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346)
#346화 두 달이면 충분하지? (4)
“죄, 죄송합니다!”
그래도 지금 상황에서 가장 정석적인 대답은 다름 아닌 사죄.
2010년대가 되면, ‘죄송합니다. 무엇을 고쳐야 할까요?’ 정도는 나올 수도 있겠지만, 80년대 일본에서 그런 것은 절대 상상할 수 없다.
오로지 허리를 굽히는 것뿐.
“허리만 굽히지 말고, 다시 해 와!”
중간 관료가 내팽개친 서류를 집어 든 하급 관료는 일단 서류를 집어 들고 자신의 사무실로 향했다.
‘서류에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는 거지?’
자신이 봤을 때는 전혀 문제가 없는 서류.
하지만, 중간 관료가 저런 반응을 보이니 어쩔 수 없었다.
“윗선에서 다시 해오라고 하시는데 어쩌겠어. 다시 해 와.”
말단 관료에게 토스.
그러자 말단 관료는 아리송한 반응을 보이며, 어쨌든 서류를 다시 해 왔다.
여러 내용을 바꾸고, 이리저리 수정을 가한 서류.
그렇기에 하급 관료는 이번에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결재 후 중간 관료에게 가져갔다.
하지만….
“다시 해 와!”
서류를 불과 3초도 보지 않고 던져 버리는 중간 관료의 행동.
그렇기에 하급 관료는 다시 말단 관료에게 상황을 전달했다.
“내용을 보지도 않고 던지신 것으로 봐서는 내용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아. 문단 구분 같은 게 문제가 아닐까?”
비슷한 일로 대한민국 군대에서는 상급자한테 결재를 받을 때, 상급자의 취향에 맞춰서 글꼴, 띄어쓰기, 문단 정리까지 개별적으로 맞추기도 했다.
아마, 행정병 출신인 지인을 둔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이며 신나게 설명을 들을 수 있겠지.
하지만 시대가 1988년인 이상, 다양한 글꼴 같은 것이 있을 리 없었다.
그렇기에 의심해 볼 만한 것은 역시 문단.
말단 관료는 하급 관료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서류의 문단을 정비했다.
하지만.
“이런 빌어먹을! 아까부터 나하고 장난하자는 거야?”
중간 관료가 고함을 버럭 지르자, 하급 관료는 중간 관료가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 같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게 아니고서야, 이렇게까지 서류 하나 결재하는 데 소리를 지를 이유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의외로 정말 이유가 있었다.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이유가 말이다.
“죄,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만, 제 미천한 머리로는 도무지 제가 어떤 실수를 저질렀는지 모르겠습니다.”
하급 관료의 말에 중간 관료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도장을 이렇게 찍으면 어떡해!”
“예? 옛?”
하급 관료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중간 관료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서류를 바라보았다.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하지만, 중간 관료의 눈에는 문제가 보였다.
“도장을 이렇게 반듯하게 찍으면 어떡해! 윗선을 향해 45도 각도로 찍어야지!”
“………!”
정말 상상도 못 했던 내용이었기에 하급 관료는 입을 떡 벌렸다.
“뭐야, 그 반응은?”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지, 지금까지 한 번도 안 해 본 것이라…….”
“도대체 어떤 근무지에서 근무했던 거야. 엉? 이게 기본이라는 거 몰라?”
기본적으로 서류를 결재할 때는 회사로 치면 ‘사장, 이사, 부장, 과장’ 순으로 도장을 찍어야 할 때가 많다.
이때, ‘이사, 부장, 과장’은 자신의 도장을 45도로 기울여서 찍어야 하는 문화가 ‘일부 일본 회사’에 실제로 존재한다.
도장이 타원형이기 때문에 가능한 발상인데,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인사하는 모양을 나타낸다며 이렇게 도장을 찍는 것이다.
심지어 2010년대의 일본에도 이러한 문화가 남아 있었다.
물론, ‘어지간하면 블랙 기업에서나 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제대로 처신하겠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어쨌든 그 이유를 알았기 때문에 하급 관료는 서둘러서 말단 관료에게 그 사실을 전달했다.
말단 관료 역시 혀를 내둘렀지만, 어쨌거나 서류는 드디어 통과했다.
무려 2시간이나 걸렸지만.
* * *
서류 통과만 문제인 것이 아니었다.
2차 세계 대전과 관련한 영화를 찍어야 했기 때문에, 당시의 군대와 관련한 고증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본은 기본적으로 2차 세계 대전과 관련해서는 제대로 된 역사 교육을 하지 않는 국가.
때문에 40대 이하의 젊은 공무원들은 태평양 전쟁 때 일본군이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거의, 아니,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자문을 할 수 있는 것은 역시나 자위대.
그런데 문제가 생겨 버렸다.
[2차 세계 대전 영화라면 당연히 우리 육상 자위대의 자문을 받아야 한다.] [아니다! 당시 해군의 활약이 가장 대단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해상자위대의 자문을 받아야 한다.] [비행기에 관한 자문이라면 당연히 항공자위대의 자문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육상, 해상, 항공자위대의 막료들이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
어마어마한 금액을 투입하는 사실상의 국책 사업.
그런 만큼, 각 자위대의 막료들은 어떤 기관이 개입하느냐에 따라서 해당 기관은 상당한 명예를 가질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렇다 보니 생기는 필연적인 싸움.
현장 공무원들은 그야말로 환장할 지경이었다.
‘기간이 두 달도 안 남았는데, 이러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된다!’
그렇기에 일부 현장 공무원들은 자신들의 인맥을 동원해서 자위대가 아닌 사람 중 군사 전문가를 찾아 자문을 받고 보고서를 작성했다.
자위대의 자문을 기다렸다면 결코 작성되지 않았을 보고서.
이러한 보고서들 덕분에 일의 진행이 빨라졌다.
아니, 빨라졌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예? 좌천이요?]]]해당 행동을 한 공무원들은 남김없이 좌천되어 시골로 발령이 났다.
이유는 ‘메뉴얼에 없는 행위를 했다’라는 이유 때문.
자위대의 답변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서 감히 메뉴얼에 없는 행동을 해서 조직에 위해를 끼쳤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아마 한국 사람들이 보면 기가 차겠지.
그런데, 일본에서는 이게 당연한 일이었다.
당장 2019년에 벌어진 큐슈 지진 때만 해도, 자위대가 큐슈 사람들을 위해 급수차를 준비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공무원들은 자위대의 이러한 급수차를 거절했다.
왜냐하면, 메뉴얼에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자위대는 그 물을 어떻게 했을까?
버렸다.
그렇다.
지진 때문에 당장 식수가 없어서 고생하고 있는 상황인데, 그걸 시민들에게 나눠 주는 게 아니라 그냥 버린 것이다.
당장 식수가 급한 상황에서 메뉴얼이 없다며 거절하는 공무원.
거절당했다고 해서 그냥 바닥에다가 물을 쏟아버리는 자위대.
그야말로 환장의 콜라보.
그저 버블 시대 때, 세계 경제 2위라는 허상으로 인해 사람들이 못 봤던 것뿐이지, 일본의 관료제는 언제나 융통성 없이 꽉 막힌 방식을 유지하고 있었다.
88년이라고 해서 다를까.
심지어 갈수록 태산이라는 말처럼, 일본의 영화 제작에 있어서 문제점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 * *
“이것이 ‘제국의 바람’에서 일본군들이 쓸 복식이라고 합니다.”
총리와 대신들은 영화 이름만큼은 괜찮게 만들어 냈다.
문제는 제목만 괜찮다는 거였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제국주의 시절 일본은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바랐다는 내용의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얘기죠?”
윤기의 물음에 손민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떠오르질 않습니다.”
회의적인 손민관의 시각에 윤기가 반응을 보였다.
“그래요?”
“네. 제가 만약 제국의 바람을 집필한다고 생각해 봤는데, 그 어떠한 방면에서 접근해도 재미있는 스토리가 생각나질 않습니다. 왜냐하면, ‘일제 찬양’이 중심 내용이 되는 영화일 테니까요.”
‘일제 찬양’이라는 단어에 윤기가 비웃음을 흘렸다.
“푸흐흐, 참 대단한 국가예요. 그나저나 어떤 방면으로도 힘들다고 했는데, 좀 더 알려 주실 수 있나요?”
“멜로 쪽으로 접근하면 무조건 신파가 될 텐데, 외국인들이 일본인들의 멜로 장면을 보고 좋아할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외국인들은 백인우월주의가 있으니까요.”
“하긴 그렇죠.”
대놓고 길거리에서 동양인 못생겼다고 비하하는 일이 흔하게 벌어지는 미국과 유럽인데, 동양인들끼리 멜로와 신파를 찍는 스토리를 좋아할 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다 때려 부수는 영화를 찍자니, 일본은 패전 국가란 말이죠? 거기에다가 관람객들은 대부분 추축국이 아닌 연합군이고요.”
“그렇죠.”
“제 전문 분야인 추리물을 넣자고 해도, 전쟁 장르에 추리물을 넣는다? 이건 추리를 주 장르, 전쟁을 부 장르로 넣는다면 모를까, ‘제국의 바람’은 전쟁이 주 장르이기 때문에 역시나 불가능합니다. 만약 저라면, 이런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는 의뢰가 들어온다면 안 받을 겁니다.”
손민관의 명확한 일침에 윤기는 마음에 들었다.
‘제국의 바람’이 적어도 스토리 면에서는 확실히 망한다는 이야기니까.
“아, 그리고 제가 이 소품들을 입수해서 가져온 이유는 그냥 이 소품들의 가격이 상상을 초월해서 그렇습니다.”
“얼만데요?”
“예, 얼마냐면……”
손민관이 액수를 말하자, 윤기도, 최철준도 깜짝 놀라 입을 떡 벌렸다.
17배!
단순 복색일 뿐인데도, ‘충무공 이순신’에서 병사들이 입는 복장과 비교했을 때, 무려 17배나 비싼 금액이 나온 것이다.
“이거 뭐, 명품 브랜드 로고라도 박혀 있는 건가?”
최철준의 말에 윤기가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개인이 찍는 데 반해서 일본은 현재 국책 사업처럼 진행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아마 ‘눈먼 돈이다’라고 생각하고, 정치인들 친척이 운영하는 회사에 외주를 준 거겠죠. 당장 품질만 봐도 답이 없잖아요?”
실제로 ‘제국의 바람’에서 쓰일 소품의 품질은 너무나도 조악했다.
임진왜란 조선군의 소품이 훨씬, 정말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더 좋아 보였으니까.
“아…, 그렇네. 우리는 개인이 만드는 영화라서 효율을 생각하고 낭비를 막지만, 쟤네는 국책 사업이니까 그냥 눈먼 돈이라고 생각하고 마구 쓰는 거구나?”
“갈라먹기 편하니까 그런가 봐요.”
윤기는 2010년 즈음에 한국에서 22조 원이 낭비된 것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나저나 걱정 안 해도 되겠네. 나도 이야기 들어 보니까 거기 촬영도 진짜 지지부진하다며? 시나리오도 아직 완성 안 됐다는 이야기가 있고. 게다가 오늘 소품도 보니까, 그냥 전혀 신경 안 써도 되겠네.”
“그래서 말씀드렸잖아요. 전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된다고. 차라리, 일본 기업 중 하나가 ‘와이케이에 질 수 없다!’라면서 참전했으면 조금은 긴장했을 텐데, 일본 정부가 영화 찍는다고 한순간, 저는 웃음만 나오더라니까요?”
“하하하핫! 그러게, 내가 너무 과민하게 군 것 같아.”
최철준이 웃고 있을 때, 손민관이 조용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회장님. 생각보다 예산이 어마어마하게 투입되고 있는데, 정말로 괜찮으신가요? 더군다나 이걸 무료로 개봉하신다고 하셨으니까 순수하게 손해가 된다는 건데…….”
조심스러운 충언에 윤기가 호탕하게 웃었다.
“괜찮아요. 어차피 돈을 벌 계획은 다 세워 놨거든요. 그리고 외국인들에게 무료로 개봉하는 건 어디까지나 올림픽이 진행되는 동안, 한국에서만 할 거고요.”
“아, 그런가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이미 세워 둔 계획.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호재가 겹쳤다.