우를 받고 있다는 사실에 최철규의 속마음이 조금 좋아졌다.
“그걸 허가받기 위해 JSD에 선을 대는 거야? 하지만, JSD는 그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JSD가 JD한테 부탁을 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기라도 한 거야?”
윤기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JSD는 어디까지나 미래를 위한 투자에요. 지금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작은아버지에게 ‘계기’를 만들어 드리려고요.”
“계기?”
“네. 백화점이 개점하면 점포 관리 쪽에 있어서는 작은어머니에게 맡길 생각이에요.”
“작은어머니라면……, 내 아내?”
최철규의 마음속에 ‘기대감’이라는 감정이 솟아오르기 시작했고, 이내 그 감정은 윤기의 고개가 끄덕임으로써 실체를 확실히 드러냈다.
“네. 한동안은 직영으로 운영을 해야겠지만, 추후 직영이 아닌 계약으로 바뀌겠지요. 그때 백화점 내의 모든 점포의 관리……, 그러니까 최하 부장에서 최고 부사장 정도의 직급을 작은어머니에게 드릴 거예요.”
꿀꺽!
최철규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이 아이, 정말로 미쳤어.’
아내의 집안이 지역 유지라고는 하나, 아내는 외동딸이 아니라 남매가 있었다. 그것도 남자 형제가 셋이나.
따라서 상속에 있어서는 비율이 높지 않을 상황이었는데, 윤기가 재정 자립의 기회를 제시한 것이다.
‘추후 계약 점포로 바뀌게 된다면, 계약을 희망하는 점포들의 로비를 통해 될 얻게 될 이익이…….’
조카가 이걸 모르고 제안을 할 녀석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아는 최철규였기에 다시 한번 침을 꿀꺽 삼켰다.
만약 아니라면 굳이 ‘점포 관리’라는 단어를 명확하게 말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싫으신가요?”
“아, 아니. 싫을 리가. 나야 정말 고맙지.”
포커페이스가 살짝 깨진 최철규를 향해, 윤기가 다시 한번 물었다.
“그래서……, 좋은 생각이 떠오르셨나요?”
최철규에게는 더 이상 생각할 시간이라는 게 필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